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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shot)을 전환(cut)하지 않으면서 전후의 장면보다 유독 길게 찍는 촬영기법을 롱테이크(Long take)라고 한다. 정확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대개는 1분 정도만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도 롱테이크라고 부르는데, 길면 10분, 아주 드물게는 영화 전체가 한 장면으로 촬영되기도 한다. 1분에도 수 십 개의 장면 바뀌는 현대영화에서 롱테이크는 연출자의 의도나 미학적 기능을 떠나 아주 위험한 시도다. 카메라가 움직임 없이 한 곳을 주시하거나 움직이더라도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무언가/어딘가를 오랫동안 돌아다니는 일은 빠른 호흡의 컷 전환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겐 일종의 고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동영상(moving picture)? 그건 형용모순을 넘어 죄악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험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영화가 있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서편제>, <마법사들>, <칠드런 오브 멘>, <러시아 방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플레이어>,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그리고 <그래비티>와 <어벤저스>, <버드맨>까지. 영화 역사 상 수많은 영화가 롱테이크를 시도했고 그중 적지 않은 작품이 롱테이크 기법을 잘 활용한 영화로 관객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이 글에서는 롱테이크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짧게 소개하고, 롱테이크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영영화 <로프>중에서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1 : 골라 보는 재미
많은 영화들이 도입부에서 롱테이크를 사용한다. 주인공(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대해 알 수 있고, 그들의 말투나 행동을 보며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또 인물들이 잠시 스쳐 지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나중에 중요해지는 핵심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관습적인 편집을 통해서도 이런 내용들을 전달할 수 있지만, 컷 전환으로 필요한 장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친절해 보이지만 폭력적이다. 공식대로 전환되는 화면들은 관객들을 연출자/편집자의 의도대로만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롱테이크로 두 사람의 대화를 보여준다면 관객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 내용과 인물들의 표정, 몸짓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치 ‘딥 포커스 기법(deep focus)’이 심도를 이용하여 피사체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촬영기법에 대립되는 목적으로 사용되듯 롱테이크도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이런 ‘불친절한’ 편집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때때로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겠지만 대신 스스로 퍼즐을 맞추는 재미나 원하는 것을 골라보는 자유로움이 제공되니 조금만 훈련이 된다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닐 것이다.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2 : 사실성의 강조
컷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점프컷으로 시간을 생략하고, 고속/저속촬영으로 시간을 늘이고 줄이는 건 다른 장르의 예술에선 하기 힘든 영화만의 마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은, 단 한 번의 컷 없이 쭈욱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지적 시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인생이야말로 롱테이크이자 원테이크(one take)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롱테이크로 촬영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관습적 편집으로 이뤄진 장면들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극중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에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카메라를 한곳에 세워두고 인물/사건과 거리를 둔 채 찍은 장면을 본다면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 냉정하게 전체 그림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며,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찍은 장면을 본다면 스크린 너머 공간에서 스스로 등장인물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수동적으로 관람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사실성을 갖게 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 중에서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3 : 분위기 조성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걸어다니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평온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생하는 엄청난 사건. 관객들은 일순간 긴장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롱테이크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된다.
<살인의 추억> 초반 현장 씬은 다른 방법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등장하여 범죄 현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카메라는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어울릴 만한 그림들을 잡는다. 과학수사 따윈 어림도 없는 열악한 현장 보존, 구경하는 동네 주민들, 비탈에서 넘어지는 수사반장, 시체 주위를 뛰어 다니는 아이들, 증거를 밟고 지나가는 경운기...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모든 요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장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 한 장면으로 충실히 전달되고 있다. 정보와 의도가 가득 들어있는 전통적 컷 편집과는 달리 이미 사실성을 담보한 롱테이크 촬영은 무대 안의 호흡만 가지고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
덤으로 롱테이크는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숏을 잘게 나누고 이야기나 감정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제작 일정과 편의를 위해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섞인 연기를 하다보면 배우도 최고/최적의 연기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하지만 롱테이크에서는 한 장면이 연극 무대의 한 장과 같기 때문에 오롯이 몰입하여 배역을 연기할 수 있다. <올드보이> 장도리 액션 씬에서처럼 싸우면서 점점 지쳐가는 배우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고, <비포 썬라이즈> 대화 씬에서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도 있다.
롱테이크에 필요한 촬영 기술들
간혹 롱테이크로 길게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찍었을까,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란 호기심이 든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촬영에 동원된 비법이나 떠올리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지만, 화면 뒤에서 여러 모로 노력한 제작진에 대한 존중은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며 몇 가지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다. (대단한 비법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특별한 장비가 아닌 이미 흔하게 쓰이고 있는 장비들이기 때문이다.)
