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순교자 성월이면서 동시에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생태적회심을 요청하는 창조시기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안심하고 있을 때,
언제든 재난이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으니
뉘우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이번주 복음은 지난주에 이은 이야기이며
오늘 복음에도 베드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번주에는 반대로 걸림돌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반석과 걸림돌은 같은 재료이지만,
분명 다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돌을 의미하는 성경 속 단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을 가진 어부였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아람어를 쓰셨기에
아람어로 반석을 의미하는 케파(כיפ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여졌기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πετρα)’로 번역하게 됩니다.
그리스어인 페트라가 다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페트루스(Petrus)로 발음을 하게 되고,
또 각 언어로 번역되다보니
영어로는 피터, 스페인어로 뻬드로, 불어로 피에르
우리말로는 베드로라고 발음합니다.
참고로
석유를 페트로늄(Petroleum)이라고 하는데
바위를 뜻하는 ‘Petro’와 기름을 뜻하는 ‘oleum’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또한, 요르단에 가면 페트라라는 고대도시가 있지요.
암벽을 깍아 만들었기에 이 역시 바위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를 상징하는 바위를
우리 삶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 또는 바위는 굉장히 흔하지만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이 되리라고 하셨지만,
동시에 그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예수님의 예고가 수난과 죽음 만이 아니라,
부활도 함께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
베드로의 성급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반석에서 걸림돌이 되어버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시며 질타하십니다.
사탄(שׂתן)은 ‘반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느님에 반대하는 존재를 일컫습니다.
베드로는 졸지에 반석에서 사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꾸중을 넘어 인격모독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식간에 정상에서 바닥으로 내쳐져진 베드로는
얼마나 창피하고 난감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가장 믿음직한 제자를 사탄이라고 부르며
물러가라고 언성을 높이신 것이지요.
만약 어느 성직자가 여러분에게 이런 식으로 대했다면
대부분은 냉담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뭔가 달랐습니다.
물론 그가 걸림돌이 되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주님의 질타를
오히려 자기를 반추하는 큰 거울로 삼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감정의 스펙트럼이 컸던 베드로가
이토록 침착하게 자신을 성찰해본 것은
아마도 난생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내적 상태를 짐작해보건데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이 전적으로 신뢰하던
예수님으로부터 창피를 당하고
얼마간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심적으로 어두운 시기를 보냈을 것입니다.
이 어둠밤은 일주일 정도가 걸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복음을 보면
엿새 뒤에 타볼산에서 변모사건이 일어났기에
오염된 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자아가 활동 함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난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처럼
‘나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치환한다면
감정의 변화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감정에만 모든 판단을 맡길 수만은 없습니다.
더욱이 감정이 삶의 가치의 절대 기준이 되서도 안되겠지요.
이성이 멈춘 감정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감정을 조절하는데 큰 도움을 해줍니다.
종합해보면,
본문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이성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질타와 훈계를 곱씹어보며 교훈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뿌리 끝부터
새로이 쇄신하는 기회로 삼았을 것입니다.
모난 돌처럼 행동했던 베드로가
새 출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부정적인 감정과
왜곡된 생각들을 풀어낼 수 있도록
회개와 쇄신이 이루어지는
순교자 성월과 창조시기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