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는 물보다 진한' 비단길 합창단 착복식
“오늘은 저희에게 정말 역사적인 날입니다. 몇년을 꿈꾸던 일이 드디어 이뤄졌어요.” ‘비단길 합창단’의 김베라(79) 단장은 새로 맞춘 한복을 입고, 눈물까지 살짝 내비쳤다.
비단길 합창단 한복 착복식
비단길 합창단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사는 고려인 합창단이다. 1937년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 17만5천여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 합창단원들은 당시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 2세, 3세들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는 광복절이 포함된 주의 토요일에 ‘한국문화의 날' 행사를 연다고 했다. 고려인 사회의 가장 큰 행사다.
창단 21돌을 맞은 비단길 합창단은 올해는 한복을 곱게 맞춰 입고 무대에 오르려고 몇 년을 준비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옷감도 없고 한복을 지을 사람도 없어서였다.
비단길 합창단 착복식 후 다과회(고려문화원)
다행히 예전부터 합창단을 지원하는 고려문화원(원장 김상욱)이 비용을 댄 것은 물론, 단원들의 몸 치수를 재어 한국에서 한복을 맞춘 뒤 선물한 것이다. 이날 합창단원들은 한국에서 막 도착한 한복을 고려문화원에서 처음 입고, 기념촬영을 하며 기뻐했다.
합창단 맏언니 김베라 단장은 “오늘은 한복을 입고 싶은 우리의 꿈을 이룬 역사적인 날입니다. 더욱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공연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축사 후 약소한 성금을 김베라 단장에게 전달(고려문화원)
우리 일행은 예정에도 없이 착복식 행사에 초대되었다. 행사장은 고려문화원(숙소 앞 건물)이었다. 오전에 가까운 시내관광을 마친 후, 12시 행사장에 도착하여 건물 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 한복을 갈아입은 후, 다과회 겸 축하연이 있었다.
한복을 기증한 김 사장 부부에게 답례로 목걸이를 선물했는데, 이를 김 사장이 부인에게 걸어주고 있다.
대부분이 5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여성이고, 남성은 3명뿐이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축사를 부탁받고 즉흥적으로 인사말을 했고, 김옥자 씨가 유창한 카자흐어와 한국어로 통역을 했다. 그리고 ‘착복식 행사’에 어울리게 축가를 부르자고 그들이 요청하였다.
곡목은 ‘한많은 대동강’을 다함께 소리 높여 불렀다. 그리고 앵콜로 ‘돌아와요 부산항’을 합창했다. 우리가 부산사람이며, 그들 합창단도 부산을 다녀갔다는 기념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비단길 합창단과 같이 부른 '한많은 대동강'과 '돌아와요 부산항'의 동영상
(오른쪽 하단 전체화면 보기를 누르면 큰 화면을 볼 수있습니다)
필자는 축사 말미에 머나먼 타국에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꽃피운 '비단길 합창단'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만세 삼창을 제안하여 다함께 목이 터지도록 만세 삼창을 했다.
필자가 그동안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들과 만나 보았으나, 이번 만큼 진한 동포애를 느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정착한 것은 1세기 미만이지만 동포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살면서 모국에서 온 동포를 보면 동포애를 느끼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 알마티의 명동거리
알마티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는 우리나라 대학로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차량통행은 금지하고, 거리 양쪽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하여 카자흐스탄의 자연과 문화, 역사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거리였다.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예술 수준이 높다. 알마티시에는 전문 예술학교가 많은 편이고, 어릴 때부터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훌륭한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알마티의 문화거리
거리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도 있고, 좌측에는 아주 오래된 고층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가 바로 ‘빅토르 초이(崔)’가 살았던 아파트라고 했다.
이 거리는 한때 ‘LG거리’라고 할 만큼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SAMSUNG Galaxy’ 광고판만 있었다. 알마티 시민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40% 정도는 한국 제품이라고 한다.
□ 빅토르 초이[崔] 동상 공원
빅토르 초이 동상
록 가수로 젊은이들의 우상, 빅토르 초이는 1962년 6월 21일 레닌그라드에서 아버지 로베르트 막시모비치 초이(한국명: 최동열)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막심 초이(한국명: 최승준)는함경북도 성진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때 러시아로 간 고려인이다.
