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주(台州)의 방국진(方國珍), 절강(浙江)의 장사성(張士誠), 정문빈(丁文彬), 화니적(火尼赤)의 조공이 있었다.
● 홍건적(紅巾賊)의 침략이 있었다.
● 회왕(淮王)과 하남왕(河南王), 납합출(納哈出)의 헌상 선물이 있었다.
● 원(元), 명(明), 북원(北元)과 사절교환 및 토산물 왕래가 있었다.
● 동평왕(東平王), 달단왕( 王)의 헌상이 있었다.
(20) 우왕(禑王:1374∼1389)
● 유구국(琉球國)이 조공을 했다.
(21) 공양왕(恭讓王:1389∼1392)
● 올량합(兀良哈), 섬국(暹國), 곡국(斛國) 등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했다.
로 정리할 수가 있다. 왕별, 연대별로 구분함에 있어 중복(重復)되는 나라, 부족명, 지방이름은 중요한 관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외시켰다. 고려의 주변국으로써 원근과 관계없이 외교(外交) 관계를 맺은 나라 및 종족들의 명칭으로 한정했을 뿐이다. 이것은 중세의 조선 고려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중요한 관건이기도 하여 고려사를 중심으로 대륙정사서의 기록들의 견해도 해설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 1】
고려와 연관이 있었던 나라들을 고려 중심 남북(南北) 개념으로 상대국을 해설해볼 필요가 있어진다. 고려(高麗)를 중심으로 북방(北方) 계열에 속했던 국가나 지명에 의한 종족명(種族名)을 정사서를 기준하여 그들이 있었던 현재의 위치를 추적해보면,
1) 흑수말갈(黑水靺鞨:감숙성 장액하와 서쪽지역)
2) 키타이(契丹:신강성, 외몽고, 중앙아시아지역)
3) 발해(渤海:산서성, 내몽고지역)
4) 해(奚:내몽고북부, 외몽고남부)
5) 천축국(天竺國:중앙아시아 지역)
6) 서천축국(西天竺國:중앙아시아 지역)
7) 동여진(東女眞:내몽고, 산서성지역)
8) 철리국(鐵利國:감숙성 민현지역)
9) 서여진(西女眞:감숙성, 신강성지역)
10) 정안국(定安國:내몽고, 감숙성지역)
11) 동흑수국(東黑水國:감숙성 주천지역)
12) 불내국(弗奈國:감숙성과 신강성의 월지국 및 트루판지역)
13) 대식국(大食國:타직키스탄, 소그디아)
14) 북번(北蕃:외몽고지역)
15) 우릉(羽陵:외몽고, 내몽고북부지역)
16) 창주(昌州:내몽고 찰합이지방)
17) 달단( :신강성, 감숙성, 내외몽고, 타타르인지역)
18) 몽고(蒙古:알타이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 천산지역 포함)
19) 회회(回回:回骨, 감숙성, 영하성, 내몽고, 청해성, 신강성, 중앙아시아)
20) 안서왕(安西王:감숙성 서부와 신강성지역)
21) 토번(土蕃:티벳지방, 파미르고원 지역)
22) 독적국( 禿赤國:영하 오르도스, 내몽고 서부지역)
23) 납합출(納哈出;감숙성과 청해성지역)
24) 북원(北元:외몽고와 중앙아시아지역)
25) 올량합(兀良哈:烏梁海로써 외몽고 서북부 및 러시아 국경지역과 중앙아시아 북부 당노산<唐努山>지역까지)
26) 그밖에 여진(女眞)과 북번(北蕃) 북노(北虜)란 명칭이 들어간 지역 명칭과 종족 명칭의 모두는 고려 중심에서 보았을 때 북지(北地)지역으로 구분된다.
27) 독노올(禿魯兀:영하성지역, 감숙성, 신강성지역)
28) 올량합(兀良哈)지역으로 고려의 공험진(公險鎭)지역이었던 아홉 곳도,
● 멱몽골(覓蒙骨:내몽고 남서부)
● 개양실(改陽室:감숙성 천수현)
● 안둔압(安屯押:섬서성 유림지역)
● 난희자(蘭喜刺:감숙성 고란지역)
● 올올리(兀兀里:감숙성 북부지역)
● 인고리(因古里:섬서성 안채지역)
● 한노별(罕魯別:감숙성 돈황지역)
● 원적개(元的改:섬서성 징성지역)
으로 현 대륙의 서방과 북방지역의 옛 명칭들이다.
