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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청사 안으로 설이매, 기비, 기진, 어머니 삼칠성주, 연은소 등을 안내한 해모수는 동북부여의 안정에 관한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고 그들의 조언을 구한다.
얘기가 대강 마무리된 후, 삼칠성주가 해모수에게 묻는다.
“해로운 대인이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데, 병문안 갈 계획은 없느냐?”
“네, 그렇지 않아도 새 궁궐 기공식을 끝낸 후, 직접 장당경을 방문해 맏형에게 문안하고 폐하도 알현할 참이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폐하께 사례를 드리고, 마땅히 맏형과도 앙금을 풀어야 하느니라.”
그 때 설이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이건 제 의심인데요, 해로운 대인은 중병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그가 중병에 걸린 척 가장하고, 덫을 놓은 게 아닐까요?”
삼칠성주가 되묻는다.
“공주마마, 궁에 계실 때, 해로운 대인에게 병문안을 가보시지 않았나요?”
“다녀왔는데요, 확실히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혹시 계략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나와 기비왕자님 남매 등을 풀어준 것도 해모수를 안심시키기 위한 조처가 아닐까요?”
“공주마마, 제 우견으로는 계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실로 하늘이 그에게 징벌을 내리신 것 같아요. 그러나 공주마마의 의심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것이 만일 그의 계략이라면 당연히 찾아가서는 안 되죠. 그 길은 곧 사망의 첩경이 될 터이니까요.”
그들이 이런 저런 염려를 하고 있을 때 청지기가 밖에서 들어와 아뢴다.
“전하, 장당경으로부터 손님이 당도했습니다.”
그가 해모수를 “전하”라고 부른 건, 해모수가 동북부여후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어서 들라 하시오.”
청지기의 안내를 받고 아불한이 들어오며 해모수에게 엎드려 절한다.
“어서 오시오. 폐하는 옥체 건강하신지요? 장형은 몸이 불편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해모수가 연달아 묻는다.
“네!”
아불한은 짧게 대답하고 해모수에게 해로운의 서한을 바친 후, 주변에 있는 설이매 공주와 기비 기진 남매, 삼칠성주 등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올린다.
아불한에게 자리를 권한 후 편지를 열어보는 해모수의 표정이 묘하다. 그가 눈을 들어 아불한을 바라보며 묻는다.
“맏형의 병세가 매우 위중한가?”
“네, 그런 것 같사옵니다.”
“내가 며칠 내로 곧 장당경에 가서 폐하를 알현하고, 맏형을 찾아뵙겠다고 전해주게나.”
“네, 전하.”
아불한의 태도가 깍듯하다. 아불한은 이삼일 쉬었다 가라는 해모수의 권유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종자들을 거느린 채 장당경으로 출발했다.
그가 떠난 후 설이매가 해모수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장당경에 갈 작정인가요?”
“공주마마의 뜻은?”
“가시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만에 하나, 중병을 가장해 덫을 놓고 있다면 이번만큼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해모수가 침묵을 지킨다. 삼칠성주가 잠잠히 있다가 입을 연다.
“맏형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고서도 병문안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며, 정로가 아닙니다. 설사 거짓이라 하더라도, 찾아가 뵙는 게 좋을 듯합니다. 천제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시고 피할 길을 내 주실 것입니다.”
삼칠성주 묘고미향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잇는다.
“그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도 없고, 해모수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가 모략이 극히 뛰어나고 계책이 무궁무진한 걸 나도 잘 알지만, 어떤 계교로도 천제님의 지혜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삼신일체 상제께서 우리 편이시니, 우리는 안심해도 됩니다. 그가 거짓을 취해 와병 중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참됨을 취해서 정로로 나가는 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성주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미리 대비해 위험을 사전에 피하는 것이, 또한 상제님을 공경하는 이들의 지혜가 아닐까요?”
“맞습니다. 정 의심스럽다면,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튿날 새 궁궐 기공식에 앞서 해모수는 하나님께 대제를 올렸다. 그 날이 마침 오월 열엿새 날이다.
