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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극(歌劇)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음악을 주로 한 극이라면 오페레타나 뮤지컬도 있지만, 그것들을 오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오페라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만 한다. 첫째,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유럽에 있었던 종교적인 음악극은 오페라가 아니며 또 이 흐름에 속하지 않는 음악극, 예컨대 창극 같은 것도 오페라가 아니다. 둘째, 대체로 그 작품전체가 작곡되어 있어야 한다. 즉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페레타나 뮤지컬은 이런 점에서 오페라가 아니다. 그러나 간혹 예외가 있어서 징슈필계열에 속하는 《마적(魔笛)》 《피델리오》 《마탄(魔彈)의 사수(射手)》 등과 민속 오페라 계열의 《팔려간 신부》 등, 그리고 오페라 코미크로서의 《카르멘》 등은 노래 아닌 대사가 포함되어 있지만 오페라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페라는 원래 라틴어 오푸스(opus:작품)의 복수형이다. 오페라 발생기에는 드라마인 무지카(dramma in musica) 또는 드라마 페르 무지카(dramma per musica)라고 하였다. 이것은 ‘음악에 의한(을 위한) 극’을 의미하는데 나중에 오페라 인 무지카(opera in musica)가 되고 다시 오페라로 약칭되었다. 오페라는 복잡한 종합무대예술로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이요, 문학 또는 시적인 요소(대사), 연극적인 요소(극으로서의 구성 ·연기), 미술적인 요소(무대장치 ·의상), 무용적인 요소 등이 합쳐진 것인 만큼 매력도 큰 데 비하여, 자칫 작품으로서의 통일성을 잃게 되기 쉽다. 특히 음악적인 요소와 극적인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또는 어느 편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지금까지 항상 오페라의 숙제가 되어 왔다.
오페라는 원래 대사에 음악을 붙인 것이며 음악은 독창과 합창 및 관현악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독창은 등장인물이 맡고 성역(聲域)에 따라서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으로 나뉜다. 그들은 독창을 하거나 중창을 한다. 전통적인 오페라에서는 그 부르는 노래 하나하나가 완결된 독창곡이 많으며 극중의 순서를 따라서 번호가 붙어 있는(번호 오페라) 것이 많다. 이들 독창자가 부르는 노래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주로 한 아리아(唱:영창)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르는 레치타티보(唱)로 나뉜다.
합창은 오페라 중의 군중역으로 등장한다. 관현악은 성악의 반주를 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성격 ·행동을 묘사하며 무대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등, 여러 가지 구실을 하지만 관현악만으로 연주하는 부분도 적지 않고 오페라 전체의 서두에는 서곡이나 전주곡이 붙는 것이 많다.
또 전주곡은 제2막이나 제3막의 처음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 속에 삽입되는 발레음악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리브레토라고 하는 오페라의 대본은 작곡을 위하여 특별히 쓰여진 것으로, 옛날에는 오페라대본을 쓰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보통 운문으로 쓰여지며 막 ·장(場) ·경(景) 등으로 나뉘는데 이는 일반 희곡과 마찬가지이다. 작곡을 위한 대본이 아니고 완성된 희곡에 따라 작곡한 예외적인 작품(R.슈트라우스의 《살로메》)도 있다. 바그너는 대본을 스스로 쓰기도 하였는데 그 이후,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작곡자가 직접 대본을 쓰는 경우도 많다.
오페라 가수는 목소리의 높이, 종류(리리코 ·드라마티고 등)에 따라서 배역이 결정된다. 오페라의 남녀 주인공은 소프라노와 테너인 경우가 많다. 관현악은 대개 오페라극장에 전속되고 대규모 오페라인 경우는 100명 또는 그 이상의 연주자가 필요하다. 또 일류 오페라극장에는 전속 발레단이 있어 발레만 단독으로 상연할 때도 있다. 오페라를 상연할 때 최고의 지도자는 지휘자로서 가수나 합창단원 그리고 무용수 등은 모두 그의 지휘에 따른다. 합창지휘자는 합창의 훈련을 담당하고, 극적 연출은 연출감독이 담당하며 연기를 비롯하여 중요한 것을 지도한다. 무용이 삽입될 때는 무용지도자가 안무나 무용지도를 한다. 기타 도구 ·의상 ·조명 등 담당자와 프롬프터 등은 일반 연극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며, 오페라 상연에는 대단히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특히 가창(歌唱)에서 뛰어나 벨 칸토라는 발성법이 발달하였다. 초기 오페라에서는 막간에 익살스러운 내용의 짧은 연극을 삽입하고 인테르메초라고 하였는데 후일 독립하여 오페라 부파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정통적인 비극적 오페라를 오페라 세리아라고 하여 이 두 가지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형식이 되었다. 독일에서는 처음에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을 따랐으나 민속적인 오페라로는 징슈필이 있고 정통적인 오페라의 영역에서는 베버 이후 낭만적 오페라가 전통적 형식이 되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악극에 의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에는 일찍부터 독자적인 형식이 확립되어 비극적 오페라의 영역에는 그랜드 오페라가 있고 부파의 계열에는 오페라 코미크가 있으나 이것은 반드시 희극적 내용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고 또 노래가 아닌 대사가 들어 있다.
