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7)
2007-11-12 22:28:32
[166차] 칠갑산 콩밭매기
2007. 11. 12. / 박광용
산행일 : 2007. 11. 10. (토), 맑고 쌀쌀함.
코 스 : 칠갑주차장-대치고개-능선길-칠갑산-안부-삼형제봉-안부-장곡사-장곡주차장
참석자 : 문수(대장), 인섭, 상국, 진운, 광용, 덕영, 재일, 은수. (총 8명)
참으로 어줍잖게 본 산행기를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문수 선달이 지난번 계룡산 소풍 간다고 아침에 서둘다가 평소 갖고 다니던 캐논 디카를 잃어버렸다. 서운했던지 큰 맘 먹고 새로 장만한 천만 화소짜리 디카를 지난 북한산 번개산행에서 처음 사용했고, 이번에는 작품 사진 한 번 만들어 보겠노라 작심하고 답사 산행까지 다녀오면서 그 정열을 보여주었다. 이런 정성에 보답은 못할 망정 훼방만 놓게 되었으니…… 내가 장갑 낀 어줍잖은 손놀림으로 문수 선달의 새로 산 디카를 땅에 떨가~�다.
장곡사 뒤로 둘러친 언덕 위에서 멋진 사진 찍어보겠다고 온갖 폼 다 잡아가며 찍은 사진인데, 사진이 잘 되고 못 되고는 차치하고 카메라를 망가뜨렸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그 얼메나 마음 상할꼬? 디카 잃어버린 것도 서운한데, 새 카메라 한 달도 못돼서 완전히 망가뜨려놨으니…… 말은 안 해도 그 서운함이란????
월요일 아침 블로그를 열어보니, 미운 시누이가 하나 나타나서 나를 반기며 히죽거리고 있다. 물론 문수보다는 덜하겠지만 나도 마음 상하기는 마찬가진데, 서총은 문수 카메라 고장나게 한 벌로 날더러 산행기 쓰라며 부추긴다. 그래, 아예 홍어조즐 깔아뭉개뿌라. ‘아야!’ 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하게 깐 이마 또 까뿌라!! TVTVTV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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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산행지도, 원본은 <한국의 산천>에서 펌)
모르긴 몰라도 칠갑산이 우리 산행목록에 오른 것은 아마도 대둔산 산행 때문이었을 거다. 무려 17명이란 대군이 대둔산에 올랐는데, 그때 솔고 부종이는 개인적인 일로 칠갑산에 들렀다가 대둔산에 참가하겠다고 했다가 뒤풀이에도 함께하지 못한 사연을 만들었겠다. 이때 칠갑산이란 넘이 노래가 아닌 산행지로서 우리의 뇌리에 남게 되었나 보다. 이런 걸 놓칠 리 없는 서총이 연초부터 블로그에 올려놨는데, 막상 닥치니 산행대장 부종이는 슬쩍 도망가버리고 결국에는 문수 선달이 답사 산행을 다녀오는 열의를 보인다.
산행대장은 문수 선달로 변경 공지되었는데 목요일까지 산행참가자가 별로 없다. 금요일이 돼서야 우르르 몰려드는 참가자를 훑어보니 대충 10명은 되겠더라. 이번 가을 춘천에서 마라톤 개인기록을 갱신했다는 재일이는 아예 천안에서 왔으면 더 편리할 뻔했겠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일산까지 갔다가 수서역으로 달려온다. 다음 목표는 보스톤이라는데 기회 되면 응원이라도 함 나가줘야 하는 것 아닌가 몰라. 겨울(은수)이는 제일 먼저 참가 신청했고, 목~금욜에는 점촌 부근 무슨 산에 마나님 모시고 다녀오는 정열을 보이기도 한다.