저녁이 되자 맑은 밤하늘엔 휘황한 보름달이 누리를 비추었다. 웅심산성의 백성들은 들뜬 분위기에서 잠들지 못하고, 각기 이웃집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저녁에 이웃집으로 마실(모실)을 가서 함께 모여 노는 풍속은, 중국인들과 다른, 우리 배달겨레의 특특한 관습이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옛 사서들에도 기술되어 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농어촌마다 마을회관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주로 거기 모여 노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저녁에 사람들은 자주 이웃집에 모실을 가서 함께 놀았다.
그 날 밤, 그러나 해모수는 자신의 집에서 네 시녀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초경이 좀 지났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나리, 밖에서 설이매 공주마마께서 나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백선의의 말에 해모수가 놀라 옷을 입고 나가보니, 설이매가 단신으로 위아래 흰옷을 입고 백색 월광을 맞으며 고고히 서 있었는데, 그 자태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저를 따라 오세요!”
설이매 공주는 다짜고짜 한 마디 속삭이듯 내뱉고 어디론가 그를 데리고 갔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해모수 집의 뒤편, 인가가 드문 동산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성벽이 나타나고 성벽 아래에는 환꽃 나무가 무성했다. 여긴, 해모수가 어렸을 때 늘 놀던 곳이다.
“여기에 앉아요!”
설이매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해모수는 영문을 모른 채 풀밭에 앉았다. 설이매도 해모수 곁에 나란히 앉는다. 짙은 향내가 해모수의 후각을 자극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설이매가 하늘의 달을 쳐다보고 있다가 허리에 찬 단검을 풀었다. 해모수의 청동단검이었다. 그녀는 해모수 앞에서 검집을 쑥 뽑았다. 새하얀 칼날이 달빛에 혼백을 흔든다.
“웅심산성 청사 안에 당신의 빈소를 만들 때, 난 이 검으로 내 피를 흘려 당신의 지방문紙榜文을 손수 썼어요. 당신의 혼백 속에는 이미 내 피가 들어가 있어요.”
“······?”
“당신은 여루 임금의 자서전을 잘 아시죠? 환화궁의 매화현설이 이 천명신검에 자신의 피를 어떻게 묻혔고, 또 천명영검으로 완산일매 매아리와 다물 임금이 어떻게 엮어졌는가를.”
해모수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설이매의 향수 냄새가 너무나 강렬해 머리가 아파오려 했다.
설이매는 갑자기 칼날을 해모수의 목에 들이대었다.
“당신이 나와 맹세하지 않으면, 오늘 이 검으로 내가 죽든지, 당신이 죽든지, 둘 중 하나는 죽을 거예요.”
해모수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의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다.
“날 따라 해요!”
설이매는 여전히 검날을 해모수의 목에 댄 채 말했다.
“나 설이매와······”
그 때다.
“잠깐만요!”
어디선가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설이매가 놀라 멈칫하는 사이, 해모수는 번개같이 몸을 젖히며 설이매의 팔목을 비틀어 천명신검을 빼앗음과 동시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그 때 누군가가 현장으로 일진의 향취와 함께 뛰어들었다. 해모수가 보니, 그녀는 기진 공주였다.
“두 분은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기진이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해모수가 대답했다.
“흥! 별일 아니긴.”
설이매가 해모수의 말을 부인하며 덧붙였다.
“우린 예전에 천광검天光劍으로 맺은 부부의 연을, 지금 하나님 존전에서 맹세로 확증할 참이었는데, 기진 공주가 방해한 거예요.”
“그런 일이라면 제가 왜 빠져야 하나요?”
기진이 물었다.
“이리 오세요. 제가 재미있는 얘기를 두 분께 들려드리죠.”
돌연 해모수가 달빛마냥 명랑하게 말하며 풀밭에 앉았다.
설이매와 기진이 그의 좌편에 자리를 잡는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해모수가 청동검을 들어 달빛에 비춰보며 천천히 말했다.
“색불루 임금께서 천명신검과 천명영검을 제작하신 이래, 한 때 이 검을 쟁취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혈육 간 싸움이 있었고, 또 우리가 겪었듯이 색불루 임금의 보물 쟁탈전도 있었지만, 근래에 이르러 강산에는 이 검에 관한 또 하나의 전승이 생겼지요. 뭔지 아시나요?”
