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09-10-27 11:57:27
[고교 동문산악회 탐방] 용마산악회 (부산 경남고)
오기현·기묵 형제 대 이어 산행대장
기별 모임 활성화, 본부는 관리만
재경 모임 1991년, 부산은 2000년 창립… 매년 경·부 합동산행 가져
출처 : 월간 산 2009년 10월호
부산의 명문고 경남고엔 산악회가 크게 두 개, 작게는 수십 개 존재한다. 큰 기준으로는 고교 시절 산악부 활동을 한 동문들 중심으로 만든 구덕산우회가 있고, 다른 하나는 총동문들이 대상인 용마산악회다. 물론 구덕산우회가 용마산악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기준으로는 용마산악회가 창립되기 훨씬 전부터 활동해온 수십 개의 기수별 산악회가 있다. 용마산악회는 그 수십 개의 산악회를 하나로 묶는 역할만 할 뿐이다.
지방의 이름 있는 고교 대부분이 그렇듯이 경남고도 졸업 동문들의 모임이 부산과 서울로 나뉘어져 있다. 부산에 모교가 있지만 서울의 동문이 부산과 맞먹을 정도로 인원이 많아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산악회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용마산악회가 2000년도에 창립되었고, 재경 용마산악회는 9년 빠른 1991년에 창립됐다. 물론 부산에선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서울보다 출범이 늦었다.
사실 부산 용마산악회는 일찌감치 태동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 이야기만 수차례 나왔을 뿐 그때마다 흐지부지됐다. 결정적 순간도 있었다. 경남고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기 전 “모교 차원에서 지원에 나서자”는 여러 동문들의 요구로 산악회가 출범 직전까지 갔으나 산악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데 반대하는 동문들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YS 임기가 끝난 후 아무 거리낌 없는 상황이 되자 1990년대 말 당시 조대제(7회·협성개발 대표) 동창회장이 오기현(20회·1966년 졸업) 산행대장을 불러 “다른 학교는 산악회를 중심으로 동문들을 결집, 단합시키고 있는데 모교는 왜 그렇지 못하느냐”며 산악회 창립을 강력히 요구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은 오기현 산행대장이다. 오 대장은 1960년대 초반 고교 시절부터 산악활동을 한 인물로, 구덕산우회의 핵심 멤버이면서 용마산악회의 태동을 주도했다. 경남고의 모든 산악부와 산악활동에 그가 빠지면 얘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1960년대에 활용한 산악장비를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부산산악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산이 곧 그의 삶이었고, 직장인 셈이었다.
선배의 지시를 받은 오 대장이 적극 나섰다. 어느 조직이든지 ‘미치는’ 사람이 있어야 원활하게 돌아간다. 드디어 2000년 6월 8일 40여 명이 모인 창립대회에서 한동대(9회)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임원들을 선출했다. 부회장에 제병인(13회)·진성태(14회)·정준수(15회)·하영수(17회)·이창흠(19회)·김대원(20회)·오거돈(21회) 동문, 기획이사 및 산행대장에 오기현(20회), 산행부대장에 오기묵(23회)·남기태(31회) 동문, 총무이사에 박종규(31회) 동문 등을 선임하고 용마산악회가 출범의 닻을 올렸다. 이 중 이창흠, 오거돈(전 해양수산부 장관이자 부산시장 권한대행, 현 한국해양대 총장), 오기현 동문 등은 구덕산우회 출신들이다. 특히 오기현 대장은 동생 오기묵 동문을 산행부대장으로 발탁해 화제를 모았다. 동생 오기묵 동문은 현재 형으로부터 산행대장을 물려받아 용마산악회를 이끌고 있다.
초기엔 동창회장기 등산대회 열어
용마산악회는 창립하자마자 바로 큰 행사를 기획했다. 동창회장기 쟁탈 등산대회를 승학산, 엄광산, 구봉산 등 부산 근교 일원에서 1970년대 전후 열렸던 등산대회 형식으로 추억을 떠올리며 개최했다. 포상은 각 기수별로 했다. 첫해엔 총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회가 우승했으며, 특별상으로 환경보호상도 제정해 32회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성대한 행사는 매년 이어졌으나, 집행부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매년 수백여 명이 참석하는 등산대회가 오히려 자연을 훼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수백여 명이 산에서 한꺼번에 움직이니, 그런 비난을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집행부로서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 돼 버렸다. 결국 2005년 1월 정기산행 및 각 기별 대표자회의에서 매년 5월에 개회하던 동창회장기 쟁탈 등산대회는 11월 납회산행으로 대체하고, 시상은 한해 기수별 총 참가인원수 등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많은 동문 동원보다는 자연보호를 택한 집행부의 결단이었다.