고려를 중심으로 할 때 남방(南方)에 해당했고 정사서속에 해설된 나라와 종족 명칭을 살펴보면,
1) 오월국(吳越國:절강성과 강소성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
2) 온주(溫州:절강성 온주지역)
3) 남초(南楚:호남성 장사지역)
4) 민월(閔越:복건성 민후현지역)
5) 천주(泉州:복건성 천주지역)
6) 강남(江南:강서성 구강지역)
7) 복주(福州:북건성 복주지역)
8) 양절(兩浙:절강성 전당강지역)
9) 광남(廣南:광동과 광서지역)
10) 대주(台州:절강성 임해지역)
11) 호남(湖南:동정호 남쪽지역)
12) 형호(荊湖:호북성과 안휘성의 양자강지대)
13) 명주(明州:절강성 영파지역)
14) 남송(南宋:절강성 소흥, 항주지역)
15) 왜(倭:유교사관 중심의 동방 및 동남방의 외인(外人), 이인(異人)의 뜻임. 유교문명권 밖의 외국인이란 뜻)
등은 고려가 상대한 남방(南方)의 나라와 종족 및 군벌들 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으며 이것은 정사서를 기준하여 해설되어 지도까지 그려놓은 현재의 실정도 있는 것이다.
고려를 중심으로 수평적 관계와 동(東)쪽의 관계설정이 있었던 나라와 종족을 살펴보면,
1) 후량(後粱:朱全忠:하남성 개봉)
2) 후당(後唐:李存郁:하남성 낙양)
3) 후진(後晋:石敬塘:하남성 개봉)
4) 후한(後漢:劉知遠:하남성 개봉)
5) 후주(後周:郭威:하남성 개봉)
6) 일본(日本:동주<東州>의 뜻이 있는 보통명사 성 나라이름)
7) 탐라(耽羅), 대마도(對馬島)는 산동성의 거야(巨野)지역
8) 요(遼:내몽고 하투<河套>지역)
9) 금(金:흑수말갈의 후예로 섬서성 동관(潼關:함곡관)과 산서성을 거점으로함)
10) 한인(漢人:유교사관 중심의 하족의 한족으로 정체가 없음)
11) 원(元:大元:으로 불리며 동방의 대국이란 뜻임)
12) 북송(北宋:하남성 개봉)
등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고려는 정사서를 기준으로 해설할 때 왕씨 고려475년 동안 현 대륙의 북방과 서역의 28개 나라, 남방의 25개 나라와 군벌, 중원지역의 12개 정도의 나라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세분화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날 수 있으나 큰 영역을 3분 구도로 나누어도 65개의 나라와 종족, 군벌들과 친선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때로는 이들의 침략을 받아 곤욕을 치렀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할 때는 국운(國運)이 좌초했었고 전형적인 속국으로 전락한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高麗)는 대단한 위력이 있었던 나라였고 대륙에서 광역을 통치했던 나라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으리라고 보여진다.
【연구 2】
앞에 열거되어 알 수 있었던 고려의 외교관계와 주변국 상황에서 보여진 것처럼 고려는,
'서(西)쪽으로 현중앙아시아에 있었던 대식국(大食國;타직키스탄)과도 외교관계가 있었고 회족(回族)들과도 관계가 깊었다.'
'동(東)쪽으로는 산동성(山東省)의 동평현의 동평국(東平國)과도 외교관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남(南)쪽으로는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을 비롯하여 베트남(占城), 캄보디아, 태국(暹國), 운남성 지역에 있었던 나라 및 군벌들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상국(上國)의 자격으로 조공도 받았다.'
