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앙코르 유적지가 보수를 위하여 곧 관광이 중지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서둘러서 계획을 세웠다. 또한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과 수탈을 당하고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라서 동병상련의 애정이 있다. 더구나 베트남은 월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파견되었던 땅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토요일에 집에 왔다가 회사일이 바쁘다면서 오전에 먼저 서울로 갔다. 우리는 여행을 같이 가는 동료의 딸이 차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함께 청사정류장으로 나갔다(10월 30일 13:20시). 조금 기다리니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도착하여 승차하였다.
고속도로는 가끔 정체가 되기도 하였으나 별 문제없이 잘 달렸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들과 산허리에는 불게 물든 단풍이 흘러간다. 그러고 보니 올해 단풍구경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된 것이다. 수원쯤에서 인천 쪽으로 방향을 잡을 줄 알았던 버스는 서울시내 쪽으로 계속 질주했다. 로사와 나는 도착시간이 늦어질까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김포공항을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였다. 그러나 버스는 김포공항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달려서 예정보다 빨리 인천공항에 도착(16:40시)하여 다행스런 느낌이 들었다.
여행사 직원의 안내로 출국절차를 밟고 인천공항을 이륙(19:35시)하여 현지시간으로 22:15시(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느림)에 하노이 공항인 Noibai Terminal에 도착하였다. 현지 가이드 이원희씨가 마중을 나왔는데 동행 관광객 중의 한 부부의 가방이 도착되지 않아서 2시간여를 공항에서 기다리며 확인을 하느라 지체되었다. 그리하여 버스로 하롱베이 VAN HAI Hotel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인 10월 31일 02:10시였다. 아침 일찍 관광을 시작한다니 잠잘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31일에는 하롱베이 관광에 나섰다. 오전 06:30시에 기상하여 준비를 마치고 버스로 출발, 하롱베이 항으로 이동하여 유람선에 승선(08:20시)하였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18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3천여 개의 환상적인 섬들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어우러져 중국의 계림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마치 바다에 아름다운 수석을 전시해 놓은 것 같았다.
유람선을 타고 잔잔한 호수 위를 헤쳐 나가니 마치 죽순과 같은 기암괴석이 해수면에 나타나며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표정의 아름다운 기암들로 섬들 사이를 지나다 보니 마치 동양화 화폭 속으로 들어 온 듯 한 착각이 들었다. 평균수심은 200m로 정도로 해수면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수석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관광선을 타고 아무리 달려도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하롱베이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이렇게 3,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 섬 사이를 배를 타고 관광을 하다가 수상가옥 촌에 정박하여 쉬면서 회를 먹는 시간(09:10시)을 가졌으며, 쏭솥(HANG SUNG SOT)동굴 섬에 상륙하여 동굴을 관광하였다. 석회암 동굴로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동굴에는 비길 바가 못 되었다.
그리고 11:10시에 티톱 섬(TI TOP DAO)에 도착하여 전망대를 관광하였는데 우리는 해안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머물렀다. 티톱 섬은 소련의 최초 우주비행사인 티톱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호치민이 이 섬을 티톱에게 선사하겠다고 하였으나 섬 이름을 티톱으로 명명하여 주고 기증서를 비문으로 남겨주기를 희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티톱섬을 끝으로 돌아서 나오는 뱃길에 선상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아름다운 하롱베이 경관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항구에 도착(12:50시)하였다.
이어서 노니매장에 도착하여 상품소개를 받고 버스가 하노이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는데 고속도로의 최고속도가 40Km여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서 용변을 보고 흑임자, 노니, 쥐치포 등을 샀다.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지는데 추수가 끝났는가 하면 벼들이 새로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벼농사가 2모작에서 4모작까지 가능하다니 혜택 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의 정식 국가 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며 수도는 북부의 하노이이다. 면적은 33만 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1.5배이고 언어는 베트남어가 공식어이고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등이 통용된다고 한다. 월남 문자는 프랑스 식민지 당시의 선교사였던 알렉산드르가 중국문자를 발음대로 표기하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인구는 공식통계로 8,000만 명으로 발표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수도 하노이 인구가 400만 명, 주변인구가 200만 명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안남미는 북부지역이 2모작, 남부지역에서는 4모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밭작물로는 상추, 오이, 양파, 화훼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1986년부터 개인재산을 인정하였고, 1990년 소련 붕괴 후 상해를 모델로 자본주의 요소를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월남 패망이후 단절 되었던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88 서울 올림픽에 베트남이 참가하면서 교류가 시작되어 1991년에 공식수교를 하였으며, 1992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대우를 중심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7:00시에 하노이에 도착하여 시클로를 타고 36거리를 관광하였다. 베트남 전통 인력거를 타고 하노이 거리를 돌아보면서 하노이 서민들이 살고 있는 현장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36거리는 시장거리로 우리나라 7,80년대의 시장 풍경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으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노이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또 교통질서가 실종된 무질서 천국이었다. 무질서 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찾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정부에서도 교통질서를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교차로는 대부분 로타리 식으로 만들어서 신호등을 될 수 있으면 배치하지 않고 있었다. 교차로에서는 엉켜서 너도 못가고 나도 못가는 정체가 계속 되는데 어떻게 하든지 나만 빠져나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화를 내고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각자가 알아서 요령 것 빠져나가고 있었다. 왕복 6차선 도로에서 한쪽 진행방향의 오토바이와 자전거, 차량 행렬이 5차선을 점령하고 밀고 가는 기현상이 벌어져도 바로잡겠다는 나서는 경찰도 사람도 없고 또 불평 없이 요령 것 인도를 통해서라도 빠져나가기만 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교통이 정체되는 시가지를 빠져 나와서 우리는 라텍스 매장으로 가서 매트와 베개를 소개를 받고, 19:30시에 대장금이라는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발마사지를 받았다. 그리고 21:00시에 낌렌 호텔에 투숙하였다.
11월 1일 피곤하여 잠에 빠졌다가 모닝콜에 기상하여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출발, 한 시간여 만에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하니 캄보디아로 가는 항공기가 이륙(09:20시)하였다. 3시간 반을 비행한 끝에 항공기는 앙코르 유적지역인 씨엠립(AIEM REAP) 공항에 도착하였으며 현지 가이드 정우현 부장이 마중을 하였다.
첫댓글 만대 하노이 베트남 여행을 축하하네 그리고 제수씨 하고 같이 찍은 사진 멋있네 여보게 글씨는 너무 많아서 다 못읽었네 짧고 명확하게 부부 금실 좋고 건강고 행복을 빌겠네
택사스 사나이가 웬 호수에... 참 보기가 좋습니다. 가정에 평화를 빕니다.
글은 다 읽을 수 없어서 그림만 봤구먼, 그대로 행복하게 살게나 -
물과 암석과 만대부부 삼위일체시네요
베트남에도 그런 괴암석 호수가 다있군 ! 좋은데 다녀옴을 축하하네. 계속행복들 하시게!
사진을 보니 두분이 행복이 철철 넘치는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앞을로 더만이 좋은곳 여행하고 소개하소.잘 보았습니다. 행복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