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의 수리산(修理山) 자락 북쪽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98m). 안산시 · 안양시 그리고 시흥시의 경계가 맞닿는 곳에 있다.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하다. 수암봉 아래 지역은 안산동인데 이곳에 조선 시대 안산군의 관아터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산천조」에 "(안산의) 진산(鎭山)은 취암(鷲岩)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취암이 곧 수암봉이다. 그러나 『안산부읍지』에는 취암에 대한 기록이 빠지고, 대신 수리산을 진산처럼 기록하고 있다.
고지도에서도 『여지대전도』나 『해동지도』에서는 취암에서 나온 지맥이 안산 읍치를 감싸 안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으나, 보다 후기의 고지도들에서는 취암 표기가 생략되어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수리산에서 마하산 · 군자산 · 정왕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은 안산의 백호를 형성하는데, 이 지맥이 시작되는 부분에 우뚝 솟은 봉우리를 수암봉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부대에게 자리를 내준 슬기봉으로 간다. 비록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자리를 내어준 산마루는 넘을 수 없지만 눈으로 그을 수
수 있는 내 눈금이 있지 않은가.
근사한 소나무가 쉼터도 되어 주기도 한다.
헬기장을 지나고
뒤돌아본 수암봉은 ....
[군부대정문 옆으로 계단길에 태을봉으로 가는 길을 가게 된다]
[태을봉이 우뚝 솟아 있다. 수리산을 대표하는 산이 태을봉이라 했다.
수리산의 정상은 태을봉(太乙峯·사진)이다. ‘태을’은 도교(道敎)에서 천제(天帝)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옛사람들은 십간의 하나였던 ‘태을’을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가뭄이 들면 태을봉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얼마 전 교체된 것 같은 정상 표지석에는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으며 이런 형상을 ‘태을’이라 부른다”고 새겨 놓았다.
수리산은 여러 종교와 인연이 있다. 태을봉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지만, 동국여지승람(1481) 등에는 수리산의 원래 이름이 견불산(見佛山)이라고 나와 있다. 부처를 본 산이라니, 옛적엔 불교와도 인연이 깊었던 것이다. 안양 병목안 쪽 담배촌은 유명한 천주교 성지여서 기독교와도 연관이 깊다. 단순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475봉이다. 옆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 공군부대가 있는 슬기봉이 내어준 봉우리로 상징되는
봉으로 기억해야 겠다. 임도오거리로 가려면 이곳에서 가파른 산을 내려가듯이 걸어야 한다.
내려가는 산길이 잘못 내려오는 것처럼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임도오거리란 이정표가 잘못 표시
되어 있기도 해서 다른길로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남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검은pvc파이프을 보고서야 잘왔구나! 맞는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슬기정를 지나고 하늘정을 지난다. 수리산에 정자가 근거리에 두개나 있다.
안산에 사는 분들이 정자를 좋아해서일까하는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며 정자에
쉬시는 동네분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산불감시초소]
지금 수리산에는 수천마리 나비떼가 내려앉은 것처럼 보이는 산딸나무꽃이 피었다.
▲258봉 정맥길의 봉우리에 현위치도 표시되어 있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58봉의 삼각점이 판독불명으로 누군가의 베낭이 놓여져 있기도 하다.
헬기장의 풀이 가득한 곳에서 상록수님이 서 보았는데 힘이 없는 것처럼 보여 맘속으로'칠장산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지'
동네 산책하듯 나온 산속도 있고 딸기를 따 먹으며 콧노래 부르던 그 때도 있었고 진달래에 취해 뛰놀던 갈현산도 있었는
데 좋은 기억으로 가자. 풀숲에 허벅지가 찌르는 찔레꽃 향내음 만큼이나 좋았던 그 때를 생각하면서 가자.
감투봉 840m의 이정목을 보면서 힘을 내자. 덥고 지친 정맥길에 미지근한 물 한모금 넘기며 땀을 씻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눈에 떨어져 맵다. 때론 썬크림을 덕지 바른 탓에 눈을 가리우고 하지만 걸을 수
있는 산이 있기에 힘을 내어 걷는다.
수암봉을 걷다가 널린 산딸기 딱 먹던 시간이 떠오른다. 산딸기가 무르익은 이 산에서 언젠가 어렴풋이 기
억할 날도 있겠지.
[감투봉에 서다] 우여곡절끝에.
감투봉 아가씨의 전설을 적어보자.
두 남녀의 못다 한 사랑
군포2동(부곡동) 삼성마을은 옛날부터 과거 공부하는 소년들이 각처 에서 많이 모여들어 공부하며 등과를 위해 정성을 올리는 마을로 유명 했다. 위치상 서울이 가깝고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신령스러운 기가 있다는 수리산(修理山)을 뒤로 하였다. 남북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 를 가르는 삼파산(감투봉)의 높은 봉우리와 삼태기 같이 포근하면서 종 모양을 하고 마을 가운데 복스럽게 살짝 뻗쳐 나온 언덕, 그리고 양 골 짜기 사이 바위에서 솟아나는 두 샘물로 명당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 마을은 예로부터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인재가 많 았고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온갖 정성을 올리는 곳이 되 어 그에 얽힌 애절한 이야기 또한 전해진다. 천년 가까운 은행나무가 우뚝 선 삼성마을 샘물 우물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항상 모여들 었다. 그 아래로는 주야로 소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서당 이, 멀지 않은 곳 남쪽 언덕에는 유교 성리학을 창건한 주자(朱子)를 모 시는 사당 모현재(慕賢齋)-삼성사가 있었다.