영국에는 희극적 오페라의 영역에 발라드 오페라가 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러시아에도 국민오페라가 출현하여 내용이나 음악에서 독특한 러시아양식을 만들어냈다.
1. 역사 ▲ Top
오페라는 르네상스 말기인 1597년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 백작 저택에서 탄생하였다. 바르디 백작 저택에 모인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극의 부활을 목표로 그리스신화에서 취재한 새로운 음악극 《다프네》를 만들어서 상연하였다. 이것이 오페라의 효시로서, 독창을 주로 하고 악기 반주가 따르는 단성음악적(單聲音樂的)인 작품이었다. 이 악보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가장 오래 된 오페라는 1600년에 상연된 《에우리디케》로서 대체로 앞서의 작품과 같은 사람들(대본 카치너, 작곡 페리, 리누치니)이 제작을 담당하였다. 이 두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비슷한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피렌체로부터 이탈리아 전역에 보급되어 오늘날 오페라의 기원이 되었다.
다음에 오페라는 베네치아에 보급되어 번창하였으며 베네치아악파(樂派)의 작곡가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의 극적 성격을 높였다. 이 도시에는 1637년에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개관되고 17세기 말에는 그 수가 약 15개소에 달하였다. 18세기 들어서 오페라는 나폴리에서 성행했으며 스카를라티나 페르골레시 같은 뛰어난 작곡가가 나타났다. 그러나 오페라는 벨 칸토 창법이 발달하여 그 후 점차 명가수의 기교(技巧)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져 갔다.
오페라는 17세기 후기부터 유럽 각국으로 옮겨가 프랑스에서는 륄리, 라모 등이 오페라의 프랑스양식을 확립하였다. 영국에서는 퍼셀이 오페라를 작곡하고, 독일에서는 슈츠가 작곡을 시도했으나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글루크는 빈에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1762) 이후의 작품을 가지고 극과 음악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의 대개혁을 이룩하였다. 또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오페라의 테두리 안에서 독일음악의 특색이 풍부한 명작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적(魔笛)》 등을 작곡하였고, 베토벤의 작품으로는 《피델리오》가 있다.
19세기에 이르자 오페라에도 민족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1)에 의하여 독일 낭만파의 오페라가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3대 거성이 현대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을 완성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그랜드 오페라 양식이 성하여 마이어베어가 활약하였으며 오페라 코미크도 출현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두 사람의 대작곡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나 오페라를 독특한 무대예술로 향상시켰다. 바그너는 종래와 같은 번호 오페라의 양식을 배제하고 종합예술작품으로서의 악극을 대성하였다. 대표작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가락지》 《파르치발》 등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가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셀로》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구노와 토마가 우아한 오페라를 남겼으며 비제는 청신한 극적 음악을 작곡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에도 뛰어난 오페라가 나타났는데 글린카, 차이코프스키, 무소르크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 유명하다. 바그너와 베르디의 영향은 다음 시대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또 19세기 말의 이탈리아에는 베리스모(현실파)의 경향이 나타나서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독일에서는 R.슈트라우스가 바그너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프랑스에 드뷔시, 라벨, 뒤카가 있고 독일에서는 베르크의 《보체크》와 힌데미트가 유명하다. 러시아에는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있고 미국에 있는 스트라빈스키도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영국에서는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슈윈 이래 많은 오페라가 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 오페라가 처음 공연된 것은 1940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한 《흥부와 놀부》가 효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연주회 형식의 공연이었으며, 본격적인 오페라 운동이 시작된 것은 48년 1월 국제오페라사가 주최한 《라 트라비아타》 공연부터이다. 50년대 이후에는 창작 오페라가 등장했는데, 50년 초연된 현제명의 《대춘향전》이 최초의 창작오페라이다.
이후 김대현의 《콩쥐 팥쥐》, 김달성의 《자명고》, 홍연택의 《논개》, 장일남의 《원효대사》 등 많은 창작오페라가 발표되었다. 또한 서울오페라단 ·한국오페라단 ·푸리마오페라단 ·고려오페라단 ·대한오페라단 ·김자경오페라단 등 많은 오페라단이 생겨나면서 오페라운동은 활기를 띠었다. 특히 62년 창단된 국립오페라단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일남의 《왕자 호동》을 시작으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도니체티의 《루치아》, 푸치니의 《라보엠》과 《아이다》, 공석준의 《결혼》, 이영조의 《처용》 등을 공연하였다.
