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조선조 현종때 도호부로 승격되어 화려한 옛 명성을 뒤로하고 물속에 잠겼다.
이곳은 청풍 김씨들의 득성지로써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으로 고려말 영상을 지낸 金大猷가 시조이며 조선조중종때 조광조와 같이 왕도정치를 외첬던 金湜때 부터 두각을 나타내 숙종때에 당쟁에 깊숙이 간여해 기라성 같은 인물을 배출한다. 숙종때 金構, 영조때는 金在魯, 그 아들 金致仁 3代정승,父子정승 나왔다.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효종때 영의정을 지낸 김육(金堉)으로 그의 호는 잠곡(潛谷)인데 고을이 물에 잠긴다는 뜻인데 400년전 이곳이 댐으로 수몰되는것을 어찌 알고 잠곡(潛谷)을 호로 정했는지 탄복된다. 또한 충청감사 시절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여 세금을 확 줄어주었는데 그때부터 민초들이 허리를 좀 펼수 있었다.이 대동법이 본격 시행되기는 100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사대부들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우암 송시열도 이 법에 반대하여 청풍 김씨와 등을 돌렸다.
그의 아들은 김좌명, 김우명 둘이였는데 김우명의 딸이 현종의 비,명성왕후(命聖王后)로 숙종 임금의 어머니로써 유명한 장희빈의 시어머니로 장희빈을 궁궐밖으로 내쫓는 당당함을 보인 여걸이다.
청풍현을 스쳐간 부사들의 선정비(善政碑)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안동 김씨 청음 김상헌의 손자 김수증(金壽증)의 碑였다. 그 조카 농암 金昌협의 비도 있었다. 맏형 김수흥은 현종때 영의정으로 1689년 왕세자(장희빈의 아들) 계승 문제로 경북 포항 장기로 유배되어 객사하였고,그의 동생 수항도 거제도로 유배되어 죽고 이때 송시열도 제주도로 유배되며, 수증은 벼슬을 버리고 춘천으로 숨어서 우암 송시열의 초상을 모시고 살며 목숨을 부지한다.1689년 이때가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이 바뀌는 기사환국으로 안동 김씨들이 최대의 수난을 당하는 시기였다. 그 분들이 이곳 부사를 역임하였으니 영남인으로 관심이 깊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노론과 남인의 치열한 당쟁의 가운데서 허약한 현종을 보필하여 겉으로는 서인으로 안으로는 남인의 행세를 하면서 왕가의 외척으로 왕권을 지켜나간 청풍 김씨, 비록 청풍호 속에 그들의 터는 잠겼으나 그들이 남긴 자취는 지금도 호수위에 아른거리고 있다.
첫댓글 마치 옛 선인들이 안내를 하는듯 조곤조곤 얘기를 풀어 나가는 야천의 이 해박함이라니..... 한가위 지나고 조금 한가한날 대구 나들이에 자네 그 이바구가 기다려지네. 서울 안용진이도 함께 했으면 하던데 말이야. 벌써부터 설레이는 마음은 옛 첫사랑 그대를 기다리는듯 하이....
많이 시원해 졌네. 안박사에게 메일로 한번 오시라고 하였네.만날 날 기다릴께!!
也川이 門下로 받아준다면 얼싸 좋다고 달려가겠네. 참. 대머리님이나 누가 동행을 하여도 되겠는가?
두분 박사께서 같이 오신다면 더 할수 없는 영광이지. 누구면 어떤가! 현직에 있을때는 바빠서 관심을 갖지 못했던것 지금 소일삼아 관심을 갖자는건데... 오시면 내가 더 배울수 있어 좋지!!어서 오시게!
월헌(月軒)이 혼자 가기가 쓸쓸해서인가본데 김정태도 함께 불러 주면 기꺼이 동참하겠네. 謝!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