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80장은 노자가 그려낸 유토피아, 이상향의 세계다.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이 장을 밑그림으로 하여 쓰여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 80장에 그려진 “소국과민”이 문자 대신 줄을 매듭지어 사용했던 시절로 돌아가 태고적의 부락국가의 모습을 구가하는 것 같아서, 노자를 복고주의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노자 시절이, 주周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여러 지방도시국가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 합종연횡合從連橫을 반복하면서 국가의 틀을 재건하려 하면서 제자백가 사상들이 출현되었던 시절이었으니, 단순한 복고라기보다는 국가경영의 기본을 논하고 있다 하겠다. 국토를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아 이웃나라와 적대시하지 않으니 무기나 기기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고, 백성들이 사는 곳에서 자신들의 의식주에 만족하고 풍속을 즐길 수 있도록 힘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하는 일에 힘쓴다. 노자의 논지論旨에 의하면, 삶을 구속하는 법률을 만들거나 지나친 세금 책정으로 인해 백성들의 일상을 힘에 부치게 하지 말 것이며, 백성들 앞에 나서거나 위에 서지 않으며, ……등등, “무위無爲”로써 백성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선性善”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세상이다.
21세기, 공동체를 이끌어 가기에는 사람들의 욕구가 너무 다양해졌고, 인권과 인명을 지키기에도 너무 많은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나라는 고사하고, 이를테면 가족이라는 한 공동체 안에서조차 개인의 삶에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하면서, 가족 안에도 존재하는 나이 성별 문화/의식의 차이를 넘어서서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에는 내 안에 있는 너무 많은 불안을 다스려야 한다. 그 불안의 뿌리가 되는 여러 상황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더욱 나 아닌 다른 상대를 필요로 한다.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릴 수 있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상대를 원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서로가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죽음을 중시한다는 것은 삶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에 주어진 삶에서 의식주에 너무 욕심내지 않고 감사해 하면서 삶의 내용들(문화)을 너무 복잡하지 않게 즐기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 인생의 전부 아닐까? 그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나를 보일 수 있고, 상대를 볼 수 있을 만한, “작고, 적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공동체를. 그래서일까? 소국과민의 공동체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이다.
각주 1‘십백’을 甲兵/무기로 보는데,(余培林 註譯.『新譯 老子讀本』. 타이뻬이:삼민서국, 1990, p.117.) 여기서는 "십"을 “여러 가지”로 보고 "백"을 "맏배-좋은 것"으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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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어사랑해 원문보기 글쓴이: 빔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