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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이정연 PD
진행: 강흥식 장로(대구극동방송 지사장)
토요일PM12:00~12:30
Febc초대석 인터뷰:2013년 3월 25일
초대자 : 이광수(석전6리 이장,왜관제일교회 장로)
방송일자: 2013년 3월 30일(토) 오전 12시
다시듣기 : 2013년 3월30일 오후 2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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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c초대석 인터뷰
진 행 자: 왜관제일교회를 섬기시는 이광수 장로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이광수 장로: 예 안녕하세요
진 행 자: 안녕하세요 대구극동방송 가족들께 인사부탁드립니다.
이광수 장로: 안녕하세요 저는 왜관제일교회 시무장로이며 이광수라고 합니다
어느날 아내와 차를 타 고 구미에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대구극동방송국 PD님의 첫초대전화를 받고 솔직히 말해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방송국 초대받기는 난생 처음이니까요
부족한 저를 불러주신 대구극동방송 가족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진 행 자: 장로님은 언제 극동방송을 가장 많이 듣게 되시나요? 청취소감도 궁금합니다.
이광수 장로 : 저는 언제든지 새벽4시에 잠을 깰 때가 많습니다.
특히 새벽에 듣는 찬양과 멘트가 너무 좋아서
새벽기도 나가기 전에 제 서재에 가서 라디오를 켜고
「새벽을 깨우며」라는 프로그램을 들을 때 가 많습니다
주님이 새벽미명에 기도하셨던 것처럼 새벽찬양과 멘트는 정말 신선하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진 행 자: 장로님은 10년전까지 오랜 기간 우체국에서 근무를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이광수 장로: 예 저는 우체국에서 27년동안 근무하다가 우리나라에 IMF가 있던 1997년이 지나고
2000년도에 퇴직하였습니다.
퇴직 후 2004년과 2005년에 한국문인협회칠곡지부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석전6리 무성아파트 이장으로 활동하고 또 칠곡문화원칠곡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영남일보 학생문단에 투고했던
「10대의 자취」란 창작글이 매주마다 한달간 연재되었고
제가 우체국 퇴직할 즈음 시인으로 등단하여
공무원문예대전에 「낙동강」이란 졸시가 입선되는 것을 계기로
한국문인협회에 정회원이 되었으며
2004년 왜관에 구상문학관이 건립되던 시기에
문인협회 칠곡지부장직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문인협회지부장직을 역임한 일과 연계되어
칠곡군으로부터 한국향토문화대전 칠곡디지털문화대전
초기집필자로 선정되어 38개항목의 원고를 썼으며
2010년도에 칠곡향토문화연구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향토문화연구위원이 하는 일은
칠곡의 산,흙,골짜기마다 또는 강줄기에서
저마다 향토 특유의 모습으로 바라 본
칠곡의 뿌리와 문화의주체를 탐구하고 문화의 주체를 이끌어 온
역사의 인물을 찾아내어 칠곡지역의 미래지향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칠곡문화원에서는 우리 향토문화연구위원과 지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칠곡문화」지가 해마다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1년도 후반기에 저는 석전6리 이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직전이장님의 추천으로 주민대표회의에서 선출되어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장의 직무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처럼 겸손한 직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화합을 조성시키고
주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 행 자: 장로님의 신앙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장로님을 사모님께서 전도하셨다고 들었어요
이광수 장로: 그렇습니다. 제가 스물여덟살 노총각이던 때
너무도 키가 작은 저의 육신의 결점으로 인해 맞선을 볼때마다 퇴짜를 맞았고
이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패배감을 가지고 있던 제게도
어느날 사랑의 서곡이 들려왔습니다. 그 날을 저는 정녕 잊지 못합니다.
소주를 두병,세병 마셔도 한이 차지 않던 그런 서러움 속에서
이제 마지막 맞선이라고 절규까지 하며 맞선을 보던 날
저는 결과도 보지 않고 낙심부터 하였지만
며칠 후 장모님께서 저를 만나 하신 말씀은
제 가슴이 뭉클하도록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모님 말씀인즉
사람의 겉모양은 살아가는데 큰 장애가 안되겠지만
꼭 약속해야 될 사항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게 무어냐고 반문했더니 기독교 집안에서는 예수믿는 사위를 얻는 것이
가장 축복이라고 하셨습니다.
