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풍자, 재치 있게 비판하자
3. 정치 풍자
풍자는 현상과 본질의 대립구도를 즐겨 사용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트, 아이러니, 야유, 욕설, 패러디, 역설, 부풀리기, 깎아내리기 등의 기교나 어조를 사용하여 풍자의 효과를 달성합니다.⁹⁷⁾ 풍자는 대상에 따라 개인공격의 저급한 풍자,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정치적 풍자, 인류 전체를 조소하는 고급풍자, 자기가 자기를 해부하고 비판하고 욕하는 자기풍자가 있습니다.⁹⁸⁾
중국 소설 『삼국지』에 최후의 승자인 위나라 시인 조조가 등장하는데, 조조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가 조식입니다. 조식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서 나라 안팎에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그의 맏형 조비는 동생인 조식을 미워하였다고 합니다. 조조가 죽자 왕이 된 조비는 동생 조식을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이유 없이 혈육을 죽이면 비난이 일 것을 두려워한 조비는 동생에게 조건 하나를 내걸었습니다. 일곱 발짝 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왕의 명령을 못 지킨 죄로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식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고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가마솥 밑에서 타는데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서로 볶기가 어찌 그리 급하게 하는가
-조식, 「칠보시」 전문
위 시는 콩과 콩깍지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형과 나도 한 뿌리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형제끼리 골육상쟁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유연한 비유적 풍자입니다. 조식은 형의 위세에 눌려 오랫동안 변방을 떠돌아다녔지만, 중국문학사에서는 중요한 시인으로 자리를 잡고있습니다.
풍자문학을 쓰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수용적 태도나 거부적 태도를 버리고 비평적 태도를 가져야 하며 감정보다 지성의 소유자라야 합니다. 풍자는 사회의 부당함이나 모순에 대한 냉소, 조롱, 독설, 기지, 해학, 욕설, 비난 등의 성격을 지닙니다. 풍자와 역설의 차이는 뭘까요?풍자는 공격적 성격, 역설은 통찰적 기능 혹은 인식적 기능을 합니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사 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리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들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구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 출입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ㅡ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커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ㅡ김수영, 「거대한 뿌리」 전문⁹⁹⁾
인용시는 비숍여사의 한국 기행문을 읽고 창작동기가 발현하여 쓴시입니다. 전반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풍자적 의미가 강하지만 욕설을 과감하게 채용하여 독자들의 전통적인 시에 대한 관념과 인식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제기하는 웃음은 시인이 의도한 것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권위적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풍자적 웃음입니다. 제도예술의 정형화된 논리를 비웃는 과감한 시어의 운용에서 풍자의 성격이 한층 강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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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이순욱, 『한국의 현대시와 웃음시학』, 청동거울, 2004, 29~30쪽 참조.
98) 홍문표, 『시창작 원리』, 창조문학사, 2002(5판 개정), 443쪽.
99) 김수영 전집 I』, 민음사, 1981.
2024. 3. 3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