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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모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묵리촌장
태백산맥 의 고장 벌교(筏橋) 를 찾야서 소설"태백산맥" 소설"태백산맥" 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 자락에 자리잡은 현부자네 제각 부근에서 부터 시작하여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가을 어느날까지 우리민족이 겪었던 아픈과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식인 출신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하대치 ,최의하는 지식인 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는 선택과 실천을 강요 당하는 김범우, 이성적인 국군장교 심재모, 우익 청년단장 염상구, 손승호, 서민영, 안창민, 소화와 외서댁,들몰댁, 등 그들이 엮어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태백 산맥이란 거대한 베로 짜여진 것입니다, 그 베는 민중의 나날의 삶과 역사가 되어 완벽하게 조화 되고 호응하여 일치 한다는 이시대 내고향 최고 작가 조정래 씨 (고향선배)의 한국의 100년사에 50대 사건중 대표 작입니다,
작가 조정래 씨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대처승 의 아들로 태어나 광주 서중학교 와 서울 보성 고등학교,동국대학교 국문과 를 졸업 1970 년(<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전설> <20년을 비가내리는 땅><황토> <恨 , 그 그늘의자리>, 중편집으로는 <유형의 땅>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 대하소설 (太白山脈) (아리랑) (한강) 출간, (현대 문학상, )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수상 현제 동국 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하고 있으며 경기도 분당에 살고 있습니다, 이시대 내고향 벌교 에는 백두대간의 염원을 기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건립하여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테마 여행으로 이곳을 찾고 역사속의 6,25 전후 여순반란 (피뿌림)의 통한 을 간직한 소설속의 현장을 챶야 오고 있어 문학관 을 건립 하였답니다 ( 벌교 뻐스터미널 에서 도보로 10분거리) ~ 현부자 집 ~ 중도 들녘 이 질편하게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 입니다 이집의 대문과 안채 를 보면 한옥 을 기본 틀로 하고 곳곳에 일본식 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 의 건물 ,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흥미로운 건물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분위기 있는 찻집과 식당(레스토랑) 이 있으며... 전국에서 많은 테마 관광객들이 인근 순천만 과 낙안 민속마을 을 거처 카메라 앵글 과함께...
매년 10월 남도 음식축제가 열리는 축제에는 전국에서 (일본, 대만,등) 식도락 가들의 열기로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내 최대 음식 축제 가 열린답니다~ ( 매년 참관) 인위적인 민속촌이 아닌 300년 역사가 이어져오는 (임경업 장군 격전지) 자연마을 낙안민속 마을은 남도의 대표적이 민속촌으로 실제로 주민이 주민등록 소지 거주하며 방송사 사극 촬영장소 로 생동감 있는 오리지널 민속 마을입니다
겨울여행을 며느리(지혜) 와 아들(민기) 과 함께 1박 2일 고향 나드리 를 하면서 추억을 쌓았습니다 순천만 (갯벌과 갈대 천둥오리등 희귀어종(짱뚱어와 망둥어, 전어, 게 등) 에서 갈대숲(숨어우는 바람 소리 하모연주) 에서의 상쾌함과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 문학관 소설배경 주인공들의 현장(철다리, 홍교, 중도방죽, 주릿대,소화다리,현부자집, 소화의집,외서댁집등) 을 누비면서 주인공이 된 기분였습니다,
어릴적 함께 몇차레 다녀갔던 아들녀석은 이제 성인이 되어 짝을 이루었고......
등산길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아버님(춘광 장 춘식) 의 공덕비가 있는곳에서 가족과 상면하여...
러시아 에서 돌아온 막내 (장황호 47세) 가 국가의 부름으로 영예롭게 이사관 (2급) 으로 승진 2012년 역사적인 세계해양 박람회 가 개최 되는 28대 여수 해양청장 에 취임식을 마치고 달려온 막내 아들과 손을 마주잡고 , 부(95세) 자(47세) 간의 정을 느끼면서.....
지역 어른 들의 축하 프랑카드 앞에서 아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 찰각!! 모처럼 오렌만에 나선 가족 겨울나들이였답니다 ~ 소설속 벌 교 는........ 벌교는 보성군과 화순읍을 포함한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 였습니다,그리고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 , 보성 을 잇는 삼거리 역활을 담당했던 교통의 요충지 이기도 합니다 철교 아래 선착장에는 밀물을 타고 들어오는 일인(日本人) 들의 통통배 가 득실거렸고 상주하는 일인들도 같은 규모의 읍에 비해훨신 많 았다고 합니다.그만큼 왜색이 짙었고 읍 단위에 어울리지 않게 주재소 아닌 경찰서 가 세워져 있었 답니다, 읍내는 자연스럽게 상업이 터를 잡게 되었고 돈의 활기 를 쫏아 유입인구가 늘어 나면서 모든교통 요지가 그러 하듯히 벌교 에도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나고 그래서 언제 부턴가 벌교 가서 돈자랑 주먹자랑 하지말라, 말이 순천에서는 인물자랑말라, 여수가서 멋자랑 하지 말라. 는 말 과 어께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 태백산맥 1권,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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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년 2월 고향방문할때 아버님과 막내( 장황호 47세, 해양청장) 와 며느리, 아들(32세) 함께 반가운 해후'"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