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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로 이동 중에 바라본 한가한 도로
5일째가 되는 날도 일찍 일어나야 하였다.
아침 식사 후 3시간 30분 거리의 토론토로 이동하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토론토로 가다가 세인트로렌스 강 하류 킹스턴 부근에 있는 천섬을 유람하기로 하였다.
세인트로렌스 강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강의 수원으로부터 오대호를 지나 뉴펀들랜드와 캐나다 본토 사이의 캐벗 해협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약 4,000km의 거리를 흐르는 거대한 수로체계의 중요부분이었다.
캐나다에서 3번째로 긴 강인 세인트로렌스 강의 본류는 온타리오 호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캐나다 본토 심장부를 지나 세인트로렌스 만에 있는 앤티코스티 섬을 경유하여 망망대해인 대서양으로 흐르고 있었다.
세인트로렌스 강 위에 떠있는 섬들이
보이기 시자하고
따뜻한 햇살이 그리워 모두 양지를 찾아 모여들고
이러한 세인트로렌스 강은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통해 대서양을 오대호와 연결시켜 주고 있었는데 인접해 있는 주요 도시로는 캐나다의 퀘벡과 몬트리올 그리고 킹스턴 등을 들 수 있었다.
퀘벡과 몬트리올을 거쳐 토론토로 가는 도중에 세인트로렌스 강 하류에 1860개가 넘는 섬이 있다고 하여 막연하게 우리나라 서해안이나 남해안에 있는 무인도 정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상 색다른 특징과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출발 전부터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고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에서 좀 채 떠나질 않았다.
유람선에서 하선하는 관광객들
행복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다.
유람선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아침 06:30분에 holiday inn express 몬트리올 호텔을 출발하여 401번 도로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강 상류로 이동하였다.
세인트로렌스 강 상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지리 수업시간에 배웠던 5대호가 있는 북미지역이었다.
세인트로렌스 강 중류에는 일찍이 몬트리올시티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아래쪽 하류에는 퀘벡시티가 있었다.
퀘벡시티를 지난 세인트로렌스 강의 하류는 세인트로렌스 만을 거쳐 래브라도 해와 대서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폐식을 먹으면서도 정신은 딴 곳에 있고
숲속에 있는 그림같은 집들
세인트로렌스 강 상류로 향하는 401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직진하였더니 왼쪽으로 커다란 수로가 나타났다.
바로 5대호 중의 맨 왼쪽에 있는 온타리오 호 물줄기였다.
꿈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5대호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차가운 북대서양의 물줄기가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퀘벡과 몬트리올을 지나더니 드디어 그 위쪽에 아름다운 천섬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버스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끼고 401번 도로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킹스턴이라고 하는 안내판이 보이기도 하여 천섬이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하안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과 단풍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으며 무인도나 다름없는 섬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강위에 떠있는 하찮은 섬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이 천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버스가 좀 더 서쪽으로 이동하자 섬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섬에는 사람이 거처할 수 있도록 건물이 지어져 있는 듯 보였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나룻배를 타고 섬에 건너가서 낚시를 하며 몇 시간 정도를 소일하다가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러나 좀 더 부두 쪽으로 이동 중에 섬들을 자세히 바라보니 내가 생각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섬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생활공간이었고 여유 있는 자들의 비밀스런 아지트였다.
그 아지트들은 백만장자들의 휴양지였으며 온 섬을 장식으로 치장해두고 있었다.
무인도라기보다는 강위에 떠있는 비밀스런 성이었으며 누구의 접근도 불허한 개인의 별장이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세인트로렌스 강의 상류로 이동해가는 순간에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버스로 이동 중에 멀리 바라보였던 강위의 섬들은 본연의 모습보다는 피상적인 겉면에 불과하였다.
버스는 어느 사이에 Rock Port라고 하는 부두로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가 Rock Port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Rock Port에 도착하여 승선하자 유람선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은 선상에서 뷔페식 점심식사를 하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는데 10여분 후에 용기에 가득 채워진 음식이 운반되기 시작하였다.
