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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9코스
진월초등학교-망덕포구-배알도-도촌마을-금호도-길호마을-중동근린공원
20220126
1.망덕포구에서 부르는 노래, 세 개의 섬을 건너다
1월 26일 아침 7시 섬진강의 동쪽 경상도 河東에서 빛이 밝고 볕이 따스한 전라도 光陽으로 들어왔다. 섬진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 48코스를 끝내고, 연거푸 49코스를 이어걷는다. 하루에 남파랑길 2개 코스를 연속해 이어걷기가 무릎이 좋지 않는 길손에게는 몹시 벅차다. 그렇지만 단체트레킹모임을 따라왔으니 제한시간을 지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광양은 통일신라 경덕왕16년(757년)에 마로현(馬老縣)을 희양현(曦陽縣)으로 개칭, 고려 태조23년(940년)에 희양현(曦陽縣)을 광양현(光陽縣)으로 고쳐져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월초등학교 앞에서 무접섬 방향으로 걸어나가니 무접섬 광장에 거대한 조형물 전어가 용수철이 튀듯 몸을 구부렸다가 하늘로 치솟는 형상으로 길손을 반긴다. 망덕포구는 우리나라 전어잡이의 출발지, 아, 얼마만인가? 망덕산을 내려와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망덕포구 앞 횟집에서 벚굴에 소주를 들이키고 전어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긴 때가 언제던가? 망덕포구는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윤동주 시비공원과 윤동주 쉼터가 조성되었고, 망덕포구 횟집타운 조형물과 토사붕괴 방어벽도 설치되었다. 망덕포구-배알도를 잇는 '별헤는다리'와 태인도-배알도를 잇는 '해맞이다리'가 망덕포구의 명물로 건설되었다. 두 개의 해상보도교를 통해 망덕포구는 태인도와 훨씬 가까워지게 되었다. 물론 차량으로는 태인대교를 통해 망덕포구와 태인도가 연결된다. 이 모든 것은 포스코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광양의 재정이 풍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광양 망덕포구와 윤동주가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곳에 윤동주 시비공원과 윤동주 쉼터를 조성하여 윤동주(1917~1945) 시인을 표나게 강조할까? 우리 국민들이 애송하는 대표시는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에 해당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로 시작하는 '서시'이다. 이 유고시집이 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윤동주의 연희전문(현 연세대학교) 후배 정병욱(1922~1982)과 그의 가족이 망덕포구 자택에 항아리를 묻고 그 속에 원고를 숨긴 덕분이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시집을 간행하기 위해 시집 원고 세 편을 작성하여 이양하 스승님과 후배 정병욱에게 각 1부를 주고 남은 1부를 자신이 가지고 갔는데, 결국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옥사하게 되었다. 조국이 광복되자 정병욱은 광양 자택에 숨긴 윤동주 시집 원고를 꺼내서 1948년에 간행하였다. 그 덕분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조국을 잃은 청년의 투명한 정신이 형상화된 주옥 같은 시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망덕포구 외망마을에 윤동주 유고를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이 있다.
광양시 진월면 선소마을민속공원에는 전라좌수영 수군주둔지 '광양선소터'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임진왜란 때 전선(戰船)을 만들었다는 船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매립되어 뭍이 되었다. 섬진강이 남해 바다로 나가는 섬진강 포구에 자리잡은 선소마을은 전란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이 어려있는 곳이다. 길손은 민중의 뜨거운 겨레사랑을 우러렀다.
완재(緩齋) 박현모(朴賢模)(1880~1963) 선생은 ‘희양10경(曦陽十景)’ 한시를 통하여, 광양의 아름다운 10경을 노래했다.
1경-운산청람(雲山晴嵐) : 백운산의 고운 아지랑이
2경-사정춘수(射亭春樹) : 광양읍 유당공원 궁도장 봄의 수목
3경-마로낙조(馬老洛照) : 광양읍 마로산성에 지는 해
4경-문성효설(文星曉雪) : 봉강면 문성산의 새벽 눈
5경-송천단풍(松川丹楓) : 옥룡면 송천사지와 동곡계곡의 단풍
6경-길도어화(吉島漁火) : 중마동 길호섬 앞 바다의 고기잡이배 불빛
7경-의암만조(衣巖晩潮) : 옥곡 의암에 속한 하의(衣巖, 옷바위)마을 앞 포구에 드는 조수
8경-치진노화(淄津蘆花) : 옥곡·진상 경계의 금촌마을 앞(숭어나루터)에 펼쳐진 갈대 꽃
9경-망덕귀범(望德歸帆) : 진월면 선소 외망마을, 망덕포구로 돌아오는 배
10경-섬강추월(蟾江秋月) : 다압면 섬진마을 위쪽 섬진강의 가을 달
그 중 9경이 진월면 선소 외망마을 망덕포구로 돌아오는 배를 노래한 '望德歸帆(망덕귀범)'이다.
