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토요일을 집에서 보낸다.
요즘은 국내에서 근무하며 인생 마지막 무렵의 직장 생활를 즐기고 있다. 이제 몇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매주 주말에는 와이프를 꼬드겨 근처의 청풍명월를 즐기러 다니고 있는데, 집에만 있으면 쉬는 것 같지도
않고 몸이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와이프는 방랑벽이 있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집을 떠나 있으면 나도 힘드니까. 더구나 이제는....
내일은 5박6일로 두바이 출장을 가야하기 때문에 후두염치료차 이비인후과 병원을 들른 후, 동네의 가을
정취를 느껴보기로 하였다
병원 건너 편에 있는 서울 북부시립 미술관. 젊은 작가들의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시간을 보낼 정도는 아니
었지만, 미술과 사진등의 강의 프로그램과 휴게 시설 공간이 비교적 깔끔하게 되어있다.
소 도서관에는 미술과 사진관계 책들이 준비되어 있다(무료). 전번에 와이프와 함께 여기서 커피와 함께 책을 보면서
소일하다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반나절을 훌쩍 보낸 적이 있다. 심심할 때 최고 더구만.
은퇴하면 이 곳에서 사진강의를 받는 것이 내 은퇴 Bucket List 중의 하나이다. 종합관람장이 있어 격주로 토요일에
예술 영화를 상영한다. 집에 있는 영화 DVD를 틀어 놓고 내가 해설하면 좋겠구먼.....
다시 집 근처로 와서 대진고 사거리를 거쳐 서울 과학기술대 후문, 공릉터널과 원자력병원으로 가는 길로 향한다.
이 길에는 통행인이 별로 없어 도로관리 상태가 좋지 않지만 가을에는 이 것이 더욱 정감이 있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정취있는 곳으로 변해버리니 때문이다.
공릉터널은 보행인을 위하여 차도와 인도가 유리격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인근 아파트의 소음 차단시설과 담쟁이
넝쿨이 터널입구를 풍성하게 해준다. 여름에 이 터널을 지나가면 얼음창고에 들어 온 기분이 들더만 가을이 오니 조금은
을씨년 스러워진 기분이다.
서울 과학기술대학교의 토목과 교수실이다. 내가 제일 아끼는 건물이다. 한 80년 쯤은 되었을 텐데 관리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대학 건물이라면 좀 고풍스러워야 진정한 상아탑 스러운데 이 조그만 건물이 그 중 하나이다.
서울대 관악 캠퍼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서울공대였고, 그 이후에는 서울공전이 사용하다가 서울산업대로 교명 변경을
하였고 이젠 서울과학기술대가 되었다. 이 곳이 나의 최종학력이고, 게다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내 정원과 같은
곳이니 어찌 사랑 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먼저 직장에서 이 곳 서울과기대와 철도기술연구원이 운영하는 철도건설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었다. 면학의
기억 보다 수업 후의 After와 내기골프의 추억이 더욱 강렬하지만 대학원 동기들과는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서울공대 시절의 본관이었으며, 일본제국주의 시절에 지어진 전형적인 건물이다. 일본은 유럽의 문화와 전통을 숭배하고
모방하였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을 보면 "ㄷ" 이나 " ㅁ" 모양으로 마치 성처럼 만들었는데 바로 이 본관을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와이프가 차를 이 곳에다가 주차를 하였네. 오늘 볼일이 있다고 출근하였는데 나는 이렇게 놀고 있다.
여보~ 미안해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와~~~)
위의 사진이 "ㅁ" 형식의 내부 전경. 건물하부의 통로를 지나면 외부로 진출할 수 있다.
내가, 아니 모두가 제일 좋아하는 곳 이겠다. 호수 주변의 산책로와 벤치, 잔디밭과 조형물등 주변 조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여름과 가을에 책을 가져와 호수가의 나무 그늘 아래서 진한 커피와 함께 독서를 하고 김밥을 먹으면서 휴식을
할 수있는 노원구 최고 명당 중의 한 곳이다.
벤치에 앉아 아이패드에 이어폰을 꽂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감동이 몰려온다.
청명한 서울의 가을하늘 아래 호수가의 단풍을 껴안고 라흐마니노프를 듣는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
호수 주변의 산책길에서 한 컷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바로 앞에서 은행사거리로 향하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 길에서
은행사거리 방향으로 촬영하면 멋진 길인데 동네 주민이 성의 없네.
오늘 모처럼 걸어서 두 시간 이상 동네 주변을 돌았다. 살다보면 편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편하다고 하는데, 나도 10년 이상을 지내다보니 이 동네 꽤 살기 좋은 곳이다.
아파트 바로 앞의 충숙공원과 시립 과학관(건설중), 불암산, 시립미술관, CGV 영화관 그리고 과학 기술대가 있어
가을을 유난히 타는 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을 날 토요일에
첫댓글 서울 북부를 빙~~~~ 한바퀴 돌고가는 느낌입니다.
좋은 한주 보내시고, 두바이 출장도 건강히 다녀오세요!!
동네 멋지네.. 강북의 명소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