일단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마냥
그때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던 저는
우리 부모님 승낙여부도 개의치 않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그냥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였습니다.
막상 결혼 후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일에 큰 장애가 된 것은
우리 부모님의 반대였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집안에 평화를 위해 교회나가는 일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집안에서 자란 저는 장모님과의 약속을 잊고
많은 세월을 무의미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장모님께서 임종하시기 며칠 전 처가에 갔을 때
중병으로 지쳐 야위실대로 야위신 장모님께서 저를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이서방 내 소원은 이서방이 예수를 믿고 사는 것이야”
애원하실 때 내마음이 너무 죄스러워 장모님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 후에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제게 신앙이 처음 들어오던 때 새벽기도는 저의 생명이었으며
새벽의 단잠 속에서도 기도시간만 되면 교회의 종소리와 은은한 찬송가가
저를 깨워 일어나 보면 교회는 아직 깜깜하였습니다.
저는 저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은혜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진 행 자: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시면서 주님께 받은 은혜나 감사의 제목들이 있다면
방송가족들에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이광수장로: 저는1981년 10월 17일에 세례를 받았고
1988년 4월10일에 집사장립을 받았으며
2000년 9월 23일에 장로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장립집사로 피택될 때 정말 하나님 은혜와 감사로
넘쳤다고 기억됩니다.
제가 그 때는 우체국근무시절이라 직장에서 숙직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장립집사로 피택되기 바로 전날 밤이었어요
숙직을 하면서 깊은 밤 중에 저는 잠잔 것도 아니요
깨어있는 것도 아닌 몽상 속에서 저의 죄악을 떨어트리고
저를 인도해 주시는 천사의 포옹을 받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영감 속에서
꿈을 체험하고 새벽을 맞이하였을 때 ..
저는 이 날 안수집사로 피택됨을 깨닫는
놀라운 순간임을 깨달았으며 그 날 주일 날 장립집사로 피택되었습니다.
또 우체국신우회를 맡아서 일할 때 어려운 직원들을 심방하고 함께 기도할 때에
제가 오히려 큰 은혜를 받았으며 한국어린이재단 어린이와 결연을 맺어
그 어린이를 저희집에 초대하여 방학동안 함께 지내며
우리교회에 가서 아내와 함께 그 어린이를 위하여 기도할 때
너무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진 행 자: 이 쯤에서 쉬어갈텐데요.장로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은 무엇인지요?
(그 이유도 말씀해 주세요)
이광수 장로: 「저 장미꽃 위에 이슬」찬송가 442장을 좋아합니다.
매절마다 음절이 너무 부드럽고 애절해서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지나온 저의 신앙생활이 떠오르며
너무도 부족하고 미숙한 믿음이었지만
그 믿음의 시련들이 장미꽃 위에 이슬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따뜻하게 다가오는 찬송입니다
* 네 극동방송 febc 초대석, 오늘은 왜관제일교회를 섬기시는 이광수 장로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진 행 자: 장로님은 왜관제일교회를 섬기고 계신데,
저희 극동방송에 왜관제일교회 성도님들께서
문자참여를 많이 해주고 계세요 이번 기회에 교회소개 자랑도 좀 해주시고,
목사님 소개도 좀 부탁 드립니다
이광수 장로: 우리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로서 1960년에 창립하였으며
그동안 교회가 부흥 발전하여 세 번째 성전건축을 하였습니다.
현부지에 대예배실 좌석 600석과 소예배실, 목양실,당회실, 식당,카페 등이 있고
구 교회건물은 철거하지 않고 전도실, 체육시설,유아놀이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빈곤,노령계층을 위한 무료급식소인 ‘칠곡 사랑의 집’을 운영하며,
사랑의반찬나누기,미자립교회 지원 및 청년들의 해외선교와 봉사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당회,제직회,주일학교 유년부,초등부,중고등부, 청년부 등의 교회학교와
제1,2,3,4남선교회와 제1,2,3,4,5,6여전도회 등 300여명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교역자로는 담임목사님과 전임전도사님,
여전도사님,교육전도사님이 각각 1분씩 계시고,
장로는 원로장로 5인,은퇴장로 1인, 시무장로 9인,협동장로 1인과
집사로는 은퇴집사 1인 시무집사 14인, 협동집사 1인이 있습니다.