“······?”
“청동단검으로 맺은 정은 결단코 풀 수 없다는 풍문이죠. 여루 임금과 매화현설이 이 검을 주고받더니, 갖은 질곡을 겪은 후 결국 둘이 하나로 엮어졌고, 다물임금과 완산일매 매아리도 청동단검으로 얽혀져 마침내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동단검으로 맺은 사랑은 죽음으로도 해체될 수 없다는 설화가, 그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설이매와 기진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제 그 모든 전설을 일거에 없애버리려 합니다. 이 검과 천명영검을 거두어, 불어 넣어서 녹여버릴 작정입니다.”
“얘야! 그건 안 된다!”
뜬금없는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달빛 가운데 단아한 모습을 나타냈다.
“그건 색불루 임금께서 하늘의 계시로 만든 검이다. 그 검에는 ‘삼삼오륙칠칠三三五六七七’이라는 하늘의 숫자가 새겨져 있지 않느냐? 넌 그 숫자의 중요성을 잊었느냐?”
“······.”
“별유진보삼칠중別有眞寶三七中. 청동단검은 참 보물이 무엇인가를 가리켜 주는 검이다.”
“어머니, 하지만 그 별유진보는, 우리의 영혼이고, 저 하늘의 신궁神宮(천국)이며, 나아가 배달겨레 백성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저는 하늘의 신궁과 백성을 얻었으니 그 보물을 획득한 게 아닌가요?”
“아니다. 내 영혼과 하늘의 신국神國과 백성도 보물이지만, 또 다른 의미의 별유진보가 삼삼오륙칠칠三三五六七七 속에 따로 있음이 분명해.”
이 암호 같은 숫자의 의미는 먼 훗날 대진발해국의 2세 고황제 대조영 시대에 비로소 밝혀지고, 그에 따라 색불루 임금의 시구, “별유진보”의 내밀한 뜻이 확연히 드러난다(후속 졸저 <연연세세 모란화야> 참조).
血 得 天 下 揚 世 名 혈 득 천 하 양 세 명
喜 見 萬 金 似 露 生 희 견 만 금 사 로 생
千 年 光 陰 擧 一 杯 천 년 광 음 거 일 배
別 有 眞 寶 三 七 中 별 유 진 보 삼 칠 중
천하를 피로 얻어 이름을 드날리고
만금 보아 기뻐해도 이슬 같은 인생이네
천년의 세월도 한잔 술에 지나가니
삼칠 중에 따로이 참 보배가 있느니라
삼칠성주가 해맑은 만월을 쳐다보고, 색불루 임금의 시문을 호젓한 달빛 아래 낭랑하게 읊으며,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해모수에게 말했다.
“그 검을 잠시 이리 다오.”
해모수가 멍한 표정으로 검을 건네자 삼칠성주가 설이매에게 부탁했다.
“공주마마께서도 그 검집을 제게 잠깐 넘겨주시겠습니까?”
설이매 역시 어리바리한 얼굴로 칼집을 삼칠성주에게 주었다. 삼칠성주는 검을 집에 꽂은 후 말했다.
“이 검은 대단히 상서로운 물건이지만, 잘못 쓰면 아주 큰 재앙을 초래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이 검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
“세분은 그대로 자리에 다시 앉으시겠습니까?”
해모수가 가운데 앉고 그의 좌편에 설이매와 기진이 자리를 잡았다.
“세분 모두 저를 따라 하세요.”
삼칠성주가 하늘을 우러러 달을 보더니 천명신검을 뽑아 달을 가리키며 맑고 드높은 목소리로 고요한 대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한 목소리로 그녀의 선창先唱을 되풀이한다. 마지막으로 삼칠성주가 이렇게 끝을 맺었다.
“···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이다.”
“···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이다.”
사위엔 정적이 깃들고 풀벌레 소리만이 요란하다. 교교한 십오야 둥근 달이 네 남녀의 얼굴을 환히 비추고 있다.
삼칠성주 묘고미향이 중얼거렸다.
