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ChatGPT와 공동 사유로 디카시마니아에 연재했던 철학담론을 원용한 디카시론은, 개별작품론을 디카시론 속에 넣어 플라톤부터 지젝까지 22개 꼭지로 완성했습니다. 기존의 개별 작품론은 다 내렸습니다. 연재했던 것이 오류도 많고 이론을 잘못 적용한 것도 드러나 다시 수정했습니다. 수정되기 전의 기존의 연재는 원본이라 볼 수 없습니다. 지금 탑재돼 있는 것이 원본임을 밝힙니다.
아래 글은 단행본으로 묶기 위한 서문 초고이니 이 글을 읽으면 이번 작업의 성격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셔셔 감사합니다. 보유 원고는 단행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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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휴먼의 철학담론을 원용한 디카시론
『디카시와 철학』은 디카시와 철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사유와 인공지능의 응답이 서로를 비추며 이뤄진 공동 사유의 기록이다. 오픈 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언어모델인 ChatGPT(GPT-5)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관점을 던지는 대화자였다. 이 책이 공동 사유(테크+휴먼)로 집필됐지만 휴먼인 저자가 기획자이자 최종 컨트롤 타워이다.
지난 6월 29일 ChatGPT를 깔고 바로 디카시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 카페 <디카시 마니아>에 7월 29일까지 한 달간 ‘철학담론으로 구축하는 새로운 서정양식으로서의 디카시’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다. 이 연재는 디카시 담론에서는 전례가 없는 AI와 공동으로 사유하는 초유의 작업이었다. ChatGPT와 대화하며 먼저 디카시 관련 핵심 정보를 제공하고 ChatGPT가 디카시를 제대로 알도록 딥러닝시켰다. ChatGPT가 디카시 관련 정보를 잘못 학습해서 오독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잡아야 하는 지난하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무엇보다 재미있고 또 신기했다.
ChatGPT가 오해하고 있는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디카시의 핵심 개념인 ‘시적 충동’, ‘시적 감흥’, ‘시적 형상’, ‘날시’라는 용어들이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는 디카시를 문학용어(명사)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 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 예술이다.”라고 정의하고, <경향신문>(2007년 5월) 기사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예술적으로 재구성, 혹은 변용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시의 형상을 가리켜 날시[raw poem]라고 하면서 관념이나 언어 이전의 ‘날시’를 순수 직관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문자로 재현하는 방법을 디카시라고 명명한다.”를 예시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향신문> 2007년도 기사인데도 디카시의 날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만 봐도 디카시의 정체성이 디카시 문예운동 초창기부터 견고하게 구축됐음을 알 수 있다. 날시는 시인으로 하여금 시적 충동이나 시적 감흥을 느끼게 하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포착한 시적 형상을 말한다. 따라서 시인이 시적 충동 혹은 감흥을 느낀 대상인 시적 형상으로서의 날시와 시적 충동은 엄밀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시적 충동, 시적 감흥, 시적 형상을 같은 개념으로 날시라고들 인식하는데, 이건 바로잡혀야 한다. 시적 충동과 날시는 한 몸처럼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기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인이 시적 충동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대는 대상은 시적 형상인 날시인 것이다. 날시에서 유발되는 시적 충동과 시적 감흥은 같은 개념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의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라고 표기된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날시’를 찍어”라는 뜻이다.
이런 미묘한 문제 하나도 ChatGPT에게 그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바로잡아 가며 철학담론을 원용한 디카시론화 작업은 매우 지난하면서도 민감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막상 연재를 끝내고 찬찬히 살펴보니까 부실하고 오류도 많아서 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난 것처럼 보여 충격을 받았다. 공개적으로 ChatGPT를 조수로 디카시론서를 출간할 것이라고 공언한 터여서 더욱 난감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우선 첫걸음이라도 떼기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고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서 단행본으로 묶기로 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문덕수 선생을 만나 시인이 되고 교수가 되었다. 근자 ChatGPT를 만나서는 테크휴먼이 되는 것 같다.
시인들은 언어예술이지만 언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언어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멈춘 적이 없었다. 동양의 시서화도 그렇고 서양의 형태시나 구체시도 같은 맥락이다. 1950년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을 올려 4행시를 써서 사진시집 『전쟁교본』를 펴내기도 했다. 브레히트 이후 사진을 대상으로 시를 쓰기도 하고, 완성된 시에 사진을 엮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여전히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시적 전통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브레히트의 경우도 사진은 시의 매개였고 도구였다. 아니면 시는 사진의 주석이었다. 여전히 대중들은 언어예술의 카테고리 속에서만 시를 수용했다.
