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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화 ― 「공원 벤치의 세 번째 도시락」
“신부님.”
“네.”
“저기 좀 보세요.”
김맑음 신부는 박복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은솔성당에서 걸어서 십 분쯤 떨어진 작은 공원이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었고, 산책하던 사람들도 뜸해 공원은 한적했다.
그런데 공원 한가운데 벤치 하나가 이상했다.
벤치 위에—
**도시락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소풍 왔나 보네요.”
박복례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사람이 없잖아요.”
“화장실 갔을 수도 있지요.”
“세 명이 동시에요?”
“그럴 수도…….”
“신부님.”
“네.”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남의 도시락을 보고 계십니까?”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에요.”
박복례는 목소리를 낮췄다.
“저 도시락, 어제도 있었어요.”
김맑음 신부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제도요?”
“그제도.”
“세 개가요?”
“네.”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박복례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왜 그러세요?”
“또 시작됐네.”
“뭐가요?”
“신부님 눈이 지금 사건 만난 눈이에요.”
---
도시락은 똑같은 모양이었다.
투명한 뚜껑이 달린 작은 도시락 세 개.
첫 번째에는 김밥.
두 번째에는 주먹밥.
세 번째에는 달걀말이와 멸치볶음, 작은 주먹밥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도시락마다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첫째.**
**둘째.**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빠.**
김맑음 신부가 그 글자를 한동안 바라봤다.
“어머니.”
“왜요?”
“이건 누가 버린 도시락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그건 알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안 가져갈까요?”
박복례가 말했다.
“기다려보면 알겠죠.”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나무 아래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십 분.
이십 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박복례가 말했다.
“신부님.”
“네.”
“우리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누구를요?”
“저 도시락 주인을요.”
“점심은요?”
김맑음 신부가 잠시 멈칫했다.
박복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안 먹었어요?”
“아침을 많이 먹었습니다.”
“얼마나요?”
“밥 반 공기…….”
“그게 많이 먹은 거예요?”
그 순간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쉿.”
한 사람이 공원으로 들어왔다.
회색 모자.
낡은 점퍼.
예순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도시락이 놓인 벤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김맑음 신부와 박복례는 숨을 죽였다.
남자는 도시락 앞에 섰다.
첫 번째 도시락을 보았다.
두 번째 도시락도 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 도시락을 집었다.
**‘아빠’라고 적힌 도시락이었다.**
남자는 그것만 들고 빠르게 공원을 빠져나갔다.
박복례가 벌떡 일어났다.
“잡아요!”
김맑음 신부가 놀랐다.
“누구를요?”
“도시락 도둑!”
“잠깐만요.”
“뭘 잠깐이에요. 사흘째 저것만 가져간 사람이 틀림없어요.”
박복례가 남자를 따라가려 하자 김맑음 신부가 붙잡았다.
“어머니.”
“놔요.”
“도둑인지 아직 모르잖아요.”
“남의 도시락을 가져갔잖아요.”
김맑음 신부가 벤치 위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왜 세 번째 것만 가져갔을까요?”
박복례가 입을 다물었다.
벤치에는 두 개의 도시락만 남아 있었다.
**첫째.**
**둘째.**
그리고 ‘아빠’라고 적힌 자리만 비어 있었다.
---
다음 날.
김맑음 신부는 다시 공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김하늘도 따라왔다.
“신부님, 진짜 매일 도시락이 생겨요?”
“그런 것 같아.”
“누가 갖다 놓는데요?”
“그걸 알아보려고.”
하늘의 눈이 반짝였다.
“사건이네요.”
“사건이라고까지 할 건 없고.”
“오미자 회장님은 이미 ‘도시락 연쇄 실종 사건’이라고 부르시던데요.”
김맑음 신부가 이마를 짚었다.
“벌써요?”
“용의자 명단도 만들고 계세요.”
“누가 들어갔는데?”
“공원 관리인, 노숙인, 근처 학생들, 비둘기…….”
김맑음 신부가 하늘을 바라봤다.
“비둘기?”
“회장님 말로는 비둘기도 공범 가능성이 있대요.”
김맑음 신부가 웃음을 참았다.
“도시락통까지 들고 가는 비둘기라…… 대단하구나.”
---
오전 열한 시 오십 분.
한 여자가 공원으로 들어왔다.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벤치 앞에 앉아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하나.
둘.
셋.
세 개였다.
그리고 도시락 위에 작은 종이를 붙였다.
**첫째.**
**둘째.**
**아빠.**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놀라 돌아봤다.
“아…… 신부님.”
“은솔성당 다니십니까?”
“예. 가끔요.”
“저는 김맑음 프란치스코입니다.”
“알아요.”
여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성당에서 몇 번 뵀어요.”
김맑음 신부는 도시락을 바라봤다.
“실례가 아니라면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도시락 때문이죠?”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벤치에 앉았다.
