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레게의 과거와 현재를 주제로 글을 썼다. 레게 리듬처럼 끊길 듯 끊기지 않은 지난 25년의 궤적을 보기 쉽도록 영상과 사진을 되도록 많이 첨부했다. 이 글은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렸음을 밝힌다.
19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그 외연을 확장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특징으로 레게(reggae, 레개)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레게 특유의 엇박 리듬이 판소리 등 한국 전통음악과 비슷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분석이 있지만, 그보다 몇십년 전부터 레게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완벽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영상) 김건모 - 핑계 (1993)
한국 대중음악과 레게의 만남을 대표하는 곡은 김건모의 <핑계>(1993)이다. 레게 박자는 담담하게 떨면서도 시원하게 찌르는 김건모의 목소리에 제대로 맞아 들어갔다. 김건모는 이 노래로 1994년 방송 3사 가요대상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김창환도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동영상) 김준기 - 사랑은 가도 추억은 (1991)
<핑계>를 한국 최초의 레게 음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치헌과 싸우고 <벗님들>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한 김준기가 1991년 발표한 <사랑은 가도 추억은>이 한국 레게의 시초다. <핑계>보다 해수로 2년이나 앞섰다. 곡을 들어보면 벗님들에서 연주한 그 퍼커션으로 레게의 느낌을 제대로 살렸다. 엄청 키워놓은 베이스도 재미있다.
(동영상) 015B - 5월 12일, 수필과 자동차 (1992, 5분 10초부터). <수필과 자동차>는 Blondie의 유명곡 <The Tide is High>와 UB40의 <Red Red Wine>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은 공일오비가 자신들의 작품에 하우스부터 현악까지 이것저것 실험해보던 시기이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로 유명한 3집에 수록된 <수필과 자동차>(1992)는 그 중 레게 리듬을 쓴 곡이다. 박영렬, 성지훈, 이장우, 윤종신, 김태우(1970)가 총출동한 곡이다.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귀엽고 상큼한 분위기. 후에 등장하는 룰라, 투투, 마로니에가 공일오비의 작업을 참고했을 거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동영상) 투투 - 일과 이분의 일 (1994)
1994년 여름은 레게가 지배했다. 지금 들어도 정말 좋은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과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은 같은 시기에 경쟁하던 곡이다. 앞의 김준기한테 곡을 받은 임종환은 빗속에서 그냥 전화를 걸었고(<그냥 걸었어>(1994)), ‘레게의 뿌리(Roots Of Raggae)’를 자칭한 룰라(Roo'ra)는 개성있는 목소리와 유머러스한 가사로 인기를 얻고, 1년 뒤에는 전국에 ‘싸바싸바춤’을 유행시킨다(<날개 잃은 천사>(1995)).
(사진) 김흥국의 <레게 파티>가 수록된 앨범 <LAST REGGAE>의 앨범 자켓. 김흥국은 정체불명의 서아시아풍 복장을 입고 있다.
이 무렵 레게 열풍에 뒤늦게 숟가락을 얹으려 한 이가 있으니 바로 김흥국이다. 이상민의 피쳐링을 받아 <레게 파티(1994)>를 내놓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이 때 김흥국의 컨셉을 보면 아직까지 세간의 레게에 대한 인식이 ‘리듬’ 외에는 사실상 전무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 무렵부터 김흥국은 예능에 나와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실패의 내상은 크지 않았을 거라 추측해본다.
(동영상) 닥터 레게 - 아픔 속의 그대 (1993). 이 곡이 수록된 앨범 <Dr. Reggae>는 대단한 앨범이니 청음을 권한다.