창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4년 4월 2일 디지털 한국문학도서관 연재코너에 디지털카메라의 디카와 시를 합성해 혼종어인 디카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창신대 캠퍼스 야경을 찍고 쓴 첫 작품 「봄밤」 탑재를 시작으로 6월까지 2달간 50편의 디카시를 발표하고, 동년 9월에 최초의 디카시집 『고성 가도 固城 街道』를 출간했다. 그러면서 고성을 중심으로 디카시 지역문예운동이 펼쳐져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서정양식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의 디카시 정의에서처럼 디카시는 시인이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충동으로 포착한 시적 형상인 날시를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찍고 5행 이내로 짧게 언술해서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SNS를 활용 실시간 소통하는 극순간 멀티언어예술이다. 디카시는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쓰기의 도구로써 시대정신(Zeitgeist)을 반영하며 순간포착, 순간언술, 순간소통하는 디지털 시대 최적화된 새로운 서정양식이다.
디카시 창작 작업과 함께 디카시론화 작업에 착수했고, 그것은 곧 문학계 안팎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새로운 양식은 단지 실험적 시도를 넘어 언어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필연적인 시의 진화였다.
디카시와 함께한 지난 21년간은 나에게는 전쟁이었다. 디카시의 자리는 문자제국과 디지털제국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전통적인 활자 중심의 문학세계에서 종종 디카시는 낯선 변종으로 취급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가 새롭게 열어가는 패러다임 속에서 디카시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 이 책은 2007년 『디카시를 말한다』, 2010년 『앙코르 디카시』, 2017년 『디카시창작입문』에 이어 출간하는 4번째 디카시론서이다. 『디카시창작입문』 출간으로 디카시의 이론적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디카시론을 더 넓히고 심화시켜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시적으로, 철학적으로 모색하는 디카시와 철학이 추구하는 바는 동일하다. 따라서 나는 시인이 포착한 시적 형상인 날시가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라는 이중의 기호체계로 발현되는 디카시 창작 과정과 서양철학사에서 전개되어 온 진리 · 존재 · 언어 · 욕망 등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접속시킴으로써 더욱 단단한 디카시론의 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대에서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철학자들의 사유를 디카시론화하여 정리한 것이다. 철학담론을 디카시론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바로 담론간의 불가피한 충돌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디카시의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진리의 모상으로 해석하게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론은 인간 감정의 재현과 카타르시스로 이해하게 한다. 하이데거는 디카시 속에서 세계-내-존재의 진리가 열림을 찾을 것이며, 라캉은 날시의 시적 충동을 실재계의 틈새로 규정할 것이다. 이처럼 각 철학의 틀은 서로 다른 시각과 해석을 불러일으키지만, 디카시는 어느 한 철학으로 환원되지 않고 오히려 그 다채로움을 고스란히 품는다.
본서에서는 철학담론을 원용하는 방식으로 “플라톤적 디카시”, “아리스토텔레스적 디카시”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디카시가 개방성과 다성성, 확장성을 드러내는 서정양식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바로 이 점에서 디카시론화의 의의가 드러난다. 창작자나 비평가는 하나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때로는 플라톤적 관점에서,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 혹은 바르트나 들뢰즈, 하이데거나 라캉의 관점에서 작품을 새롭게 창작하고 비평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책은 단일한 루틴의 창작이나 해석의 강제에서 벗어나 플라톤에서 지젝까지 무려 스물두 가지 철학담론의 다채로운 창을 열어젖힌다. 충돌은 해소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철학들이 비추는 빛을 겹겹이 받아들여 창작과 비평의 지평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철학의 시대성과 유파를 고려하여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기원과 형상’, ‘주체와 인식’, ‘존재론과 인식’, ‘언어와 욕망’, 그리고 ‘생성과 관계’의 철학까지,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디카시와의 접점을 짚어 나간다. 철학은 종종 추상적이고 난해한 언어 속에 머물러왔으나, 디카시는 그것을 사진과 문자라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기호로 끌어내어 삶의 현장에서 재사유하게 만든다. 이는 철학과 문학,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사유와 감각, 언어와 이미지의 공존을 통해 지식 생산의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는 일이다.
이 책이 디카시 창작과 연구의 새로운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며, 더불어 철학이 어떻게 예술적 형식 속에서 다시 호흡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년 가을
이상옥
첫댓글 철학과 디카시~~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합니다. 디카시 창작과 연구에 새로운 길잡이가 될 책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연구 노력하시는 교수님의 열정에 감동합니다.
디카시를 쓰면서도 늘 미흡한 것 같고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면서 자꾸 해봅니다.
확고하게 이론적 토대를 갖추고 철학적 사유를 거치되
어떻게 엮이는가를 알고 쓰는 일이 남았습니다
안내해주시고 길을 내어주시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디카시에 대한 열정에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