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 1
오 남매 딸 네 명, 맨 위로 오빠에게 시집온 올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양부모를 다 잃고 무남독녀 홀로 외로이 컸다. 내 올캐 김정순 비아...우리 오빠를 만나 결혼한 뒤 아들 딸 아들 삼남매를 낳아 고만고만 살더니, 마흔아홉 살에 뇌출혈로 황당하게 사별했다.. 평상시 별로 아프지도 않았던 오빠였는데 그렇게 기막히게 보내면서 울지도 못하고 빈소를 지키던 상복 입은 그녀의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러나 어찌 울지 않았을까? 내 오빠는 그저 허름한 주택 한 채 논 몇 마지기뿐, 재산도 남김없이 세상을 떠났다. 올케 홀로 삼남매를 억척으로 키우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땅에 묻은 오빠 묘지를 토끼 눈으로 다녀오곤 하더라고 근처 사시는 고모께서 말씀하셨다. 내 오빠는 나에게 생전, 특히 어린 시절 참으로 고맙고 착한 혈육이었다. 오빠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쳐서 올케에게 잘한다고 했지만, 수도자라는 핑계를 내세우고 이기적이며 무심하고 무정했다.
올케는 의지의 여인이었다. 내 오빠와 결혼할 때도 풍만한 몸매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함이 배어있었다. 생전 살도 빠지는 법이 없었고 돌이라도 씹으면 소화할 듯 건강해 보였으며 그래서 병하고는 친하지 않을 줄 알았다.
죽어라 고생하면서 키운 삼 남매가 짝을 찾아 결혼하고 손주 손녀들을 일곱이나 얻고 본인 입으로 “이제 조금 마음 허리 펴고 산다”라고 했다. 그런데 몹쓸 병마가 덮친 것이다. 참으로 가엽고 불쌍한 인생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암 초기라고 했는데 차라리 항암도 수술도 하지 말고 무시하고 지나쳤더라면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했을 것을, 어쩌면 병이 알아서 스스로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무사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별 이상한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당시는 누구도 무엇도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금도.
나는 올케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나도 암 선고를 받으면 살 만큼 살았으니 그냥 치료를 거부하고 통증이나 완화하면서 ‘자연사’ 하리라고 결심한다.
오랜만에 지인 베로니카와 길고 진한 전화 통화를 한 후 조카 딸(올케의 딸) 종미 마리아에게 전화했다. 췌장암 말기와 합병증으로 투병 중인 올케의 근황이 궁금해서였다. 췌장암은 깨끗해졌는데, 일 년 반 기간 동안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소화도 시키지 못하면서 밥을 두고도 굶기 일쑤인 올케는 미이라처럼 말랐다. 한 달 전 검진차 나왔을 때 마스크를 벗은 그 딱한 몰골을 보면서 나는 정말 무척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그 때는 자기 걸음으로 몇 걸음을 옮겼는데, 그 사이 이제 침대에 드러눕는 처지가 되었다. 오늘 안부로는 이제 자기 누운 자기 몸을 스스로 뒤척이지도 못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요양 병원에서 통합 간병을 받고 있다. 올케의 상태에 따라 나의 기도도 이랬다 저랬다 했다. 주님께 불쌍하니 오 년만 십년만 더 살려달라고 구걸을 드리다, 속수무책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 어차피 데려가실 거면 준비시켜 달라고 선종기도를 하다가....‘이 소식을 들으면 본인은 뭐라 할까?....혹시 펄쩍 뛸런지? 본인은 죽을 마음도 준비도 안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환자가 개인 간병을 원해서 신청은 했지만, 의료적인 대처 때문에 고민과 결심도 쉽지않고...개인 간병을 하면 간병비와 요양 병원비도 상당한 액수이다. 한창 살기 바쁜 조카들에게 상당히 버거운 액수이다. 괴로운 아픈 몸 아픈 마음, 큰 비용의 병원비 다 걱정이다. 환자도 삼남매도 괴롭고 외로운 고통의 섬에 버려진 듯 막막하고 참담한 마음이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 것은 제 엄마의 모정과 희생을 알기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조카들을 보면서 또 고맙고 안타깝고...주변에 큰 친척도 의논할 데도 기댈 곳도 없이 삼남매가 돌아가면서 시간을 내어 제 엄마를 보러가고 비용을 부담하고 낫지도 않고 더 심해져가는 제 엄마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고단할까? 마음이 아려왔다.
고모인 나.... 그저 성탄이 다가오니 “우리들의 예수님께 너의 엄마와 너희를 위해 특별히 더 기도할게”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더니 생전 힘든 기색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조카 종미 마리아가 수화기 너머로 울먹였다. 조카도 벌써 삼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타고난 성정이 원만하고 아픈 굴곡을 일찍부터 경험해서인지, 늘 성숙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던 이 친구의 모습에 당황하고, 혈육이라 더 마음이 먹먹하게 아프다. 그래 그런데 예수님 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이 처지가...‘괜찮다.’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고모인 내가 조금 더 시간과 마음을 내, 고마운 올케와 조카들에게 힘이 되어주면 된다. 우리 오빠와 결혼한 뒤, 성실하고 고맙게 살아온 올케언니에게 나는 진심으로 더운 감사를 간직하고 있다.
내일은 공동체에 말씀드려 조카를 찾아가 짜장면이라도 사주고 와야겠다. 힘내자고. 그리고 제 엄마 일을 의논도 하고.
성탄하실 예수님께 올케와 삼남매를 맡겨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