西南山水聚如雲(서남산수취여운)/ 이 산과 저 산의 물결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鹽舶漁船袗市分(염박어선진시분)/ 소금배와 고깃배가 시장으로 달린다.
時有漁人待潮落(시유어인대조낙)/ 어부들은 바닷물이 낮아지기를 기다리는데
蘆花月白魚紛紛(노화월백어분분)/ 갈대꽃 달빛 아래 고기들의 속삭임 들려오네.
선소공원 앞 뎈를 따라 망덕포구로 내려간다. 선소마을은 우리나라 전어잡이의 출발지, 전어잡이의 원조 고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소공원 앞 뎈에는 전어배와 전어잡이에 대한 설명안내판이 주욱 걸려 있다. 건성건성 보면서 망덕포구 횟집타운으로 내려간다. 예전보다 더 많은 횟집들이 들어선 것 같다. 이 횟집타운 앞이 섬진강이 남해에 합수하는 망덕포구이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전북, 경남, 전남의 길고긴 550리 길을 흘러와 망덕포구에서 강의 생명을 마친다. 한 생명이 죽음으로 합일하는 바다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다. 섬진강은 죽음의 장소 망덕포구에서 자신이 탄생한 데미샘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섬진강은 살아온 긴 세월의 거리를 하나하나 추억하며 바다에 포근히 안긴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을 찾아가 샘물을 마시던 때를 추억하며 망덕포구에서 내 생애의 끝도 생각해 본다.
망덕포구에서는 이 고장 출신의 강석오가 작사작곡한 망덕포구 노래를 불러야 제격이 아닐까?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나는 때가 아니지만 겨울날 봄날의 풍경을 그리며 노래를 부른다. "내 고향 망덕 포구 새 우는 마을/ 울고 웃던 그 시절이 하도 그리워/ 허둥지둥 봄바람에/ 찾아왔건만/ 님은 가고/ 강 언덕에 물새만 운다.// 내 고향 망덕포구 꽃 피는 마을/ 웃고 놀던 그 사람을 차마 못 잊어/ 허둥지둥 봄바람에 찾아왔건만/ 님은 가고 강 언덕에 동백꽃 핀다."
망덕포구 아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전어 형상을 교각으로 세운 현수교 '별헤는다리'를 건너 배알도로 들어간다. 별헤는다리에서는 북쪽으로는 망덕포구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이, 남쪽으로는 태인도를 휘감아도는 바다 위로 태인대교가, 그리고 배알도에서 태인도로 건너가는 '해맞이다리'와 태인도의 배알도근린공원이 한 눈에 조망된다. 가을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날, 이 별헤는다리에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낭송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고향을 떠나온 청년이 객지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앞날을 그리는 슬프도록 맑은 '별 헤는 밤'을 낭송하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것 같다.
남파랑길 49코스는 망덕포구로부터 세 개의 섬(배알도, 태인도, 금호도)을 건너서 광양시 중동 성호3차아파트 중동근린공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을 걸으며 광양만의 독특한 지형을 알 수 있었다. 태인도와 금호도 사이의 해협, 금호도와 광양만 사이의 해협, 광양만 광양시 광영동과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를 잇는 수어천 하구의 건축 중인 다리, 이곳을 처음 걸으면서 이곳 지형들을 살피며 복잡한 광양만과 주변 섬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매립지에 생겨난 산업시설과 이제는 원주민 가슴 속에 먼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사라진 고향마을의 흔적들은 길손의 마음을 애태웠다. 세계 최초의 김 양식지 군두리마을에서 꼭 김 시식을 하고 가라는 정병욱 가옥의 문화해설사의 말을 시간에 쫓겨 실천할 수 없었다.
포스코광양제철소의 건설로 광양은 눈부시게 발전한 것 같았다. 특히 금호도의 금호동이 그 모습을 특별히 보여주었고, 광양시 마동과 중동 지역 또한 마천루가 치솟고 있었다. '눈소'가 무슨 뜻일까? 눈소길 등 도로명에 붙은 '눈소'의 뜻은 와우(臥牛, 누운 소)였다. 49코스를 걸으며 계속 눈에 들어오는 멋진 산이 가야산, 그 가야산 아래 나지막한 구릉들이 이어진 모습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닮아 이곳이 '누운 소' 지명이 되었는데, 빠르게 발음하면 '눈소', 대교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와우지구가 눈소 지역이다.