각자 빵 종류와 음식을 가져와 식탁위에 올려놓고 사방의 경치를 관망하고 있으려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강위에 떠 있는 섬들은 커다란 쪽박을 뒤집어 놓은 것과 흡사하였고 출렁이는 물결에 휩쓸리면서 강물과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띄엄띄엄 떠있는 섬들이 뱃전을 스쳐지나가고 하늘은 조각구름 한 점 보이지 않으니 이곳이야말로 지상의 낙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었으며 천상의 어느 한 곳에 도착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을 타고 앞으로 이동할수록 그림과 같은 섬들은 각각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간직한 채 우리 일행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이곳 경치에 매료된 나는 넋이 이미 몸에서 이탈한 것 마냥 혼란스럽기도 하였고 동화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섬에서 머물렀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너무 황홀한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인위적인 조화가 한데 어우러진 섬에서 환상적인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람선은 잔잔한 파도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바라보이는 섬들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한 폭의 그림이었다.
관광객들이 갑자기 일어서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백만장자들의 휴양지로 알려진 별천지가 드디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별유천지 무릉도원에서 활보하는 것처럼 몽롱한 나락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휴양지의 규모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다.
그 중에는 중세시대 군주의 대저택처럼 어마어마한 궁전도 있었다.
섬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등 전 세계의 백만장자들이 섬을 개인의 소유로 사들여 별장을 지어 놓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요트, 낚시 등을 즐기면서 여름 한 때를 이곳 휴양지에서 보낸다고 하였다.
백만장자들의 적나라한 생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 자본주의 실상을 느낄 수 있었다.
섬 주위에서 맴돌다가 가까이에 접근하여 바라보았을 때는 이것이 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백만장자들에게는 장난감만도 못한 궁전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너무 괴리된 현실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천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하트 섬의 볼트 성이 소포라이트 되었다.
볼트 성은 뉴욕 월드프 아스트리아 호텔 주인인 볼트라고 하는 사람이 부인을 위하여 지은 성이라고 하였다.
문득 인도 무굴제국 제 5대 황제였던 샤자한이 왕비인 뭄타즈마할을 위하여 평생의 역작으로 완공한 타지마할 묘가 생각났다.
물론 타지마할 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낭만적인 사랑을 구가하였던 볼트의 부인에 대한 사랑은 인도 무굴제국의 샤자한에 못지않으리란 생각이 가슴 한곳을 강타하기 시작하였다.
볼트라는 사람이 너무 멋있어보였다.
볼트 성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볼트성과 연결되어 전력을 자가 공급해 주는 발전소라고 하였다.
대단한 재력가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하였을 역작을 보고 나는 한동안 역사는 힘 있는 자와 재력가가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이곳 천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하트 섬은 실제 미국령에 속해 있었다.
강 한 가운데를 캐나다와 미국의 경국 선으로 정한다는 규정만 있었을 뿐 강 속에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표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국 주민들은 자유롭게 미국과 캐나다의 영토를 왕래하고 있었다.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이라는 요리를 이곳 볼트성에서 처음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이라는 요리를 말만한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었는데 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 요리의 유래가 이곳 볼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볼트성의 호텔 주방장이 입맛이 떨어진 볼트의 부인을 위하여 볼트의 부탁을 받고 여러 가지 Source를 섞어 드레싱을 만들어 부인의 입맛을 돋게 하였던 것이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의 유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가득한 캐나다 최고의 인기 관광명소 중의 하나인 천섬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세인트로렌스 강에 옹기종기 떠있는 천여 개의 섬은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다.
물론 아름다움 외에 낚시, 세일 링, 골프, 스쿠버 다이빙, 사이클링 등 다양한 Recreation과 문화 체험을 즐길 수도 있었다.
천섬이라고는 하였으나 섬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고 우리는 그 중의 일부만을 보았을 뿐 전체를 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였던 일반적인 관광지로서의 섬의 개념은 안전히 깨지고 말았다.
