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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0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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ː‥‥‥‥시산회。 스크랩 운길산과 수종사(詩山會 제 102회 산행)
김정남 추천 0 조회 32 09.01.14 10:2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운길산과 수종사(詩山會 제 102회 산행)

산 : 운길산(610 미터)

코스 :  운길산역-정상-수종사-운길산역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9년 1월 18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중앙선 운길산역(이 총장의 메일 참조) 

준비물 : 아이젠, 막걸리, 안주, 과일, 따뜻한 물과 컵라면, 사진기(하산 후 뒤풀이 예정)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비망록' 전문

 

 

어수선한 가운데 또 한 해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연초 내세웠던 여러 다짐들도 속절없이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유독 어두웠던 한 해 허방으로 굴러 떨어진 인생들이 드글드글 많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쉬움과 회한만 남는다. 그래도 지금은 삶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의 싹을 틔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쪽 어디에선가 어둠을 걷어내며 새벽이 파닥파닥 다가오고 있다.

 

-시평(이정환. 언론인)

 

모두가 어려우니 산우들의 삶인들 팍팍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좋은 친구들 하나는 있다. 물질적으로는 어려우나 마음으로 도우며 살아가자.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 아닌가. 누구에게나 오고 가는 위기는 기회의 또다른 얼굴이라 하지 않는가.  가슴 시린 사랑을 새벽별인양 늘 가슴에 아늑하게 안고 사는 이 총장이 수종사 찻집에서 담담하게 읊조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라.

 

 

용문산 백운봉 산행기(2008. 1. 4)

참석 : 기세환, 최광일, 전작, 정해황, 신원우, 나창수, 이재웅, 김종화, 조문형, 한양기, 이경식, 남기인, 김용우, 이원무, 박형채, 위윤환, 김정남(17인의 산사나이들)

 

오랜만에 쓰는 산행기다. 귀한 기회가 도움쇠에게 왔다.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자존심이 상하고 쪽 팔리는 일이 벌어져서 모든 게 시들하고 싫어졌으나 신임 회장님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2009년 1월 4일. 시산제를 거행하는 날이다.

어쩌다 서로를 경원시하게 된 마나님과의 관계가 약간 호전됐으나 내게 시산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니 약간은 원망어린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딸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힘차게 잠실벌로 출발. 그래도 전날은 참가인원을 물어보더니 집 앞의 롯데마트에 가서 생굴을 일곱 봉지나 준비해주었는데 어떤 심정이었을까.

 

1시간 반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창동역까지 마을버스, 창동역에서 노원역까지 4호선, 노원역에서 건대역까지 7호선, 건대역에서 잠실역까지 2호선을 타고 가는 복잡하나 짧은 여정이지만 건대역에서 깜박 졸아 두 역을 지나쳐서 되돌아오고 보니 잠실역에 3분 늦게 도착. 미안했다. 나 원장을 비롯한 예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고, 신입 최광일 산우가 보인다. 참가하겠다는 말이 여러 번 오고 갔지만 뜻 깊은 101회 산행 및 시산제의 날에 드디어 얼굴을 비췄다. 이재웅 총장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준비한, 깨끗한 노란색 25인승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참가인원이 17명이라 버스가 꽉 찬 느낌에 가슴이 넉넉해졌다.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자 이 총장이 시산회 100회 산행 분석자료를 배부한다. 그의 꼼꼼함과 용의주도함에 모두가 놀라고 기가 질린다. 1기 집행부 때 한양기 전 총장이 기록한 자료를 무심코 건넸는데 언제 이렇게 귀하고 중요한 자료를 준비했을까. 준비된 총장님이다. 나름대로의 분석을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들으면서 전임과 신임 집행부, 현재의 동창회장인 신원우 산우와 총장 김용우 산우의 새해 인사말과 감회의 덕담 및 최광일 신입 산우의 새로운 각오를 들으면서 양평에 도착. 멀리 백운봉의 위용이 눈 앞에 다가 온다.