금호동에서 광양시 마동으로 건너가는 '무지개다리'의 형상과 조형물들도 아름다웠다. 다리를 건너서 중마금호 수변공원에서 '무지개다리' 그리고 광양만과 금호도 사이의 해협 풍경이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공원을 내려가며 바라보는 청암로 위에 세워진 '해오름육교'의 형상은 해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잘 형상화했고 육교에서 바라보는 광양만의 바다 위 공중을 가르는 '이순신대교'는 그 위용이 당당했다. 청암로를 따라가다가 길호대교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호마을 옛터'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원래 '길도(吉島)'라는 섬이었는데, 1930년 일본 금곡상회가 간척하여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아, 이곳이 '길도(吉島)' 섬이었던 곳이구나. 완재 박현모(1880~1963) 선생의 <희양10경(曦陽十景)> 중 제6경 '길도어화(吉島漁火)'로 읊은 곳이 바로 이곳이야. 지금은 '길호대교'가 세워져 이곳을 공중에서 날아가네. 지난날의 길도 앞 밤바다를 상상해 본다.
島回雲濕亂帆斜(도희운습난범사)/ 구름은 어지러이 돛대에 비끼고
漁火紛紛夜色多(어화분분유색다)/ 고기 잡는 불빛은 찬란하게 밤빛을 만든다.
政是浦村燈滅後(정시포촌등멸후)/ 포구 촌에 등불이 꺼지고
潮隨月上泛人家(조수월상범인가)/ 바닷물 따라 달 떠오르자 인가도 떠 있구나.
-박현모의 <희양10경(曦陽十景)> 중 '길도어화(吉島漁火, 중마동 길호섬 앞 바다의 고기잡이배 불빛)'
2.걸은 과정
진월초등학교 버스정류소 맞은편 전봇대에 남파랑길 49코스 시작점 표지물이 달려 있다.
진월교를 경계로 진월면 선소리와 망덕리로 구분된다.
이곳이 전라좌수영 수군 주둔지로서 임진왜란 때 전선을 만들던 선소(船所)가 있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 선소마을이라 불린다.
1908년 9월 황병학 의병이 어업권을 침탈한 일본인을 처단한 곳이다. 황병학(黃炳學, 1876~1931) 의병은 1908년 여름 산포수 100여 명을 모아 광양 백운산에서 부대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9월 그는 광양 망덕포구의 어장을 침탈한 일본 어민과 잡화상을 공격하여 그들의 가옥과 어선을 불태웠다. 황병학 의병은 광양을 비롯한 여수, 순천의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09년 후반 일제의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해산하였다.
오른쪽으로 호남정맥의 끄트머리 山인 망덕산 오르는 들머리가 보인다.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달조각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 윤동주, 1937년작.
교각은 전어 모양을 형상화한 현수교이다.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배알도별헤는다리'는 길이 275m, 폭 3m 규모의 현수교식 해상보도교다. 국내 최초로 곡선 램프를 도입해 경관 조망성을 높이고,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부 공간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배알도별헤는다리'라는 이름은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서 보존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망덕포구는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전어, 재첩, 벚굴 등 진한 풍미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즐비하다. 또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과 윤동주 시 정원이 있는 역사문학 공간이다. 다리 너머 배알도는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국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으며, 백범 김구, 사라호 태풍 등 역사의 켜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 정원으로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가벼운 산책도 즐길 수 있다. 배알도에서 '별헤는다리'를 건너면 배알도근린공원에 닿을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 안내문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배알도에서 배알도근린공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해맞이다리'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망덕포구에서 '별헤는다리'를 건너 배알도에 들어가 배알도공원에서 놀고, 배알도에서 '해맞이다리'를 건너 배알도근린공원에 이른다고 설명해야 합당하다.
광양시 태인동과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를 이어준다.
배알도와 배알도근린공원을 잇는 배알도 '해맞이다리'는 길이 295m, 폭 3m 규모의 해상보도교로 유려한 곡선미와 단순미를 자랑한다. 배알도 '해맞이다리'라는 이름은 빛과 볕의 도시 광양을 상징하는 태양을 모티브로 빼어난 일출을 자랑하는 장소성도 함께 담겨 있다. 한때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피서객으로 북적였던 배알도근린공원은 이제 캠핑마니아들이 몰려드는 야영장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154km에 이르는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으로 유·무인 인증센터가 있으며, 해송과 미루나무가 어우러진 해변을 따라 라이더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인근에 김을 처음으로 양식한 김 시식지, 전우치 전설이 깃든 삼봉산 등이 있다. 다리 너머의 배알도는 망덕산을 향해 절하는 형국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으며, 백범 김구, 사라호 태풍 등 역사의 켜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 정원으로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하며 가벼운 산책도 즐길 수 있다. 배알도에서 '별헤는다리'를 건너 망덕포구에 닿을 수 있다.
