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노래와 시로 읽다. 이루수
"바람 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람 남겨 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가수 조용필의 명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가사의 일부다. 90년대 자주 들어본 노래인데 지금 들어봐도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 에 고독한 남자의 영혼을 호소하는 가사가 매력적이다. 노래 가사는 어니스트 훼밍웨이 Ernest Hemingway(1888-1962)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서두에서 연유한다.
“킬리만자로는 높이가 19,710피트 되는 눈덮인 산으로 아푸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 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죽어간 표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한 작가 해리는 아내 헬렌과 함깨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로 사냥여행을 떠난다. 그는 사냥 도중 들판의 양떼를 발견하고 이를 사진에 담기위해 이동하다가 그만 무릎 부분을 가시에 찔리게 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상처였지만 제때 약을 바르지 못한 채 2주일을 지내자 그의 다리는 괴저병으로 점점 썩어 들어가게 된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지난날을 되돌아 보며 심적 갈등과 회한의 시간을 겪는다.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지금의 아내를 보며 파리에서 돈 많은 여자들과 술과 사랑에 빠진 지난 일들을 회상히기도 한다. 호기심 많은 그는 지금의 돈 많은 아내를 만나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작가로서 쓰고 싶었던 소재의 글들을 집필하지 않고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살아간다. 아내을 만나 안락한 생활이 작가로서 그의 재능을 사장한 결과가 되었지만 그는 자기재능을 사장한 것은 결국 그 자신임을 알게 된다. 해리는 작가로서 자기실현의 삶을 살지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의 아내 헬렌은 이런 그를 위로한다. 그녀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독서가에다 승마와 사냥을 즐기며 잠자리에서는 훌륭한 기술과 감상력을 보여주는 착한 아내다. 이런 아내에게 그는 “당신을 한번도 사랑해 본 일이 없어.”라며 방황과 외로움의 말을 내밷기도 한다. 그는 그의 죽음이 임박해 오자 고통을 잊고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치료를 위해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체로 친 듯한 핑크빛의 엷은 구름이 땅위를 움직이다가 허공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남방으로부터 날아온 메뚜기 떼였다. 메뚜기떼가 접근하자 비행기 주위가 어두워지고 폭풍우 속을 아니 마치 물폭포 속을 뚫고 나가는 것 같았다. 그곳을 마침내 빠져 나오자 그의 눈에 킬리만자의 거대한 정상이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는 만큼 희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그는 자기가 가고 있는 곳이 바로 저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킬리만자로의 눈은 과연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러면서 그것은 나에게는 무엇인가? 스스로 묻고 싶어진다. 정답이 없는 물음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예외없이 기쁨과 위로 그리고 아픔과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이 내 존재의 형성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안에는 그 어느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또 다른 나, 바로 "원형의 나"가 있지 않는가. 무한히 선한 잠재력을 지닌 "원형의 나", 참 좋은 당신이 내안 깊은곳에 있다.
김용택 시인이 ‘참 좋은 당신’을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진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 생각만해도/ 참/ 좋은/ 당신//
킬리만자로의 눈은 바로 이런 참 좋은 당신 바로 원형의 내가 살아 숨쉬는 곳이 아닐까. 진정한 자기실현의 삶은 원형의 나를 찾아가는 삶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모습’이다. 박노해 시인은 이런 모습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모습 중에
가장 부러운 모습은 무얼까요
성공한 자의 화려한 갈채
승리한 자의 당당한 걸음
부유한 자의 우아한 기품
그건 다만 삶의 조건이고 수단일 뿐인데
꽃이 피면 져야 하듯 절정은 한 순간인데
나는 보았어요
세상이 뺏을 수 없는 행복한 모습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전신전령으로 몰두해 있는 모습
운동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어 환한 얼굴로 걸어오는 모습
가진것 적어도 한 밥상에 둘러앉아 들꽃처럼 웃음짓는 모습
이런 삶은 법정스님의 말씀 처럼 순간순간이 완성일 뿐이다.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죽어간 표범은 바로 이런 삶을 추구하며 살다간 즉 원형의 나를 찾아 치열하게 살다간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오우! 선생님 글이 너무 좋아 신새벽부터 댓글 올립니다. 좋은 글,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시골 어머님께 문안인사.(?)드리러 내려갑니다. 가을 막바지 바람이 찹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헤밍웨이의 <킬로만자로의 눈>에서 노래와 시를 그리고 선생님의 마음까지 끌어내신 글에 감동받습니다^^
부족한 글에 주신 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한해와 더불어 우리들의 수업시간도 끝나갑니다. 아쉽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나눈 지난 시간들 공감과 치유와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에서 진정한 삶과 자연의 원형을 보는듯 합니다
좋은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