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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49회
어평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
20231231
1.함백산의 운무와 눈보라 그리고 상고대 풍경
2013년 마지막날 송백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는 함백산(咸白山) 구간으로 송년 산행을 떠났다. 가는 도중 가랑비가 내리다가 어평재(화방재)에 도착하니 가는 싸락눈발이 날린다. 2023년 10월 15일 태백산 방향으로 백두대간을 남진할 때 어평재에 왔으니 2개월이 넘어서 다시 이곳에 왔다. 이번에는 함백산 방향으로 북진한다. 이 구간 산행은 2021년 2월 7일에 2년 10개월이 넘어서 다시 함백산 구간을 산행한다. 그때는 날씨가 쾌청하여 설경과 주변의 풍경 조망이 좋았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다.
화방재(일본식 이름)라고 불렸던 해발 936m 어평재에서 태백산 북쪽 함백산 산행을 위해 북진한다. 산행 처음부터 산길은 급경사를 이룬다. 수리봉까지 이어진 가파른 급경사를 오르기가 힘겹다. 흑갈색 낙엽송 군락지가 펼쳐지고 뒤이어 물푸레나무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산비탈을 올라 수리봉에 도착, 잠시 숨을 골랐다. 찌푸린 날씨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아닥친다. 태백시 상장산악회에서 세운 수리봉 정상표석에는 수리봉의 높이가 1214m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옆 국립공원에서 세운 위치번호 표지목에는 해발 1199m로 기록되어 있다. 15m의 차이가 어디서 나는 걸까?
수리봉에서부터 만항재로 이어지는 능선은 눈길이다. 가볍게 미끄러지며 눈길을 걸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먼 풍경은 조망할 수 없고 나무에 피어난 눈꽃과 상고대 풍경을 즐긴다. 산죽군락지와 낙엽송군락지를 지나 군사시설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운무는 더욱 짙어진다. 군사시설물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돌아 군사시설물 정문 앞 광장 헬기장을 거쳐 만항재에 이르렀다. 만항재라는 지명은 원래 능목재(늦은목이재)라고 불리던 이름을 한자말로 '晩項(만항)'이라고 붙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만항재는 휴전선 남쪽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고개로서 해발 1,330m,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만항재 표석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 오른쪽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산상의 화원 입구에 함백산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함백산하 만첩봉(咸白山下 萬疊峰)은 여명(黎明)에/ 운무(雲霧) 이불 허리 덮고/ 검푸른 봉(峰) 머리 모아 아직도 단잠인데/ 동트며 솟는 햇님 찬란(燦爛)한 아침 햇살"(최인수의 '함백산' 시 일부)로 시작되는 함백산 시비를 살피고 창옥봉 오르는 입구를 통과하여 해발 1238m 창옥봉을 지난다. 창옥봉에서 내려가면 넓은 빈터, 함백산이 정면으로 우뚝할텐데 운무에 덮여 함백산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함백산 기원단이 세워져 있다. 태백 광산지역 막장의 광부들이 잦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자 가족들이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했던 곳이라 한다. 살아가기 위한 서민들의 몸부림과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그 가족들의 정성이 깃든 함백산 기원단은 비극과 희망의 장소이다. 이 기원단에서 함백산 산신께 제(祭)를 올리는 민중들의 모습과 소리를 환각한다.
함백산 임도로 들어가 함백산 등산로 나들목을 통과한다. 함백산 쉼터 평상을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그 오르막의 함백산 산비탈에 펼쳐지는 운무 속 설경, 눈꽃이 피어나고 그 눈꽃 위에 상고대가 맺히고 다시 눈이 내린 층층의 눈꽃&상고대 풍경은 절정의 환각으로 이끈다. 힘겹게 짙은 운무에 덮인 함백산 급경사 산등성이로 올라서면 정상 바로 아래에 함백산 설명비와 전망 위치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지난 번 이 구간 산행 때는 날이 비교적 맑아 함백산 전망대에서 태백산과 주변 풍경에 환호하였는데, 이번에는 짙은 운무가 모든 풍경을 무화한다. 오직 잿빛의 운무와 그 속에서 눈꽃 풍경이 빛날 뿐이다. 함백산 설명비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다.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이라고도 이르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뜻이다.” 불교의 묘범산·묘고산·수미산에 해당하는 ‘크게 밝은’ 함백산(咸白山) 정상으로 오른다. 운무가 덮이고 칼날 눈보라가 몰아친다. 첨성대 모양을 한 돌탑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해발 1572.9m 함백산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다. 함백산은 휴전선 남쪽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6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정상 동쪽으로는 KBS 송신소 철탑이 있고, 남쪽으로는 태백산 장군봉에서 부쇠봉,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잘 조망되는데 이번에는 운무와 칼날 눈보라에 풍경 조망은 커녕 잠시라도 서 있기가 힘들다.