<뮤지컬>
뮤지컬 코메디, 또는 뮤지컬 플레이의 약칭이다. 뮤지컬은 19세기 미국에서 탄생하였는데, 그 근원은 유럽의 대중연극, 오페라·오페레타·발라드 오페라(俗謠歌劇) 등이다. 1728년 이와 형식이 비슷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가 런던에서 상연되었는데, G.에드워드가 제작한 《거리에서》(1892년 초연)를 첫 뮤지컬로 본다.
미국은 최초의 뮤지컬 코메디를 탄생시켰다.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벌레스크(해학적인) 희극에다, 유럽에서 발달한 오페레타를 조화시킨 것이다. 작곡가 제롬 칸, 대본에 리처드 로저스, 작사자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등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미국인의 꿈과 향수를 제재로, 미국의 민요와 흑인음악의 멜로디, 그리고 리듬을 적극 수용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일환으로 미시시피강(江)을 내왕하는 쇼보트를 무대로 인생의 애환을 그렸는데, 바로 《쇼보트》(1927)다. 이것은 오늘의 뮤지컬의 기초를 다졌다.
G.거슈윈은 G.S.카프만과 리스킨드의 대본으로 《나는 너를 위해 노래한다》(1931)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문학적 가치가 높은 뮤지컬을 시도하였다. 거슈윈은 만년에 흑인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포기와 베스》(1935)를 만들었는데, 경쾌한 리듬과 나른한 멜로디를 특징으로 하는 노래를 썼다. 작사와 작곡의 귀재(鬼才) 콜 포터는 복잡한 각운(脚韻)과 도시적인 기지가 특징이며, 뮤지컬 작자로는 세련된 인물이다. 《키스 미 케이트》(1948) 등이 그 대표작이다. 로저스는 해머슈타인 2세와 손잡고 《오크라호마!》(1943)를 비롯, 《회전목마》(1945) 《남태평양》(1949) 《왕과 나》(1951)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 《마이 페어 레이디》(1956)의 대본·작사자 A.J.러너와 작곡자 F.로가 등장한다. 또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 유대민족의 애환을 그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4) 《라만차의 사나이》(1965), 베트남전쟁을 반영하여 히피의 생태를 그린 록 뮤지컬 《헤어》(1967)가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없는 《코러스라인》(1975), 로큰롤에 의한 《그리스》 등이 뮤지컬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0) 《에비타》(1978) 《캐츠》(1981)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1984) 《오페라의 유령》(1986) 등 브로드웨이 뮤직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뮤지컬】 한국의 뮤지컬은 19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막을 연 《포기와 베스》가 첫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1961년 예그린악단이 설립되어 《삼천만의 향연》(1962)과 《흥부와 놀부》(1963)를 공연함으로써 일반에게 알려졌고, 1966년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공연,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 후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바다여 말하라》(1971) 등을 공연하다가 명칭이 여러 번 바뀌고, 또 많은 극단들이 창작 뮤지컬 《시집가는 날》(74) 《아리랑, 아리랑》(1988) 《아리송하네요》(1989) 《그날이 오면》(1991) 《꿈꾸는 철마》(1992) 등을 공연하였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서구식 뮤지컬의 첫작품은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의 《포기와 베스》이다. 이 작품은 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했으나, 커트가 많고 음악이 제대로 살지 못하여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없었다. 그 후 많은 극단들이 《빠담 빠담 빠담》(1979) 《피터 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올리버》(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캐츠》(1990) 《넌센스》(1991) 《코러스 라인》(1992) 《레미제라블》(1993)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수입 ·공연하였다. 그 중 1983년의 《아가씨와 건달들》은 1991년까지 9년동안 반복 재공연되기도 하였다.
1. 한국의 뮤지컬 ▲ Top
한국의 뮤지컬은 19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막을 연 《포기와 베스》가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후 1961년 예그린악단이 설립되어 《삼천만의 향연》(1962)과 《흥부와 놀부》(1963)를 공연함으로써 일반에게 알려졌고, 1966년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공연,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후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바다여 말하라》(1971) 등을 공연하다가 명칭이 여러 번 바뀌고, 또 많은 극단들이 창작 뮤지컬 《시집가는 날》(1974) 《아리랑, 아리랑》(1988) 《아리송하네요》(1989) 《그날이 오면》(1991) 《꿈꾸는 철마》(1992) 등을 공연하였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서구식 뮤지컬의 첫 작품은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의 《포기와 베스》이다. 이 작품은 50년대 말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였으나, 컷이 많고 음악이 제대로 살지 못하여 본격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없었다.
그후 많은 극단들이 《빠담, 빠담, 빠담》(1979) 《피터 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올리버》(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캐츠》(1990) 《넌센스》(1991) 《코러스 라인》(1992) 《레미제라블》(1993)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수입·공연하였다. 그중 1983년의 《아가씨와 건달들》은 1991년까지 9년 동안 반복 재공연되기도 하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