 

길을 아는 사람은 도움쇠 혼자인데 6년 전의 이정표가 없어 길머리를 지나치고 주유소 주인에게 물어 길병원 옆으로 난 길머리를 겨우 찾았다. 산하는 그대로 있는데 벌써 6년이 흘렀다. 그때는 용문산 휴양림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조성했나 보다. 용문산영제단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 둘러보니 위쪽에 계단이 보였으나 거기는 올라갈 필요가 없으니 그냥 지나치고 백운봉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 헬기장까지는 약간 가파르나 모두 잘 오른다. 등산로가 남향이며 바람도 불지 않고 하늘은 가을처럼 높고 푸르다. 택일도 잘 했다. 이제 이런 경사도 정도는 ‘식은 죽 갓 둘러 먹기’가 아니겠는가. 100회의 년륜이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우리 나이에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를 했고, 설악의 천불동계곡-공룡능선-마등령-백담사코스를 다녀온 실력이니 만천하에 공개해도 될 자랑스러운 시산회다. 당차면서도 포근한 가슴을 지닌 시산회이니 가능했다. 올해는 설악의 12선녀탕계곡-대승령-장수대도 오르자. 수차례 올랐지만 신록의 5월이 가을의 단풍철보다 더 좋다. 신원우 산우의 말에 의하면 지난 폭우 때 휩쓸려 간 등산로와 계단이 말끔하게 정비되었단다. 신록의 5월을 기다리자.

 

정해황 산우의 모시쑥떡--항상 18개를 싸오는데 17명이니 1개가 남았는데 전에는 도움쇠에게 주다가 이제는 신임 김 회장님에게 하나를 더 증정하니 기 전회장이 한 마디 한다.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권력은 흘러 가는구나”에 모두 폭소를 터트린다. 촌철살인. 유쾌한 유머의 대가답다--에 구수한 콩고물을 묻혀 맛있게 먹으니 아침을 거르고 온 산우들은 배고픔을 달래고, 귤도 까먹으며 남기인 산우의 유치원 개원 현황도 들으면서 쉬엄쉬엄 오른 지 두 시간 만에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는 도움쇠의 말을 믿어도 될 만큼 등산실력이 늘었음이 증명된다. 멀리 북쪽으로 1,400 미터급의 화악산과 1,200 미터급의 명지산이 보이고 남으로 남한강이 굽이쳐 흐른다. 서로는 서울이, 동으로는 용문산의 정상과 장군봉, 함왕봉, 강원도의 준령들이 보이는, 조망이 좋은 산이다. 언젠가는 오를 산들이다. 정상 표지석은 남향이고 옆에 백두산에서 가져온 기념석도 있다.

 

마침 편평한 제단이 있는데 먼저 온 팀이 있어 산행을 증명하는 단체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니 방(?)이 빠지고 남향으로 된 제단을 차리기 시작한다. 북향이 원칙이나 상황에 맞추면 되지 않겠는가. 집행부에서 준비한 제수를 보니 푸짐하다. 용문산 백운봉 산신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셨을 것이다. 특히 전임 기 회장의 된장국, 조문형 산우의 과메기, 나 원장의 추어탕, 도움쇠의 생굴 등을 곁들여 제상을 차리고 엄숙하게 시산제를 거행한다. 오늘의 제주는 가나다 순에 따라 남기인 산우다. 그의 유치원 개원과 때가 맞으니 용문산 백운봉 산신이 돌봐서 운영이 잘 될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타이밍이다. 지면을 빌려 남기인 산우의 유치원 번창을 기원한다.