'북(北)쪽으로는 섬서성, 산서성 북부 및 내몽고를 지나 러시아와 외몽고가 국경으로 하고있는 올량합(兀良哈:烏梁海)지역까지 위력을 떨쳤던 고려였다. 물론 감숙성과 신강성, 천산과 알타이 지역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였기 때문에 지금도 중앙아시아 지역에 까레이스키 라고 불리는 고려인들이 수없이 퍼져 넓은 지역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10C∼14C의 조선사속의 고려는 현재 반도 사람들이 제도권 교육을 통해 지식화 되어 알고 있는 것처럼 조그마한 스케일이 고려는 아니었다. 고려사와 대륙 정사서에 쓰여져 있는 고려는 대륙1만리 강역에서 황도를 하남성 개봉(開封)으로, 동경(東京)을 낙양(洛陽)으로 서경(西京)을 섬서성 서안(西安:호경)으로 했던 황하지대의 황제국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고려 광종은 즉위 11년(960)에 개경(開京:開封)을 황도(皇都:황제가 자리하고 있는 나라의 중심지)로 고쳐 부르도록 했던 것이다.
정사서들의 광역(廣域) 고려와 황제국 고려를 반도를 중심으로 해설을 하면 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특징적인 문화·문명을 보유하지도 못했고, 풍요롭지도 못한 척박한 반도 고려를 섬기기 위해 현재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외몽고 러시아 국경지대의 나라들과 군벌, 종족들이 조공을 바치며 상전국으로 모실일은 없을 것이다. 중원(中原:中土)의 중심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륙의 고려다. 이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고려사와 대륙 정사서에 나오는 나라들로써, '해국(奚國:내외몽고), 서천축국(西天竺國), 대식국(大食國:타직키스탄), 안서국(安西國:신강성 트루판), 회회(回回:대륙서역과 중앙아시아), 올량합(兀良哈:외몽고와 러시아 국경지대), 독노올(禿魯兀:영하회족자치구와 서역지역), 오월국, 민월( 越), 호남(湖南), 형호(荊湖), 운남국(雲南國), 섬국(暹國:태국), 점성(占城), 동평국(東平國:산동성), 회국(淮國:안휘성)'
을 대표로 들 수가 있다. 그밖에 산서성과 섬서성, 내몽고지역의 요(遼), 관동지역과 산서성 지역의 금(金)나라 등도 그들이 강성해지기 전(前)까지는 고려에 필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와 종족들간의 친선외교 관계 설정은 상호간에 이익이 보장되는 얻어짐이 있을 때 맺어지는 것이다. 별다른 이익이 없으면 외교관계는 파기되고 단절되기 마련이다.
현대의 타직키스탄(大食國), 올량합(러시아접경 외몽고 서북지방), 태국(暹國), 베트남(占城), 유구국(琉球國:오끼나와)이란 나라들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교통시설이 없었던 시대에 수 만리를 행군하여 반도 고려를 황제국(상국)으로 받들며 조공, 선물, 재물헌상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이 고려와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조공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있어도 그러한 고려가 반도에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또한 무엇을 배워가기 위해 반도 고려로 올 것인가. 그래도 반도 고려로 타직키스탄 태국인들이 조공을 바치러 왔다면 그것은 역사(history)가 아니라 이야기(story)만 될 뿐인 것이다. 대륙중원의 고려로 이들은 온 것이다.
동양문화·문명의 중심지도 풍요롭지도 모범이 될만한 것이 있지도 않았던 반도 고려로 대륙의 동방과 서역(西域)의 외교사절들 및 상인들이 올 일은 없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중원의 동서남북(東西南北) 원근 지역의 수많은 나라와 종족들, 서역(Central Asia)의 친선사절과 상인들이 고려(高麗)를 상국으로 받들며 조공을 하면서 고려 황제의 은총을 받으려 했던 고려는 반도에는 없었으며 황도와 황성을 가졌던 황제국 고려는 대륙 중원(황하지대 동서남북지역)의 강력한 패권국가였기 때문에 이러한 나라들이 조공을 바치러 왔다고 하여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황제국 고려와 외교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나라들이 조공을 하며 고려를 상국으로 받음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계산된 얻어짐이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인(商人) 집단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계산된 이익 보장 없이 귀한 선물과 헌상물을 고려(高麗)에 주었을 리가 없는 것이고, 그것도 그들이 서둘러 고려를 찾아왔을 경우라면 융성한 고려를 통해 이익을 챙겨보자 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귀순(歸順), 투항(投降)하여 고려국 백성으로 만들어진 고려주변국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천, 수만 명이 고려로 귀순 투항하여 고려땅에 살게 했거나 그들이 살던 곳을 고려 영역으로 했을 때도 수많은 나라들 중 고려가 가장 으뜸이었고 중심 축으로 있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밀항(密航)과 망명을 통하여 자국을 탈출했을 경우의 대부분은 잘사는 나라 또는 상황과 조건이 좋은 선진국(先進國)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민(移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못 사는 나라, 문화·문명이 뒤떨어진 후진국으로 이민 가는 경우는 없다. 있는 경우라면 상인들과 개척정신을 가진 모험가들의 전진기지(基地) 및 교두보 확보를 위해서 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10C∼14C의 정사서들에 쓰여져 있는 고려는 당시 최고의 문명국(文明國)으로써 주변에서 추앙을 받았던 중앙의 중심국가였으며 현재로 말하면 중원이 중국(中國) 고려였던 것이다. 이러한 고려를 사가(史家)들이란 부류들이 정치세력들과 담합하여 역사서를 재구성하면서 반도라는 좁은 강역으로 밀어내고, 대륙을 요(遼), 금(金), 북송(北宋), 원(元)이란 나라로 만들어 역사서를 세분화 시켜놓았을 뿐이다. 이러한 나라들의 역사서라는 것들을 보면 한족(漢族)의 중원사, 중국사는 향기조차 나지 않는 것들이다. 따라서 현 대륙을 치장하고 있는 중국사에 있어서의 한족(漢族)의 역할은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한족 중심의 중국(中國)이란 어울리지도 않는 말이다.
