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오로는 사울이라고 불렸다는데 사울은 개종 전의 이름인가요?
사울’이라는 이름은 유다식 이름이고 ‘바오로’는 그것의 로마식 이름으로,
처음부터 그는 이 두 가지 이름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자신의 편지에서 스스로를 한 번도 사울이라고 부르지 않고
언제나 바오로로 소개하고 있는 반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의 이름을 처음에는 사울이라고 했다가
개종 이후 그가 복음전파를 위해서 이방인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부터
바오로로 바꾸어 부릅니다(사도 13,9).
성서적 전통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바꿔 부를 때에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이 아브람을 인류의 조상으로 삼으시며 가나안 복지로 가도록 명하실 때에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 부르신 것이라든가,
예수님이 시몬을 당신 제자로 삼으시면서
게파(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유다교에만 집착해 있었던 사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새로운 소명인 이방인 선교에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명백히 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저자는 개종 전후의 이름을 구분하여 부른 것이라고 봅니다.
바오로는 언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바오로가 예수님을 알게 된 때는 34년경이라고 보면 무방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의 회심을 다마스커스와 관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이에 반해 바오로의 편지들은 자신의 회심을 ‘계시’(갈라 1,16), ‘새 창조’(2고린 5,17),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1고린 15,8)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의 회심은 악인에서 선인으로 돌아서는 윤리적인 ‘회개’도 아니었고,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의 ‘개종’도 아니었습니다.
바오로는 회심 이전이나 이후에나 윤리적인 수계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회심 이후에도 유다교를 의식적으로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오로의 회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곧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심’(로마 8,9)으로써 그리스도께 소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바오로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원시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을
어떤 경로를 밟아 얻게 되었는지는 사도행전에도,
그 자신의 편지들에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바오로는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갔나요? 혹시 부업이라도 했나요?
라삐들은 율법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때
돈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정한 생업을 가져야 했습니다.
바오로는 원래 비교적 부유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도 복음을 전파하면서 돈받기를 거부했고
천막 짜는 일로 자신의 생활비를 벌었습니다(사도 18,3).
- 주머니 속 성서박사 시리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