“이 밤이 새도록 저 달빛에 취醉하고 싶습니다. 우리 여기에 모닥불이나 피우죠.”
“그래요, 어머니. 달빛에 도취하고 그리운 하늘 임금님의 아름다우심에 취해 밤새도록 노래를 불러 봐요.”
해모수가 감상에 젖은 목소리를 내며 하늘을 쳐다보다가, 눈을 돌려 설이매와 기진의 안색을 살핀다. 자신을 주시하는 그녀들의 낯은 월광을 받아 환하고 밝고 행복한 표정이다.
해모수는 다시 만월을 쳐다보았다. 그의 안면엔 평화로운 웃음이 가득했다. 설이매와 기진, 묘고미향이 보니, 달빛을 받은 해모수의 낯은 해와 같이 빛나고 있었다.
해로운은 설이매의 의심처럼, 진짜로 가족까지 속여 가며 중병을 가장한 채 덫을 놓고 해모수와 삼칠성주가 오기를 기다렸을까? 좌우간 그는 그렇게 누워 있다가 얼마 후 급거히 생을 마감한다.
해모수와 삼칠성주, 연은소, 설이매, 기비 기진 남매 등이 황궁에 도착한 것은, 공교롭게도 해로운이 운명한 바로 그 날이었다.
해모수를 양자로 삼아 제위를 물려주라는 해로운의 소청은, 해로운의 서거 후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에 극도로 실망한 나머지, 연로한 고열가 임금은 이듬해인 서기전 238년, 제위를 버리고 옛 아사달로 은퇴했으며 진조선 즉 대부여에서는 임금 없이 육년 동안 오가五加의 대신들이 공화정을 펼친다.
그로부터 육년 후 서기전 232년 해모수가 군대를 이끌고 장당경에 이르자, 대신들은 별 저항 없이 해모수에게 나라를 넘겼다<북부여기>.
그가 나라를 세우고 대부여를 접수한 데는 번조선 기비의 도움이 가장 컸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해모수 임금의 재위 19년인 서기전 221년에는 진왕秦王 정政이 중국을 통일하고 이태 후인 서기전 219년에 “황제皇帝”를 참칭한다.
“황제”의 원뜻은, 고대 중국 사서에서 “하늘임금,” 즉 하나님이다. 그 이전의 중국 임금들은 모두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후대인들이 일부 왕에게 “제帝”라는 명칭을 부여했으나, 제왕에 대한 “황제” 호칭은 진왕 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먼 훗날 일본 임금은 한 술 더 떠 자신을 아예 “천황天皇(하늘의 하나님)”이라 칭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불린다.
진왕 정의 중국 통일 전 해인 서기전 222년에는 아깝게도, 일심으로 해모수를 도왔던 번조선왕 기비(재위 서기전 232-222)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기준箕準이 대통을 물려받는다.
연나라 태자 단丹은 불행하게도, 그보다 4년 전인 서기전 226년에 그의 아버지인 국왕 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태자 단이 형가荊軻를 시켜 진왕秦王 정政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진왕 정이 연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직전, 연왕 희는 진왕의 노여움을 풀고자 애꿎은 아들의 목을 진왕에게 바쳤던 것이다<사기/연소공세가>.
진나라에 의한 중국의 통일(서기전 221년)에 위기감을 느낀 해모수 임금은 이듬해인 서기전 220년, 재위 20년에, 웅심산성으로부터 백악산아사달(길림시)로 도읍을 옮기는데, 우리가 아는 북부여가 바로 해모수를 국조로 하는 나라다.
해모수 임금의 치적 중 특기할 만한 것 하나는, 태아를 가진 임신부를 공적으로 보호하는 법을 만들고,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반드시 태교부터 시작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도 태교를 중시하지만, 해모수 임금은 태교를 국법으로 만들어 장려했으니, 이 면에 관한 한, 당시의 교육법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의무교육보다 더욱 진보하고 한 수 높았던 셈이다.
해모수 임금 재위 45년인 서기전 195년은, 해모수 임금의 졸년이자 연나라 사람 위만이 번조선에 망명한 해다.
