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디어】 고정식 기자 = 이제 ‘클래식카’ 반열에 오른 현대차 포니는 현재 6,481대나 등록돼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이하 KAMA)의 지난 5월 기준 자동차 등록현황 자료에 따르면 그보다 오래된 코티나도 1천대 이상, 기아차 브리사나 대우차 맵시도 수 백대 넘게 ‘생존’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이 차들을 길에서 마주치긴 어렵다. 소장용으로 보관 중인 차들도 더러 있을 테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기대 이상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국산 올드카들은 대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현대차 포니-6,617대
1975년 탄생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는 6,617대 남아있다. 포니2가 지난 1990년 단종됐으니 가장 ‘팔팔한’ 포니도 이제 24살이나 됐다. 그런데도 통계에 잡힌 숫자가 꽤 많다. 이는 포니1과 포니2는 물론 ‘포니 엑셀’까지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KAMA 자료에는 포니 엑셀의 항목이 따로 없다. 아울러 KAMA 관계자는 “포니가 나올 당시는 국가 통계라 해도 약간씩 오차가 있었다”며, “(당시부터 쌓아온) 현재 통계로 드러난 모든 포니가 실존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포니는 출시 이듬해 점유율 43.6%를 기록했고, 최대 60%를 넘기기도 했던 인기 모델이었다. 중형차가 주류였던 당시 자동차 시장이 포니 때문에 소형차 위주로 재편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치솟는 인기 덕분에 왜건형과 픽업트럭의 출시도 이어졌다. 포니 픽업트럭은 여전히 다수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코티나-1,288대
코티나를 기억한다면 적어도 ‘장년’에 접어든 세대일 것이다. 지난 1968년 처음 국내 도입된 모델로 1983년 단종됐기 때문이다. 아직 1,288대나 남아있다고는 하는데 어디 숨었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의 기록에 따르면 모두 9,290대 생산됐다고 하니, 이들의 생존율은 거의 14%에 달한다고 볼 수 있겠다.
코티나는 1967년 설립된 현대차가 처음 조립한 모델로 1968년 11월부터 생산됐다. 울산공장에서 만든 첫 번째 자동차이기도 하다. 코티나는 포드가 영국에서 판매하던 차다. 국내 출시된 모델은 2세대 코티나다. 영국에서는 1967년 전체 판매 2위를 기록할 만큼 인기모델이었지만, 국내에선 ‘코피나’라는 악명에 시달렸다. 잔고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를 기준으로 설계된 모델인데 비포장도로가 많던 한국 땅 위를 달리며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 코티나의 최종 모델은 ‘마크 V(마크 파이브)’로 잘 알려진 ‘코티나 마크 V’다. 이 차에 이어 현대차 고유모델인 스텔라가 등장하게 됐다.
그라나다-312대
그라나다는 유럽포드가 개발하고 독일포드가 생산하던 중형차다. 국내에는 지난 1978년 처음 선보였다. 이 모델은 2세대 그라나다다. 1985년 단종될 때까지 5천대도 채 판매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고성능 고급 세단’의 이미지로 ‘사장님’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종종 7~80년대를 다룬 시대극에 등장하기도 한다. 등록 통계를 보면 현재 총 312대가 남아있다.
그라나다는 2리터 V6 OHC엔진으로 최고 102마력, 최대 16.9kg.m를 발휘했는데, 경쟁모델에 비해 달리기 성능과 고속안정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한때 ‘V6’가 고성능, 혹은 고급차와 같은 뜻으로 여겨지던 것도 바로 ‘그라나다 V6’ 덕이다. 1986년 데뷔한 1세대 그랜저에도 최고급 모델에 ‘V6’란 엠블럼이 들어갔다. V6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기아차 브리사-576대
브리사는 1974년부터 1983년까지 햇수로 딱 10년간 생산됐다. 총 7만 5,987대가 만들어졌는데, 이 중 576대는 여전히 서류상으로는 등록돼 있는 상태다. 브리사는 현대차 포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사랑 받은 승용차 중 하나였다. 마즈다 파밀리아의 차체와 1리터짜리 엔진을 기본으로 만들었지만, 국산화는 63%에 달했다. 1976년에는 모든 부품의 90%를 국내에서 조달했다. 현대차 포니같은 고유모델은 아니었지만, 국산화율은 포니와 같았다.