삼각대. 흔들림 없는 촬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카메라를 잡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가만히 세워 두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하좌우로 움직이거나 줌까지 동시에 활용하면 굳이 컷을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역동적으로 찍을 수 있다. 많은 예술영화들이 오랫동안 삼각대만 사용한 채 ‘얌전히’ 롱테이크를 촬영했던 과거사례 때문에 ‘롱테이크 = 지루함’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달리. 대개는 기차길처럼 생긴 레일을 깔고 달리를 올린 다음 그 위에 앉아서 촬영을 한다. 피사체를 따라 수평이동을 하거나, 피사체로부터 멀어지거나 다가가기도 하고, 피사체를 중심으로 회전도 하면서 흔들림 없이 오랫동안 촬영을 할 수 있다. 삼각대에 올린 것과 동일한 안정감을 주면서도 공간을 이동하며 다양한 그림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평지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많은 독립영화 제작자들은 달리 대신 자동차나 휠체어, 회전의자, 수레, 담요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스테디캠. 스테디캠은 일종의 충격 흡수 장치인데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손이나 마운트에 전달되는 충격을 없애는 용도로 쓰인다. 달리 못지 않은 안정감을 구현하면서도 달리가 가지 못하는 계단이나 좁은 길, 고르지 못한 지면으로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배우가 다니는 거의 모든 경로를 따라다니며 촬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최근에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성능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서 달리를 대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서 기본으로 쓰이고 있다. 배우들의 뒷모습을 담으며 이곳저곳을 드나드는 대부분의 롱테이크 촬영은 이 스테디캠으로 촬영되었다고 보면 된다.
지미집. 달리나 스테디캠은 2차원 평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지미집에 매달린 카메라는 입체적인 촬영을 할 수 있다. 높이 올라갈 수 있고, 달리와 결합하면 전후좌우 위아래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점 때문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끊지 않고 한 번에 잡기 위해 많은 영화에서 활용하고 있다. 더욱 자유로운 촬영을 원하는 카메라맨들은 지상에서 걷다가 크레인에 올라타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 뒤에 다시 걸어다니며 촬영하는 변종 지미집+스테디캠 기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항공촬영. 지미집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상 촬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촬영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거리 숏이나 전지적 시점의 촬영이 아니면 길게 쓰이지는 않는다. 장비의 규모나 운영 비용 때문에 쉽게 쓸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소형 무인항공기인 드론이 각광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소음이나 바람이 적어 배우에게 가깝게 다가가도 연기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또 흔들림 보정(stabilization) 기능이 강화되어 스테디캠처럼 오랫동안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할 수 있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많은 장비를 갖고 다니기 어려운 로케이션 촬영에서 유용하다.
그밖의 기술
지금이야 <마법사들>이나 <러시아 방주>처럼 한 시간이 넘는 롱테이크 촬영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필름 한 통 분량인 10분 이상을 연속으로 촬영할 수 없었다. 10분 이상 이어지는 영화 대부분은 히치콕 감독이 <로프>에서 한 것처럼 카메라 렌즈 앞을 피사체가 잠시 가리며 자연적인 암전을 만드는 식으로 속임수를 썼다.
요즘은 좀 더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CGI(Computer Generated Image)나 합성 같은 기술을 동원하여 롱테이크를 구현하고 있다. 일종의 ‘유사 롱테이크’라고 할까. 처음에 언급했던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이유를 구현하기 위해서 도입했겠지만 약간은 기술적 과시를 위한 시도도 있으리라 추측된다.
<패닉룸>에는 2층 난간 사이로 빠져나온 카메라가 1층으로 내려가서 지미집 촬영처럼 움직이더니 현관문 열쇠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말도 안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카메라가 작아도 불가능했을 이 장면은 건축물의 일부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뒤에 절묘하게 합성해서 완성했다. 약간의 특수효과가 들어가긴 했지만 적어도 이 장면은 실제로 끊지 않고 찍기는 했으니 ‘진짜 롱테이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벤저스>의 마지막 전투 시퀀스에서는 각 주인공들이 한 공간에서 한 몸이 되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아주 역동적인 롱테이크 촬영을 한다. 각 인물들의 활약을 순서대로 보여주는데 이동속도나 고도 차이를 감안하면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이다. 제작진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역시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다. 인물마다 따로 촬영을 하거나 ‘그린’ 후에 3차원 모델링으로 만든 도시에 넣고 하나로 꿰맨 것이다. 결과물은 보시다시피 관객들이 한눈 팔 수 없는 멋진 장면으로 탄생했다.
<버드맨>의 촬영은 얼핏 보면 <플레이어>나 <매그놀리아>의 스테디캠 팔로잉 숏을 연상시키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거울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장이라는 공간적 특성 상 거울에 반사된 배우 얼굴을 비추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림만 봐서는 촬영자가 거울에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작진은 ‘일단’ 찍은 뒤에 후반작업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배경을 거울에 갖다 붙였다고 한다. 그밖에 카메라가 벽을 패닝할 때마다 컷을 바꾸는 <로프>식 장면 전환 기법을 사용해서 영화 전체가 한 시퀀스인 것처럼 찍기까지 했다고 하니 첨단기술과 구식기술을 적절히 사용한 멋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롱테이크? 원테이크!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롱테이크여야만 할까. 다른 방법으로도 의미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면 굳이 롱테이크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야 할까. 수많은 스탭과 배우와 촬영장 주변 상황 중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처음부터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왜 굳이 그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아마도 그건 제작진과 출연진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수없이 연습한 성과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욕, 연기를 하며 촬영을 하며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최고 순간의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고집, 혹은 장인정신. 그것이 있기에 롱테이크가 가능하고 의미있는 것이리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쯤은 멋진 롱테이크 숏을 찍어보길 바란다.
참고자료
롱테이크 사례 기사 (해외영화)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73796
롱테이크 사례 영상 (해외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oLFHdagIw6o
롱테이크 사례 기사 (한국영화)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49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