내가 바라본 천섬은 너무 환상적이었고 이상적이어서 동화의 세계를 걷다가 깨어난 듯 아름다운 추억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천섬 유람을 마치고 토론토로 이동하였다.
토론토가 가까워지자 고층빌딩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토론토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가장 발전된 주의 주도였다.
캐나다의 금융 및 상업 중심지이며 미국과의 경계를 이루는 온타리오 호의 북쪽 끝에 접해 있는 입지조건 때문에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통하여 대서양과 연결되고 오대호를 통해 미국의 여러 공업 도시들과 연결되어 국제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토론토 항은 캐나다에서 수출하는 제조품의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으며 토론토 증권거래소는 서반구의 주요 주식거래소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토론토 증권거래소와 많은 보험회사와 은행들의 본사가 있는 금융지구는 옛 시청 자리 남쪽의 킹 가와 Bay가의 인접지역에 있었다.
도심에는 CN 타워, 사무실과 은행으로 이루어진 토론토 도미니언 센터와 상사 및 법원 등이 있었다.
토론토에 도착하여 맨 먼저 CN 타워를 견문하였다.
물론 그라운드에서 CN 타워 전망대까지는 Elevator를 타야하였다.
그 Elevator가 어찌나 빠르던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였다.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맨해튼 섬 5번가와 34블록의 모퉁이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탐방하였을 때는 어두운 밤인데다가 엄격한 검문 끝에 겨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오랫동안 미국을 상징하였던 건물이어서 기대치가 높았었다.
그러나 전망대가 너무 심한 바람에 노출되어 뉴욕 시의 야경을 충분히 관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31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102층 높이라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라는 것 때문에 긴장하면서 전망대에서 뉴욕 시의 야경을 관람할 수 있었으나 기대한 것만큼의 만족감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 토론토의 CN 타워는 쉽게 견학할 수 있었으며 야간이 아닌 백주 대낮인데다가 맑은 날씨가 도움을 주어서 화창한 토론토 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CN 타워 견학을 마치고 다시 1958년에 세워졌다는 새로운 시청 건물로 이동하였다.
새로운 시청 건물은 구 시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핀란드 건축가 빌요 레벨이 설계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구 시청 건물보다는 훨씬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 것 같아 발길이 쉽게 다가가지가 않았다.
이어서 시청 바로 옆에 있는 학문의 전당 온타리오대학교를 방문하였다.
온타리오대학교는 대학교라기보다는 공원 같은 분위기가 들었다.
캐나다 최대의 대학교인 온타리오대학교 경내를 돌아보고 우리나라 대학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건물부터가 고색창연하였다.
그리고 대운동장은 잔디로 단장되어 있었으며 대학 건물들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여서 학문의 전당일 것이라 의심이 가지 않았으며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듯하였다.
약간 초라하게 보이고 복고적인 스타일로 보아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대학 건물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외유내강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분위기인 것 같았고 Study적 학문의 전당이라는 것을 근방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적인 석학들 중에 이 대학 출신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 역시 명성은 대학 건물과 같은 외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겉만 반드레한 대한민국의 대학들과는 너무나 분위가 다른 것 같았다.
대학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본관 앞에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학 본관에서 떠들썩하여할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네들 대학은 개밥 퍼주듯 학위 장사를 하고 있는 대학을 흔히 볼 수 있었데 캐나다는 대학의 문호를 활짝 열어 놓되 졸업의 문이 바늘구멍마냥 좁다고 하였다.
온타리오대학 경내를 관람한 후 저녁 식사를 위하여 토론토 외각으로 이동하였다.
시골의 운치가 물씬 풍기는 시 외각 지역에 신라 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였는데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의 식당과 별로 낯설지 않아보였다.
저녁 식사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였는데 김치와 깍두기 맛이 어찌나 구미에 닿던지 주인장은 무한 리필에 정신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인터내셔널 프라자 토론토 호텔로 이동하여 안락하고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