브리사는 기아차 최초의 승용 모델이다. 기아차는 브리사를 만들기 전까지 작은 트럭만 만들어왔다. 앞에는 바퀴 하나, 뒤에는 바퀴 두 개가 달린 ‘3륜차’였다. 지금 보면 무척 낯설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릿고개가 뼈저리던 시절 소상공인들의 운송수단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피아트 132-253대
기아차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피아트 132를 5천대 한정으로 국내에서 생산 및 판매했다. 현재 253대 남아있다고 한다. ‘희귀종’이다. 132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게 인기가 높았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성능, 그리고 ‘수입차 프리미엄’까지 더해진 결과다. 최고 112마력을 발휘하는 직렬 4기통짜리 2리터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가 조화를 이뤘다. 당시는 5단 변속기가 드물던 시절이었다.
기아차는 브리사로 승용차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뒤 본격적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32는 이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도입된 모델이었다. 고급기술을 익히기 위해서였는데, 기아차는 끝내 이를 활용할 수 없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내린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현대차는 승용차, 기아차는 5톤 이하 상용차만 만들도록 했다. 아울러 기아차는 이륜차 부문인 ‘기아기연’까지 대림공업으로 넘겨야만 했다.
새한 맵시-1,434대
‘새한’은 낯설어도 ‘맵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꽤 있을 것 같다. 신선한 한글 이름 때문인데, 맵시와 부분변경모델인 맵시-나는 모두 1,434대 남아있다. 전신인 ‘제미니’까지 더하면 모두 1,672대로 늘어난다. 맵시는 일본 이스즈의 준중형급 승용차 제미니의 부분변경모델이다. 제미니는 다른나라에선 홀덴과 오펠, 뷰익의 상표를 달고 출시됐다. 국내에선 새한이 만들었다. 맵시는 제미니의 부분변경모델이다. 맵시-나는 맵시의 부분변경모델이다. 그 사이 새한이 대우자동차로 넘어가 ‘대우 맵시-나’가 됐다. 때문에 맵시와 대우차를 함께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맵시-나의 후속 모델 격으로 나온 차가 대우 르망이고, 르망은 유럽에서 오펠 카데트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현재도 오펠에서 팔고 있는 ‘아스트라(Astra)’는 카데트의 후속 격으로 만들어진 차다.
사실 대우차의 뿌리는 ‘신진자동차’다. 신진자동차는 부산에서 시작한 자동차 정비소 ‘신진공업사’를 모태로 하고 있다. 신진공업사가 종합자동차회사로 발돋움한 건 1965년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을 인수하면서다. 이후 경영부실로 파트너였던 GM이 지분을 팔고 나가며 새한자동차로 이름이 변경됐다. 그리고 1983년 대우중공업이 새한자동차의 경영권을 획득하며 대우자동차가 된다. 신진자동차의 부산공장은 현재 자일대우버스의 부산공장이 됐고,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은 한국지엠의 부평공장이 됐다.
쌍용차 칼리스타-34대
쌍용자동차는 현재 ‘SUV의 명가’를 자처하지만, ‘칼리스타’라는 고풍스런 로드스터를 팔기도 했다. 총 78대를 만들었는데, 34대는 여전히 ‘현역’이라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모델이 남아있는 건 ‘소장가치’ 때문이다. 마치 1930~40년대에서 툭 튀어나온듯한 스타일을 가진 ‘국산 오픈카’는 칼리스타가 유일하다. 칼리스타(Kallista)란 이름도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는 뜻이다. 하지만, 1991년 출시 당시 3,170만원에서 3,67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과 국내 자동차 문화의 미성숙으로 1994년 단종되고 말았다.
칼리스타는 쌍용차에서 개발한 모델이 아니다. 1972년 영국에서 설립된 소규모 자동차 회사 ‘팬더 웨스트윈드(이하 팬더)’가 개발해 1982년부터 생산한 모델이다. 사실 팬더는 1980년 파산하며 당시 진도모피의 김영철 부회장(현 가야미디어 회장)에게 인수됐다. 이후 1987년 경영권이 쌍용차로 넘어갔다. 이로 인해 1991년부터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칼리스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무렵 펜더의 영국 본사와 공장은 모두 해체됐다. 하지만, 지난 2001년 ‘펜더’의 상표권은 다시 펜더자동차 설립자인 로버트 얀켈(Robert Jankel)이 되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