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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장군께서 어떻게 여길?”
“실은···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안에 여미아 아가씨는 계신가요?”
그가 주저하다가 연거푸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네,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고조영 장군과 폐하의 비자인 미시아 아가씨도 와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예의일 것 같군요.”
“아니에요. 그분들도 장군님을 크게 반길 것입니다.”
무유서가 못이기는 척하고 이루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조영 등이 일제히 그를 반겨 맞았다.
“장군,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소.”
조영이 무유서에게 인사했다. 무유서가 자리를 잡고 앉자 미시아가 대뜸 물었다.
“장군께선 여기에 자주 오시는가요?”
“아, 아닙니다. 오늘 제가 마침 비번인지라 물어 물어서 처음 찾아왔습니다.”
미시아의 어색한 질문에 무유서가 난처해하자 여미아가 공기의 흐름을 수습했다.
“장군님은 평소 심성이 착하고 무용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의를 추구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간밤의 꿈이 참 뒤숭숭해서, 마침 여미아 아가씨가 생각 나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실례라뇨? 저희는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루하가 대답했다.
“혹시 무슨 악몽이라도 꾸셨나요?”
여미아가 묻는다.
“예전에 우리가 여미아 아가씨에게서 경교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감명 깊게 두어 번 들은 적이 있었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임금, 천제께서 장차 온 천하를 심판하신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무유서가 거두절미하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사실입니다.”
여미아가 짧게 대답했다.
“제가 바로 어젯밤에 그런 무서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의 임금이라는 분이 나타나, 우리 중화의 사람들을 심판하셨는데,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저도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가 꿈을 깨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미아가 요청했다.
“하늘의 임금이 눈같이 하얀 백마를 타고 하늘로부터 출현하셨는데, 그 분의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었습니다.”
무유서는 꿈을 회상하는 듯 갑자기 몸서리를 치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때 하늘에서 우레 소리 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죄 없는 고高씨들을 죽인 저 이李씨들을 심판하라! 무죄한 이李씨들을 죽인 저 무武씨들을 심판하라!’ ”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우레 같은 음성이 들림과 동시에 백마를 탄 하늘임금의 입으로부터 날카로운 검이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습니다. 혼비백산한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다가 꿈에서 깨어났는데, 어찌나 무서웠는지, 밤중에 일어나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있던 여미아가, 무유서의 말이 그치자 입을 열었다.
“방금 전, 미시아 언니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우리가 꿈 얘기만 나누게 되네요.”
여미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계속했다.
“미시아 언니의 꿈에서도 우리가 취해 내야 할 바가 있지만, 무유서 장군님의 꿈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여미아는 무유서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에게 말했다.
“장군님, 미시아 언니가 꿈에 살생부록을 봤는데, 그 안에 장군님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네?”
무유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가 만든 살생부록입니까?”
“누가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시아 언니의 꿈에도 일점一點의 계시가 있고, 장군님의 꿈에도 하늘의 지시가 들어있음이 분명합니다.”
“아가씨께서는 해몽에도 일가견이 있나보군요.”
“그냥 제 속에서 나오는 대로 말할 뿐입니다. 특별히 해몽학解夢學을 공부한 적은 없고요.”
무유서는 여미아의 영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선에 뭔가 깊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이 성녀 같은 천하절색이 대단히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런 인상은, 여미아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공유하는 감정이다.
“제가 꿈속에서 들은 음성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무유서가 매우 진지한 태도로, 마치 학생이 선생에게 질문하듯 물었다. 여미아가 잠깐 바깥에 귀를 기울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어쩐지 이 자리에 곧 태평공주마마께서 오실 것 같은데, 무 장군님은 여기에 계셔도 괜찮은지요?”
좌중이 여미아의 예언 같은 목소리를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무유서가 대답한다.
“네, 괜찮습니다. 그녀가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습니까?”
“우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장군님께서 그 꿈 얘기를 절대로 다른 분들에게 발설하시지 말아달라는 점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함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미아가 자신의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소 엄숙한 목소리를 발하고 천천히 설명했다.
“제가 무 장군님의 꿈 이야기를 듣고 바로 이런 해석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죄 없는 고씨들을 죽인 이씨들을 심판하라’는 음성은, 당나라 이씨 황가가 죄없는 고려의 고씨 황가를 뒤엎고 수많은 고려백성들을 죽이며 그들을 고토에서 떠나 이국으로 유리하게 만들었으니, 당나라 이씨들에게 심판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심판이?”
“그 뒤에 들린 음성이, ‘무죄한 이씨들을 죽인 저 무씨들을 심판하라’라고 했죠?”
“네,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심판에 관한 해답이 바로 그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이씨들을 심판하는 이는 무씨입니다. 무씨의 손에 의해 많은 이씨들이 도륙당할 것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것은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무서운 말이었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관리들끼리 서로 쳐다보고 인사할 때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두 사람 이상이 어딘가 모여 대화를 나눌 수도 없던 폭정의 시대가 아닌가?