함백산 북쪽 산비탈을 내려간다. 헬기장을 거쳐 주목군락지로 내려섰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주목나무들은 꿋꿋한 의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모습이다. 함백산 거센 바람의 뜻에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뭇가지들이 바람의 운명을 수용한 듯, 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듯 그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함백산은 눈 덮인 산길과 거센 바람의 풍경 속에 주목나무들이 삶과 죽음을 넘어선 모습으로 추억된다.
중함백산 산비탈을 올라서면 중함백산 직전의 암봉에 이른다. 이곳에서의 함백산 조망이 으뜸일테지만 운무는 조망의 욕망을 날려준다. 이곳에서 잠깐이면 중함백산 정상에 이른다. 해발 1505m 중함백산에는 이정목과 태백 15-16 위치번호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은대봉 3.1km, 두문동재 4.4km 지점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암릉지대의 중함백산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은대봉-금대봉-비단봉-바람의언덕-매봉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절경일테지만 이 역시 풍경을 조망할 수 없어 아쉬움을 달래며 통과한다. 내려가는 비탈길에 눈이 더 쌓여 있다. 중함백산에서 1.2km를 걸어 해발 1301m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쉼터에 이른다. 여기가 자작나무샘터가 있는 곳으로, 서쪽 정암사와 적조암으로 내려가는 갈림목이다. 이곳에서 지루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산죽군락지와 참나무 숲의 눈밭을 헤치며 다시 고도를 높인다. 쉼터에서 1.9km를 걸어 힘겹게 오르니 넓은 헬기장, 해발 1442.3m 은대봉(銀臺峰)이다.
함백산은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인 정암사(淨岩寺)를 품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때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금대봉(金臺峰)과 은대봉(銀臺峰)은 정암사의 금탑과 은탑에 해당하는 산봉이라 이르면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은대봉에서 1.3km 아래 두문동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산행의 모든 과정을 끝낸 듯이 마음이 가볍다. 미끄러지듯 쉽게 두문동재로 내려가는데, 두문동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듯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싸리재라고도 이르는 해발 1,268m 두문동재로 내려섰다. 2주 전인 12월 17일 두문동재에서 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에 이르는 산줄기를 산행한 뒤 다시 두문동재에 이르렀다. 고려 충신들이 조선 건국에 반대해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유배당한 공양왕을 알현하러 삼척에 왔다. 삼척에서 공양왕을 알현한 뒤 건의령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고개 아래 마을에서 은거하며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개를 두문동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두문동재 표석에서 대원들과 함께 추억을 남기고 백두대간 함백산 구간 송년 산행을 마쳤다.
한 해를 마무리한 백두대간 함백산(咸白山) 산행을 추억한다. 함백산 운무와 눈보라, 눈꽃과 상고대 풍경이 떠오른다. 모든 풍경을 무화하는 운무 속에서 눈과 상고대가 층층으로 쌓인 눈꽃&상고대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이 몽롱한 아름다움에 환장하였다. 이 풍경 속을 칼날 눈보라가 몰아친다. 눈보라는 한 해의 모든 찌꺼기를 날리듯 휘몰아친다. 운무와 눈보라에 전망을 살필 수가 없을 뿐더러 앞길도 오리무중, 몸이 날아간다. 가라, 묵은 해여! 세상의 모든 불의와 함께 날아가라. 오라, 새로운 해여! 세상의 모든 정의와 함께 밝게 빛나라.
우렁찬 종소리여, 울려 퍼져라(Ring Out, Wild Bells)
-알프렛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장영희(1952~2009) 번역
울려퍼져라 우러찬 종소리여, 거친 창공에,
저 흐르는 구름, 차가운 빛에 울려 퍼져라,
이 해는 오늘 밤 사라져 간다.
울려 퍼져라 우렁찬 종소리, 이 해를 보내라
낡은 것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을 울려 맞아라.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을 울려 맞아라.
부자와 빈자의 반목을 울려 보내고
만민을 위한 구제책을 울려 맞아라.
