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
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9-10)
1. 신앙은 믿음의 훈련을 반복해야 하고, 경건의 연습을
항상 밥 먹고 숨쉬듯 해야 한다. 벌써 내일이 주일이야
하거나 내일 아침엔 꼭 새벽기도 나가야지 하는 정도의
신앙으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목사 장로 권사 모태신앙 등
여타 체면을 봐 주시지 않는다. 아담에게 줄을 서 있으면
사망,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자로 그 안에
있으면 생명이다. 진리로 거룩하게 되면 영광, 존귀,
평강이 임하지만 진리의 초청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의지로 예수 믿는다고 버티면 그의 영에 환난과
곤고가 있다(롬2:9) 삼팔선을 긋고 남한 북한 하듯 주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아담 쪽은 하나님의 원수, 그리스도
안에는 설령 못난 아들이어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례(침례)가 있는 거다. 노아와 함께 홍수에서
세례(벧전3:20-21) 또 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세례(고전10:2)
천사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노아의 방주를 놓치면
홍수에 휩쓸려 죽고,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지 않으면
애굽의 노예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구분이다.
2. 하나님께서는 헌금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을 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다. 그야말로 특별한 은총을 내리시는 구역이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게 되는 거다(요3:36) 만일
신앙의 초기에 여러 표적이나 이적과 기사가 일어났지만
지금 그런 것이 사라져 시무룩하고 살맛이 안 난다면
당장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만일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열정을 다해
섬기고 봉사를 한 후 일이 끝나고 혼자 있으면 쓸쓸해
지는 느낌을 가진다면 그건 그리스도를 따라가서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받는(롬6:23) 자리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왜 교회나 목사 나아가서 하나님께 채권자와 같은 자세로
신앙생활을 할까? 그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리에 버티고 있는 탓이다. 이를 바울은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롬2:5)이라 한다. 자신의 의지로
예수를 믿지만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기 위한
성령세례를 모르는 거다. 거긴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안 보인다.
하나님은 진리로 심판하신다(롬2:2) 집단의 확신이 아니다.
3. 고난 주간에 주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골고다까지
따라 가고 3일 후 다시 살아나신 자리까지 가서 할렐루야
우리 구주 예수 부활하셨네 하고 그 자리에 멈추면 거긴
여전히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가시와 엉겅퀴가
무성한 세상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폭탄이 투하되는 곳이다.
주께서 피를 흘리셔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셨다(엡1:7) 우리는 이 사실을 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서 심지어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 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어 주를
따라가는 순종이 없으면 피로 의로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진노에서 구원을 못 받고 있는 중이라고 진술한다.
그 증거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냇가의 조약돌처럼
반질거리기만 할 뿐 싱싱하고 풋풋함이 없는 거다. 어떤 이는
밑지는 장사하듯 흡사 울 밑에 서서 비를 맞은 봉숭아 같다.
4. 교회에서 집단 감동을 위해 춤을 추며 찬송을 부르고
주여 삼창을 외치기도 하지만 끝나고 혼자가 되면 또 고독과
우울이 너 이제 왔냐 하고 다가온다. 이를 떨쳐보려고 별별
취미나 놀이에 몰입해 보지만 패킹이 고장난 펌퍼가 꼬로록
하고 물이 내려가버리듯 그만 밑이 없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수하다. 과거 나도 그랬기에 안다.
애초에 인간의 마음은 혼돈과 공허로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이
아니면 흑암의 깊음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다(창1:2)
피할 인간은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영과 생명에
의하여 평강과 기쁨을 얻는다.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과 성령께서 부으시는 사랑에 의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가 있다(롬5:11) 따라서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어 그의 동선을 따르는 믿음의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처음엔 다 죄인으로 사망의 자리에서
발견이 된다. 그러나 듣고 순종(롬1:5)을 반복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이 발견되고 확증되고 확립이 된다. 요한은 진리의 영에
의한 해산의 수고(요16장), 바울은 경건의 연습이라 한다(딤전4장)
십자가의 도(고전1:18)라고도 한다. 또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
진다고도 표현한다(고후4:10) 어쨌거나 지금 나는 예수를 믿는다
고 말하는 이는 지금 자신이 예수께서 죽으셨던 그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그 길을 따라
세례를 받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있는지를
파악하라. 계시는 점진이기 때문에 영의 눈은 바로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에서 희미하다 점점 밝아지기 때문에 인내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주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의 동선의
지도를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므로 주와
함께 멍에를 매고 주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경건과 영성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반복이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부활 없는 부활절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