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리 본관의 함풍이씨, 함평이씨, 함성이씨?의 구분
o. 함풍이씨는 함풍부원군을 시조로 하는 함리의 원조로 고려 충열왕조의 재신으로 활략한 이광봉조의 후손들을 일컬음.
o. 함평이씨는 원조 함풍이씨에서 쿠테타적인 변란을 일으켜 함평군 이종생의 군호를 따서 함평이씨를 만들고 변명하기를 ‘함풍과 모평이 합하여 함평으로 한다.’ 라고 합리화 시키고 이종 생을 시조로 하기에는 불합리하므로 가상의 시조 이언을 차용 하여 계대를 임의조작 족보를 만들고 함풍이씨의 정체와 정통 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이광봉조를 6대 후손인 이순지의 아들 로 설정하여 모멸시킴.
o. 함성이씨는 종회지 함성보를 출판하고 있는 장양공파의 가상의 본관이다. 종회지 함성보의 제호(題號) 설명에 중시조 이종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함성보라 했다는 설명과 함께 함평이씨 시조 이언의 11세손인 함성군 이종생을 중시조로 한 함평이씨 함성군파 종회지라 부연 설명하고 있다. 즉 이종생은 금남최부 가 칭한 함평군이며, 400여 년간 행사해온 장양공이며, 함평이씨의 원조 격이다.
함평군 이종생을 들어내 놓기가 세간의 양심에 반하므로 면피성 군호를 붙인게 함성군 같다. 장양공파는 왕조실록 세조 13년 정해9월 에 기록된 실록에 함성군이라 써 있다고 주장 하고 있으나(해동명신록) 함성군파 이극해 후손은 고종 1909년 안종화가 발행한 책에 이종생의 함평군을 함성군으로 바꿔 올린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일제 총독부시절 소급하여 왕조실록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함성군에 대하여는 함성군은 이극해 祖로 년 전에 장양공(이 종생)파와 함성군(이극해)파간의 쟁교(문중간의 싸움)를 당시 함평 이씨 대종회는 문중차원에서 함성군을 이극해로 인정하고 마무리 한 바가 있다. (당시 이계선 부회장)
그러나 장양공파는 이종생을 함성군이라 고집하며 함성종회보를 발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함성군 이극해 후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 놓고 있다.
함풍이씨는 함풍부원군 이광봉 조의 군호로 함풍이라는 본관을 사용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함평이씨는 세조 때의 함평군 이종생을 군호로 하는 함평이라는 본관을 사용해야 옳은 것 같다.
이종생의 군호를 함평군, 장양공, 함성군, 이런 군호를 누가 붙여줬는지 알 수 없지만 이종생은 장양공을 널리 알려져 있다.
차후에 중시조 이종생을 시조로 모시기 위한 기반작업을 실시하여 함성이씨로 본관을 정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면 현 함평이씨의 시조가 가상의 시조로 판명이 났으니 실제적인 시조인 이종생을 함평이씨 시조로 함이 옳지 않겠는가?
함평이씨 가상의 시조라는 이언은 실질적 후손들인 평택문중으로 돌려보내고 함평이씨는 함평군 이종생을 중시조에서 시조로 하고 함풍부원군 후손들은 함풍이씨로 함이 함이 원래의 계차와 본관과 시조 구분이 사실과 부합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