울려 보내라, 서서히 죽어 가는 명분을
그리고 케케묵은 당파 싸움을.
울려 보내라, 결핍과 근심과 죄악을,
이 시대의 불신과 냉혹함을.
울려 맞아라,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울려 맞아라, 다 함께 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Ring Out, Wild Bells -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Ring out, wild bells, to the wild sky,
The flying cloud, the frosty light;
The year is dying in the night;
Ring out, wild bells, and let him die.
Ring out the old, ring in the new....
Ring out the false, ring in the true.
Ring out the feud of rich and poor,
Ring in redress to all mankind.
Ring out a slowly dying cause,
And ancient forms of party strife....
Ring out the want, the care, the sin,
The faithless coldness of the times....
Ring in the love of truth and right,
Ring in the common love of good.
2.산행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4.14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32분
강원 태백시는 일본식 고개 이름인 태백산 ‘화방재(花房領)’를 ‘어평재(御坪峙)’라는 고유 명칭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벌여, 화방재휴게소를 어평재 휴게소라고 바꿔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500여 년 전부터 ‘어평재’라고 불려 왔으며, 고개 아래의 마을은 어평리(御坪里)라고 옛 책자에 명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옛 전설이 어린 고개의 이름을 어평재(御坪峙)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고개에 꽃이 만발한다고 하여 어평재가 화방재(花房領)라고 고쳐졌다고 전하며 또 일본 식물학자였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이름을 차용·개칭하여 화방재(花房領)라고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고유한 옛 표기가 있었는데 일본이 자기네들 식으로 바꾸었다면 옛 지명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도 31호선 태백산로 해발 936m 어평재에서 백두대간 북쪽 나들목인 민가 옆 이정목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어평재 북쪽 민가 옆의 백두대간 북쪽 나들목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수리봉 1km, 만항재 3.3km 지점이다.
수리봉으로 오르다 어평재 휴게소를 내려본다. 어평재 휴게소 오른쪽에 백두대간 남쪽 나들목이 있다.
해발 1214m 수리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태백시 상장산악회에서 세운 수리봉 정상 표석에 해발 1214m라고 적혀 있다.
수리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국립공원 위치번호 표지목에는 해발 1199m로 기록되어 있다. 25m 차이가 왜 생길까?
이곳을 창옥봉이라 이르는 것 같다. 만항재 1.6km, 어평재 1.7km 지점이다.
만항재 0.5k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 뒤 언덕에 군사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철조망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군사시설물 철조망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돌아오면 넓은 빈터가 나오는데 헬기장인 것 같다. 만항재 0.4km 지점이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그리고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인 만항재는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 줄기가 태백산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고른 곳이다. 또한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은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만항재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晚項)마을이 있다. 만항재에는 야생화 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7월 말에서 8월초까지 고한 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펼쳐질 정도로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발 1330m 만항재는 태백과 영월과 정선의 경계를 이룬다. 전국 최고의 야생화 축제가 매년 만항재에서 열린다고 한다. 눈이 내리고 짙은 안개가 자욱한데 수많은 사람들이 만항재를 찾았다. 건너편에 있는 만항재 표석에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함백산로를 따라 백두대간 창옥봉 나들목으로 이어간다.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풍경을 무화한다. 함백산로 왼쪽은 산상의 화원이다. 이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함백산 시비를 확인하고, 버스 오른쪽 창옥봉 나들목으로 오른다.
함백산 시비와 그 앞에 함백산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눈이 덮여 있어서 눈을 쓸어내고 시를 살폈다.
함백산하 만첩봉(咸白山下 萬疊峰)은 여명(黎明)에/ 운무(雲霧) 이불 허리 덮고
검푸른 봉(峰) 머리 모아 아직도 단잠인데/ 동트며 솟는 햇님 찬란(燦爛)한 아침 햇살
이곳 먼저 비추시니 이것이 일백(一白)이요/
한나절 햇님 이고 스르르 낮잠 들면 하늘에서 놀던 구름/ 소리 없이 내려와서 잠든 함백(咸白) 휘감으니
이것이 일백(一白)이요
햇님 종일(終日)토록 세상만물(世上萬物) 생성(生成)타가/ 함지(咸池)에 드시면서 거룩하신 큰빛 노을 다시 함백(咸白) 밝게 하니
이 아니 일백(一白)이며
햇님 들고 어스름에 행여 이곳 어둘세라 달님 서둘러서/ 은하수(銀河水)에 세수(洗手)하고 맑게 밝게 웃으시며
여기 먼저 오시니, 이 또한 일백(一白)인데
억겁(億劫)토록 세인(世人)들은 크고 밝은 이곳 일러/ 함백산(咸白山)이라 불렀더라// 2013. 12. 20
왼쪽 위 만항재에서 함백산로를 따라와 산상의 화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함백산 시비를 살폈다.