금욜 저녁 마지막으로 굿맨 대신 쫄고가 참가키로 했다가, 술이 과했던지 토욜 아침 일어나 보니 문자로 불참을 통보해놓았다. 수서역에서 덕영, 재일, 은수, 나, 이렇게 4명이 출발하고, 보정역에서 문수, 인섭, 상국, 진운, 이렇게 4명이 출발한다. 펭귄은 바둑관계 일이 있다며 불참을 알려왔다는데 믿는 친구가 별로 없다. 기흥 휴게소에서 두 대의 차량이 만나고 악수 한 번 하고 다시 출발, 정안 나들목에서 빠져 국도로 공주를 거쳐 청양으로 향한다. 저수지가 여럿 있던데 대치고개를 넘기 전 널따란 칠갑주차장에 주차하고 배낭을 챙긴다.
* 여게로 올라가서 저게로 내려온다..
9시 반에 출발하여 낙엽 수북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대치터널이 개통되기 전 옛날 대치고개마루에 최익현 선생 동상이 있고, 이제 산장을 옆으로 끼고 능선을 따라 오른다. 다시 10분을 올랐을까?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널따란 공터다.
“와~~ 이런 널따란 데서 머 쫌 쉬어가야 안 되나?”
“와~ 여게는 한 백 맹도 앉을 수 있겠다. 그자?”
“그래 여게 쫌 앉았다 가자. 푹신하이 좋네.”
“강요이 니, 술 가~왔제?”
“그래, 이거 말이가? 자~ 아나. 그냥 무~뿔래?”
“그라몬 안주가 엄네? 자, 이거 안주 하몬 되겠제?”
이렇게 해서 칠갑산 산행시작 10분만에 제1갑의 휴식이 시작되고……
* 최익현 동상 아래 단풍이 곱다.
다시 능선을 따라가면 작은 봉우리들은 돌아가게끔 우회로를 더 넓게 만들어놨다. 중간에 헬기장이며 정자가 나오면 또 쉬어가야 한다며 2갑, 3갑 휴식을 취해야 한단다. 칠갑산에 왔으니 7갑은 채워야 한다며 괜찮은 널찍한 곳만 만나면 쉬어가야 한단다. 애~라! 모르겠다 쉬어가자. 문수 대장이 답사하면서 도시락은 필요 없겠다고 했지만 이제 그런 말 들을 산우는 없나 보다. 제 각각 사과, 귤, 등을 꺼내며 퍼질러 앉는다.
* 제1갑, 제2갑 휴식...
낙엽에 덥힌 능선 따라 가면서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는 아마도 단풍이가 하나하나 기억에 남겨둔 걸로 아는데, 나로서는 기억날 리가 만무하다. 11시 반이 되었을까, 칠갑산 정상이다. 커다란 정상석 앞에서 사진 하나 찍어두고 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 본격적인 점심 식사다. 도시락, 김밥, 컵라면, 막걸리에, 매실주에, 나중에는 꼬냑까지…… 그래도 이야기 중에 안 빠지는 산우는 소루기와 펭귄이다. 제일 팔자 편한 소루기는 통영에 있다나? 도미 마이 잡았나? 다음주는 울릉도 간다고? 잘 댕기 온나. 기왕 가는 거 독도도 함 가 보라메……
* 칠갑산 (561m)
다시 짐을 꾸리고 삼형제봉으로 간다. 급한 내리막을 내려가고, 장곡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능선으로 쭉~ 오르면 막내봉, 둘째봉을 지나 큰형봉에 오른다. 널따란 헬기장에는 모임에서 온 산객 일행이 늘어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순간 그 특유의 향긋한(?) 냄새? 홍어다. ‘내가 홍어조진데요’ 하는 얘기가 이만큼 나오다가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침 삼키는 소리를 얼마나 크게 냈는데도 우째 한 입 묵어보라는 소리 함 안 할까? 내한테 한 입 주면 주위 다른 친구들이 가만 있었겠나? 그러니 못 주는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며 주변 친구들을 원망해본다. ㅎㅎㅎ 얼른 둘째봉으로 이동한다.