위만은 번조선에 찾아와 망명을 구하면서, 진국(종주국) 대부여의 임금 해모수의 재가를 요청했으나 해모수가 단안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번조선 왕 기준(해모수의 친구였던 기비의 아들)의 허락을 받아 번조선 변경에 똬리를 틀었다가, 다음 해에 술수로써 번조선 왕권을 빼앗아버린다.
이때부터의 번조선을, 그래서 역사는 위만조선이라 부른다.
위만조선은 그 후 서기전 108년, 진秦나라를 이은 중국의 새로운 통일제국 한漢나라와 건곤일척의 대전을 벌이다가, 내부자들의 배신으로 한나라에 의해 망한다.
위만이 번조선에 망명하던 그 해인 서기전 195년 아니면, 그가 번조선을 찬탈하던 서기전 194년에, 막조선의 평양 정권도, 난하 하류 유역의 낙랑 사람 최숭에게 도성을 빼앗기고 북쪽으로 물러나며, 대동강 유역에는 후대의 고구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으로 유명한, 바로 그 낙랑국이 건국된다.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비의 아들 기준 왕은, 서기전 194년 막조선의 남부, 지금의 (충남 직산 아니면) 전북 익산으로 쫓겨 와서, 평양의 정권으로부터 100리 영토를 하사받고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후마한後馬韓(전마한은 곧 막조선)이다.
단군조선이 저물어갈 무렵에 태어난 해모수 임금은, 이렇게 역사의 차가운 회리바람이 단군조선의 땅 전체에서 여전히 어지럽게 휘몰아치고 있을 때 별세했으니, 난세에 태어나 난세에 죽어간 셈이다. 출생한 해는 서기전 261년이며, 돌아가신 때는 서기전 195년 겨울이다.
그가 자라난 고향이자 처음으로 나라를 연 곳은 웅심산성이다. 그의 유해는 웅심산 동쪽 기슭에 묻혔다. 향년 67세였다. 그의 아들 모수리가 임금으로 등극했다(이상, <단군세기> <북부여기> 외).
아!
이렇게 진조선이 대부여 - 북부여 - 고구려로, 번조선이 위만조선 - 한사군으로, 막조선이 낙랑국, 동예, 남옥저, 후삼한(마한 진한 변한), 백제, 신라, 가락국 등으로, 단군조선의 삼조선이 완전히 해체되면서부터,
우리민족은 사분오열, 아니 40분50열 되어 국력이 점차 약화됨과 동시, 중국의 학문과 문물에 젖어들다가 훗날 오국시대(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삼국시대에 이르러 중국학문과 중화中華 정신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 지배의 마법은 무려 1천 수백 년 동안 지속되다가,
기독교와 서양문물이 밀물처럼 들어오던 대한제국(1897-191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오히려 각 분야에서 동서남북 사방의 나라에 한류를 전파하고 있다.
구려하句麗河(지금의 요하) 강변의 고리국高麗國 출신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는, 그의 현손玄孫인 고주몽(재위 서기전 58 - 서기전 20)의 고구려로 계승되었으며,
해모수가 장당경을 접수하던 서기전 232년부터 900년만인 서기 668년에, 대고구려는 연남생과 연헌성 부자가 이끄는 고구려 반군叛軍 및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망한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 외).
그 직후, 북동부 고구려에 속한 속말말갈의 지배층이자, 해모수와 고주몽의 후손이며 고구려 왕족 혈통이던 대중상, 대조영 부자(고구려의 5부 중 북부 = 흑부 = 제나부를 다스리던 고구려왕족 즉 고추대가 가문이었음)가,
고구려 유민들을 거느리고 해모수의 옛터전인 동북부 지방에 후고구려, 즉 대진발해국을 세워 세력을 점차 뻗치게 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 海東盛國”이라는 존경의 칭호를 얻고,
근세 일본인으로부터 “만주벌에 핀 공전지미화 空前之美花”라는 영예로운 찬사를 받게 되는데,
우리의 다음 이야기는 바로 그 나라의 초석을 닦은 대조영에게서 꽃을 피울 것이다. (*)
<해와 같이 빛나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필자의 다음 소설 <연연세세燃戀洗世 모란화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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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4. 21.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