중앙에 화장실이 있고 그 왼쪽에 창옥봉으로 오르는 입구가 있다.
만항재 산상의 화원 입구에서 올라와 창옥봉 나들목을 통과한다. 함백산 2.7km, 두문동재 8.3km 지점이다.
태백 15-21 위치번호 표지목에 이곳의 높이가 해발 1360m가 적혀 있다.
나무 줄기에 나무 이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왼쪽의 나무는 피나무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의 보리수는 피나무를 잘못 옮긴 것이다.
이 산봉이 해발 1238m 창옥봉인 듯. 지난 번 이 구간을 산행할 때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창옥봉을 지나면 만항재 1.2km, 함백산 1.8km를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해발 1337m 태백 15-20 위치번호 표지목을 통과한다.
만항재 산상의 화원 함백산로에서 갈라져 나온 서학로와 만난다. 백두대간은 오른쪽 산길을 넘어 서학로와 재회한다.
광부들이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그 가족들이 기도했던 함백산 기원단이 앞에 있다.
함백산 기원단 : 태백산 천제단은 국가의 부용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던 민족의 성지인 반면 이곳 함백산 기원단은 옛날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 신앙의 성지였다고 전해오며 과거에는 함백산 일대에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고 청결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학로와 재회한다. 태백시 혈동과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와 경계를 이룬다. 왼쪽은 정선, 오른쪽은 태백 지역으로 함백산 1km, 태백 선수촌 1km 지점이다. 서학로를 가로질러 함백산 임도 출입구로 이어간다.
함백산 임도 출입구로 들어가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함백산 1km 지점이다.
함백산 임도에서 오른쪽 함백산 나들목으로 이어간다. 함백산 0.9km 지점이다.
함백산 나들목 태백산국립공원 이정목 위에 눈사람이 앙증스럽게 세워져 있다.
일행들이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해발 1417m 태백 15-19 위치번호 표지목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 함백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함백산 비탈길에 환상의 설경이 펼쳐진다.
운무의 바다에 관목숲이 펼쳐져 있고 가지에는 눈꽃이 피어 있다.
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 위에 상고대가 피어났다. 그 형상이 가지각색이다.
눈꽃에 수증기가 얼음으로 맺혀 상고대가 피어난 눈꽃&상고대 나무이다. 수직으로 솟은 나무의 위용이 멋지다.
수평으로 펼쳐진 나무의 가지들에 눈꽃&상고대가 피어 있다.
함백산 오름길 산비탈 암릉에 자라는 나무들이 눈과 상고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있다.
떨기나무에 눈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고 그 뒤에 상고대가 맺혀 금상첨화의 풍경을 이룬다.
왼쪽에 함백산 정상, 오른쪽에 함백산 전망대가 보인다.
해발 1572.9m 함백산 정상의 정상표석과 돌탑이 보인다.
함백산 전망대에서 남쪽 태백산 능선 조망이 아름다운데, 운무에 덮여 그 풍경을 조망할 수 없다.
함백산 설명비, 백두대간 함백산 해발 1,572.9m : 함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있는 해발 1,572.9m의 산으로 우리나라에서 6번째 높은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가운데 하나다. 함백산은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정선총쇄록에는 상함박, 중함박, 하함박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왜 함백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과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척주부에 보면 (臺南有上咸白中咸白下咸白上下有本寂深寂妙寂隱寂庵今或廢)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봉우리가 셋이다. 상함백은 두문동재 남쪽에 솟은 은대봉을 말하고 중함백은 은적암 뒷봉우리이며, 하함백은 지금의 함백산인 것이다. 허목(許穆)의 미수기언에 보면, (太白山新羅北岳文殊大朴二臺虞南虞檢麻羅邑白山皆大山)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인데 문수, 대박의 두 봉우리가 있고 우보산, 우검산, 마읍산, 백산 등이 다 태백산이다.·』라고 하였으니 함백산은 현재 태백산보다 높지만 태백산의 한 봉우리였던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함백산을 『묘범산(妙梵山)으로 기록하였는데 묘범산은 묘고산(妙高山)과 같은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은 뜻으로 대산이며 신산으로 여겨 본적암·심적암·묘적암·은적암 등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는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岩寺)가 있는데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갈반지를 찾아 큰 구렁이를 쫓은 후 그 자리에 적멸보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2호)과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을 세우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모셨다고 하며, 적멸보궁 옆 주목나무는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살아난 것이라며 선장단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고, 일명 작약봉이라 하여 산속에는 흰 진달래 그 밖에 흰 짐승과 꽃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함백산의 야생화는 국내 최대규모로 군락을 이루고 계절마다 다양하고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몇 번 방문했던 사람도 늘 새로움을 기대하며 찾아온다.
