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장의 비보는 안타까움과 함께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안타까움보다는 솔직히 그 반대편의 생각이 더 강하다.
성폭력 및 성추행 등과 관련된 문제는 최근 수년 동안 지구를 휩쓸고 있다. 우리에겐 아마도 일제청산 수준의 파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서울 시장의 자살은 성추행과 관련한 고소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사진 자료 : 인터넷. 이하 같음>
아마도 이 부분의 백미는 김학의 전법무부차관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시효가 지났음에도 이 정권에서 다시 먼지를 털기도 했을 만큼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에 관한 수사는 모두가 짐작했겠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막을 내렸다. 이 정권도 그걸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요란스런 수사 자체로 도덕성은 강화되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민초들은 수사 초기에는 민감해도 실제로 재판이 열리게 되면 그 이후는 초기 단계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당사자는 그저 낙인만 깊은 생채기로 남을 뿐이다. 그 행태가 꼭 떴다방 수준이다.
그런데 세상사는 남의 발등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 발등도 남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안희정 전 지사는 이러한 일로 실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연 초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돌연 사표를 내고 잠적을 했었다. 지금 그에 관해 조사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내년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그저 그런대로 시간을 보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그는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시민운동을 가장 활발히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세간에 기억되고 있다. 성추행도 범죄라는 것을 이끌어낸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은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약자, 특히 여성에게는 정의 그 자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서울시장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3연임 중이었다.
이런 그가 그렇게도 범죄라고 외치던 바로 그 덧에 발을 들여놓았었다. 참으로 가관인 역대급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고소장은 제출되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는 경찰서 문을 들어서야 한다. 수많은 플래시가 번뜩이며 시야를 가릴 것이다. 숱한 돌팔매질이 이어질 것이다. 배신감을 토로하는 자들 또한 넘쳐날 것이다. 어찌 해야 하는가. 그 동안의 용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는가?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 식으로 상식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유추해 보자. 안희정 전 지사는 상황파악을 못하고 부인을 하다가 결국 실형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간 쌓아올린 명예가 한 순간에 날아갔으며 파렴치범으로 낙인이 찍혔다. 아마도 그의 삶은 파탄 나고 정치적 삶은 영원히 종지부를 찍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재빠르게 사퇴를 했다. 살길을 찾아 명예를 버린 것이다. 어떻든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히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동안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게 된다. 낙인은 어느 땐가는 세간에서 잊힐 것이다. 그는 명예를 버리고 살길을 택했다. 비굴한 삶일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이런 앞선 파렴치범들의 전철을 살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불명예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 그렇게도 부정하던 파렴치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 순간 스스로가 쌓아온 인권변호사라는 찬란한 이름을 철저하게 허물어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은 손쉽게 그려지나 그간 자신을 지탱해 온 자존심에 철저하게 반한다. 결국 그는 오욕과 명예를 무게를 가늠했을 것이고 명예를 지키기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곳에서 그에게 손짓을 한다. 동일한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권세를 이용한 치부의 문제가 불거지자 삶을 마감했다. 한 사람은 수사를 받는 도중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명에를 더럽히는 일이므로 결심을 빠르게 했다. 그 순간 세상은 ‘공소권 없음’이라는 법률적 용어에 의해 정지되었다. 명예는 남고 오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아무도 그들에게 도덕적인 문제를 입에 담지 않는다. 오히려 둘 다 묘하게도 순교자이거나 위인의 반열에라도 오른 듯하다.
그렇다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어디로 마음이 기울었을까는 자명해 보인다. 서울시장과 관련한 고소 사건은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관련당사자가 사라짐으로써 ‘공소권 없음’이라는 꼬리를 달고 영원히 어둠 속으로 묻혀버렸다. 이로써 치욕은 묻히고 명예만 오롯이 남았다. 파렴치가 명예로 포장이 되고 있다. 그 상징적인 건이 서울시 장으로 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세 번째 명예를 온전히 지켜내고 앞선 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의 행위가 그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앞선 이들과는 그 질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원순 전 시장의 유서에는 고소 사건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라는 한 문장뿐이다. 나머지 문장은 지인과 가족에 관한 것이다.
하기는 고소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입에 담는 것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파렴치한으로 드러내는 일이므로 명예를 지키는데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므로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는 용의주도했다.
그러므로 늘 그랬듯 이 말은 진영논리에 따라 백가쟁명 식 주장이 제기될 것이다. 그래도 이 말은 아무래도 치욕 또는 파렴치보다는 명예를 지키는 쪽에서 보다 유효하게 힘을 발휘하게 될 공산이 크다. 현재의 분위기는 그런 것 같다.
고소를 제기한 자에 대한 신상 털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화살은 고소를 제기한 자에게 돌려지고 그 중압감으로 시달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는 평생을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도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될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은 앞선 안희정이나 오거돈의 경우와 대비된다. 아무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찰서로 갈 것인지 삶을 마감할 것인지의 판단은 오로지 박원순 개인의 몫이다. 이는 결코 고소를 제기한 자와 무관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까지의 수많은 다른 미투 참여자들은 가상한 용기에 박수가 쏟아졌으나 박원순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되는 세상이 참으로 괴이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와 다른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것이 하나 있다. 공교롭게도 박원순 전 시장의 자살을 하던 날 그에 관한 책이 한권 출간되었다. ‘박원순 죽이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제 박원순이 그들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안희정과 박원순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과 당내 경쟁을 하던 인사들이다. 그 중 안희정은 일찍이 제거되었다. 박원순은 다음 대권 도전 의욕을 불태우고 나름 착실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이 상당히 흥미로룬 제목을 붙인 책의 저자는 황세연 도서출판 중화문화 대표다. 그는 "박 시장과 보름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박 시장이 '친문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며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만날 때마다 그런 심경 얘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이 '민주당 내에서 자기를 끌어내리려 한다'며 힘들어 했다. 민주당에 한이 맺혀 있었다"며 "성추문이 터지니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머니투데이,2020.7.10.)

대선을 향한 당내 사전 교통정리의 희생양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내용인 것이다. 음모론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 내용을 보면 박원순이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정황은 충분해 보인다.
과거 미국 정가를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이 반세기도 더 지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가면을 바꾸어 쓰고 다시 준동한 느낌이다. 한국판 매카시 선풍은 소위 문빠라는 ‘한국판 홍위병’을 등에 업고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정권 초기에는 일제청산, 과거사 청산 같은 말들이 전국을 휩쓸더니 서서히 정권 말기로 진입을 하자 다음 대선에서도 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열 정비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광기의 정치는 결국 또 다른 광기에 의해 사라지게 마련이다. 넬슨 만델라 같은 이가 이 땅이 강림을 하기 전에는 말이다.
이런 정황이 사실이라면 고소 제기 인에 대한 신상 털기는 곧 사그라질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박원순 자살 사건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