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집 앞 건널목 앞에서 본 일이다. 너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제 어머니와 손을 잡고 신호등 옆에 서 있었다.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 어머니가 아이한테 이렇게 일렀다. “파란 불이 켜지면 엄마 따라서 빨리 걸어야 돼. 딴 데 쳐다보지 말고!” 그러자 아이가 우물쭈물 하면서 대꾸하는 말이 이랬다. “엄마느은, 파란 불 아닌데, 초록 불인데….” “뭐?” 아이 어머니는 잠깐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아이 말 뜻을 알아차리고는 픽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얼버무려 버렸다. “그게 그거야.” 그러나 어머니 말이 틀리고 아이 말이 맞다. 신호등에는 '푸른색'만 있지 '파란색'은 없다. 아이들은 처음에 파란색과 푸른색을 구별하다가도 이렇게 두 색깔을 뒤섞어 써 버리는 어른들 때문에 저도 몰래 그렇게 따라 간다.
푸른색은 풀색에서 온 말이다. 풀이나 대부분의 나뭇잎이 푸른색이다. 한자말로 하면 초록색이다. 파란색은 동해 바다색이고 가을 하늘색이다. 그런데 ‘푸른 하늘’이라 하거나 ‘파란 잔디밭’으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자말의 영향 때문이다. 한자인 ‘靑’을 ‘푸를 청’이라 새기고는 ‘청천 하늘’이라고 쓰기도 하고 ‘청산리 벽계수야…’로 쓰기도 하니, ‘청색’은 파란색도 되었다가 푸른색도 되었다. 이러니 헷갈린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다고 해야 우리 말을 바르게 쓴 것이다.
내가 받아 보고 있는 신문은 요즘 광고란에 날마다 전기압력밥솥 선전이 실려 있다. 새빨간색이라 눈에 얼른 띄는데 제품 설명란에 ‘색상명 / 적색, 아이보리’라 되어 있다.
붉은색 또는 빨간색을 적색이나 홍색이라 쓰고, 파란색을 청색, 보라색을 자색, 잿빛을 회색이라 하는 것도 모두 우리 말보다 한자말을 즐겨 쓰던 버릇 때문이리라.
색깔 이름을 한자말 이름으로 쓰다 보니 헷갈리는 것도 나온다. ‘감색’이란 말이 있다. 아이들에게 감색이 어떤 색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 감나무 열매인 감의 색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묻는다면, 먹는 감 색깔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랏빛이 도는 검푸른색, 곧 ‘반물색’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감색 운동화 한 켤레>라는 소설 제목도 있는데, 거기서 감색은 보랏빛이 도는 검푸른색을 뜻한다. 이렇게 ‘감색’이 어떤 색인지 헷갈리니, ‘곤색’, ‘감청색’, ‘진남색’이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곤색’은 일본말이다. ‘감(紺)’의 일본 발음이 ‘곤(こん)’이다. 정확한 우리 말로 하면 ‘반물색’인데, 예전에는 ‘반물 들인다’는 말을 많이 썼다. 검정색에 가까운 이 ‘반물’색은 ‘밤물’에서 나온 듯하다. 밤의 빛깔, 곧 검고도 푸르스름한 빛을 뜻한다.
그런데 이제는 ‘반물’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 말이 잊혀져 간다.
또, ‘소라색’이란 말도 더러 쓰는데, 이것도 일본말이다. ‘소라’가 일본말로 하늘이니, 우리 말로는 ‘하늘색’이다.
자연의 색깔을 닮은 우리말
‘아이보리’는 영어인데, 이 색은 흰색에 노란빛이 아주 옅게 도는 색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이보리라고 하지만 ‘아이버리’가 바른 표기이다. 아이버리는 코끼리 어금니(상아)란 뜻이다. ‘베이지색’이라는 말과 섞어 쓰기도 하는데, 베이지는 ‘낙타색’이다. 또 ‘미색’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미’는 쌀을 뜻한다. 그러니 쌀색이란 말인데, 이 말은 한자말이기도 하고 또, 쌀색이란 말이 그 색을 제대로 옮긴 말 같지도 않다.
아이버리색을 우리 말로 옮긴다면 ‘목련색’이 알맞지 않나 싶다. 목련을 보면 ‘아이버리색’이 틀림없다. 목련 중에는 자목련이라 해서 짙은 보랏빛 목련도 있지만 보통 목련이라고 하면 ‘백목련’을 가리킨다. 목련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한 달쯤 전에 신문에 통계 보고가 나기도 했다. 또 북한에서는 산목련을 함박꽃이라 해서 나라꽃으로 섬긴다 했다. 그 만큼 우리 겨레는 목련을 좋아한다.
그러니 색깔 이름에 ‘목련색’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개나리색, 진달래색, 수박색, 포도색, 밤색, 살구색…. 이렇게 꽃과 과일 빛에서 따온 색깔 이름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예쁜 여자의 얼굴을 묘사할 때는 으레 ‘복숭아빛 두 뺨’, ‘앵두 같은 입술’이란 표현을 써 왔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보고는 ‘능금처럼 붉어졌다’고도 했다. 이렇게 우리 말 색깔 이름은 늘 보는 풀과 나무 열매의 색깔에서 따온 것이 많지만 동물의 털빛에서 따온 것도 없지 않다. 병아리색, 비둘기색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옷이나 화장품뿐만 아니라 염색약,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까지 온갖 제품들의 색깔 이름을 보면, ‘화이트, 블랙, 그레이, 그린, 옐로우, 베이지, 레드, 블루, 핑크, 브라운, 카키, 멜란지그레이, 민트블루, 바이올렛, 스카이블루, 실버그레이, 골드브라운, 네이비….’ 온통 영어 이름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흰색이 쓰일 자리에 ‘백색’이 쓰이다가 어느 새 ‘화이트’가 그 자리를 점점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색깔 이름도 우리 말 이름이 주인 자리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꼴을 보니 깊은 한숨이 나온다.
글 | 신정숙(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글쓴이 신정숙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 말 연구소’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우리 말 살리기 운동을 해 오고 있다. 전집<달팽이과학동화> 40권,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등의 교정을 보았다. [기아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