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夫는 저녁밥 먹고, 7시반쯤 잠에 들면 아침 8시에 깬다.
12시간을 내처 자는 것이다. 중간에 두 번쯤 화장실에 가는 눈치이다.
아침 식사는 보통 약먹는 것 까지 합쳐 9시 15분쯤에 끝난다.
그 때부터 12시 반까지 또 잠을 잔다. 합쳐서 몇시간이 되려나?
열 다섯 시간이 넘는다.
아침 설거지 끝내고 3시간이면 나는 점심 때 까지 시간이 넉넉하다.
커피 마시고, 신문 읽고, 대충 청소기 돌리고, 점심 준비하고...
그리고 잠자는 노인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저 잠의 내용이 뭘까? 육신이 힘들어서 지친 휴식인가?
무호흡증이라도 있는가? 수면이 아니라 가면상태에서
어떤 딴 세상을 유영하고 있는 걸까? 도무지 궁금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호흡도 고르고, 지극히 평화스럽다.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올 때 묻는다.
"당신, 꿈같은 거 꿔요?"
"별로..."
한달도 아니고 두달도 아니고. 수년을 주야장창 잠을 자는데
꿈을 전혀 꾸지 않는 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삶에서 소망을 갖고 있지 않으니 무의식에서도 꿈이 없어지는 걸까?
"깨어 있을 때 그야말로 주야장창 티비 보고있는데, 잘 때 그 것도 안 보여?"
"응..."
뇌에서 아주 생각하는 부분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편해서 좋겠수. 그래서 얼굴이 그리 어린아이 같아지나?"
그런데 엊그제 토요일이다.
kbs 주말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딸"을 내가 보고있는데
같이 보고 있던 남편이 "저 노래 좋네~" 하는 것이다.
주제가인 등려군의 야래향을 가수 주현미가 우리말 가사를 써서 부르고 있다.
" 참 노래 좋다" 거듭 말한다. 곡이 좋다는 것인지 노랫말이 좋다는 것인지
하여튼 그 "좋다"라는 말이 반갑고 듣기 "좋았다".
어제 교회에서 돌아와. 유투부를 검색하여 주현미의 야래향을 찾았다.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부지런히 적는다. 노래도 따라 부른다.
남편에게 불러주려고 연습을 하는데 그럴러면 가사를 외어서 근사하게
표정도 지어가며 부르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가사를 외는데
자주 헷갈리고 잘 외어지지 않는다. 나이 먹은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이절까지 줄줄 노래부르며 다 외 버렸다.
요양사가 1시반에 와서 4시반에 가니
남편의 잠 타임은 오후 1시에서는 멈춘다. 그녀가 오지 않는 일요일에도
수면 서클이 1시반부터 5시까지는 작동을 하지 않는다.
오후 2시. 남편이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아 있다.
"당신 노래불러줄까?" "무슨 노래?" "당신이 주현미 노래 좋다고 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무대위의 가수처럼 손을 맞잡기도 하고 한손으로 제스츄어도 쓰면서
노래를 불렀다.
1) 꿈처럼 아름답던 날, 그날에 날 담아보네,
언제나 내맘속에 그림처럼 숨쉬는 꽃잎의 향기 같아~
언젠간 잊혀지겠지? 그런게 인생인걸
아련한 기억속에 묻어둔 詩처럼, 자꾸만 흐려져가네~
후렴.
2) 가만히 뒤돌아보니. 우리가 걷던 그길엔
꽃잎은 피고지고, 계절은 또 바뀌고, 또 내모습도 바뀌는데
되돌아갈 순 없겠지? 그런게 인생인걸!
지금 난 행복하네. 꿈꿔오던 향기가 내 앞에 춤을 추네
후렴: 예라이샹 바람에 실려. 예라이샹 꽃잎에 담아
아, 아, 아, 갈수 있겠지, 꿈결같은 그 때로...
남편이 듣는지 마는지는 상관없이 내 스스로 빠져들어,
내가 가사에 취해버려. 두번 세번 불렀다.
6시 저녁밥을 남편이 꿀 같이 먹는다.
아이들 기를 때 맛있게 먹는 애들을 보면 내가 안먹어도 배가 불렀지.
남편이 아니라, 병든 자식이다. 성치 않아서 더 애가 타는 아픈 손가락이다.
"노래, 한자락 더 불러드리리까?"
"됐어. 됐어. 그만..."
어제 일요일, 우리집의 하루였다.
첫댓글 요새 미스트롯 이후 트로트가 인기인데 주현미의 가창력과 음색은 단연 탑이에요
가사도 읽어보니 아름답네요
노래 가사를 보니 엄마의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수십번을 듣고들은 엄마의 이야기.
똑같은 이야기 듣는게 지루하기도했는데
이야기하던 엄마의 꿈꾸는 듯했던 표정이
눈에 선하고도 그립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신듯 했던 표정......
이젠
엄마의 이야기도,
그 이야길 듣던 나도
모두 '바람에 실려 꿈결처럼 사라진'
지난 날 되어
혼곤한 봄날처럼 아득합니다.....!!!
고모부에게 한대목 한대목을 천천히 불러주고
어디가 좋았냐고 물으니 "갈수 있겠지? 꿈결 같던 그 때로..." 라고 말하네~
건강하고, 돈벌어다 주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지 않냐고 말해줬어.
책임도 없고, 하기 싫은 거 해야하는 그런 의무도 없고
그냥 삼시세끼 먹고, 두발 뻗고 자면 되니 얼마나 좋은 시절이냐고?
나는 옛날로 돌아가는 것, 절대 사절이라고...
그랬더니 웃더라.
평화로운 일상 이네요~ ^^
푹 잘 주무시고 맛나게드시고
어린아이 처럼 천진해지신 고모부
마음 비우시고 사랑 하시고
좋다는 말씀한마디에 노래검색하여
연습해서 노래 불러드리고
가끔은 춤도^^
부럽네요~
나중에 혼자남으셨을때
지금 이시절이 제일 생각나실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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