【연구 3】
고려가 건국될 즈음 대륙의 중원지역 낙양과 개봉의 역사를 후량(後粱),후당(後唐),후진(後晋)등의 나라들이 혈전을 벌리며 자리바꿈을 했을 때 조선사가 후(後)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후 고구려, 후백제라고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즉 중국사의 편성구도에 따라서 조선사가 후(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찬구성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사가(史家)들이 역사서(정사서)를 만들면서 고의적으로 현 중국사에 조선사가 매달려 있게끔 고의적으로 곡필(曲筆)을 하면서 생겨난 나라 이름이란 것이다.
고조선은 고구려(高句麗)로 고구려는 신라(新羅)로 또다시 고려(高麗)로 이어지는 역사공식이 만들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공식을 만들어 냈을 때 사용한 근거 서류에 해당하는 공인된 역사서, 정사서에는 조선사(朝鮮史)에 포함된 역사시대는 나라들은 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쓰여져 있는 형편이다. 정사서에 쓰여진 고려는 주변국에서 볼 때 '귀순, 투항, 래조, 조공, 속국자청, 토산물헌상' 상대의 대국(大國)이자 중토의 중원국 이었으며, 현 대륙의 황하지대 중국이었고 황제국 이였던 것이다. 고려와 외교관계를 가졌던 현재의 대륙 동서남북에 있었던 중세 역사시대의 나라들은 모두 고려를 중심으로 사방과 변방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려가 반도에 있어 현 대륙의 서역에서부터 최 남방지역의 조그마한 나라들까지 반도로 조공했다는 역사해설은 이제는 멈추었으면한다. 아무리 History라 할지라도 또 제도권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설득력 있는 고려 역사를 해설하여야 할 것이다.
대륙사로 구분된 요사(遼史), 금사(金史), 송사(宋史), 원사(元史)는 조선의 고려사로 일괄 정리하여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역사서들이다. 필자는 지금도 대륙의 정사서 속의 조선전, 고려전 등을 보면서 또한 고려사 등을 비교 분석하면서 반도에 고려(高麗)가 있지 않았으며 그것도 대륙 중원에서 황도(皇都)와 황성(皇城)이 있었던 황제국으로 쓰여져 있는 고려를 반도로 한정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관학파 사학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그동안 지켜왔던 밥벌이 학문의 틀이었다면 이제는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역사를 역사서(정사서) 원전에 의한 재해석을 하고 주석(註釋)을 한다고 하여고 조선사편수회 해설방식과 그 시대의 학자라는 에고집단들이 설정한 조선사의 틀을 왜 고수하는지 진정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실권을 잡고 있는 권위주의적 실세들이어서 알고 있으면서 또 역사(History)란 무엇인가를 잘 알면서, 반도에 짜깁기된 조선사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안돼'라고 아직도 외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고려사에 쓰여진 본래의 고려로 달려갈 생각도 해보자. 엄연히 객관적 증거물이라는 실증역사서 고려사의 고려는 대륙중원의 황제국이었다고 쓰여져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