성모신심이란 성모님의 고귀한 성품과 사명의 온갖 측면을 우리 삶안에서 재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세의 생활안에서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성모님의 삶을 우리의 삶안에서 재현시키는데 가장 방애가 되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삶의 요소 중 고통과 부활을 나누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성모님 두분 모두 고통과 영광의 반대되는 두요소를 모두 함께 지니시고 그 생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신분들이시다.
그래서 교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느것도 우리의 임의대로 취사선택(取捨選擇)할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레지오 활동을 하게되면 단계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처음단계에서는 봉사의 삶을 시작하면서 얻게 되는 기쁨과 보람을 얻게 된다.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을 발견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기도 하면서 영혼은 정화되고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봉사의 삶을 지속하면서 이세상의 고통과 부조리 그리고 어둠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나약함과 악과 고통의 깊이를 실감하면서 신앙의 위기가 올수 있다.
이때야 말고 중요한 시기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는 자신이 가장 어려운 순간에 묵주기도를 받쳤다고 한다.
프랭크 더프가 레지오를 창설하기 전부터 그는 여러 어려움들을 세속적인 지혜에 의탁하기 전에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의 은총을 묵주기도를 통해 얻고자하였다.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앞서 천상적 지혜와 은총을 구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상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세속적 지혜를 동원해 보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은총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기도하라는 어느성인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아직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말은 매우중요한 것이다.
성모님은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 그분은 어린 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하게 될것이라는 천사의 아룀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드렸을까?
많은 신학자들은 성모님의 생애를 어둠속에 빛나는 별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성모님께 드리는 호칭중에 바다의 별이라는 호칭이 있다.
나는 이 호칭을 들을 때 마다 성모님의 생애를 가장 잘 시적으로 표현한 호칭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원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기준과 방향은 바로 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바다에서 사는 어부들은 바다에 사는 동안 배라는 삶의 터전과 낚시로 얻은 물고기가 희로애락의 기준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바다에 나아갈 때 그들이 바라보고 나갈 바를 인도해주는 안내자는 바다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별이다.
바다가 아무리 폭풍과 파도 그리고 암초등으로부터 오는 시련의 시기일수록 자신의 위치와 나아갈 바를 알기 위해 우리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한다. 바다가 아무리 많은 물고기와 푸르름의 아름다움을 준다하더라도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선 바다가 아닌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모님은 바다의 별이 되시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이라는 별만을 바라보고 구세주를 키워내신 한쳑의 아름다운 배이셨다.
그 배는 사람의 이성으로써는 헤아릴수 없는 구원의 역사라는 바다를 믿음이라는 방향키로서 항해하였다. 처녀의 몸으로서의 임신, 그리고 외아들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현장안에서 그분이 바라보신 것은 부활의 영광, 구세주의 모친이라는 영예만도 아니었고 마굿간에서의 겸손한 탄생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고통의 순간만도 아니었다. 성모님은 고통과 영광이라는 동전의 앞뒤면처럼 공존하는 인생의 두요소를 모두 봉헌하셨다.
우리는 레지오를 보람을 느끼고자 아니면 영적인 공로만를 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전에 돈을 내야한다고 한다. 그돈은 물론 세상의 화폐가 아니다.
그돈의 한쪽면에는 고통이 그리고 다른 한면에는 기쁨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 화폐가 한쪽면만이 선명하고 한쪽면은 선명하지 못하면 그 화폐는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져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고 한다. 두면다 선명하여만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한다.
우리의 고통은 많은 묵상과 봉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과 은혜는 묵상과 감사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자연스럼과 당연함이 되고 있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보람과 기쁨은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런 은총이다. 또한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얻는 고통과 불안 그리고 부족함과 나약함 역시 자연스런 은총이다.
이 두은총이 만나 천국의 화폐의 양면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를 20여년 하시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던 한 원로 레지오 단원의 말이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저는 늘 이런 고민과 의심에 빠졌습니다. 왜 이렇게 어렵고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이 많을까? 정말 이런 사람들 모두에게 구원의 손길이 골고루 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봉사자들이 나와야 하나? 봉사를 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참 깊은 안따가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승에서의 20여년간의 레지오 사도직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주님께서 저를 바라보시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제가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보다 더 크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안에는 왜이렇게 부족과 불신앙이 많을까? 나를 구원하시려면 얼마나 큰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실까?
구세주!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라는 뜻! 그 뜻안에 세상이란 다름아닌 저자신이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를 하면서 제가 갖었던 안따까움은 바로 주님이 저를 보실때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하늘에 올랐다.
우리는 사도직의 영광과 기쁨에서 고통을 발견하고 준비하는 겸손된 마음을! 이웃과 내자신의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된 미소를 간직할수 있는 희망어린 레지오 단원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