 

제사술은 김종화 회장님이 한산의 소곡주를 특별히 주문하여 준비하고 제순에 따라 짧지만 엄숙하게 거행한 제사가 끝나 음복을 하는데 역시 먹산회다. 산객들에게 술 한잔 권하고 따뜻한 떡을 건네는 넓고 풍요로운 마음들이여 모두 복 받으소서. 특히 신원우 산우의 마음이 그의 큰 키와 넓은 가슴에 걸맞은 것 같다. 무거운 것을 마다하지 않고 들고 온 조문형 산우의 과메기는 특별한 맛이었고 기 전회장의 구수한 된장국과 나 원장의 따뜻한 추어탕에 우리들의 마음도 따뜻해졌으며, 도움쇠의 마나님이 싸준 시원한 생굴에는 마음이 상큼해졌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렇게 맛있는 제사떡은 처음 먹어봤다. 정성을 다해 푸짐하게 준비해 온 집행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용문산 백운봉 산신께서도 잘 드셨으리라 믿는다. 산신령이 보살펴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 않았고 배부르게 먹고 마셔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하산한다.

 

제사를 지내는 와중에 정상에서 해야 할 오늘의 동반시 낭송을 잠시 잊었으나 결코 끝까지 잊을 이 총장이 아니다. 하산 중에 신입 최광일 산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읊었고 흥에 겨웠던지 이 총장이 읊으려고 꺼낸 프롤로그 시까지 가로채서 읽는다. 욕심도 많다. 시에 대한 풀이를 해달라는 산우가 있었는데 풀이는 메일에 있으니 메일을 읽어 주는 성의는 가져주기 바란다. 박형채 산우는 김 회장님의 어부인 행복 여사가 참석하면 순단 여사도 참석하시겠다는 말을 전한다. 순단 여사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증거라 반갑고 기쁘다. 정겨운 뒤풀이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행사라 신원우 산우의 저녁 식사 약속에 맞춰 일단 잠실로 가서 추어탕과 추어숙회를 먹기로 하고 잠실로 출발.

 

잠실의 남원추어탕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도움쇠의 집안 모임 때 먹었던 강남동태찜이 생각나 기 전회장에게 물었는데 기 전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태전골을 제안하고 그 제안에 동의하여 19회 정찬규 선배의 음식점으로 급선회하였다. 고대법대를 졸업했지만 그때는 합격인원이 50명에서 80명이었던 시절이라 1,000명을 선발하는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매우 크다. 좋은 산우들과 믿음직한 집행부, 훌륭한 산하가 있어 101회 산행, 2009년 시산제를 뜻 깊게 마무리하고 즐겁게 지낸 행복한 하루였다. 시산회 만세. 시산회여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가자.

 

 

다음 산행지를 운길산으로 정했다.

남한강과 북한가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보면서 솟구쳐 양수리의 장엄한 광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산이다. 하산길에 수종사를 꼭 들러야 한다. 별채에서는 녹차를 마실 수 있고 정성을 다하여 차를 다리는 고운 아줌마의 깔끔한 솜씨도 볼 수 있다. 찻값은 정해져 있지 않고 1인당 천원 정도 함에 넣고 오면 된다. 남쪽으로 난 너른 창에서 바라보는 양수리의 풍경을 머리에 담고 와라. 양수리를 배경으로 한 증명사진 한 컷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도움쇠의 산행노트를 보니 ‘2002. 1. 9. 맑음. 눈 쌓인 길이라 아이젠 착용하고 올라 감. 내려와서 수종사에서 양수리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배경이 좋다. 별채의 차맛이 그윽하고 너른 창을 통하여 비추는 햇볕이 따뜻하다. 오름 1시간 20분 하산 1시간.‘ 나는 수종사에 주차하고 수종사에서 시작해서 수종사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 날의 산행시간과 맞지 않다. 기억에 의하면 산행하기에 평범한 산이다. 매년 1월 1일의 해맞이 때는 오르는 차들로 복잡하다. 들머리는 역 근처에서 물어봐야 할 것이다. 임용복 수석은 수종사의 차맛을 잘 아니 꼭 참석하여야 한다.

