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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비서관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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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를 관장하는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이 주문합니다. “평소 양 비서관 글이 상당히 세니까, ‘청와대 사람들’ 코너에 첫 글만큼은 좀 부드럽고 재미있게 쓰시죠.”
고민을 하다가 대통령의 참모들, 그 중에서도 비서관들의 청와대 생활에 대해 소개를 하기로 했습니다.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일상을 소개하는 것도 청와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청와대(엄밀히 말해서 ‘청와대’는 정식 명칭은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머무는 공간적 개념과,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합친 행정적 개념의 대통령실이 합쳐져 통칭 청와대로 불리는 것입니다)의 비서라인은 실장-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으로 이어집니다.
이전 정부까지는 통상 수석비서관 이상이 ‘대통령의 참모’ 개념으로 분류됐을 겁니다. 비서관들조차도 재임 중 대통령 얼굴 한 번 못 보고 청와대 생활을 마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는 시스템에 의해, 행정관부터 비서실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실명(實名)으로 정책과 의견을 대통령께 올리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기회 닿는 대로 안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직접 만나고 하시기 때문에 행정관 이상이면 광의의 개념에서 참모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청와대 참모라인의 딱 중간에 있고 비서실 업무의 기본편제가 비서관실 중심이기 때문에, 비서관들의 일상을 보면 청와대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재 청와대 비서관 숫자는 40명대입니다.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분(일반직)들과 법조계 학계 언론계 정치권 등 민간에서 발탁된 분(별정직)들이 각각 반 정도 됩니다.
직급으로 보면 비서관들은 대개 1급 아니면 2급입니다. 일선 부처로 따지면 (장·차관 빼고) 일반 공무원이 일반적으로 승진해서 올라갈 수 있는 맨 윗자리인 셈입니다.
그러나 ‘국방부에 가면 발에 차이는 게 별’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대통령을 모시는 청와대 안에서 비서관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지는 않습니다. 가끔 밖에서 만난 분들과 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 “차를 먼저 불러 가라”고 하면 당황됩니다. 부속실장 의전비서관 대변인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비서관들에게는 별도의 차량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적지 않은 비서관들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노선에 거금의 교통비를 깔고 다니고 있습니다.
비서관들의 업무공간은 통상 두 세평입니다. 역시 부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습니다. 같은 방 행정관들 전체와 회의를 하기에도 빠듯합니다. 비서실 건물이 60년대, 70년대 초반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공간이 협소합니다. 최근 건물 한 동이 새로 들어서기는 했습니다만, 밖에 나가 있던 민정수석실 등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서관들의 평균 연령은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40대 후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무원 정년이 1년 조금 넘게 남은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가장 대선배입니다. 저와 김만수 대변인,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등이 가장 막내였는데, 지금은 최인호 부대변인 등 두 사람이 최연소가 되면서 겨우 막내를 면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전 청와대 비서관들보다 젊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출범 초에 유인태 당시 수석이 수석실 비서관들과 첫 회의를 하기 위해 처음 모인 자리에서 면면을 둘러보더니 “다 애들이구만”이라고 했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
급여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같은 급수라 하더라도 일반직과 별정직에 좀 차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무원 급여가 호봉에서 좌우되기 때문에, 민간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별정직 비서관들 상당수가 연봉계약제의 하한선을 겨우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분들이 많다 보니 활동비는 크게 부족합니다. 비서관실 한 방에 비서관 1명과 행정관·행정요원 합쳐서 많으면 20명 안팎이고, 적어도 5~6명인데 방 전체의 한 달 업무추진카드 상한액이 1백만원입니다. 법인카드를 주로 비서관이 사용하다 보니 비서관 본인은 물론 특히 행정관들의 경우 공적인 일로 사람을 만나도 자기 돈을 써가며 밥 사고 술사고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렇듯 빠듯하다고 해서 불평하는 비서관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생활인으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청와대에 온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비서관들은 통상 오전 7시 안팎에 출근합니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안영배 국내언론비서관은 매일 새벽 5시 이전에 업무를 시작합니다. 퇴근시간은 7시나 8시 안팎이지만 곧바로 집에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업무상 보자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녁시간도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대변인 부속실장 국정상황실장 총무비서관 민정비서관 NSC위기관리센터장 등은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출근하는 분들입니다. 나머지 비서관들도 주5일제의 이틀 휴일을 다 쉬지는 못합니다.