여미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때까지 당나라 이씨 황가의 여러 종실들은, 대당의 정권을 장악하려는 무씨, 무조武照, 무 태후에 의해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형을 당했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그 이후, 이가李家 친왕들 다수가 도륙을 당하고 멸문지화를 겪는다. 무 태후는 그야말로 메로 떡을 치듯 이씨 황가를 두들겨 팼다.
“그렇다면, ‘무죄한 이씨들을 죽인 저 무씨들을 심판하라’는 음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무씨가 아무런 동정심이나 인정사정도 없이, 과도히 잔혹하게 이씨들을 박멸하기 때문에, 결국 무씨에게도 그런 심판이 임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네, 그게 사실입니까?”
“그 꿈이 하늘로부터 온 계시가 맞다면 이는 정확한 해석입니다.”
무유서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하늘은 누구의 손을 빌어 무씨를 심판할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장군님의 꿈에도 그건 계시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옛말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우리 고모인 태후마마의 정권이 얼마나 갈지 걱정입니다. 이토록 포악한 학정을 일삼는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이씨들처럼 처참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무유서는 자조 섞인 한탄을 늘어놓았다.
“나도 무가武家로서 태후의 은덕을 입어 지금 어깨를 우쭐대고 있지만 그 때 가서 세상이 뒤바뀌면 나 역시 파리 목숨일 것입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하늘 임금의 입으로부터 나온 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광경이 안전에 떠올라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제가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일단 하늘의 임금께 귀의歸依하시고, 기회를 엿보아 관직을 버리고 초야草野로 들어가시면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미아가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 사나이가 태어나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큰 뜻을 저버리고 초야로 숨어야 한다면, 어찌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겠습니까?”
“장군님 말씀은 진정 옳습니다. 부디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큰 뜻을 저버리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대의大義가 왕왕 우리 인간들의 기대와는 아주 다르게 전개됩니다.”
“···?”
“우리 임금께서는 열십자 형틀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셨지만, 그 죽음 때문에 무수히 많은 인류가 불멸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유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아가씨 의견에 동의합니다. 고죽국의 왕자들인 백이와 숙제도 비록 산중에 들어가 굶어죽었지만, 그들의 그런 생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화를 주고 있습니다.”
“그 꿈은 장군님 개인에게 주신 하늘의 계시임이 분명합니다. 하늘의 지시를 따른다면, 장군님은 생명을 얻을 수도 있고, 큰 뜻도 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새 비가 그쳤는지 바깥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때 밖으로부터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군가? 들어오시라고 해라.”
“태평공주마마께서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실내의 남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미아의 예감이 적중했던 것이다. 이루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으니 이루하가 태평공주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의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어딜 가셨나 했더니, 겨우 여기로구먼요?”
태평공주가 눈을 흘기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조영은 그녀의 말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직감했으나 응대하지 않았다.
“자기네들끼리만 모여서 맛있는 것 먹고 있나요? 아니면, 재미있는 연애담戀愛談을 나누고 있나요?”
태평공주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내가 당신을 찾아 얼마나 헤맸는지 아세요?”
태평공주가 조영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공주마마께서 무슨 급한 용무가 있으셔서 저를 그토록 애타게 찾으셨습니까?”
“흥! 무슨 급한 용무요? 자신의 목숨이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노닥거리다니, 얼마나 한심해요?”
“네?”
조영뿐만 아니라 좌중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별실에 갇힌 극시아에게는 언제 독약이 하사될지 모르고, 당신의 신병은 내준신에게 이관되었다는 걸 당신 혼자 모르시나요?”
“무슨···?”
“당신, 내준신에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죠?”
태평공주가 조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이 그러했다. 무 태후를 등에 업은 내준신은 아무도 못 말리는 인간이었다. 그는 기주자사 운홍사와 장수 장건욱 등을 심문할 때, 한 마디 말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머리부터 참수한 후 거짓 문서를 만들어 보고하기도 했다<자치통감>.
“내준신이 곧 당신을 잡으러 형옥의 저승사자들을 보낼 거예요.”
“아니 그게···?”
“내준신 앞에 가서도 조리있는 말 한 마디 못하고 그저 ‘네?’ ‘무슨’ ‘아니 그게’ 이런 말만 나열하고 있을 거예요?”
조영은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공주마마의 말씀이 모두 사실입니까?”
“그럼 제가 거짓말을 지어서 하고 있다는 거예요?”
태평공주가 격앙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말은 진실이지만, 내준신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지어서 문서를 꾸밀 수 있는 자예요. 그 자에게 걸리면, 죽음 아니면 최소 유배형이에요. 귀양살이를 가더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어요. 도중에 사자를 보내 은밀하게 죽이니까요.”
좌중의 모든 사람은 갑작스런 사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제가 어마마마께 사정사정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그 때 무유서가 입을 열어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사정이나 속 시원하게 들어봅시다. 고 장군이 어떤 중죄를 지었다는 말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어처 극시아와 얽혀 있다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을 어떻게 내가 차마 입 밖에 내서 말할 수 있어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당시 무 태후와 그녀의 사냥개들인 내준신, 주흥(?-691), 색원례, 만국준 등이 밉게 보이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면, 죄목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죽어간 이들이 무수히 많았다.
