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 문학회
노비산 언덕의 문학관에서 인연을 맺은 문우 몇 명이 봄나들이를 간다. 함께 가야 오래가고 함께 지내야 평화가 온다는 말만 믿고 기차여행을 추진했다.
창원중앙역에 일찌감치 도착하니 대합실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팥빵과 우유를 먹는 아저씨, 의자에 앉아 커피를 곁들인 도넛을 먹으며 폰을 보는 젊은이도 있다. 고개를 숙이고 물과 함께 김밥을 먹는 사람 옆에 앉아서 설레는 맘을 누르며 시계를 본다. 승차 시각이 한 시간도 넘게 남았다.
며칠 전에 마산역에서 사 놓은 기차표를 확인하고 프렛홈으로 나가니 싸늘하다. 옷깃을 세우는 사람들 모습 속에 젊은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출퇴근이나 행락객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무궁화호지만 출근시간도 지나고 삼월초순에 월요일이라 탈 사람이 많지 않은가 보다. 삼삼오오 어르신들이 가방을 메고 모인다. 조용할 때 병원도 다녀오고 자녀들 집에 다녀오시려는가 보다. 1944 열차 무궁화호, 2호차, 일반실, 순방향, 오늘따라 높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시샘하는 봄바람도 없으니 다행이다.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많은 사람들은 봄을 청춘, 새로운 꿈, 꽃다발이라고 노래한다. 우리 일행도 나이를 잊은 채 모처럼의 기차여행에 봄처녀가 되어 새 풀 옷도 입어보고 꽃다발도 가슴에 안는다. 차창을 스치는 봄을 맞으며 낙동강 줄기를 따라 낭만의 세계로 젖어들고, 원동역에는 매화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개울가 실버들의 축 늘어진 가지에는 연둣빛 봄이 벌써 찾아와 걸려 있고, 들판은 긴 겨울을 뒤로 한 채 봄맞이 채비를 한다, 곧 봄의 교향악이 천지에 울려 퍼질테지.
간이역마다 섰다 가다를 반복하는 기차는 조용히 흔들리고 승객들은 내리고 또 오른다. 더러는 유년의 추억에 젖기도 하고, 젊은 날의 지난했던 사연들을 털어놓기도 한다. 삶은 계란은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라며 여행의 맛에 흠뻑 젖어 시끌벅적하는 동안 태화강역에 도착한다. 택시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울산 여행의 필수코스라는 울산대교를 지나노라니 끝없이 펼쳐진 망대해해 끝에서 추억 한 자락이 나를 쫓아온다.
결혼이란 것을 생각지도 않던 시기에 첫 맞선을 보았다. “선이 들어오면 거절하는 게 아니란다” 시모님과 같은 절에 다니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동네 다방으로 나갔다. 총각도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 자리에 나온 것이다. 양가 부모님께서 청춘 남녀의 가슴에 불씨를 붙여주시니 타오르는 건 시간 문제였다. 내가 매일 보내는 비밀 편지는 ‘경남 울산시 대한석유공사 울산장유공장 BOQ내 석○○’ 주소로 배달되었다. 다른 이성에게 한 눈 팔 겨를이 없도록 쇠뇌 시키는 나만의 수법에 총각은 말려들고 말았다. 4살 차이는 궁합을 볼 필요도 없다시는 부모님의 응원을 등에 업고 둘이 벌면 금방 자리를 잡을 거라는 희망으로 빈손으로 결혼을 하였다. 살 집도 장만하지 못한 사이에 장녀가 태어나고 남편은 서울지사로 발령이 났고 월말부부로 지내던 날도 있었지. 데이트 하면서 한 번 와 본 울산, 오늘이 두 번째 방문이다.
파도가 없이 잔잔한 쪽빛 바다, 공중에서 곡예 하듯 달리는 차가 도착한 곳은 잘 정돈된 공원이다. 호국용신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니 손질된 해송이 위용을 드러내고, 쭉쭉 곧게 자란 소나무 사이로 일산 해수욕장과 백사장이 아스라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 울기 등대를 보며 걷다 ‘문학과 함께하는 힐링 공간, 여기는 울기등대 문학 겔러리입니다’ 라는 안내를 발견한다. ‘날마다 새롭게 흔들리는 삶을 위하여, 그 순결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나는 기꺼이 바다를 유혹하겠습니다. 파도와 내통하는 섬...’ 이라고 고백한 이자영님의 시가 맘에 와 닫는다. 날마다 새롭고 작게 흔들리는 삶의 기쁨을 누리려 우리 일행이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온 것도, 파도와 내통하여 섬이 되고픈 내 맘도 작가는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편편한 길을 따라 종종 내려가니 우리 앞을 가로 막는 분홍빛 바위의 군무, 하얀 파도와 어우러져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할 절경인 대왕암을 보며, 물과 바위와 바람이 만든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다.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수평선 멀리 정박한 배들이 공업국가로서의 국력을 과시하는 듯 늠름하다. 편안한 자리를 잡아 피로를 풀면서 우리 모임의 이름 ‘새 봄 문학회’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항상 새롭고, 언제나 봄처럼 따스하고, 만물이 소생하는 모양의 좋은 글을 짓자는 뜻이다. 제자들 소풍에 동참해 주신 교수님은, 이번 여행이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아 언젠가는 좋은 작품으로 태어날 것을 믿는다고 격려해 주신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참 동안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어 서로에게 어리광도 부려 본다. 이번 여행은 동쪽이니 다음은 서쪽으로, 대왕암에 두고 온 내 맘을 어찌하려느냐고 징징대기도 하고, 새 봄에 만든 행복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하자고, 좋은 기억이 또 한 움큼 보태지는 감사하고 즐거운 날, 새 봄 문학회 회원들의 문학세미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시작하여 화려한 꽃이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 그 날까지 계속 될 것이라며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새 봄 문학회 문우님들, 오래도록 함께 합시다.
첫댓글 송진련 선생님을 닮고 싶습니다.
작가는 글을 쉼 없이 써야 되는것이 당연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를 선생님이 채찍하는 것 같습니다.
달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봅니다.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만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좋은 글이 되는 것을 알겠습니다.
열린 합평회를 카페에서 만들자고 하시더니 빨리 실천 하셨네요.
쉽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봄맞이 소풍 가고 싶습니다.
소풍길에 선생님의 추억도 같이 데려 가셨네요
시들지 않는 선생님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문우들은 지금 몽땅, 야지리 ,모두, 쌍그리 '경남대 백남오 수필교실' 화요반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울산정유공장은 원유를 분리하는 공장이고
울산장유공장은 간장만드는 공장입니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