1. 배알도 유래
태인동 1번지인 배알도(拜謁島)는 이 마을 북쪽, 섬진강 하류에 있는 섬 태인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0.8ha, 높이 25m의 바위섬으로 옛지도(여지도서 1760년, 대동여지도 1861년)에는 사도(蛇島)로 표기되었으며 뱀섬이라고도 불려왔는데 그 이후 진월면 망덕리 외망마을 산정에 있다는 천자(天子:명당이 있다고 전함)에게 배알(拜謁)하는 형국이라 하여 배알도(拜謁島)라 이름한 것임. 이 섬 위에는 1940년 당시 진월면장 안상선(安尙善)의 찬조금으로 건립된 '해운정(海雲亭)'이 있었으나 1960년대 사리호 태풍으로 붕괴되어 흔적만 남아있다. 1970년 초만 해도 광양 망덕 해수욕장 하면 이 배알도 주변 모래사장을 일컬었는데 1967년 한해방지사업으로 배알도까지 방축을 쌓은 뒤로는 조류소통이 되지 않아 갯벌이 쌓여 모래사장을 볼 수 없게 되자 1987년 방축을 헐어버렸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온 뒤 이 지역(배알도)을 해수욕장으로 개발하여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2. 태인동유래
태인동 옛 지명이 문헌에 처음 나타난것은 서기 1451년 편찬된 고려사에 광양현(光陽縣) 대안도(大安島)라 기록되어 전하며, 곧이어 서기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 해도조편에 태안도(泰安島)라고 기록되어 있고, 서기 1530년경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시 대안도(大安島)라고 적고 있다. 1983년도에 편찬된 광양군지에 의하면 태인도(太仁島) 유래는 술객 전우치(田禹治)가 도술을 부려 이곳에 궁궐을 짓고 지방수령의 탐학을 징계하고 빈곤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했다는 전설에 의거 전우치(田禹治)를 가리켜 '大人'이라 하여 처음에는 대인도(大人島)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우치(田禹治)란 인물은 문헌상 검토한 바에 의하면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고 역사상 기록되어 전하는 실존인물로서 태안도(泰安島)라고 기록된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이후의 인물이며 대안도(大安島)라고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경) 간행 당시에 전우치(田禹治)는 이미 사망한 때이며 도술가 전우치(田禹治)에 관한 이야기가 태인동을 비롯한 금호동, 광영동, 골약동에 걸쳐 여러 가지 전설로 묻어 전해지고 있다. 태인동의 중심산을 근년의 지도에는 삼봉산(三峰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1899년에 편찬된 돌산군지에는 대인산(大人山)이라고 적고 있으며, 돌산군지의 설명판에 의하면 태인도는 당초에는 돌산군의 북쪽에 있어서 북면(北面)이라 했으나 그 뒤 태인면(太仁面)으로 바뀌었으며 태인(太仁)의 의미는 '어진 사람들이 사는 큰 고을'이란 뜻이 담겨 있다.
마주보는 건너편 오른쪽은 광양시 광영동, 뒤쪽의 산은 가야산, 왼쪽 정면의 섬은 광양시 금호동의 금호도
광양시 광영동과 오른쪽 광양시 진월면 진정리를 이어주는 다리가 수어천 하구에 건설되고 있다. 뒤쪽에 가야산이, 왼쪽에 금호도가 거북 머리처럼 쑤욱 나와 있다.
임진왜란 선봉부대 그 혼과 얼이 머물다. 세계 최초의 김 양식지
중앙에 가야산이 우뚝하다.
건너편에 삼봉산과 도촌포구, 삼봉로의 산업거리가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제철삼거리와 광양제철소 본부건물, 맞은편 금호동해안에는 금섬해안길이 조성되어 있고, 뒤쪽에 가야산이 흐릿하다.
바다를 가로질러 태인동과 금호동을 잇는 태인교가 놓여 있다.
왼쪽 철조망이 쳐진 안쪽길은 금섬해안길, 건너편은 태인동의 삼봉산과 도촌포구
금섬해안길을 따라가며
철조망 건너편으로 삼봉산과 그 기슭에 세계 최초의 김 양식장이라고 하는 군두리마을이 보인다.
백운산의 세 정기를 받아 학업성취를 기원하는 봉황, 성공을 기원하는 여우, 재물을 기원하는 돼지 등 삼정 조형물
횡단보도를 건너 광양시 마동에서 중동으로 넘어간다.
앞의 길호대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제철로를 따라 진행
횡단보도를 건너 중동근린공원 방향으로 직진
첫댓글
생생한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해파랑길 18~19코스 걷고 왔습니다
상큼님, 감사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해도 괜찮겠지만
님처럼 해파랑길을 정방향으로 따라올라가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저는 고성에서 부산 오륙도까지 역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곳에서 계속하여 남파랑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상도 하동에서 전라도 광양으로 넘어와 여수까지 도착했습니다.
상큼님이 주신 관심의 댓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친구분과 함께 걷는 해파랑길
많은 추억 쌓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