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낙죽장의 공개행사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전통공예 그 아름다움에美치다.
21일 오후3시~4시 시연, 그 일정에 맞춰 오전 9시에 계심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사평에서 우회전 동복, 창평에서 장성의 신작로로 고창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 했습니다.
이제 일년쯤 된 애마를 길들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도 좋겠다 150~160으로 밟아 봅니다.
한참을 가는데 뒤에서 벤츠가 따라 오다가 뿌아아강 하는 굉음을 울리며 추월합니다.
똥구멍이 네개인 놈이 바람을 가릅며 앞섭니다.
이에 나도 엔진은 벤츠다 하고 170을 놓고 쫒아 가는데 보일듯 보일듯하면 시야에서 멀어져만 갑니다.
한 백리길은 쫒은것 같습니다.
속담 생각이 나네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랭이가 찢어 진다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마자 막히기 시작합니다.
두시간 여유로 잡았는데 초조해 지기 시작 합니다. 옆에 버스 전용길로 작은 차들도 씽씽 달립니다.
나도 그줄에 따라 달리는데 카메라를 휙 지나칩니다. 아이쿠 또 얼마를 달리다 또 또........
오늘 계심헌인 캐런티가 50만원인데 벌점에 벌금은 어떨런지! 그러나 사쩍인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공쩍인 것이야 말해 무삼
우여곡절 끝에 한시간 전에 전수회관 지하 주차장에 도착 하였습니다.
2층 전시실, 소목장이 짠 참죽나무 침상 위에 시연 준비를 하고
참죽나무 침상 위에서 기본으로 하는 낙죽하는 자세를 취해 봤습니다.
뒤의 화면에서는 낙의 우리나라 시초인 밀양박씨 수산 박창규의 족보 문헌이 펼쳐지고.......
2007년 3월 국립문화재연구소 `낙죽장` 제작시 낙화병풍 앞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이 나오는 가운데......
중학교때 부터 한국화를 배우고 현재 대학원에 진학 했다는 박주희양! 작품방향에 막연함을 느끼던차에 담소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혼돈의 과정을 격고 넘어 온 계심헌인 인지라 방법을 훤히 알고 있어 전해 주지만 의식의 크기 만큼만 알아 들으니 대개는 공염불로 끝납니다. 그것이 인연법 이기도 하지요!
전수회관 직원 입니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성남의 형님댁에 가서 묵고 다음날 모친을 모시고 내려 옵니다.
서해대교 휴게소에 처음으로 들려 봤습니다. 어머님 구경시켜 드린다는 생각에.... 우리나라의 저력을 잠시 느껴 봅니다.
울엄마! 고령 임에도 비교적 건강 하십니다.
울엄마가 카메라를 잡으셨습니다.
멀리 1975년의 추억으로 충남 보령 미산면 용수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충북 보은의 낙화장 김영조선생님과 처음인연으로 여행한 곳인데 그분의 4촌 형님댁으로 기억 납니다.
철 모르던 시절, 그님의 입담에 폭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명당 모란혈 이라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일제시대에 일본인들도 그 곳에 묘소를 썼다고 들은 기억과 그 산세에 대한 영상이 깊이 새겨진 터여서 언제 한번 다시 와 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후로 35년 만에 맘먹고 시간을 낸 오늘입니다.
현재는 주암댐 모양으로 이곳도 보령댐이 만들어져 옛 추억의 마을 용수리는 수몰되었습니다.
성인의 팔로 두아름이나 됨직한 은행나무, 아랫동리 수몰 된 곳에서 옮겨 왔습니다.
양각산 실제 보이는 그림보다 높고 험한 암산입니다. 삼사당 앞에서
35년여를 마음에 담아 놓았던 비보명당터로 하늘에서 보면 모란꽃이 피어있는 듯한 형세,
이제 그 마음을 내려 놀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찿아 온 이곳, 위 프랑카드에 적혀 있는것은 녹음을 틀어논 염불 소리고 굽이 굽이 가파른 오솔길은 암자 앞 까지 세멘트로 두껍게 덮혀있고 확성기 염불에 파라볼라 안테나에 곳곳에 시주공덕비, 천년의 암자(古庵)는 인간의 욕심이 버려논 속세였습니다. 그안에 무슨성불이 있고 해탈이 ............
계심헌인도 육옷 벗으면 한줌의 재로 허공에 뿌려 질것을!
좁은 명당의 터가 내 마음 안에 이미 없으나
어린시절 꼿힌 기억이 아련한 터라
그 기억에 묻어있는 감정조차 퍼 버리려고 일부러 찾아온 길이라
엄청난 마음의 파괴는 자연파괴로 이어져 아련한 기억의 정을 떼는데 큰 도움이 됐음이라........
금 강 암, 부처님이 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 미혹한 중생들은 당신 이름 팔아 세세생생 먹고 살고 있으나 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기복신앙의 마구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참회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벗어 났습니다.
보령에서 길을 지나다 석재 공장에서 서재필기념공원 기증수 표석 할 청석(검은 색으로 벼루 만드는 돌) 보령석 남포석등 10점을 선택해서 뒤에 얹어 방지턱 조심하며 계심헌에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회원님들 씨유 투머로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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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상이 담긴 자료 감사합니다.
관심을 가져 주는 분들 있기에 자주 컴 앞에 앉습니다. 외도인줄 알면서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