태평공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영주에 다녀온 일 하나만 가지고도 내준신은 얼마든지 반역죄를 꾸며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폐하께서 왜 죄 없는 나를 극시아와 엮어 처형하려는지, 그것이 알고 싶소.”
조영은 돌연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죄가 있고 없고는 하늘만이 알고 당신의 양심도 알 거예요. 내준신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태평공주는 상기된 얼굴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언했다.
“내준신 앞에 가면 무조건 죄를 시인하고 자백해야 해요. 그래야만 잠시라도 시간을 벌 수 있어요.”
“없는 죄를 어떻게 시인한단 말이오?”
태평공주 이영월이 이루하와 여미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기야 당신은 작년에 이 여자들을 보호하고자 엉뚱한 의협심을 발휘해, 내준신에게 폭행을 가한 죄가 있어서 이제는 뼈도 추리지 못할 거예요. 흑흑흑.”
드디어 태평공주는 여러 사람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가슴에 어떤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는지 그녀는 한번 울음을 터뜨리자 그칠 줄을 몰랐다.
그녀의 눈물 속에는 고조영에 대한 사모지념思慕之念, 이루하나 여미아 등에 대한 질투심, 자신의 신세에 대한 서러움 등이 혼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가겠소. 그들이 날 잡으러 오기 전에 내가 직접 내준신 앞으로 출두하겠소.”
갑자기 조영의 얼굴에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고 장군님, 일시의 분기로 일을 그르치면 천추의 한이 됩니다. 부디 자중하십시오.”
뜻 밖에도 여미아가 입을 열어 조영을 간諫했다.
“장군님 얼굴을 보니, 내준신 대인과 동귀어진同歸於盡하리라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건 우리의 하늘 임금께서 금하시는 행동입니다.”
고조영은 그녀의 말을 듣고 속이 뜨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단신으로 내준신을 찾아가 그를 제거한 후 자기도 죽을 결심이었다. 천하의 몹쓸 악인을 쓸어버리고 죽는 것도 그리 허망한 인생은 아니리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장군님, 내준신은 명에 따라 행동하는 하수인을 뿐입니다.”
여미아는 이 사단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명백히 밝힌 후 덧붙인다.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억울하게 붙잡혀 들어간다면 우리의 임금께서 하늘의 천병天兵들을 보내어 구출해주실 것입니다. 설사 그리하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저 하늘에 큰 희망이 있습니다. 장군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녀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밖에서 대문을 쾅쾅 두드리며 호령하는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왔다.
“게 아무도 없느냐! 어서 속히 문을 열렷다!”
모두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고 무후군의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그 때 무유서가 방문을 열고 나가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놈들, 뭣들 하는 거냐! 네 놈들의 눈에는 상관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누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귀하신 분들 앞에서 이토록 야료를 부리는가?”
마당에 들어선 군사들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무유서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장군! 저희는 명령만 수행할 따름입니다. 고조영과 함께 있는 사람은 모조리 잡아오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누구의 명을 받았느냐?”
“내준신 대인의 명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내준신이 너희의 직속상관이 되었단 말이냐!?”
무유서가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아무튼 저희는 명을 받아, 이 집에 죄인 고조영이 들었다는 전갈을 받고 왔습니다. 장군님 길을 비켜 주십시오. 그리고 장군께서도 죄인 고조영과 함께 계셨으니 저희들과 같이 가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고조영을 숫제 죄수 취급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두목이 소리쳤다.
“안에 있는 고조영은 속히 나와서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함께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오시오.”
이 때 태평공주가 문 밖으로 나오며 얼굴을 드러냈다. 군사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예를 표했다.
“나도 고조영 장군과 함께 있었으니 오라를 받고 가야 하겠구나.”
“공주마마도 저희가 함께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놈들, 너희는 목이 도대체 몇 개나 붙어 있느냐?!”
태평공주 이영월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준신 이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으면 성을 갈겠다.”
그 때부터 태평공주는 내준신을 극도로 미워하고 내준신이라면 이를 갈며 어떻게든 그의 죄를 캐어내 그를 제거하고자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다.
방안으로부터 고조영, 이루하, 미시아, 여미아 등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모두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여미아의 낯에서는 평화롭고 안정된 빛이 감돌았다.
조영은 여미아의 평온한 태도를 보고 마음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일개 아녀자도 이토록 담대한데, 내가 사내대장부가 되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일국의 태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마음을 크게 가지고 헛기침을 하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군사들의 포박을 받았다.
군사들은 무유서와 태평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 고조영, 이루하, 극시아, 여미아를 오라로 묶어 수레에 태웠다.
바깥에는 어느 덧 야음이 내리 덮이고 있었다.
(다음장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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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11. 1.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