“제 이름은 윤지혜예요.”
김맑음 신부도 조금 떨어져 앉았다.
지혜는 도시락 세 개를 바라보았다.
“첫째는 제 거예요.”
“그럼 둘째는요?”
“남동생 거요.”
“아빠라고 적힌 건…….”
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맑음 신부도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녀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십 년 전에 집을 나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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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름은 **윤상철**.
지혜가 열네 살, 남동생 민수가 열한 살 때였다.
사업이 망했다.
빚이 생겼다.
집안에서는 매일 다툼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짐을 싸서 나갔다.
처음에는 며칠 뒤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 이야기를 싫어했어요.”
지혜가 말했다.
“우리를 버린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 후로 연락은 없었습니까?”
“한 번도요.”
“그런데 도시락은 왜 세 개입니까?”
지혜는 잠시 망설였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이 이 공원에 자주 왔어요.”
그녀가 벤치를 쓰다듬었다.
“그때도 엄마가 도시락을 네 개 싸왔어요.”
아버지 것.
어머니 것.
지혜 것.
민수 것.
“엄마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찾았어요.”
지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거기에 이상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아버지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몇 년 전부터 은솔시에 돌아와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김맑음 신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군요.”
“네.”
“그런데 자녀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고요.”
“그렇습니다.”
“왜요?”
“아버지가 부탁했대요.”
지혜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식들 앞에 나타날 자격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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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세 번째 도시락은 다시 사라졌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언제나 같은 시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대로였다.
**세 번째 도시락만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도시락을 가져가기 전에 늘 멀리서 벤치를 한참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김맑음 신부는 그 모습을 며칠 동안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공원에서 십오 분쯤 떨어진 오래된 다세대주택으로 들어갔다.
김맑음 신부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그 남자였다.
“누구십니까?”
“은솔성당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성당에는 안 갑니다.”
“전도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럼요?”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도시락 때문에 왔습니다.”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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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작았다.
낡은 침대 하나.
작은 식탁 하나.
그리고 식탁 위에는—
깨끗이 씻어 말린 도시락통들이 놓여 있었다.
하나.
둘.
셋.
여러 개였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윤상철 씨 맞으시지요?”
남자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가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도시락에 ‘아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상철은 고개를 숙였다.
김맑음 신부가 맞은편에 앉았다.
“따님이 아버님이 은솔시에 계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상철의 손이 멈췄다.
“언제부터요?”
“최근에요.”
“그럼…….”
상철은 말끝을 흐렸다.
“저 도시락도…….”
“따님이 놓고 있습니다.”
남자의 눈이 붉어졌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알면서 왜 만나지 않으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김맑음 신부가 다시 물었다.
“매일 공원에는 나가시잖아요.”
“…….”
“따님이 올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시는 것 아닙니까?”
상철의 손끝이 떨렸다.
---
“무섭습니다.”
상철이 말했다.
“뭐가요?”
“아이들 얼굴 보는 게요.”
“왜요?”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그가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미안하다고 하면 됩니까?”
김맑음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무 해입니다.”
상철이 말했다.
“스무 해 동안 아버지 없이 살게 했습니다.”
“…….”
“학교 졸업할 때도 없었고, 취직할 때도 없었고, 지혜가 결혼할 때도…….”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멀리서 봤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그를 바라봤다.
“결혼식에 가셨습니까?”
“성당 밖에 있었습니다.”
“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들어가면 그 애 좋은 날을 망칠 것 같아서요.”
“민수 씨는요?”
“군대 갈 때도 봤습니다.”
“멀리서요?”
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맑음 신부가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그렇게 보고 싶으셨는데 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상철이 두 손을 내려다봤다.
“처음에는 빚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말했다.
“그다음에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요?”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상철이 씁쓸하게 웃었다.
“하루 늦으니까 더 미안해졌고, 일 년 늦으니까 더 못 가겠더군요.”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다 보니 스무 해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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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도시락은 맛있습니까?”
상철이 뜻밖의 질문에 그를 바라봤다.
“예?”
“따님이 만든 도시락 말입니다.”
“……맛있습니다.”
“어떤 반찬이 제일 좋습니까?”
상철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생겼다.
“달걀말이요.”
“왜요?”
“지혜 엄마가 하던 것하고 똑같습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 지혜가 어릴 때는 달걀도 제대로 못 깨던 애였는데.”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이제 잘하나 봅니다.”
“예.”
상철이 고개를 숙였다.
“너무 잘 컸습니다.”
“그걸 직접 말씀해주시지요.”
상철이 고개를 저었다.
“못 합니다.”
“왜요?”
“용서해 달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김맑음 신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철이 그를 바라봤다.
“그럼 무슨 말을 합니까?”
“사실을 말씀하십시오.”
“무슨 사실요?”
“보고 싶었다고.”
상철의 눈이 흔들렸다.