비서관들에게 가장 큰 피로는 회의입니다. 하루 평균 대여섯번의 회의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각 수석실 선임비서관들은 그 보다 회의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날은 차분히 앉아서 보고서를 검토하거나 작성하기는커녕 걸려오는 전화를 10통 이상 받기도 어려운 날이 허다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회의를 모두 끝내고 저녁 때 자리에 돌아왔을 때 부재중 전화가 20~30통, 음성이나 문자메시지가 10개 이상, 전화 메모가 10개 이상 쌓여 있는 날이 많습니다. 일일이 콜백할 엄두를 못 냅니다. 휴일 날 나와서 출처가 분명한 전화에 한해 며칠 늦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곤 합니다. 저보다 바쁜 비서관들은 고충이 더 심할 겁니다.
한 비서관이 행정관의 보고내용을 가볍게 처리했다고 해서 의혹의 시선을 받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내부 메카니즘을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어떤 비서관에게든 그런 일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전 청와대에 근무했던 분들 얘기로는 지금 청와대가 과거보다 일이 훨씬 늘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더 큰 긴장요인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허투루 사람을 만났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민원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한 번 만나기만 했는데도 혹여 주요 사건의 의혹 대상자로 연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유사한 봉변사례가 있기 때문에, 청와대 사람들은 외부 약속을 잡을 때 동석하는 사람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 역시 조심한다고 하지만 예정에 없던 분이 약속자리에 나와 있으면 그냥 돌아 나오기도 어렵고 대단히 난감합니다. 가급적 외부 약속을 피하려고 하지만 사양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서너번 사양하면 “청와대 있다고 너무 폼 잡는다”고 오해하기 마련이어서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친인척이나 아는 분들의 사소한 부탁이나 민원도 매정하게 끊는 것이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편하게 술 먹는 자리는 내부‘관계자’들끼리의 만남입니다. 먹어도 더 먹게 됩니다.
요새 만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청와대 그만 둔 다음에 뭘 할 것이냐”는 질문입니다. 부처에서 나오신 분들은 복귀하면 되고, 법조계나 학계 분들은 다시 변호사나 교수로 돌아가면 되지만 언론계나 정치권 출신 등은 돌아갈 곳이 없으니 궁금한 모양입니다.
청와대도 옛날 같지 않아서, 그만 둔 다음에 어떤 자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입니다. 기대할 시대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디 좋은 자리 마련돼 있느냐”는 질문과“출마하느냐”는 질문이 가장 피곤합니다.
하지만 지금 개인의 미래문제를 걱정하는 비서관은 단 한명도 없다고 자부합니다. 틀에 박힌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장래를 걱정할 여유가 없습니다. 있다 치더라도 대통령을 모시는 입장에서 본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다른 행정관들과 마찬가지로 1년에 두 번 냉정한 평가를 받습니다. 위, 아래로부터 모두 크로스체크를 받는 셈입니다.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평가 때가 되면 평소 성질 죽이고 주변에 잘 하려 애쓰곤 합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역사의 평가입니다. 개인에 대한 평가는 어찌 돼도 상관없지만 ‘노무현 시대’에 대한 역사의 평가에 대해 자유로운 참모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힘든 환경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도 감내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대가 아닌 역사의 평가에 대한 시대적 중압감 때문입니다.
첫댓글 아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 그나저나 양정철 비서관님의 센스란.. ㅎㅎ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노선에 거금의 교통비를 깔고 다니고 있습니다. -> 여기서 엄청 웃었어요. 이제 임기도 100여일 밖에 안남았네요.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정말 바쁜 곳이네요 .. 참여정부 참모들의 돈지갑이 말랐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 요것도 대통령 스타일 따라간다고 하더라구요 ~ 마지막 까지 힘내주세요 ^^ 화이팅 !!
우와~~진짜 대단한 곳이네요...그래도 역사의 한곳에 계신분들이니 남다른 사명감이 있으실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