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 608.6m 위치: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코스:1.능가사 -팔영산장 -계곡 -1봉과 2봉사이안부 -1봉 -2봉 -3봉 -4봉 -5봉 -6봉 -7봉 -8봉 -헬기장-산복길횡단 -우측계곡 -능가사 교통편:서울고속버스터미널 -고흥. 광주-고흥, 순천-고흥행 직행버스탑승 과역에서 하차. 과역-능가사행 버스(하루 8회운행) 드라이브코스:서울 -호남고속도로 -주암인터체인지 -송광사 -낙안민속촌 -고흥군 점안면삼거리 -팔영산 성기리 주차장, 서울 -호남고속도로 -전주 -남원 -구례 -순천 -벌교 -고흥 -점암(이길은 조금 둘러오기는 하지만 고속도로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숙박:팔영산장(0666-833-8080, 7070)능가사 뒤쪽, 팔영산자연휴양림 0666-833-8779(야영장, 물놀이장, 숲속의 집 7개동) 문화재와 볼거리:능가사(현재 해체 복원공사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동종 팔영산 산행지도
산행: <> 팔영산 사진, 산행 지도, 산행기텍스트 -->그래픽판
물준비-능가사 또는 팔영산장에서 준비해야.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선 현재(3.29일현재) 물을 구할 수가 없음.
고흥군이 위치하고있는 고흥반도는 여수반도, 장흥, 해남과 함께 양쪽에 만을 끼고 남해쪽으로 깊숙이 뻗어 있는 전형적인 반도이다. 리아스식해안과 반도의 풍광이 다도해의 경관과 어울어지는 곳이 이들 반도의 주변이다. 고흥군은 남양면 대곡리일대의 닭모가지정도밖에 안되는 좁은 육지로 육속되어있을 뿐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다. 팔영산은고흥군의 동쪽 여수반도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반도중의 반도인 점암면에 위치하고 있다. 팔영산을 찾은 날은 가랑비가 끝나고 매운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구례에서 순천-벌교를 지나 고흥으로 들어오니 집에서(경기도 광주) 출발한 지 6시간남짓 된다. 동강면에 들어온 다음 마침 삼거리가 있는 큰길가에 갈비탕집이 있어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서울일대 식당의 갈비탕이라면 뻔하다. 희멀건 국물에 고기조각 몇개가 떠있는 서민메뉴의 대표격인 식사다. 그러나 이곳 동강면의 갈비탕맛은 달랐다. 커다란 살코기 덩이가 몇개나 되었고 국물은 얼큰하고 구수하였다. 나중에 팔영산아래 팔영산장에서 동강면 그집 갈비탕맛이 별미라고 했더니 동강면의 그갈비탕집이라면 알아주는 맛이라고 했다. 정확한 옥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능가사에서 바라본 팔영산. 팔영산이 모습을 드러낸 성기리앞 도로에서 본 팔영산은 고흥땅에 팔영산이 있음을 선언하는 듯 그 기개는 당당하고 그 경관은 기이하였다. 전국의 산 숱한 암릉, 암봉을 다녀보았지만 설악산을 빼고는 암릉과 암봉이라면 도봉산만한 산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터였는데 팔영산을 와서 보고 도봉산이 반드시 최고라는 생각은 접어두어야 하게 되었다. 물론 장년기 산의 옹골차고 웅장한 맛은 도봉산에 견줄 산은 없다고 하더라도 팔영산의 웅장하고 다양한 암봉미는 전국 최고급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장대함이나 절리의 웅건함에서 월출산에 뒤진다고 하더라도 월출산의 웅대한 경관이 영암쪽으로 집중되어있는 반면 팔영산은 구봉산처럼 8봉에 이르기까지 아기자기한 암릉과 6봉을 중심으로 한 웅대한 경관이 골고루 뒤섞여 있어서 암릉의 재미가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 호감이 간다. 물론 바위의 절리는 도봉산에 비할 수 없이 미세하긴 하지만. 구봉산도 아름다웠고 암봉과 암릉의 변화도 무쌍한 바 있었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는 팔영산에 명함을 내주어야 한다. 팔영산의 암봉들은 웅장하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하며 암봉의 숫자를 채울 필요가 없이 8개봉우리 안에 들지 않는 암봉이 남아돈다. 해체복원작업이 진행중인 능가사 뒤로 난 길로 500m쯤 들어가면 옛날 모의원의 비서를 지냈던 전동헌씨의 팔영산장이 있다. 팔영산 주능선에서 산입구쪽으로 뻗어내린 지능선이 팔영산의 모습을 다양하게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팔영산 산복 한가운데에 봉우리가 하나 솟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자칫 성기리에서 보면 산능선은 암릉 하나 계곡도 하나...