최초의 레게 그룹은 1993년 데뷔한 닥터 레게이다. 전문적으로 레게를 해보겠다며 당당하게 등장한 7인조 레게 팀은 <어려워 정말>로 1994년 음반 판매량 3위, 가요톱10 2위에 올랐다. 그러나 혜성같은 인기는 반짝이었다. 닥터 레게의 리더 김장윤이 대마초 흡입으로 검찰에 구속·기소되면서 이들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005년에 다시 컴백하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그룹에서 랩을 맡은 이는 바로 바비 킴이다. 닥터 레게가 물거품이 되자 일자리를 잃고 홀로가 된 한국계 미국인 바비킴은 닥터레게가 해체된 이후 공사판과 단역배우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생활한다. 가끔씩 다른 가수들 작업에서 빠른 영어랩이 필요할 때 불려가서 몇 소절 피쳐링을 해준 게 그의 음악 활동 전부였다. 이후 트랜드를 읽고 레게에서 힙합으로 건너간 이상민 밑에서 ‘브로스’라는 프로젝트 팀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브로스' 자체가 '윈 윈'하지 못하는 바람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동영상) 바비 킴 - 고래의 꿈 (2004)
그랬던 그가 주목을 받은 건 2004년이다. 안 되면 가수를 접을 각오로 발표한 솔로 1집에 수록된 노래 <고래의 꿈>이 히트한다. 레게와 R&B의 절묘한 조화도 훌륭하지만 그간 긴 무명생활을 근거로 쓴 ‘꿈을 찾아 떠나는 고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감동적인 노래의 트럼펫은 바비킴의 음악 활동을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 김영근이 연주했다.
(동영상) 아소토 유니온 - Think About'chu (2003)
한편 비슷한 시기, 언니네 이발관의 드러머를 거쳐 홍대 앞에서 제대로 된 스트리트펑키 음악을 플레이하며 리스너들의 찬사를 받은 '아소토 유니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김반장이다. 아소토유니온은 2003년 1집 앨범 발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격 차이로 돌연 해체한다. 키보드 림지훈과 베이스 김문희는 2006년 펑카프릭&부슷다를 만들어 ‘소울 뽕짝’을 개척한다.
(동영상) 윈디시티&이박사 - 우주몽키 (2012)
김반장과 기타 윤갑열은 그 무렵 레게에 심취한다. 이들은 레게의 음악적 형식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받아들여 레게 팀 윈디시티를 만든다. 레게는 자유롭고 창의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한 윈디시티는 레게에 한국적 요소를 결합하여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는다. 이들은 다양한 시도를 꺼리지 않기로 유명한데, 2012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이박사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동영상) 스토니 스컹크 - RAGGA MUFFIN (2005)
스토니 스컹크는 매니아들에게 전설적인 듀오이다. 2003년에 데뷔한 레게+힙합 듀오 스토니 스컹크는 오랜 기간 드문드문 활동하며 수준 높은 레게를 보여주었다. 멤버 스컬은 2007년 미국에서 <붐디 붐디>를 불러 빌보드 차트 ‘핫 R&B/힙합 싱글즈 세일즈’ 차트 4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빌보드 차트 기록으로 잠시 주목을 받았지만, 아이돌 시대에서 스토니 스컹크는 닥터 레게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결국 2010년 공식 해체한다. 쿠시는 YG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프로듀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1년 YG를 나와 루드 페이퍼라는 레게 팀을 만든다.
(동영상) 스컬&하하 (With Stephen Marley) - Love Inside (2016)
스컬 또한 계속 레게의 길을 걷는다. 2012년부터는 하하와 함께 매년 레게 음악을 발표한다. 스컬&하하는 지난 3월에 밥 말리의 아들 스테픈 말리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동영상) 스카웨이커스 - Firebomb (2014). 반핵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레게의 사촌뻘 되는 스카의 팀들 역시 두각을 나타낸다. 킹스턴 루디스카와 스카웨이커스는 가는 공연장마다 흥을 돋우기로 유명하다. 언급한 두 팀은 농성장이나 집회 현장에 무거운 악기를 끌고 와 공연을 하는 등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남미의 카니발에서 연주되는 행진 음악 바뚜까다 연주팀 라퍼커션도 삼바와 레게를 조합한 연주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한국 최초로 레게/스카 페스티벌이 생겼다. 작년으로 3회차를 맞은 <라이즈 어게인>은 한국의 레게/스카 뮤지션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페스티벌이다. 작년 4월 25일 홍대 무브홀에서 15개의 팀이 공연했다. 25주년을 맞은 한국의 레게/스카는 죽지 않았으며 기대해볼 게 많다.
첫댓글 정말 좋은 글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써 "레개의 세계적 동향"이 완결됐군요.. ^^
아울러 댓글에다 몇가지 기록물들을 수집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유일의 블로꼬 삼바레개 "라퍼커션"
http://durl.me/ca8cw2
PLAY
"라퍼커션"(RAPERCUSSION) 콘서트
http://durl.me/ca8d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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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하하 Ragga Muffin
http://durl.me/ca8d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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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하하 Live
http://durl.me/ca8e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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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칼럼 : 루드 페이퍼
- 난파 http://nanpaexe.egloos.com/72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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