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설 때 머리속에 그린 동선은 의성에서 길안 청송을 거쳐 영양 땅으로 진입한 것이었는데 달구지는 이미 의성 톨케이트를 지나 남안동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제는 안동향교를 거쳐 내앞마을 의성김씨 종택을 지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의성 김씨의 큰 집임에도 서후의 학봉 종택, 포항공대 전 총장이신 김호길의 지례에 비해 명성이 늘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앞마을 동수(洞藪)처럼 보이는 백화정 앞 솔숲에서의 한토막의 추억이 있어 늘 웃음 지으며 지나는 길이다.
안동은 양반문화,불교,민속이 어우르진 고장이지만 특히 양반문화와 관련해서 병호시비를 비롯,접빈객과 봉제사,은근한 대가댁의 힘겨루기 등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언제 기회가 되면 시리즈로 글을 올리겠다.
영양도 안동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양반 문화의 보고이며, 봉감모전석탑,서석지 등 걸출한 문화유산이 안동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게 더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영양으로 진입하는 요소에 외부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제한된 차량만 통행을 허용했으면 좋겠다.
오염되지 않은 고장으로 영원히 남겨지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내기억에 영양이라는 시골소읍은 중학교 때 원두막을 지키던 사람이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여 잡고보니 간첩이었다는 뉴스(이른바 유신시대의 여론 호도용 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와 자대에 전입한 첫날밤 나를 성희롱한 고참 병장이 영양 수비 출신이라는 것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부터 봉감모전석탑을 비롯, 무속신앙 성지인 일월산, 그이름도 멋진 고추 아가씨 선발 대회 등으로 다가왔지만, 5~6년 전 이문열이 선대의 할머니를 소재로 한 '선택'이라는 소설로 인해 이문열의 고향이 영양임을 알았다.
그무렵 남자 배우를 납치하여 혹독하게 고문하는 소재의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비해 '선택'은 페미니즘 논쟁을 야기시켰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던 소설이었기에 영양은 조지훈이 아니더라도 이문열로 인해 문향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일도는 이번 답사길에 처음으로 알았고...
그런저런 상념에 젖어 초하에 반변천을 어깨동무하며 달려가는 길은 정겨움이 넘쳐 달구지를 버리고 걸어가고 싶어진다. 마치 유년에 신작로변 미루나무와, 나란히 달리던 검은 폐유를 바른 나무전봇대가 눈앞에 전개되는 듯한 착각마져 들고...
사진/문화재청...아주 오래된 사진이네요,현재는 수리가 되었습니다.
감정이 없어서인가?
수많은 여행작가,답사객들이 늘어 놓던 그런 느낌은 오지않고 그냥 묵묵히, 소리없이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왜일까? 분위기 때문인가? 색조 때문일까?
말없이 철책에 걸터 앉아 이중의 몸돌에 젖어 있노라니,서울 넘버의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비슷한 연배의 답사객도 나처럼 철책에 걸터 앉아 옥개석을 따라 허공을 한참동안 응시하더니, 탑돌이를 하듯이 서서히 탑을 돌기에 짧은 순간 나도 몰래 벌떡 일어나 탑을 돌기 시작했다.
그사람이나 나나 참 괴팍한 성격이다. 잠시 수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라도 나누면 또다른 답사의 맛과,배움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수리의 상흔으로 하얀 고름을 흘리는 모전석탑은 전탑의 특징인 단층기단, 감실을 갖추고는 있지만, 사자상도, 문비 좌우의 인왕상도 보이지 않고, 어떤 덜 떨어진 화상의 힌 페인트 낙서만 눈에 들어온다. 봉감모전석탑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몸돌을 이중으로 아랫부분은 한옥 기단의 허튼돌막쌓기처럼 조성하고 윗부분은 벽돌 모양으로 바른쌓기를 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기와를 올리기 위한 구조물이 아닐까? 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 뿐 용도가 궁금하다.
봉감모전석탑이 홍수, 물길에 취약한 곳에 조성한 까닭을 혼자만 더듬으면서, 우리 주위에 넘쳐나는 여행작가들의 여행기, 답사기에 한결같이 언급한 글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지었다.
"봉감모전석탑은 병풍처럼 둘러싼 산을 배경으로..."
원 세상에!!! 병풍을 옆에 치는 경우도 있는가?
한사람의 답사기가 바이블이 되어 사려없이 옮긴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자~ 들여다 볼까요?
봉감모전석탑을 진입하는 방향이 탑의 정면이어야만 '탑을 병풍처럼...' 이라는 말이 성립되는데, 석탑의 정면은 감실이 있는 남쪽이기에 석탑은 산과 나란히 서있다는 표현이 바른 서술이 아닌가?
첫댓글 전탑, 참 매력적이네요.관세음보살()
맞아요. 답사 떠나려면 자료들 찾아 볼테고, 그러다보면 은연 중에 읽은 글로 인한 잔상이 남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