빅토르 초이는 카자흐스탄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후, 17세 때부터 노래를 작곡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 정부는 록(Rock) 음악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록은 자본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젊은이들을 반항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 포기하고 보일러 수리공으로 일하면서 파티 등에서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곡의 가사는 당시 소련에서 삶을 은유한 것으로 공연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반항운동을 하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져 빅토르 초이는 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빅토르 초이에 대해 설명하는 김 사장
그러던 중 1990년 8월 15일 아침, 소련의 투쿰스에서 빅토르 초이가 운전하던 차가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하여 죽고 말았다. 음모론에 따르면, KGB가 의도적으로 빅토르 초이를 죽였다고 한다. 평소 반전과 평화 사상을 주장하던 초이가 러시아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난 것이다.
러시아에서 젊은이의 우상 빅토르 초이는 유년기 때만 알마티에서 살았다. 그런데, 빅토르 초이가 활동하다 죽은 러시아가 아닌 알마티 중심가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에 동상을 세웠다. 그것은 그가 ‘고려인’ 후손이라는 점과 유년기에 알마티에서 살았던 점을 감안하여 세운 것으로 짐작되었다.
□ 데니스 텐[丁] 동상 공원
데니스 텐 동상
1993년 알마티에서 태어난 데니스 텐은 대한제국 시절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강원도 원주) 선생의 후손이다. 그의 할머니 알렉산드라 김은 민긍호의 외손녀이므로, 데니스 텐은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가 된다. 그의 성씨 텐은 정(丁)씨를 러시아어에서 쓰는 키릴 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데니스 텐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한편 전문적인 피겨 지도를 받기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는 2006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카자흐스탄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2006년~2007년 시즌부터 카자흐스탄 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2008년 벨라루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골든 링크에서 우승하여, 카자흐스탄의 남성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처음 국제 스케이팅 연맹이 주관하는 경기에서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 한국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하여 5위에 올랐다.
데니스 텐의 연습장에 걸려 있는 헌화(텐의 사망 10년이 지났으나 알마티 시민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헌화하고 있다)
2009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8위에 올랐다. 2010년 한국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10위를 하였고,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해서 11위를 기록하였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알마티에서 열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피겨스케이팅 남자 프리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12년과 2013년 시즌에는 기량이 급성장하여,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며, 카자흐스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하였다.
2014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 카자흐스탄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 그리고 2015년 한국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2018년 7월 19일, 한국계 카자흐스탄의 ‘피겨 영웅’ 데니스 텐(25)이 연습 후 세워 둔 차에서 자고 있을 때, 괴한 두 명이 차량 백미러를 훔치는 것을 보고 난투극을 하던 중에 괴한의 흉기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사고 현장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 연습장 옆 도로였는데, 흉기에 찔려 다리의 동맥이 절단되어 쓰러져 있었으나, 구조하는 사람이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데니스 텐에 대해 열강하는 김 사장
데니스 텐은 다섯 살 때 피겨스케이팅 불모지 카자흐스탄에서 어머니의 권유로 피겨를 시작했다. 그러나 환경이 열악하고 주변에 실내 아이스링크가 없어 야외에서 훈련을 했다. 더욱 쇼핑몰에 있는 작은 링크를 전전하며 기량을 다듬었고, 열 살 때 러시아로 떠나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때 두각을 나타내자, 그는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엘리트 코스를 밟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8년 평창올림픽이 열린 해에 꽃다운 나이 25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 알마티 지하철 시승
알마티 지하철 비단길 역 입구
카자흐스탄에 정착 25년째인 김 사장 부부는 여러 날을 같이 다니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서 한국의 현대 로템과 현대 엘리베이터에서 시공한 지하철을 시승하고 싶다고 했다. 승차 구간은 ‘비단길 역’에서 ‘모스크바 역’까지로 결정하였다.
승강장으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트
그런데 비단길 역 입구로 들어가자 차단기가 가로막았다. 아니! 반대 방향인가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공산군 복장의 사람이 바구니를 들고 와서 소지품을 전부 바구니에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소지품 검색 후, 차단기가 열렸다. 우리나라처럼 차량 문이 닫히는 직전까지 뛰어가서 타는 경우와 비고하면 참으로 느긋한 국민성이 부럽기도 했다.
승차 장면
그로부터 깊숙한 지하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벽면이나 바닥은 모두 고급스런 천연대리석으로 장식되었고, 에스컬레이터도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였다. 지상에서 승강장까지의 길이는 우리나라 지하철에 비해 두 배나 길고 깊었다.
