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미국, 2012.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좀 애매한, 굳이 바꾸자면 [소나무 너머 그곳](영화의 배경인 마을 '스케네덕티'를 인디언 말로 풀이한 것이라 한다) 쯤인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한마디로 아버지를 거쳐 아들에게 대물림된 억울한, 슬픈 운명을 그려낸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오토바이 스턴트맨인 루크(라이언 고슬링 분)가 은행강도로 변해 여러 은행을 터는 모습이 그려져, 루크의 은행털이와 비극적 결말이 그려질 줄 알았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오토바이 스턴트맨인 루크는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이동놀이시설에서 오토바이 묘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히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느날 자신의 공연을 관람하러 온 로미나를 만난다. 로미나를 찾아 그녀의 집을 방문한 루크는 갓난 아기를 발견하고, 로미나의 엄마로부터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전해 듣는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처럼 살면서 또다시 아버지 없는 아이를 두고 싶지 않았던 루크는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 하는 로미나를 찾아가 아기의 아빠로 이 마을에 정착해 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미나는 이미 다른 남자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루크에게는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절망한 루크에게 전직 은행털이범이 접근해 왜 아까운 재주를 썩히느냐고 꼬드긴다. 자네처럼 오토바이 타는 재주가 있다면 절대 경찰에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은행털이에 대해 코칭을 받은 루크는 여러 개의 소규모 은행들을 털고 결국 지명수배범이 된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충고를 무시하고 은행을 털던 루크는 결국 경찰과 맞닥뜨리게 되고, 신입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 분)에게 죽음을 당한다. 에이버리 역시 다리에 총상을 입지만 영웅으로 거듭난다. 경찰대학을 나와 초짜부터 시작한 에이버리는 정치꾼인 아버지를 두었으나 모사꾼처럼 경멸스러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자 마음이 바뀐다. 로미나의 집을 수색하면 분명 루크가 감춘 돈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 동료들과 함께 수색영장도 없이 로미나의 집을 뒤진다. 결국 돈을 찾아내 그 절반 정도를 받지만, 애이버리는 로미나를 찾아가 자신이 받은 돈을 돌려준다. 물론 자신의 아기 아버지를 죽인 경찰이 건네는 돈을 로미나가 받을 리는 없다. 아버지를 찾아간 애이버리는 결국 내부고발자가 되어 자신의 동료 경찰들을 고발하고는 더욱 가파른 유명세를 탄다.
그리고 15년 후.
어느 고등학교에 말썽쟁이 학생이 전학 온다. A.J.라는 이름의 학생은 다름아닌 애이버리의 아들이다. 아버지 애이버리는 주 경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마약을 흡입하고, 아이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즐기는 A.J.는 제이슨이라는 친구를 자신의 똘마니로 포섭한다.
A.J.의 강요에 못이겨 마약성분의 약을 훔쳐 환락파티에 참석한 제이슨은 A.J.의 아버지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경찰임을 알게 된다. A.J.에게 반발한 제이슨은 오히려 죽도록 얻어 맞는다.
입원한 제이슨을 찾아간 애이버리는 그가 자신이 죽인 은행강도 루크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들 A.J.에게 말한다.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다. 다만, 제이슨은 건들지 마라."
아직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애이버리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제이슨은 권총을 들고 A.J.를 찾아간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기절할 정도로만 두들겨 팬 제이슨은 마침 귀가한 애이버리와 만나게 되고, 총기로 위협해서 숲으로 끌고 간다.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이지는 못했다. 애이버리의 진심 어린 사과의 말과 뉘우침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이버리의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제이슨.
얼마 후 애이버리는 주 검찰총장에 당선된다. 그의 옆에는 잘 차려 입은 아들 A.J.가 열심히 박수를 치며 서 있다.
어느 시골 농가에서 오토바이를 산 제이슨은 먼지 나는 시골길을 달려간다. 무작정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오토바이 스턴트맨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루크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들을 위해 은행을 턴 사내. 그 사내와 맞닥뜨린 경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지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후 은행강도의 아들과 경찰의 아들. 어쩜 그렇게 아버지의 운명을 내려 받았을까?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슬픈 운명.
그런 것도 유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