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사이(關西)지역 방문기
(전주한일고 행정실장 이봉희)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편히 쉬고 계시는 선친께서는 일제강점기에 징용당해 규슈(九州)탄광에서 2년 여 간을 탄가루를 마시며 갖은 고초를 겪다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여 구사일생으로 환향한 후 평생을 병고와 시름, 간난신고를 겪으며 자녀들 뒷바라지만 하시다 저세상으로 떠난 아픈 상처가 나의 뇌리 속에 남아있어 그간 일본 방문기회가 있었으나 생애에는 찾지 않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아왔으나,
뜻하지 않게 교장님 몫을 배려에 의하여 일본 관서광역연휴협의회 초청을 받아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땅을 찾았다.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고 인천공항에 8시까지 약속되어 새벽4시 리무진을 타기위해 3시25분쯤 코아에 도착하여 표를 구하니 월요일이라서 매진이 되어 5시발밖에 없다고 한다.
방심한 탓에 예매를 안했으니 이걸 어쩌나...
한 밤중에 버스를 타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해외여행객이 부쩍 늘어났음을 실감한다.
가슴이 철렁하여 후회해도 소용없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반갑게도 인천택시가 호객을 하고 있어 2명이 버스요금의 곱절이 넘는 값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여 10시 비행기에 올랐다.
60생을 헛되이 살았다는 자괴감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면서 미리미리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여 한 치의 오류가 없도록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하겠음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인공섬으로 조성된 오사카(大阪) 간사이국제공항에 12시경에 내리니 서울소재 서라벌고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해 정착하여 국위선양하며 돈벌이하고 있는 인품 좋은 건장한 체구의 박학다식한 40대 초반의 가이드의 안내로 따끈한 우동과 초밥으로 점심을 채우고 효고현(兵庫県)으로 달렸다.
1601년에 축성되어 전 세계에서 단하나 밖에 없는 일본최초로 지정된 세계문화유산, 국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5중7층의 히메지성(姬路)의 천수각을 2개의 목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정상까지 밟아보고 감탄하였다.
히메지성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 완성도의 성과 건축물이며, 목조성곽과 석조 성벽, 흰색 토벽(점토에 자갈을 섞어 쌀뜨물로 굳힌 기름벽)으로 긴 역사를 통해 한번도 전쟁과 화재를 겪지 않은 건축물이란다.
고베(神戶)에서 1박한 후 1995.1.17 대지진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건물을 파괴시킨 당시 피해상황을 재현시키고, 경각심을 주기위해 건립된 “사람과 방재 미래 센터”에서 대지진 재해의 경험과 교훈을 후세에 알리고, 재해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물자료와 영상을 관람하고, 우리나라도 지진발생의 경각심과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함을 실감하였다.
옛 일본의 수도(약1000년간)이며 역사와 전통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들 마음의 고향인 고도의 교토(京都)로 이동하여 연못가의 금벽목조건물인 금각사(金閣寺)를 구경하고 밤에는 교토 역 주변 빌딩과 역사 앞 7층높이의 육교와 광장을 산책하고 신비스러운 건축기술에 탄복하였다.
일본은 과연 독하고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대 낮의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고 도시가 썰렁하며 실업자가 별로 없는 것 같고, 나이에 상관없이 노는 사람이 없으며, 특히 문화유적지 안내원 또는 통행료 징수원과 명소나 명품 종사원은 고령(70세이상)인 분이 일하고 있으며,
길거리의 젊은이는 핸드폰이나 안경 착용하는 사람 별로 없으며, 야간 길거리는 가로등이나 네온사인 등이 없어 적막의 거리로 음침하다.
나는 어릴적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고 책 읽으며 살아왔기 현재의 시력이 밝은가 보다. 텔레비나 컴퓨터 문화가 우리나라 청소년의 시력을 보호하지 못하며 우리나라는 너무 밝게 살고 있다 낭비가 심하다. 자원을 아껴야 한다.
밤 8시만 되면 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고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일류호텔에서 4일간 각지에서 숙박했는데 실내 조명등이 밝지를 안했다.
도로폭은 4차선 이상은 없으며 인도는 우리나라 두배 정도 넓어 대부분 자전거로 활동하고 자가용은 많으나 집안에 정차하고 휴일에만 야외활동이나 필요시만 운행한다.
식사시 수저는 없으며 반찬은 본인이 먹을 양만큼 소량으로 음식물 쓰레기가 전혀 발생치 않고 남기지도 않아 낭비를 줄여 환경오염이 되지 않는다.
