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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활동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노폐물이 뇌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종의 ‘하수도’가 모두 규명됐다.
ⓒGettyImages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장기다.
단위 무게당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만큼, 노폐물 생성도 가장 많다.
뇌 대사활동의 부산물로 발생한 노폐물은 뇌척수액을 통해 중추신경계(뇌와 척수) 밖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딱딱한 머리뼈 속에 감춰진 복잡한 구조로 인해 뇌척수액의 정확한 배출 경로는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뇌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하수도 지도’를 모두 완성했다. 뇌 인지 기능 저하,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수도 1: 턱 아래의 목 주변 림프관
뇌척수액은 뇌를 보호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는 하루 약 500ml의 뇌척수액을 만든다. 대부분은 배출되고, 두개골 내 뇌척수액의 양은 150ml 정도로 유지된다. 뇌 활동 이후 생성된 독성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등이 뇌척수액과 함께 배출된다. 뇌척수액 배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들 물질이 축적되어 뇌 인지 기능 저하, 알츠하이머병 등이 발병한다. 그런데, 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뇌척수액이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밝혀진 바가 없었다.
2015년 뇌막 림프관이 뇌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연구가 등장했다. 혈관이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상수도’ 역할을 한다면, 림프관이 노폐물을 배출하는 ‘하수도’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뇌막 림프관은 약 150년 전 발견됐지만, 긴 세월 동안 기능적인 측면에 있어 구조와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었는데 이 연구로 인해 재조명 받게 됐다.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는 기존의 정설을 깨고 2015년 미국 연구진이 쥐 실험에서 뇌를 감싼
뇌막에 림프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네이처’에 보고했다. 이후 2017년 사람의
뇌에서도 림프관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연구가 나왔다. ⓒNature
림프관은 장기 그리고 장기 내부에서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다르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장 연구팀은 실험 쥐의 뇌막 림프관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뇌 상부와 달리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이 배수가 원활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가령, 뇌 하부 뇌막 림프관에는 판막이 있어 뇌척수액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구조를 가진다.
연구진은 실험 쥐의 뇌척수액에 조영제를 주입하여 살펴본 결과,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다른 곳보다 뇌척수액의 흐름이 빠름을 확인했다.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뇌척수액이 배출되는 주요 하수도라는 의미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노화에 따른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의 변화도 관찰했다. 노화 생쥐의 뇌막 림프관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내부 판막 구조가 무너져 뇌척수액을 배수하는 기능이 저하됐다. 연구진은 2019년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은 2019년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이
뇌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주요 경로임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노화에 따
라 노폐물 배출 기능이 감소하는 이유까지 밝혀냈다. ⓒIBS
하수도 2: 감기 걸리면 따끔거리는 목 부위
2019년 연구에서는 뇌 뒤쪽의 뇌척수액이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는 것을 확인했지만, 뇌 앞과 중간 쪽 뇌척수액의 주요 경로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연구진은 뇌 앞과 중간 쪽 뇌척수액이 배출되는 주요 하수도가 코 뒤쪽 비인두 점막에 그물처럼 분포하는 림프관망임을 규명하고, 그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뇌척수액은 비인두 림프관망에 모인 뒤 목 림프관을 지나 목 림프절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배출된다. 비인두 림프관망이 뇌의 안쪽과 바깥쪽 림프관을 연결하여 뇌척수액을 배출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노화된 생쥐의 비인두 림프관망이 변형되어 뇌척수액 배출이 줄어드는 것도 확인했다. 반면, 목 림프관은 노화에 따른 변형이 없었다. 이에 착안, 연구진은 노화된 생쥐에게 목 림프관에 있는 근육세포의 수축과 이완을 유도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비인두 림프관망의 변형에도 불구하고 뇌척수액 배출이 원활해짐을 확인했다. 뇌척수액 배출을 조절하여 치매 등 퇴행성 뇌 질환을 예방‧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셈이다. 이어진 영장류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연구진은 림프관을 표지하는 형광물질을 발현하는 생쥐를 이용해 뇌와
목 부위의 정교한 림프관망을 시각화했다. ⓒIBS
연구를 이끈 고규영 단장은 “이번 연구로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비인두 림프관망의 기능과 역할을 규명한 것은 물론, 뇌척수액의 배출을 뇌 외부에서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며 “향후 치매를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