동문들의 등산대회는 이젠 영원한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대신 특별산행으로 매년 해외산행을 하고 있다. 그해 10월 40여 명의 동문과 가족들이 첫 해외산행으로 중국 황산을 다녀왔다. 이듬해 새 회장으로 취임한 수석 부회장이었던 하영수(17회·한국치공구 대표) 동문은 경·부 합동산행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재경 용마산악회는 부산보다 9년이나 앞서 발족됐다. 고려대 민우회장을 역임한 차동석(10회) 동문, 부천 세종병원 원장이었던 공상기(11회) 동문 등이 나서 산악회를 조직했다. 매월 한 차례 정기산행을 계획했으나 용마산악회 창립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었던 기수별 산행모임과 중복된다는 의견이 많아 격월제로 시행했다. 격월제는 지금 한 차례 줄어 연 5회로 실시하고 있다. 동기 모임을 최대한 활성화하고 가급적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을 피하자는 집행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연 5회의 정기산행은 3월 시산제, 4월 수도권 용마의 날, 6월 1박2일, 9월 경부 합동, 11월 납회산행 등이다. 각 기별로는 한달에 두 번 혹은 매주 모여 산행하기도 한다. 9월 경부 합동산행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듯 서울과 부산 중간지점의 산에서 동문들이 일제히 모인다. 1년의 회포를 이때 푸는 것이다. 2006년 경부 집행부끼리 “경부 합동으로 매년 한 차례 같이 산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바로 성사됐다. 그 중간에 ‘경남고의 영원한 산꾼’ 오기현 산행대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재경 용마산악회는 현재 이헌국(24회·경희대 미술대 교수 및 미술협회 부이사장) 회장과 정영조(35회) 산행대장, 이병용(35회) 총무 등이 각각 최선을 다하며 모교의 상징인 용의 날개를 단 말과 같이 웅비하고 용틀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9월 12일 구미 금오산에서 경부합동산행을 했다. 부산에서 150여 명, 서울에서 120여 명, 그 외 마산·창원·진해·진주·구미 등에서 온 이들까지 총 300명 가까운 동문들이 참석했다. 동문 가족들도 다수 보였다. 오거돈 동문은 이날은 총동창회 수석 부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용마산악회에 동창회 차원의 금일봉을 전달하는 행사로 상견례를 가졌다. 그후 300여 명의 동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을 올랐다.
하산 후 시간 늦어도 목욕은 필수
하산 후 항상 빠트리지 않는 필수사항이 목욕이다. 밥은 안 먹고 가더라도 목욕은 하고 가야 한다. 9월 2일에도 금오산에서 하산 후, 서울과 부산으로 돌아갈 시간을 감안하면 그냥 갈 만한데도 오후 4시 넘어서 사우나로 향했다. 1시간쯤 목욕 후 가진 저녁 시간엔 각 기수와 집행부가 모여 온갖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회포의 시간은 불과 한 시간 남짓. 다시 이별의 시간이고, 1년 뒤를 기약하는 순간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용마산악회는 인원 동원에 그렇게 연연치 않는다. 일부에서는 “다른 학교는 수백 명씩, 때로는 1천여 명 이상 모이기도 하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적게 모이느냐”라고 하지만 집행부에서는 사람 많이 모여봤자 별로 좋을 게 없다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정기산행 외 산행도 기별로 독려하거나 수십 명만 성원할 뿐이다.
지난해 5월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도 그런 차원에서 계속하고 있다. 한 달에 둘째, 넷째 주에 두 번씩, 9월 19일 현재 26구간까지 끝낸 대간 종주는 1구간에 평균 30명 내외씩 모여 진행하고 있다. 용마산악회는 각 기수별로 벌이는 활발한 활동을 관리만 하고 간섭을 하지 않으며 통솔만 하는 본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용마산악회의 내년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별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 현재 활발히 하고 있지만 본부 차원에서 조금 더 자주 모이자는 의견에 따라 내년부터 연 6회로 모임을 늘리려고 조정 중이다. 기별 대표자 모임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여 추인을 받을 예정이다.
또 하나는 경부 합동산행에서 서울, 부산만 참석할 게 아니라 전국의 동문을 모두 모이게 하자는 것이다. 올해도 부산 외 지역에서 일부 참석하기는 했지만 더 많은 지역의 용마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모교와 동문 소식을 주고받는 행사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것은 전적으로 현 집행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 특히 변호사인 정영천(21회) 회장과 형으로부터 산행대장을 물려받은 오기묵 산행대장, 김&정 신경외과 원장인 김법영(33회) 총무의 능력 발휘를 경남고 동문들은 기대하고 있다.
/ 글 박정원 차장ㅣ사진 이구희 기자
출처 : 월간 산 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