길거리의 담배 꽁치나 쓰레기는 없으며 등산객도 전혀 보지를 못했다.
상점의 간판은 겨우 눈여겨 보일정도로 조그맣게 걸었고, 플래카드는 없었다.
도심거리에는 우리나라 교회만큼이나 사원과 신사(神社)가 많아 일본인들의 정신수양과 도장으로 삼고 있다.
자연환경이 사면팔방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로 태풍과 지진이 빈번하여 불리한 지리적 여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국민들 모두가 몸에 베어있나 보다.
주택은 여러 도시 둘러봤으나 아파트는 별로 없으며 수십 년 지난 2층고가로 퇴색되지 않고 균열이나 파손되지 않은 기와지붕으로 아담하고 알뜰한 아주 적은 집이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큰 집이 없었다.
열을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지붕은 없으며 섬세하고 정교한 기와지붕으로 건물이나 주택에 페인트칠(도장)은 전혀 보질 못했다.
정말로 알뜰하고 근검절약하며 내실 있게 살아가는 민족으로 본받을 점이 너무 많다. 교토 변두리 농촌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교토subaru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는데 1985년도에 개교하였고, 회계과. 기획과. 정보과학과를 둔 실업계 직업전문학교로 교육목표가 강인한 정신과 신체단련으로 생기와 활기가 넘쳐 자기 힘으로 진로를 개척하고 체험학습으로 취업과 진학을 겸하고 있다.
컴퓨터수업 참관하였는데 40명 학생이 보조교사와 함께 학습분위기 진지하고 열정이 있었다. 수업시간 전에는 교사에게 실장의 구호로 전학생이 일어나서 “잘 부탁합니다, 종료시는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다.
학생들은 인사성이 밝고 친절하며 순박하다.
더욱 놀라움은 매일 청소시간이 50분으로 교사와 함께하며 한달에 1번씩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고,
교사용은 낡은 철제책상을 사용하고 있으나 학생책걸상은 신품으로 상판은 넓고 회전의자이며, 천정에 냉난방시설이 되어있고 교내외 구석구석이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었으며 시설관리가 수준급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자모회등은 구성되지 않고, 총학부모 모임인 P.T.A가 구성되어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하며 연간 회비는 6.000엔(오만원정도)이며, 임원회의를 2개월마다 개최하며 학교행사나 체육대회시 참관한다.
그리고 모든 학교운영은 학교장이 교직원과 협의하여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사카 근교에 위치한 명문 MAKINO 인문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교장님으로부터 현황을 청취하고 순회한바, 운동장은 넓으며 (약9천평정도-교장님은 협소하다고 함) 창립30주년이 되어 시설은 낡아 건물은 퇴색되고 녹슨 철제 캐비닛과 책상을 활용하고 있으나,
학생들의 90%가 적성에 맞는 소질을 기르고 다양한 클럽활동으로 예.체능(검도. 유도 .축구. 농구부 등)부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95%가 자전거로 통학하고 있으며, 보충수업은 1주일에 3시간이며 방학중 보충수업은 30%참가로 저조하며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취업학생은 없으며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오사카지방 24개학교중 3위수준이라고 자랑한다. 학생 스스로 개성을 살려 공부를 잘하고 있다.
일본동전 10엔 속에 새겨져 있는 우지(宇治)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재현하기위해 1000여년전에 지어진 뵤도인(平等院)절을 관람하고,
절 입구에서 전통 우지차 다도(茶道) 체험을 하고, 숲이 우거져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만병통치에 효험이 있다는 성령수 물이 있는 청수사(淸水寺)오르는 길목은 관광객이 붐비고 상점은 즐비하여 번화하고 혼잡스럽다.
일정에 없는 가이드 안배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지시에 의하여 전리품으로 베어간 가련한 선조님들의 이총(머리와 귀와 코 무덤)을 참배하니 숙연해지고 눈시울을 적셨다.
5세기경 백제시대에 王仁박사(전남영암군유적지)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해 문맹인 일본인들을 교육 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묘소를 참배하였고, 마침 당일 광주지역 후손들이 2억원을 모아 묘소를 정비하고 있어 자긍심과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교토의 사립명문인 同志社대학 화단내에는 일제강점기시절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서시) 읊었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와 순수한 우리말 詩, “향수”로 한국의 시단에 커다란 영양을 끼친 정지용(鄭芝溶)시인의 詩碑가 의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 흐뭇하였다.
기회가 주어지면 일본 땅 다시 한번 찾아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