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처럼, 은총으로
이젠 단비교회란 이름이 익숙하시죠? 지난 7월 초, 친구교회가 된 천안의 농촌교회입니다. 친구 맺으려고 찾아간 그날, 누군가 ‘좀 꿀리는 친구’하고 맞먹는 것 같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벌써 나이가 20세 남짓이고, 무엇보다 넓은 대지에 이층 규모의 예배당을 신축하는 규모부터 우리와 달랐습니다. 게다가 농사짓는 땅만 해도 천 여 평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일곱 명의 방문자들은 작은 시골교회 선보러 가는 마음으로 갔다가, 금새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새 오랜 친구처럼 친밀해 진 것은 고향 같은 넉넉한 품 때문일 것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단비교회는 한창 공사 중이었습니다. 마당 한 구석의 비닐하우스에는 아주 연륜있는 목수의 연장처럼 온갖 공구들이 가지런히 내 걸려 있고, 이미 집 모양을 갖춘 실내에서는 문짝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홈을 파고, 짜 맞추고 있었습니다. 일하는 모습이 무척 더뎌 보였습니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무려 10년 동안 건축 중이라고 했습니다. 한옥 예배당을, 그것도 목사 내외가 드믄드믄 외부의 힘을 빌려 짓고 있으니 그 10년 세월도 오히려 짧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니, 오래오래 집을 짓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자작(自作)을 하는 까닭입니다. 한옥을 짓기 위해 20년 전 연습을 했답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한 후 마을에 계신 고령의 대목수에게 집짓는 법을 배웠답니다. 더 이상 일하지 못하는 노인을 모셔다가 한수한수 나무 고르는 법, 나무 다루는 법, 나무 다듬는 법을 배워가면서 지은 첫 작품이 지금껏 예배당 겸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너와집입니다. 집 짓는 일에 초보자인 정훈영 목사님도 자기 힘으로 집을 짓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예배당도 스스로 짓겠다고 덤벼든 것입니다.
사실 시골 교회에 현금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일 년에 2천 만 원쯤 헌금이 모일 때마다 재료를 사고, 그 재료로 해마다 조금조금 그러나 하루도 쉼 없이 예배당을 세워 올린 것입니다. 대개 건축을 하면 집터나 아직 완공도 안 된 건물을 담보 잡혀 건축비를 융통하게 마련입니다. 수 억 짜리든, 수 백 억 짜리든 금융비용 없이 건축하는 교회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런데 단비교회는 농민들이 쉽게 빌려 쓰는 농협 빚에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 흔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대견스럽습니다.
예전에 어느 도시교회가 예배당 짓는 모습을 둘러보고 건축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답니다. 단, 그 교회의 지(枝)교회처럼 이름을 바꾸자는 조건이었습니다. 당연히 거절했다지요. 그런 자존감 없이 10년 세월을 예배당 건축에 헌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행히 그 뜻을 공감하는 도시교회의 청년들이 틈틈이 와서 일을 돕고, 아예 몇 달씩 동거하면서 노동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니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의 집이 공동체로 지어져 가는 듯합니다. 그렇게 저렇게 시골교회 예배당이 마치 나라의 국보급 보물처럼 건축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리 단비교회 친구로 줄 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비교회의 새 예배당은 우리 색동교회처럼 아직 셋방 처지인 교회들의 수련장이 될 것입니다. 그 넓은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한 밤 중에는 별을 헤아릴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찰 것입니다. 농촌교회가 도시교회의 부스러기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그랬듯이 고향의 대청마루 노릇을 하게 된다니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입니다.
단비교회 때문에 모처럼 교회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아마 100년은 거뜬 없을 한옥예배당은 ‘공간의 경건’이 지닌 의미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우리 색동교회도 으쓱합니다. 강화도에 수련장, 천안에 별장, 보은에 살림집, 대관령 옛길에 매실농장.. 색동교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의 좋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단비처럼, 햇빛처럼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니 내일 좋은 귀경, 함께 가십시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시 65:10).
첫댓글 너무 좋습니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있나요?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면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