"불의 나라” - 산속에 대량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 산 주위에는 국내 굴지의 탄광이 모여 있다.
“물의 나라” -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에 하루 5000톤의 물이 솟게 하는 물줄기의 으뜸이다.
“천상의 화원” - 흰색의 철쭉과 흰색의 동식물 및 많은 종류의 다양한 야생화가 서식하고 특히, 금대봉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꽃과 자생식물을 촬영하려는 생태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함백산 전망대에서 암릉으로 이루어진 함백산 정상으로 오른다.
함백산 정상으로 오르다가 뒤돌아서서 함백산 전망대를 내려보았다.
해발 1572.9m 함백산 정상에 정상표석과 첨성대 모양의 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짙은 운무가 뒤덮고 칼날의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함백산 북쪽의 주목군락지와 중함백, 은대봉이 짙은 운무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함백산 헬기장으로 내려가다가 함백산 정상을 뒤돌아보았다. 눈과 상고대, 그 위에 눈, 층층의 설경이 아름답다.
진달래 나무에 눈꽃과 상고대가 예쁘게 피어 있다.
함백산 정상에서 200m 지점, 바로아래 헬기장이 보인다. 두문동재까지 5.4km를 걸어야 한다.
헬기장은 겨울 왕국, 눈의 천국이다. 헬기장을 거쳐 주목군락지로 내려간다. 짙은 운무는 풍경을 무화시킨다.
살아 천 년 주목나무가 운무 속에서 흰눈에 덮여 눈부라를 맞고 있다.
살아 천 년 주목나무를 보며 뎈길을 걸어왔다.
아름다운 주목나무와함께 일행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오른쪽에 주목 고목이 이들을 내려보고 있다.
죽어 천 년 주목 나무가 운무 속에서 한겨울의 눈보라를 맞으며 죽음 이후의 당당함을 보여준다.
함백산의 주목단지 뎈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함백산은 운무 속에 보이지 않는다.
함백산에 올 때마다 이 나무에 매료된다. 무엇이 길손의 마음을 이끄는지 모르겠다.
운무의 하늘로 치솟은 나뭇가지들에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 있다.
짙은 운무의 하늘에서 가지가지 눈꽃과 상고대 꽃을 피우고 무언가를 기도하는 모습 같다.
나뭇가지 모양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눈꽃과 상고대는 가지각색의 형상으로 피어 있다.
중함백산으로 가는 중에 고로쇠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곳에 의젓한 주목 한 그루가 멋지다. 앞에 중함백산이 보인다.
온쪽에 중함백산이 보인다. 중함백산 가는 암릉에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 있는 나무들이 멋지다.
해발 1505m 중함백산에는 이정목과 태백 15-16 위치번호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은대봉 3.1km, 두문동재 4.4km 지점이다.
중함백산 정상을 뒤돌아보았다. 위치번호 이정목에는 해발 1502m라고 적혀 있다.
중함백산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풍경이 압권인데 짙은 운무 때문에 풍경은 오리무중이다.
하늘로 치솟은 신갈나무 가지에 눈꽃과 얼음꽃이 피어 있다.
해발 1301m 자작나무샘터가 있는 쉼터는 적조암과 정암사·은대봉 갈림목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5대 적멸보궁 중의 한 곳인 정암사에 이른다. 직진하여 은대봉 쪽으로 향한다. 두문동재 3.2km, 함백산 2.4km 지점이다.
해발 1268m 태백 15-13 위치번호 표지목을 통과한다.
두문동재 2.3km, 함백산 3.3km 지점이다. 그렇다면 은대봉은 1km가 남아 있다.