“미안했다고.”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용서할지 말지는 자녀들에게 맡기십시오.”
“…….”
“용서를 요구하는 것과 사과하는 것은 다릅니다.”
상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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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정오.
벤치 위에는 다시 도시락 세 개가 놓였다.
첫째.
둘째.
아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도시락 옆에—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지혜와 민수였다.
“누나.”
민수가 물었다.
“진짜 올까?”
“모르겠어.”
“안 오면?”
지혜가 한참 도시락을 바라보다 말했다.
“내일 또 놓지 뭐.”
멀리서 김맑음 신부와 박복례가 바라보고 있었다.
박복례가 물었다.
“신부님.”
“네.”
“오늘도 그 사람이 옵니까?”
“아마요.”
“어떻게 알아요?”
“모릅니다.”
박복례가 눈을 흘겼다.
“그런데 왜 아는 사람처럼 말해요?”
“그러게요.”
그때였다.
김맑음 신부의 시선이 멈췄다.
공원 입구.
회색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윤상철이었다.
그는 벤치를 바라봤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됐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이 스무 해보다 길어 보였다.
지혜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상철은 도망치듯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지혜가 일어났다.
“아빠.”
상철의 걸음이 멈췄다.
공원이 조용해졌다.
그는 천천히 돌아봤다.
지혜가 다시 불렀다.
“아빠.”
상철의 입술이 떨렸다.
“……지혜야.”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스무 해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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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벤치에 앉았다.
아무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민수는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지혜가 세 번째 도시락을 아버지 앞으로 밀었다.
“드세요.”
상철은 도시락을 내려다봤다.
뚜껑 위에는 여전히 적혀 있었다.
**아빠.**
“이거…….”
상철이 힘겹게 말했다.
“내가 먹어도 되니?”
지혜가 대답했다.
“아빠 거니까요.”
상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민수가 그제야 말했다.
“누나.”
“왜?”
“나는 아직 아버지 용서 못 해.”
상철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엄마 힘들 때 없었잖아요.”
“알고 있다.”
“우리 힘들 때도 없었고요.”
“안다.”
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니까 오늘 만났다고 다 괜찮아지는 건 아니에요.”
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지라고 온 것도 아니다.”
민수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럼 왜 왔어요?”
상철은 한참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말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그는 두 자녀를 바라봤다.
“너희가 용서하지 않아도…… 그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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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지켜보던 박복례가 코끝을 훔쳤다.
“신부님.”
“네.”
“이제 가요.”
“조금만 더 보고요.”
박복례가 김맑음 신부의 팔을 잡아당겼다.
“가족끼리 할 이야기는 가족끼리 하게 둬야죠.”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맞습니다.”
두 사람은 공원을 빠져나왔다.
잠시 걷던 박복례가 물었다.
“그런데 신부님.”
“네.”
“첫째하고 둘째 도시락은 왜 매일 같이 놓은 거예요?”
“아마 따님도 기다린 것 같습니다.”
“누구를요?”
“동생을요.”
박복례가 멈춰 섰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아버지가 오면 언젠가는 동생도 함께 앉기를 바랐던 거겠지요.”
박복례가 뒤를 돌아봤다.
멀리 벤치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도시락 세 개의 뚜껑이 모두 열려 있었다.
---
그날 저녁.
사제관 식탁에서 김맑음 신부가 밥을 먹고 있었다.
박복례가 반찬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부님.”
“네.”
“도시락 사건 해결했으니까 이제 밥 좀 제시간에 드세요.”
“네.”
“오늘 점심도 굶었죠?”
김맑음 신부가 대답하지 않았다.
박복례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신부님.”
“도시락을 보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배가 안 고파서…….”
“남의 도시락 보고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있네요.”
“누구요?”
김맑음 신부가 자신을 가리켰다.
박복례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신부님.”
“네.”
“내일부터 신부님 도시락에도 이름 써놓을 거예요.”
“뭐라고요?”
박복례가 단호하게 말했다.
“**말 안 듣는 신부님 것.**”
김맑음 신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창밖에서 저녁 종소리가 들려왔다.
김맑음 신부는 문득 낮의 벤치를 떠올렸다.
스무 해 동안 비어 있던 한 자리.
누군가는 미안해서 다가가지 못했고,
누군가는 미워하면서도 도시락을 놓았다.
용서는 하루 만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오늘 세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벤치에 앉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김맑음 신부는 생각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은 멀어서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꺼내지 못해 더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기다림은—
빈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돌아올 자리를 끝까지 남겨두는 일이었다.**
**― 제78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79화 「성당 담벼락의 숫자 27」
아침마다 은솔성당 담벼락에 나타나는 의문의 숫자 **‘27’.**
날짜도, 나이도 아닌 그 숫자는 지워도 다음 날이면 다시 나타난다.
김맑음 신부는 그것이 **27년 전 헤어진 두 형제를 잇는 암호**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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