권사님은 은퇴권사 8인 시무권사 25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찬양대는 할렐루야 찬양대가 있으며,선교단은 제일찬양단이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심야기도회를 인도하는 심야찬양단도 있습니다
특히 셀라워십찬양은 칠곡지역의 여러선교지에 출연하여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또 왜관제일교회는 어버이날 용돈드리기행사로 경노사상을 높이고
18년째 노인대학을 운영하여 부모공경의 예절의식과 항상 낮은 곳에 임하여
봉사를 몸에 익혀나가므로 믿음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은 신우 목사님이십니다.
정말 은혜로우신 설교에 온 교우가 성령안에서 한 몸이 되어 봉사와 헌신에 힘쓰고 있습니다.
올해 50대인 우리교회 신 우목사님은 설교만 은혜로우실 뿐아니라
교회건축의 공로자이십니다.
이번 성전건축에도 행정과 예산에 밝으셔서 많은 예산을 절감하였습니다.
현재 15년을 함께 모시면서 목사님의 체육과 친교 모든 면에
탁월한 재능과 리더쉽을 발휘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한결같이 심성이 고우시고 집사님,권사님 성도님들이
서로의 의견들을 잘 조정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들이 참 아름다운 우리교회입니다.
진 행 자: 장로님은 사모님과 함께 교회사역을 열심히 섬기고 계신걸로 아는데
어떤 일들을 감당하고 계신지요?
이광수 장로: 저는 올해 우리교회 사회부 노인대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노인대학에는 사회부를 돕는 부원과 노인대학 교사와 식당봉사하시는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있으며
저는 노인대학 운영과 관리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권사직분을 가지고 있으며
전에는 여러분야에 봉사도 많이 했으나
현재는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구역장과 교회학교 초등부 기도권사로 봉사 헌신하고 있습니다
진 행 자: 이번에는 가정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먼저 가족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광수 장로: 예 우리가족 소개를 드리죠 저는 왜관제일교회 시무장로구요
저의 집사람은 박미옥 권사입니다. 저희 부부는 칠곡군 왜관읍에 살구요.
저희 아들 내외는 왜관에서 결혼하여 인천에서 살고 있으며
어린 손녀가 둘 있습니다
진 행 자: 사모님께서 장로님을 전도하셨다고 앞서 말씀해 주셨는데,
사모님과는 연애결혼을 하셨나요?
이광수 장로: 아뇨 저는 키가 너무 작아서 연애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제가 총각시절엔 경산백천동에서 살고 있었는 데
우리 이웃에 제 아내의 친정 이모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처이모님이 평소에 제모습을 눈여겨 보아왔던 모양입니다.
제가 얼굴은 아담하고 예쁜데 키는 너무 작았기에
그래서 처 이모님이 보시기엔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저와 아내사이에 오작교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하셨던 것 같아요
어느때부턴가 열심히 저를 위하여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것 같던 낌새가 보이시더니
우리 아버지께 중매가 들어왔어요
그 당시 우리 아버지도 저의 혼사 때문에 노심초사중이라 은근히 반가웠던 모양입니다.
두 분의 극진한 노력으로 아내와의 만남이 성사되는듯 했는데요 호사다마라던가요
어느날 소식이 들려오는데 처고모님이우리의 만남을 반대하신다는 거예요
이유는 키가 작다는 이유였죠
그러나 처이모님의 설득과 권유로 결국은 경산 모 다방에서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키가 작은 저의 단점을 되도록 컴프러치하려고
아버지와 다방에 일찍이 도착하여 자리에 앉아 버텼조
그리고 미래의 아내와 장모님 되실 분이 다녀갔고
아버지와 저는 좀 더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어요
그 후 며칠동안 통 소식이 감감하여 걱정했었는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장모님은 워낙 신앙이 깊으신 분이라 아버지께 신앙문제를 다짐 받으셨고
정작 당사자인 제 아내는 그 당시 제 키가 조금도 작아보이지 않고
처고모님께서 반대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되더라는 뒷얘기를 들어보니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의인연이 된 것 같아요
또한 친정 언니와 형부도 반대할 줄만 알았더니 승낙이 떨어졌더래요
진 행 자: 사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크실 것 같은데 이 시간을 빌려서
그 마음을 전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광수 장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어요 읽을께요
여보 당신을 사랑하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내게 택해 주신 것을 늘 감사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당신에게 무엇하나 살갑게 해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당신의 사랑만 듬뿍 받은 나를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두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항상 당신이 이웃에게 베푸는 그 사랑이
꼭 예수님을 닮았기에 당신이 더 사랑스럽고
나는 장가 잘 간 복있는 놈이라고 자부하오.
