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용술 도주님은 죽산 최씨로 경북 선산군이 선향이며,조부님때에 충청북도 황간으로 이주하였다.1904년 7월 20(주민등록상) 충북 영동군 매곡면 광평리(현재 행정구역은 황간면 임)461번지에서 부 최사연과 모 이정학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최도주님은 어린시절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랑과 귀여움을 받았으나 세상을 알기 전인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여 고아가 되었다.
이때부터 이 소년은 따뜻한 손길을 펴주는 이 없는 불우한 어린 소년이 되었다.졸지에 고아가 된 이 소년은 마땅한 갈곳이 없어 양친 생전 시에 친히 지내던 일본인 제과업자 야마다씨 부부 집에 자주 놀러가게 되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야마다시부부는 이 소년을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다.
야마다시부부는 어린 시절부터 용모가 수려하고 행동이 용맹스러우며 지혜가 뛰어난 이 소년에게 차차 정이 들어 친자식처럼 사랑해주었다.
1908년경 야마다씨 부부가 한국에서 제과업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자 이 소년도 함께 가게 되었다. 야마다씨가 일본 쿠쥬 야와타시에 머무는 동안 이 소년은 망향의 생각에 견디지 못하여 고국으로 되돌아가기를 소청했으나 이 부부는 소년을 달래어 무사인 야마모토히데오라는 주지에게 맡기고 야마다씨부부는 그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이 소년은 부모같이 의지하고 따르던 사람마저 이별하고 낯설은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곳 산천과도 정이 들고 야마모토히데오와도 친근하게 되자 야마모토히데오씨는 이 소년을 양자로 삼았다.
이때부터 이 소년은 야마모토히데오씨로부터 종교의 의식과 무사의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야마모토히데오씨의 양자로 들어간 후 4년째가 되던 해(당시 나이 14세경) 어느날 야마모토히데오씨 집에 친구인 다께다쇼가꾸 선생이 내방하였다. 그 당시 다께다쇼가꾸 선생은 일본전역을 순업하는 중이었는데 야마모토히데오씨는 친구인 다께다쇼가꾸 선생에게 이 소년을 문화생으로 입문시키기를 소원한다. 그때부터 이 소년은 다께다쇼가꾸의 문화생이 되었다. 다께다쇼가꾸 선생이 야마모토히데오씨와 얼마동안 지나다가 5인의 문도를 데리고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신슈시 신슈산에 입산할 때 이 소년을 데리고 갔었다. 여기서부터 최도주님은 합기술 수도에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다.
최도주님은 신슈산에 입산 한 후 8년간의 수도생활을 하시다가 대정 8년인 1919년 약 20세때 다께다쇼가꾸선생과 하산하여 동경 니혼바시에서 약 6년간 거주하면서 스승인 다께다쇼가꾸 선생과 함께 황실에서 대신들을 교수하셨다.그후 다께다쇼가꾸 선생을 따라 순업의 길을 떠나 일본전국을 순회하다가 북해도 키타미자와시에서 5년간을 지내면서 선생과 합기술을 연마,교수하던중 다께다쇼가꾸선생이
고령으로 순업을 계속하기가 어렵게 되자 일행은 오타루시로 되돌아옴으로써 순업의 긴 여정을 마쳤다.그 후 최도주님은 스승인 다께다쇼가꾸 선생을 오타루시에서 와타나데긴다노씨가 경영하는 여관에 모시고 친부처럼 봉양하였으며,1943년 스승이 고령과 신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스승의 수업을 이어받아 일본 합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하셨다. 최도주님은 수십여년간 그의 제자로 있으면서 합기술에 관한 3800여 가지의 술기를 전수 받아 명실공히 합기술의 2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스승이 세상을 떠나고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이 해방되자 최도주님은 "이것은 본시 조선의 무술이었으니 나는 너에게 되돌려줄 뿐이다"라고 한 스승의 말씀을 되새기며서 우리 민족의 전통무예인 합기도를 다시 한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귀향을 결심하게 되었다.
귀국후 대구에서 정착한 도주님은 당시 양조장을 경영하던 서복섭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양조장 건물에서 한국 최초의 대한합기도유권술 도장을 설립하고 합기도 보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0년 3월에 합기술 유지자들과 함께 대구에 총본부를 둔 대한합기술무도회를 창설하고 본격적으로 합기술을 전파하셨다.그 후 전국에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시면서 주야로 합기술 발전에 노력하시다가 1986년 10월 27일 향연 87세로 세상을 타계하셨다.
도주님은 생전에 "모든 동양무술은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합기도 역시 신라인에 의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무술이 되었다. 그러나 검도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그 형이 이룩된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듯이 이제 우리 모든 합기도인에게는 고 최용술도주님의 합기도정신과 술기를 이어받아 최용술 합기도를 새로운 합기도,세계적인 무예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주)상기내용은 김정윤 선생의 저서인 "합기술(1962년 발행)" 에 기술된 최용술도주님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첫댓글 자료삼아 올립니다.
"합기술"관련 제기 문제점은 본카페 다이토류 게시판 77번 참조하십시오.
선산이 제 본적인데.. 과거에 제가 중학생 때였을까요...?? 저희 큰아버지께서 합기도에 "합"자도 모르시는 운동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제가 합기도를 한다고 하니 최용술 도주 얘기를 하시더군요... 과거 선산에 자주 오셨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