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다가 친근한 이름과 사진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에 복사하여 다시 올립니다.
영남일보/05.9.15. 21쪽 문화면
아동문학가 박인술
30대 후반 첫 동시집…뜨거운 가슴으로 활동
농사 만 짓다 14세때 겨우 입학, 왜 술 마시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익사위기 등 酒歷 60년 만큼이나 숱한 일화
지금은 아파트가 있는 수성못 근처를 산책하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지만 1960~70년대의 아동문학가 박인술의 행동반경에는 직장이 있는 달성공원 앞, 그리고 동성로, 남산동 일대의 술집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그는 호주가이자 애주가이다. 특히 초가장, 옥이집, 행복식당, 그리고 생맥주홀 가보세를 잊지 못한다
그의 삶은 그 곳에서 50여년을 마신 술과 함께 시작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공간에서 박인술은 대구아동문학회장, 이후문학회장, 노인문학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세모에 그는 호텔 아미고에서 이색적인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시선집 '날이 갈수록', 동시선집 '강남은 멀어', 수필집 '길은 멀기도 하여라' 등 세 권을 호화판 양장으로 동시에 출간해 향토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21년 선산에서 출생한 박인술은 교직에 40년 근무하다 정년퇴직 했지만 만학으로 출발했다. 중농이던 그의 부친은 장남 하나만 똑똑한 선비로 만들 요량으로 박인술은 아예 학교에 넣지 않고 농사일만 시켰다. 그러나 박인술은 학교가 소원이었다. 뒤늦은 14세에 입학하게 돼 교실에 가보니 앉을 자리가 없어서 쌀 한가마 판 돈으로 책상을 사 넣은 후에야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16세에 동갑인 부인과 결혼한 박인술은 일제 징병을 피해 39년 만주로 건너가 하얼빈에서 살았다. 그는 관동군 건설요원으로 징집되어 도로 건설공사 현장에 감독관 등의 일을 하다가 광복되자 거기서 번 돈을 다 써버리고 선양에서 '노소미'라는 급행열차를 타고 맨주먹으로 귀향한다. 이듬해 초등교원 채용시험에 합격, 경북 산동초등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뒤 원화여고에서 퇴직했다. 박인술은 강단에 서기 시작한 30대 후반에 아동문학에 뜻을 두었고, 이응창의 대구아동문학회 창립에 관여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동시집 '계절의 선물'을 65년에 발간했다.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묻지를 말게나/ 날마다 하늘이 낮아지고/ 자리가 비좁아서/ 높게 한 번 날아 보려고/ 술을 마시네/ 허무의 날개들이/ 허깨비처럼 떠도는 밤에/ 육지가 하늘같이/ 하늘이 육지같이/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마시고 있다네…위선이 위선을 팔아먹고/ 가짜가 진짜를/ 에누리 하는 거리에서/ 취중에 헛소리라도/ 말 같은 말이 그리워/ 마시는 거라네" 그의 시 '왜 술을 마시느냐고' 이다.
첫댓글 박인술 평전에 꼭 들어가야 할 일화로 생각됩니다. 김 박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