 

水鐘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59년(세조 5) 세조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水路)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도중 양수리(兩水里)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와 기이하게 여겨 다음날 조사해보니 운길산에 고찰(古刹)의 유지(遺址)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그 바위굴 속에서 16나한을 발견했으며 굴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수종사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절에는 현재 1439년(세종 21)에 세워진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창건은 그 이전이며 세조연간에 크게 중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뒤 조선 말기에 고종이 풍계(楓溪 : 楓漢)에게 비용을 하사하여 중창하게 했고, 1939년에는 태욱(泰旭)이 중수했으며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4년에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나한전·약사전·경학원·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수종사부도내유물(보물 제259호)이 있고, 조선시대 금동불감(金銅佛龕)과 금동불·보살상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수종사다보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이 있다.

 

 

 

매월 1회는 근교, 1회는 원거리 산행을 할 방침을 집행부에서 정했으니 미리 생각하고 오라는 의도에서 다음 원거리 산행지를 추천한다. 보은 구병산, 괴산 칠보산, 김천 황악산, 문경 조령산, 가평 칼봉, 구나무산이다. ‘한국의 산하’라는 싸이트에 들어가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동반시는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50편 중의 하나이다. 시평을 그대로 옮긴다. 계속하여 사랑시 타령이지만 사랑은 우리의 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부분이고 일독하고 오면 나름대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짧은 생에서 사랑도 재물도 행복도 오고 가더라. 가지만 오고, 오지만 잠간 머물다 가기도 하더라.

 

 

-시평(김선우. 시인)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살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내가 없어도 내 사랑하는 사람이 지상의 삶을 잘 갈무리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인생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수레바퀴 시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홀로 떠나고 홀로 남는다. 맑은 날 사랑하는 사람과 햇살 고운 창가에 앉아 죽음을 생각해보라. 이별을 생각하면 사랑이 더 귀해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은 한몸이다.

 

문태준(38)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지상의 생명붙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삶과 죽음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 들숨과 날숨이 고루 드러나는 잔잔한 숨결의 기록들을 읽는 일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물들은 낱낱이 귀하고 서럽고 아름답다. 또한 고독하다. 문태준은 고독을 저어하거나 피해가지 않는다. 사랑처럼 고독 역시 삶의 일임을 알며 기꺼이 고독과 이별을 영접하여 맨발을 닦아드리는 시인. 많은 독자가 문태준의 시를 사랑하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 알고 있는 고독의 감각에 섬세한 언어의 오솔길을 놓으며 그가 우리의 일상과 동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방송 PD 일을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일기를 쓰듯 시를 쓰는 문태준은 하루라도 시를 쓰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시인이다. 그에게 시는 일상적인 기도이고 백팔배이다. 이렇게 눌러쓴 그의 시가 갈무리하는 고독과 이별은 고립된 병리가 아니라 애잔하고 따뜻한 삶의 일부로 우리 옆에서 숨 쉰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재미〉가 그랬듯이 그의 시는 세상만물을 따뜻하게 문병(問病)한다. 당신 아프구나… 감각하는 순간, 아픈 존재 옆에 함께 누워 고요히 함께 앓는다.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우는' 시인의 울음은 울음인 줄도 모르게 나직나직하여서 어느새 숨결처럼 몸에 스민다. 함께 기쁘고 함께 아픈 자비(慈悲)의 마음이 문태준 시의 터전이니, 누군가 아프고 화자인 나는 술집에 왔다. 내가 함께 아프다. 술집에서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는데 베갯모에 '百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흔히 목숨 수(壽)자나 복 복(福)자를 수놓는 베갯모에 수놓아진 '百年'이라는 글씨에 시인의 시선이 멎고, 사랑의 약속인 '백년가약'이 당신의 와병 속에서 무량하게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는 '백년'이라는 말은 세속적이면서도 영원을 꿈꾸게 한다. 백년을 혼자 살 수는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백년을 살기는 힘드니, 유한한 존재의 안타까운 사랑의 열망이 '백년가약'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터. 시인이 가만히 열어 보여주는 백년의 비밀 속에는 백 겹의 시간이 출렁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당신의 '백년'은 어디에 있는가.

 

 

 

백년(百年)

                                                  문 태 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2009년 1월 14일 신새벽에 중랑천을 바라보며

 

                 詩를 사랑하는 山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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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15 08:11

    첫댓글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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