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5.
눈도장 찍기
해가 서산머리에 걸리면 텃밭으로 간다. 햇빛만 사그라져도 한층 시원하다. 이때쯤이면 교육생 대부분이 약속이나 한 듯 텃밭이나 비닐하우스로 나온다.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 파란색 장화를 신으면 질퍽한 밭고랑도 무섭지 않다. 때로는 흙덩이가 장화에 달라붙는 양이 많을수록 마음이 더 편해진다. 체류형 귀농귀촌지원센터 교육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땅콩은 어려워 보인다. 점토질이 적은 모래흙이라야 땅콩재배에 적합하다고 한다. 내 땅콩들은 정반대의 땅에 뿌리를 내렸으니 수확을 기대하는 것조차도 부끄럽다. 땅이 시작이다. 땅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니 실패를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하릴없이 짙은 노란색 꽃을 피우는 너에게는 “미안하다.”라는 한마디를 미리 전한다.
둥근조선호박이다. 흔히 풋호박이라 부르는데 암꽃과 수꽃이 있어 수정해야만 몸집을 키운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노란색 호박꽃에 자그마한 호박이 붙은 것은 암꽃이다. 어떤 호박꽃은 줄기에 꽃이 피어 있다. 이놈이 바로 수꽃이다. 벌이 와서 수정해 주면 좋겠지만 여의찮으면, 수꽃의 수술을 암꽃의 암술에 스쳐주면 된다. 이런 작업을 수정이라 하며 수정하지 못한 호박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암꽃과 함께 땅으로 떨어진다. 여덟 개가 수정에 성공했나 보다. “힘내라.”
대파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아주 어린 대파 모종이었지만 족히 1개월 전에 심었다. 땅이 부실해서인지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물만 주고 있다. 뭘 해주니 잘 자더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냥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있다. 있는 둥 마는 둥 했더니만 저도 나처럼 하는 것 같다. “이제라도 잘해보자.”
잎만 따 먹는 깻잎이라 했다. 대파와 같은 날 심어서인지 하는 짓이 똑같다. 키가 쑥쑥 커서 사람 무릎높이 정도는 되어야 볼품도 있고 수확도 나겠건만 성장이 너무 더디다. 빈말일지라도 “사랑한다. 내 맘 알지?”라고 전해 본다.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다. 저마다 토마토 모종을 구해와서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길래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마음으로 심었다. 이틀이 멀다고 곁순을 따고 지지대를 세워서 잡아주며 정성을 다했다. 아기 주먹만 한 어린 토마토가 뿌리마다 서너 개씩 매달렸다. 빨갛게 익기를 기다리는데 장마철이다. 따가운 햇살이 구름에 숨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니 제 놈인들 단맛을 품을 수 있을까. “믿는다. 내게는 너희뿐이다.” 제발 내 마음에 상처만은 남기지 말기를.
해는 지고 어둑어둑하다. 눈도장만 찍고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믿고 맡긴다. “나는 처음이지만, 당신은 늘 하는 일이잖소. 알아서 해주시오.”
첫댓글 부탁인가 ?협박인가? 하늘이 귀여워 빙그레 웃겠다
그 하늘님은 늘 대답이 없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