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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79)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
본문 : 눅 14:31-32 (신120)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있음에도 ....
- 그들 모두가 좋은 동기에서 따른다고
보지도 않았거니와 ...
- 제자로 보지도 않았으며 ...
- 그리고 끝까지 따를 것으로
생각지도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23-25절 말씀에 보면...>
23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절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절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속을 속속들이 아셨습니다.
지금은 좋다고 따르지만 고난이 닥치면
모른다고 부인하고 흩어질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의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람이 많이 따라 다닌다고 해서....
기뻐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엄격한 제자가 되는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첫째, 자기 부모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와 자매까지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형제 자매를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세...
심지어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그러한 각오가 없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벗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온전히 지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의 소유를
다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서 소유라 함은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와 권력, 세상에 대한 온갖
애착심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한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언급할 때마다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그렇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 27, 33)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참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정도의 수준에
합당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써
우리가 치러야 될 희생과
고난의 크기도 알아야 하겠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 얻어지는
능력과 영광을 먼저 평가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능력의 사람,
기적의 사람이 되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할 때,
현재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될 때,.....
그것을 위해 지불하는 모든 대가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참조 - 진주를 발견한 상인의 비유).
영국 왕가의 역사상 사랑을 위하여
왕좌를 포기한 유일한 왕이 있습니다.
바로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 1894~1972)입니다.
그는 1년 남짓 영국의 왕,
영연방의 수반, 인도의 황제(1936. 1. 20~12. 10)로서
최고의 권력자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왕위를 포기하고 동생(조지 6세)에게
왕위를 넘겼습니다.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년 4월 21일~)는
1952년 2월 서거한 부왕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것은 왕세자 시절 사랑에 빠졌던 여인과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사랑한 여인은
미국 출신의 이혼 경력이 있는
심프슨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혼 수속을 밟는 중이었습니다.
에드워드 8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결혼하고 싶었지만 이혼경력이 있는
여성과의 결합을 영국 왕실과
의회에서 허락할리 만무하였지요.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왕실과
정부의 지도자들에게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영국 의회는 그에게 왕위를 포기하던지,
그녀를 단념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일할 것을
요구하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동안 고심했던 왕은 최종결정을 내렸고
1936년 12월 10일,
다음과 같이 발표 했습니다.
"나 에드워드는 나 자신과
내 후손의 왕위를 포기한다는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음을 선언한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
결국 그는 1937년 6월 3일
프랑스 샤토드캉데에서 영국국교회
신부의 주례로...
심슨 부인과 결혼하였고
평생을 함께하였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권력을 버린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왕위까지도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내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랑하는 성도님들 !
무지한 용기는...
용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호기심으로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를 따른 결과로서 얻어지는
가치를 분명히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거기에 당연한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망대를 세우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망대를 세우는 일에도
차분히 앉아 먼저 비용을 예산해야 합니다.
치밀한 계산과 준비 없이
잘못 서두르다 보면 낭패를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
그리고 쌍둥이 비유로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1-32절 읽어라>
31절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절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망대를 세우는 비유가.....
건설적인 것이라면.....
오늘 비유<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는
파괴적인 것입니다.
또한 만약 망대를 쌓다가
도중에서 그만 두었다면 ...
“저 사람 정신없이 시작했다가 그만 두었군”하는
비난을 받으며 투자한 만큼의 물질적인
손해를 보면 됩니다.
그러나 전쟁이란 실패하면 죽는 것입니다.
생사의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비유는
‘망대를 세우는 비유’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
- 망대를 세우는 비유에 있어서는
지불해야 될 대가가 돈이지만...
-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에 있어서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생명입니다.
그러니 누가 함부로 전쟁을
시작하겠습니까?.....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생각 없이
전쟁을 시작하겠습니까?.......
치밀한 계산과 작전 없이
전쟁을 시작할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헤아려보지도 않고 전쟁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 ‘적의 숫자는 얼마인지?’.....
- ‘그들의 무기는 어떠한지?’....
- ‘그들의 훈련 정도는 어떠한지?’.....
- ‘그들의 작전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캐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 ‘아군의 숫자는 얼마인지?’....
- ‘무기와 훈련은 잘되어 있는지?’.....
- ‘군사들의 사기는 어떠한지?’,....
- ‘그들을 꺽을만한 작전은 무엇인지?’ .....
점검해 보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자신의 생명 뿐 아니라....
가족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헤아려 보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철저하고 완벽한 준비 끝에,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전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전쟁에 나가는 것’..,
곧 ‘생사를 거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코 엄벙덤벙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생사를 거는 것처럼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임금)과 같이
생사를 건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 - 십자가의 길>...........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라고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눅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고난(suffering)과 버린 바(rejection)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단지 고난만을 당했다면,........
그는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동정을 샀을 것입니다.
그의 고난은 위대한 존경과
명예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고난 받을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의 고민과 이율배반은,
비록 그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었다할지라도......
그 자신은 ‘인간들에게 조롱을 받고
거부를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고난 받았고 또한 버림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그의 고통은
아무 명예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3).
그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으며
또한 십자가의 수치를 짊어졌습니다.
그는 군인들에게 조롱을 당했고,....
군중들의 야유를 받았고,....
한 강도의 놀림을 받았고,....
심지어 대부분의 자기 친구(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요,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이었습니다.
제자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 나눌 때만이
참으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야 할 그의 삶에는...
그의 고통..,
그의 고난,...
그의 거절...
그리고 그의 십자가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롬6:3-4 읽어라>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맺는 말씀 - 오늘날의 십자가>
그러면 십자가의 형벌이 사라진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데이빗 왓슨의 저 ‘제자도’라는
책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한 청년이 ....
나이 든 그리스도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나이 든 사람은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네”하며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성도님들께 소개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 양손이 못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뒤를 돌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은 오직 한 방향 곧 우리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둘째,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죽기 전에는
내려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고별 인사를 해야만 합니다.
살아서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따르기로 세사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매력이 죽어야 합니다.
<요일2:15-17 읽어라>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셋째,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더 이상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과 발들 온 몸이 십자가에 묶여 있기에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계획을 더 이상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예!”만 있고 “아니라”함이 없습니다.
<고후1:18-20 읽어라>
18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딤후2:3-4 읽어라>
3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절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이 이야기는 제자가 된다는 것,....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전쟁에 나가는 것’, 곧 ‘생사를 거는 것’입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심정으로,
생명을 건 싸움을 준비하는 비장한 각오로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심정으로
십자가를 당당하게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