대리석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지하 보행로
차안으로 들어가자 차량의 구조는 물론, 의자나 문, 손잡이 등도 고급스러웠다. 차량에 공급하는 전력선도 차량 지붕에 막대기로 외부 전력과 연결하지 않고, 선로를 통해 공급하는 시스템이었다. 국민소득이나 기술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졌음에도 이처럼 부러울 정도의 투자는 이 나라가 자원부국이기 때문은 이닐까라고 짐작되었다.
그리고 차 안에는 ‘현대 로템’이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 이를 보는 순간 한국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세 번째 역인 모스크바 역에서 지상으로 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차를 탔다.
□ 빅알마티 호수
빅알마티 호수로 가는 매표소
알마티 시민의 식수원인 '빅알마티 호수'는 2,650m의 알마아리산 정상에 있다. 시내에서 40분 정도 거리의 매표소에는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확인 결과 호수까지 가는 길은 워낙 가파르고, 노폭이 좁아 대형차는 교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매표소와 정상간에는 도로 상황을 분석하여 운행이 가능한 정도의 차량만 출입시킨다고 했다. 만약 이 정보가 잘못되면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절벽 위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구절양장(九折羊腸)과 대형 송수관
2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매표소를 통과하였다. 그때부터 식은 땀이 날 정도의 꼬부랑 길을 기어가듯 오르기 시작했다. 비포장의 도로는 오뉴월 땡별에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같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토록 꼬부랑 길에 반사경이 하나도 없었다.
내려다 보면 천길 낭떠러지이고, 위쪽은 하늘에 닿는 듯 했다. 그런데도 세르게이 기사는 커브를 돌때마다 경적을 울리면서 엉금엉금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빅알마티 호수를 배경으로
매표소로부터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지름1.5m 정도의 큰 파이프는 빅알마티 호수의 1급수를 시내까지 연결하여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송수관이었다. 정수기만 믿고 낙동강의 물로 살아가는 부산시민을 생각할 때 꿈과 같은 일이었다. 정상에는 새파란 물이 가득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면적은 백두산 천지보다는 작았으나 주변 경관은 스위스의 알프스에 뒤지지 않다고 했다.
호수까지 오르는 도로를 개발하지 않는 것은 호수의 오염을 방지하려는 고육책으로 생각되었다. 도로를 넓히고 포장을 하면 수많은 차량과 인파로 인해 순식간에 호수를 오염시킬 것이다. 그리고 겨울에는 도로의 결빙으로 차량 출입을 금지한다고 했다. 반면 겨울 등반 애호가들이 성시를 이룬다고 했다.
독수리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1만원)
□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공원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공원
이 공원의 명칭은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공원(First President Park)’이다. 그 이유는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2019년까지 집권한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는 장기 집권했음에도 국민으로부터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카자흐스탄을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더욱 나자르바예프 전임 대통령은 생존해 있다.
현존하는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동상
공원은 거목으로 둘러싸인 수만 평의 면적에 분수대, 전망대 등을 만들고 뒤쪽으로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잘 볼수 있는 곳으로 알마티에서는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고 했다.
넓직한 도로에 둘러싸인 공원은 결혼 커플들의 기념사진 촬영과 아침저녁으로는 알마티 시민의 산책코스로 인기가 있고, 특히 석양이 아름답다고 한다.
공원방문 기념 'LOVE 2019'
그동안 육류만 먹은 탓으로 오늘 저녁은 숙소로 가서 부산에서 갖고 온 재료로 입맛을 돋우려고 했다. 워낙 준비를 많이 한 탓으로 정리도 할 겸, 김 사장 내외, 최이라 양 함께 오랫만에 한국 음식과 카자흐스탄 맥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다.
김 사장에게는 내일 아침, 숙소에서 모든 짐을 차에 싣고 알마티 시내에서 쇼핑을 한 다음, 오후 늦게 공항으로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박 게르만 씨 부부와 작별 인사
다음날 아침 10시 숙소를 나와 박 게르만 씨 부부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동안 날만 새면 남새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탓으로 박 게르만 씨는 잡은 손을 꼭 잡고 놓을 줄 몰랐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옛말에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느낀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낯시간에는 쇼핑 겸 가까운 시내를 돌아본 후 오후 8시 무렵 알마티 공항으로 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붐비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다만 인천으로 가는 창구에만 한국인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그리고 밤 10시30분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열흘간의 카자흐스탄 여행을 더듬어 봤다. 아직까지 '자본주의 문화'에 물들지 않은 탓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와 눈빛, 서둘지 않는 여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라는 생각에 필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며 사람끼리 부대끼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어설픈 결론을 내리는 동안 비행기는 알마티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인천으로 향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