지금부터 은대봉 오르기까지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야 하기에 엄청나게 힘이 든다.
푸른 산죽밭에 순백의 백설이 소복이 쌓여 있다.
해발 1340m 태백 15-12 위치번호 표지목을 통과한다. 이곳에서 1442.3m 은대봉까지 고도 100m 높이기가 힘겹다.
은대봉 오르는 길은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다.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해발 1442.3m 은대봉에 이정목과 위치번호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두문동재 1.3km 지점이다.
함백산은 세 봉우리, 상함백(은대봉), 중함백(은적암 뒷봉우리), 하함백(현재의 함백산)을 이른다고 한다.
금대봉은 '검대'에서 유래되었는데 '신들이 사는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금대봉과 은대봉의 이름은 신라 선덕왕 때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세운 금탑, 은탑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앙증한 은대봉 정상표석과 2023년 백두대간 함백산 구간 송년 산행을 기념한다.
은대봉에서 두문동재로 내려가는 길, 해발 1372m 태백 15-10 위치번호 표지목에서 운무 속 금대봉을 조망한다.
두문동재에 두문동재 표석과 금대봉 방향에 두문동탐방지원센터가 있다. 화전민들이 수아밭령에서 불을 놓을 때 이곳에서 금대봉에 이르는 능선에 맞불을 놓아 이 능선이 불바래기 능선이 되고 이곳을 싸리재라고 하였는데 이 고개 아래 고려 충신들이 개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두문불출하여 두문동재가 되었다고 한다.
은대봉 방향의 백두대간 두문동재 남쪽 나들목으로 내려간다. 금대봉길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태백시 삼수동이다.
두문동재 표석에서 백두대간 종주대 회원들과 함께 2023년 송년 산행을 기념한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지역이다.
두문동재(杜門洞峙)는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1,268m의 고개로, 싸리재라고도 하며 국도 제38호선 및 백두대간이 통과한다. 1981년 국도 제38호선 정선-삼척구간 개통 당시에는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로 그대로 고개를 넘어갔으나, 2001년 11월 1일 두문동재터널이 확장 개통됨에 따라 산을 넘어가던 기존 17.37km 길이의 도로는 폐지되었다. 경사는 고개 동쪽이 10%, 서쪽이 15%로 가파르다.(고개 밑에서 터널 입구까지의 구간)"(위키백과)
杜門不出이라는 말은 杜門洞에서 유래되었다. 본래 두문동은 고려 말기 유신들이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 골짜기를 이르던 곳이다. 조선 초기 경기도 두문동에 살던 고려 망국 유신 가운데 일부가 삼척 땅에 유배온 고려 마지막 공양왕을 뵈러 왔다가 공양왕이 타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의 건의령에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버리고 이 고개를 넘으며 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이 고개 밑에 있는 정선에서 두문동이란 이름을 짓고 터전을 잡게 되었다. 그래서 杜門洞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두문동재 설명판)
2023년 12월 31일 두문동재에서 표석과 함께 다사다난했던 2023년 송년 산행을 마무리한다.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금대봉길을 따라 태백시 삼수동으로 내려간다.
은대봉을 내려보며 금대봉길을 내려간다. 눈폭탄의 피해를 입은 나무들이 도로에 쓰려져 있다.
낙동강 발원샘 금샘·은대샘 표지판 앞을 돌아 금대봉길을 계속 따라간다.
낙동강 발원샘 금샘·은대샘 표지판 끝이 부러져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천의봉의 너덜샘으로 수정되었다.
金샘은 은대샘 옆에 있는 샘으로 낙동강 상류의 발원샘 가운데 하나이다. 샘물 속에 다량의 철분과 각종 광물질 및 미량원소가 함유되어 있어 이것이 침전되면서 철분이 응고되어 황금빛으로 보이기에 금샘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낙동강 최상류의 샘이 약수라는데 자못 의미가 깊다.(금샘 비문)
너덜샘 야영장은 현재 폐쇄되었다. 낙동강 발원샘이 은대봉 아래의 너덜샘, 금샘, 은대섬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천의봉의 너덜샘으로 굳어진 것 같다.
국도 38호선 태백로 옆 새마을지도자 공원으로 내려왔다. 태백로에 '산소도시 태백' 경관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태백시 관문을 알리는 '산소도시 태백' 상징 아치탑 조형물이 국도 38호선 태백로를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고 태백로 오른쪽에 새마을지도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