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이 가끔 제게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러 올 때가 있습니다. 지교회를 운영하다보면 어려움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는 먼저 이렇게 그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돈을 주랴, 아니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주랴?” 그러면 그들의 대부분은 후자를 택합니다. 당연하지요, 천상천하에 예수 이름보다 좋은 것이 없거든요. 왜요? 예수 이름은 곧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인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마1:21).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17:11). 즉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 곧 ‘예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이 곧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조선시대에 암행어사라는 관리가 있었음을 다 아실 것입니다. 암행어사가 왜 권세가 있었습니까? 이는 왕의 이름으로 왕의 권세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민 마패가 왕이 보냈음을, 왕의 권세를 지녔음을 입증했기에 지방 관리들이 암행어사를 보면 납작 엎드렸던 것입니다.
제가 행정목사를 기도원에 보냈다고 합시다. 그가 가서 이런저런 것을 지시하면 그들은 행정목사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내 이름을 가지고 갔기 때문입니다.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권세를 예수께 주시고(마28:18)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예수 이름의 권세가 큰 것입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물려준 것이 이성계라는 이름이 아니라 왕(王)이라는 이름을 물려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이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그런데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셨고, 그 이름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14:26).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이름도 예수인 것입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권세가 나타납니다. 왜요?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속에 오셨기에 그 예수의 권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그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집사들이 나가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 없었던 사두개인과 대제사장,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그래서 이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와 바울을 옥에 가둔 것입니다.
본문인 사도행전 4장 16절을 봅시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분명히 ‘유명한 표적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행3:1~10).
그러니 그것이 소문나면 결국 그들이 죽인 자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예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인 것을 시인해야 했기에 그들은 예수 이름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였다면, 아니 다른 이름으로 오셨다면 분명 후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기에 그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5:43).
이 예수 이름을 전하기 위해 우리 믿음의 선친들은 능욕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목숨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그런데 당신은 믿음의 선친들이 목숨을 내어주면서 전파한 예수 이름을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천상천하에 안 되는 것이 없는 이름, 곧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가난 때문에 궁상을 떨고, 병들어 앓으며, 문제를 끼고 끙끙 거립니까? 이는 마치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먹고, 못 입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바울이 점하는 여인에게서 귀신을 내쫓은 것과 같이 당신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합니까?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린 것처럼 할 수 있는데 왜 안 합니까?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천사가 와서 당신을 도울 텐데 왜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예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다 악한 마귀에게 속아서 그런 것입니다. 악한 것들은 예수 이름이 제일 두렵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예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획책하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이단!”이라고 협박합니다. 예, 우리 교단은 귀신 쫓아서 못 들을 소리 많이 듣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단이 무서워, 핍박이 무서워 예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말이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는 베드로의 말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예수 이름으로 만물을 명령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몇몇 주의 종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핍박이 두려워서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떤 줄 압니까?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더러는 목회를 그만 둔 분도 있습니다. 마귀의 궤계에 속았으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대제사장이나 사두개인, 서기관들을 들어 예수 이름을 전하게 하지 못했던 악한 것들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교단을 들어, 교리를 들어, 학설과 이론을 들어 예수 이름을 막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됩니다. 교리나 학설, 그리고 이론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걸로 풀어야죠.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은 어쩔 겁니까?
사람의 능력으로, 사람의 지혜로 안 되는 것은 무엇으로 해결하실 것입니까?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살 겁니까? 아닙니다. 예수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그러면 기적과 이적이 당신 앞에 일어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4~5).
총을 쏘면 여우가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곰도 도망가고, 산돼지도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가난도, 병도, 아픔도, 슬픔도, 안 되는 일도 다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다 되게?” 하십니까? 그럼요, 총 쏘면 사자인들 안 도망가겠습니까? 아무리 큰 짐승도 다 도망가는 것은 믿으면서, 불을 밝히면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은 믿으면서 왜 예수 이름의 권세는 못 믿는 것입니까?
예수 이름으로 안 되는 사업을 명령해보세요. 다시 불 일 듯 일어날 겁니다. 예수 이름으로 자녀들을 축복해보세요. 세상의 머리가 되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예수 이름으로 병든 가축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보세요.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구제역 때문에, 조류인플루엔자로 걱정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식물이 시들시들할 때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파릇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 이름 앞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이름,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안에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고, 부귀가 있고, 건강이 있습니다. 그 이름 안에 사랑과 용서와 기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안에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할렐루야!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고 서 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