또 펼쳐진 상에는 감이며, 사과, 귤이 마구 나온다. 이게 5갑인지 6갑인지도 모르겠다. 또 묵자. 묵는 데까지 묵어보자. 일어서며 누군가 옆에 쌓아둔 돌무덤에 돌멩이 하나 더 쌓으려다 오히려 무너뜨리고 만다. 다시 정리하는 데 시간 좀 걸렸나 보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서 장곡사로 내려간다.
* 장곡사 뒤 언덕배기에서
또 한두 차례 갑을 더 쉬어가며 거의 다 내려 왔을 무렵, 발아래 長谷寺가 보인다. 산 위에서보다 아래쪽의 경치가 더 좋다. 위에는 이미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버린 상태고, 아래 동네에는 문수 대장이 답사하면서 본드로 붙어놓는 잎이 더 많다. 노란 물감 위에 붉은 단풍과 나무줄기를 따로 그려 넣은 듯 곱게 채색된 풍경에 모두들 어린 애가 된다. 환갑 지나면 다시 애가 된다지만, 너무 조숙한 탓인지 10년이나 전에 벌써 애들이 돼버렸다.
* 얼라가 돼버린 추남들
은행잎을 뿌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난리 아닌 난리다. 이런 난리를 만난 덕에 어줍잖게 장갑 끼고 만지작거리던 문수의 카메라를 떨궈버렸으니, 서총 말대로 촐싹거릴 때 알아본 거지 뭐. 다시 장곡사로 내려오니 이 절은 병풍처럼 빙 둘러싸인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외적의 침략이 있다 하더라도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법당을 빙 돌아 구경한다.
국사샘 서총의 연설과 겨울여행 은수의 설명이 이어지고, 장곡사에서 꼭 보고 가야 한다는 두 가지를 보러 간다. 하나는 몇 천명 분의 쌀을 씻었다는 쌀통과 다른 하나는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큰북인데, 모두 범종각에 올라있다. 참으로 절묘하게 잘도 만들었다. 옹이를 배수구로 이용한 쌀통이 신기하고, 그 시절에도 인도나 남방국가와 연락이 닿았기로 코끼리 가죽을 구할 수 있었나 보다. 하기야 그렇게 큰 북에 맞추려면 소나 하마 정도로는 안 될 것 같고 코끼리 같이 큰 넘이 있어야 가죽을 통째로 붙일 수 있었을 게다. 지금은 찢어진 가죽이라 그 세월이 안타깝다.
* 몇 천명 분의 쌀을 씻었다는 바로 그 통... 코끼리 가죽으로 만든 북이 있었는데 사진에는 없네.
이렇게 볼 것 다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포장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간다. 가로수 은행나무가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어린 애가 돼버린 초로의 秋男들의 가는 길이 더디다. 사진 찍어달라며 어리광이 극에 달했다. 터벅터벅 장승공원 내에 찾아간 식당에는 등산을 마친 일행이 술을 거나하게 마셨나 보다. 콩밭 매는 머슴아들이 많아졌다. 문수 대장이 미리 예약해둔 식당 ‘칠갑산 맛있는 집’에서 손 두부, 청국장, 고랭지 배추와 비빔밥에 동동주 한 사발을 양껏 먹어둔다.
* 손을 비비기만 하면 물이 나올 법도 한데...ㅋㅋㅋ 만사야 좋더나?
4시 반에 출발한 올라오는 길이 이리저리 막히고 9시경에야 양재역에 도착한다. 은수와 재일이는 또 먼 길을 가야 하고, 만사와 나는 집 앞에 차 세워두고 낙지에 소주 한 잔 하고 들어갔다. 갑자기 멀리 이사 가버린 쫄고가 생각나네. 북한산 밑에서 좋은 정기 많이 받고 지네시구랴. 짬 내서 그 뒤로 해서 사자능선이나 형제능선으로 함 올라갈 테니. 저~쪽 경기팀도 맥주 한 잔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잘 들어갔제?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 모두들 중심 잘 잡고 댕깁시다. 중심 잘 잡을라몬 그 추가 무거워야 하는데 추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산에 열씸히 댕깁시다. 근데 추 무게 늘려봐야 쓸 데가 있나???
* 이 가을의 추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