하지만 당신을 일평생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안쓰럽구려
이제는 다니는 직장 그만 두고 좀 편한생활 해야할텐데 하고
수십번 가슴으로는 되뇌어도 사는 게 무엇인지 뜻대로 되지 않아
늘 안타깝기만 하오
특히 고된 직장생활에 시달려 팔다리 허리가 아프다고 할때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새벽기도에서 당신의 아픈 부분들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소원하곤 한답니다
특별히 아들 며느리 손녀들을 사랑하는
당신의 섬세한 마음씨에 내마음이 항상 행복하오
당신의 그넓고 깊은 사랑을 닮아
인천의 아들 며느리 손녀들이
할머니라면 끔찍이도 사랑하고
멀리 있어도 매일매일 안부를 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생일을 꼭꼭 챙겨주는 효자효부가 되었구료
여보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진 행 자: 이번에는 자녀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아드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이광수 장로: 성주 초전에서 공무원 재직 중에 있을 때
아내의 친정이었던 경산에서 아들이 태어났지만
제가 곧 왜관으로 전근되었기 때문에
아들은 왜관이 고향이 되었어요
유치부시절부터 왜관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여
청년으로 장성하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들은 1991년 3월31일에 왜관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함께 성가대를 봉사하는 권사님 딸과 연애결혼하였습니다.
결혼 후 곧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과 동시에 인천으로 직장생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산돌교회에서 2011년 5월22일 집사임직을 받았습니다.
외아들 며느리지만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열아들 부럽지 않고
아들,며느리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아들은 지금 인천산돌교회에서 재정부에 봉사하고 베이스기타도 연주하며
며느리도 유치부 교사로 봉사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아름답게 충성하는 아들내외와 귀여운 손녀들을 생각하면
제게는 정말 과분한 행복이라 여겨집니다
하나 님께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진 행 자: 아드님이나 며느님께 평소 아버지로서 가장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시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광수 장로: 아들아 며늘아가
교회랑 직장이랑 너무 바쁠텐데 바쁘다고 서둘지말고 그럴수록 쉬어가면서
차분히 일할 수 있기를 당부한다,
이 곳 아버지도 일상이 나름대로 약간 바쁘다.
노는 것 같으면서도 내 나름대로의 일이 있는가 하면
엄마 출근할 때 부탁한 일들을 꼭 해야 되니까
하루시간 보내기가 그리 녹녹치 않음을 절실히 느끼는구나.
시간은 왜 그리 빨리 지나가는지! 세월이 유수라더니 유수보다 더 빠른 것 같다.
그래도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 아버지가 엄마에게나, 동네에서나, 교회에서나,
지역사회 어디서든지 꼭 있어야 될 사람은 분명한 것 같아서
혼자나마 자부심을 느끼는거다.
아들아 너도 고생은 되지만 늘 기쁘게 살아가기 바란다.
아버지는 아버지보다 몇곱절은 더 훌륭한 네가 있어서 든든하고 기쁘다.
항상 건강 유의하고 주님의 축복과 행운이 늘 너희 내외와 아이들에게
함께하길 기도하마. 다시 만날때까지 잘있어라 안~녕
진 행 자: 마지막으로 소망이나 기도제목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광수 장로: 오직 하나님만이 어떤 섭리에 의해 도구로 사용하실 장래의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비록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큰 포부를 가지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저도 사랑하는 이웃으로부터
제게 요동치 않는 신앙의 정서를 갖출 수 있도록
기도를 받고 싶습니다
인천아들 내외와 어린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직장생활과 가정, 그리고 아이들 돌보는 일로 항상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늘 기도하며 지혜롭게 살기 바라고 기쁘고
건강하게 알콩달콩 행복한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아내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제 너무 무리하게 과로를 하지 말고
이제는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자는 부탁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생전 처음 인터뷰 하신다고 수고 많으셨네요~ 아부지^^
늘 기도하며, 지혜롭게 살기 바란다는 말씀 꼭 기억할게용~~
아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