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퇴근길에..
집에 가다가 출출하기도 하고 집에가서 차려먹기도 귀찮기도 해서 떡볶이나 간단하게 먹고 가자는 심산에 가게에 잠깐 들렸죠.
가게로 가서 오뎅을 하나 집어서 먹고있는데 뒤쪽에 어느 조그만 남자아이가 서성이더군요. 저를 비롯 남들 떡볶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처럼 계속 서성거리고 있고.. 아이는 날도 차가운데 긴팔 힌색 T셔츠에 얇은 바지. 입고있는 점퍼도 추워보이는 그런 점퍼. 조금 허름하고 때가 타서 어설퍼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서..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그런가 싶어 오뎅을 한개 다먹고 그 아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꼬맹아. 아저씨가 떡볶이 먹으려는데 너무 많은거 같아서 그런데 나랑 같이 먹을까?" 아이는 주춤 주춤 하더니 제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놀이터에서 놀다 왔는지.. 얼굴엔 먼지가 가득 묻어있고 누가봐도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아니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요기 가게에서 떡볶이만 같이 먹자~" 그랬더니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더군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밖에서 오뎅만 먹고 가려고 했는데 아이 때문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떡복이를 2인분 시키고 만두까지 2천원어치 넣어서 먹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선뜻 먹지를 않더라구요.
"왜 맛이없어?"했더니.. 작은 목소리로 "동생..." 처음으로 말문을 열더군요. 그래서 "그럼 동생이랑 같이 먹자"며 찿으러 갔습니다. 동생은 떡볶이집 뒤에 있는 주차장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놀고 있더군요. 여동생이였습니다. 뒤로 양날개 머리를 하고 두꺼비집인지 뭔지를 흙하고 모래랑 돌맹이를 가지고 놀고있더라구요.
"은영아, 떡볶이 먹자"라고 아이가 외쳤습니다. 그 아이는 가득이나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면서 달려오더군요. 가게로 다시 돌아가 순대까지 넣고 셋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아이 이름은 영진 7살, 동생 이름은 은영 5살이더군요. 배가 많이 고팠는지 맵고 뜨거운 떡볶이를 잘도 먹더라구요. 천천히 먹으라고..모자라면 더 시키면 된다고 타이르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홍제동으로 이사온지는 1년이 조금 지났다고.. "부모님은 어디 가셨나봐?" 라고 물었습니다. "돌아가셨어요" 말이 꽉 막혔습니다. 그전까진 산본역에서 살았는데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두분 다 돌아가시고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이렇게 넷이 살고 있다고..
저 나이에 죽는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안쓰럽고 애처롭더라구요. 애써 밝게 웃으려는 아이들을 보면서매우 가슴이 아파오는건 왜일까요.. 사는 곳은 뒤에 연립에서 살고 있다더군요.
예전 동사무소 아르바이트 할 때 심부름차 그 연립에 가본게 기억납니다. 귀신 나올꺼 같이 전등은 복도에는 하나도 안들어오고 빛도 안비치는 어두컴컴한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곳에서 살고있다니..
하물며 이렇게 밝고 귀여운 아이들을 두고 떠나신 부모님들은 저 먼..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비통하고 애잔하게 힘든 나날을 저 어린것들을 쳐다보고 계실까.. 눈물이 왈칵 나오려고 하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리어카를 끌고 나가셨다고.. 종이를 수거하러 가셨다고.
불쌍하더군요, 아직 부모님 곁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신나게 뛰어 놀 나이에.. 저녁 한 끼 해결하지 못해 밖에서 전전긍긍 하고 있는 아이들이.. 술 한잔에 몇만원씩 쓰며 스트레스를 풀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단 돈 만원이면 이 아이들의 가족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을터인데..
그렇게 아이와 함께 떡볶이를 먹고 지하철 옆 마트로 데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드실 오렌지 쥬스까지 사서 아이들에게 안겨줬습니다.
한사코 괜찮다며 우기던 아이를 끌다시피 데리고 마트로 들어갔네요. "너희들이 저알 착하고 귀여워서 아저씨가 주는거야. 할아버지 말씀 잘듣고.." 라고 말하자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기를 시작하더군요. 어린 여동생은 상황파악이 안되다가 오빠가 울기 시작하니 따라서 울고..
아이들이 사는 연립 집 앞에서 제 명함을 건네면서 뒷면에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거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이렇게 전화를 하면 아저씨랑 꽁짜로 통화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언제나 먹고 싶은거 있으면 연락하라고..아저씨도 너희들이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어린 마음의 상처가 큰 아이들이 저에게 선뜻 전화를 할지 의문입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다시 들려 쌀 20Kg짜리 한 포대 사서 아이집으로 배달을 해주었습니다. 나도 자취를 하는지라 갑작스럽게 많은 돈이 지출 된 듯 싶지만 후회는 되지가 않더군요.
앞으로 술 생각 나거나 쓸대없이 지출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씩 보내야겠습니다.
"영진아 은영아. 너희들이 이 글을 보게 될 일은 없지만 항상 그때처럼 밝고 해맑은 웃음 간직하길 바래. 아저씨가 너희에게 많은 힘이 될 지 모르지만 항상 응원할께,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랑한다 꼬맹이들.!
세상이 밝고 좀 더 따뜻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어느 청년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