과거공부를 하러 온 청년들 중에 우물가와 모현재 사이를 자주 오가 며 글을 읽고 달님에게 정성 드리기 좋아하는 한 총각은 우물가에서 동 네 아가씨들에게 물을 가끔 얻어 마시곤 했다. 그러다가 한 예쁜 아가 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남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은 밤이면 남몰 래 우물가에서 혹은 은행나무 밑에서, 혹은 과거시험 합격을 비는 서낭 당에서 만나게 되었으며 달이 떠오르면 달님에게 꼭 과거에 붙게 해달 라고 함께 정성을 다해 빌었다. 때가 다가와서 과거시험을 알리는 방이 나붙고, 청년은 아가씨에게 꼭 합격하여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하고는 한양으로 떠났다.
아가씨는 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샘물을 떠놓고 뒤뜰에서 빌고, 우 물가 옆 은행나무에 절하며 삼성사와 서낭당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그것도 모자랄 것 같으면 뒷산의 높은 산본(山本)마을로 향한 중턱에서 물이 철철 흐르기로 유명한‘원수(元水)’물을 떠가지고 감투봉으로 올 라갔다. 달님에게 빌며 소년이자 장차 낭군이 될 청년이 꼭 장원급제하 기를 매일 기원하였다.
그런 정성이 통하였는지 청년은 드디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노란 옷에 화관을 쓰고 삼일유가(三日遊街)를 다니며 장원급제 행차를 하고 삼성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아가씨에게 그만 변 이 생기고 말았다. 아가씨는 청년의 장원급제 소식에 너무 기뻐 이는 하늘의 달님이 도우신
덕이라 생각하였다. 샘물을 떠서 높은 감투봉에 올라 정성들여 감사의 기도와 앞으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때 산기슭 용호리
마을에서 힘겨루기를 하느라 잘 다투던 호 랑이와 용이 마침 샘물가에서 아가씨를 보았다. 그 마음씨와 외모를 탐 내어 사람으로 변해 서로
차지하겠다고 감투봉 아래까지 따라가 그 편 편한 봉우리에서 무섭게 싸우기 시작하였다.
한편 과거에 합격하여 돌아온 청년은 아가씨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예전에 같이 달님에게 소원을 빌던 감투봉으로 항하였다. 멀리서 보니 역시 아가씨는 감투봉에서 물을 떠놓고 비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앞에 사람처럼 보였던 사내 둘이 갑자기 용과 호 랑이로 변하여 무섭게 싸우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소리쳐 아가씨를 불
렀고, 아가씨는 사랑하는 청년이 외쳐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는데 청년 은 보이지 않고 웬 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용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모습만이
눈 앞을 막았다. 그 모습에 아가씨는 그만 기절하였고 청년은 나뭇가지와 돌로 호랑이와 용을 물리치고는 아가씨에게 달려갔다. 그 러나 아가씨는
그동안 지나치게 정성을 다하느라 몸이 쇠약해진데다 흉악한 짐승들이 싸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깨어나지 못하였고 청 년은 아가씨를 밤새도록
껴안고 울었다.
다음날 마을사람들은 장원급제 축하잔치를 준비하고 청년을 찾았으 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감투봉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 러나 불행하게도 지난밤 추운 날씨에 두 남녀가 꼭 부둥켜안고 얼어붙 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마치 장원 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 와 같이 생겼다 하여 관모봉이라 이름붙이고, 애절한 두 남녀의 못다 한 사랑의 사연을 전하였다. 이후 정월
보름이 되면 젊은이들은 쇠가죽 으로 만든 큰북을 밤낮으로 치며 악귀와 도둑을 내몰기 위해 마을 안을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감투봉에 올라 옛
전설을 생각하고 둥근 보름 달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 그해에 장가를 간다고 하며 풍 성하고 떠들썩한 보름행사를 즐겼다.
감투봉의 두 남녀의 못다한 사랑이 애틋하게 전해지는 전설은 미화로 남아 있었다.
감투봉을 내려온다. 숲길에 가리운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쏘아 내린다. 덮다.
화물터미널이 내준 이 길로 내려가야 한다.
삼성터널 이동통로위로 걸어
낮은 언덕 정자가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으니 오봉산이 반갑게 저 앞에 있다.
밤나무꽃 향기가 콧끝에 스민다. 그 특이한 밤꽃 향기가 은빛구름을 타고 내게로 온다. 안양베네스트g.c의 정문
횡단보도를 걸어서 처음 타보는 당정역까지 그 바람을 타고 온다. 사뿐히 즈려밟은 발걸음에 피어난 진한 향기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