로 지형적으로 단조로울 수도 있었던 팔영산의 경관에 깊이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능선또한 암릉이라서 등산로는 이 능선의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골짜기로 들어가는 순간 계곡은 바로 협곡이 되는 셈이다. 아침 5시전에 일어나서 밥을 해서 먹고 6시부터 산에 올라가면 일출을 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밥이 다 되어갈 무렵 주인 아저씨가 나와 조금 보자고 한다. 어제밤에도 늦게까지 단군사상(그는 삼신사상의 숭배자로 말하자면 현대적 의미의 비결파의 한사람이었다)과 삼신론, 그리고 우리민족의 운명이 기록되어 있는 남사고의 예언서 격암유록(그는 이책의 해독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고 책도 낸 적이 있는 분이었다)에 보이는 민족의 운명에 관한 얘기들을 밤이 이슥하도록 나눈 바 있었다. 우리역사에서 단군이 말살된 것으로 사학자들은 분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이 뿌리를 잃고 방황하게 만든 죄라고 한다. 결국 그의 방에 들어가 어제밤 얘기를 계속하는 바람에 일출구경은 물건너가버리고 말았다. 팔영산장에서 왼쪽 골짜기 입구로 들어가는데 산곡을 휩쓸며 치불어오는 바람이 가히 폭풍에 가깝다. 어제 먹구름을 몰아오며 최고 40mm의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되던 저기압은 가랑비 몇 방울을 떨구고 동으로 불려가고 말았다. 비온 뒤 날씨는 비록 조금 차가워지더라도 물기를 흠씬맞아 봄기운이 새록새록 돋는 풀과 나무를 보고싶었는데... 조금 올라가니 관목이긴 하지만 겨울에도 파란 사철늘푸른 나무가 보이고 곧이어 핀듯만듯 숲아래 허공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진달래가 한 두 그루 나타난다. 작년 화왕산에서 첫진달래를 본 뒤 2000년들어 처음 보는 진달래다.
2봉에서 본 신선대. 올라가면서 오른쪽 지능선으로 눈길이 자주 간다. 암릉이 단애를 이룬 것이 산곡경관을 여느산과 다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길앞쪽을 바라보면 나목숲 사이로 이제는 근접한 팔영산의 역동적인 암릉이 웅장하게 다가서고 있다. 산행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의 앙금일까? 아직은 이런 광경을 보면 가슴은 뛰지 않지만 성큼 다가서는 거인의 인상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결코 인자한 인상이 아니다. 그가 휘두를 주먹을 피하는 길은 조심이 제일관건이라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친다. 암봉이 다가올수록 산록을 훑어오는 바람소리는 거세어진다. 고흥반도의 서쪽은 천관산이 솟아있는 장흥쪽이다. 보성만을 표범처럼 건너온 바람은 매섭고 거침없이 순천만으로 빠진다. 산은 그사이에 끼여든 장애물일 따름이다. 온산이 온통 몸살을 앓듯이 진동하고 있다. 32분만에 흔들바위에 도착한다. 말이 흔들바위이지 흔들리는 바위는 아닌듯하다. 조금 올라가면 점점 경사는 급해지고 바람은 거세어진다. 드디어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에 도착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만이다. 안부라서 바람의 이동은 더욱 촉급하다. 1봉쪽의 암사면에 서서 내려다보면 한산쪽으로 내리뻗은 골짜기며 성기리쪽이며 골짜기경관이 소쇄하다. 겨울풍경에서 이런 광경이 주는 상큼한 맛은 타계절에서는 느끼기어려운 차별되는 맛이다. 냉풍에 불려온 서릿발같은 이내가 원경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지만 바로 아래 산골짜기의 풍광은 투명한 겨울의 산록모습 그대로다. 바위는 희고 나목은 갈색이며, 풀은 황백, 원경은 흐릿하고 소나무는 탄력을 받아 흔들리며, 나목의 가지는 추위에 어쩔줄 몰라하는 어린애처럼 발발 떨고 산록은 별다른 장애물없이 미끈하게 해안평야를 향한 적절한 구배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고 적당히 섞여진 식생(소나무숲과 활엽수림의 뒤섞임)과 탈색된 산록은 물감사용을 극도로 자제한듯한 수채화처럼 보인다. 그것이 외려 풍경의 에센스를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소나무가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봄볕에 더욱 푸르른 가지들이 주변의 갈색나목숲과 대조를 보이면서도 제일 잘 어울릴 때가 지금이기 때문이다. 나목숲에서 갑자기 한두그루 산벗꽃이라도 피면 그것 또한 볼만한 광경이 될 것이다. 팔영산은 암봉이 치솟은 능선이 시작되기 전엔 대체로 완만한 경사의 산록이 주능선을 받쳐주는 형상이다. 이것이 주능선의 바위지대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1봉과 2봉사이엔 조그마한 테라스가 형성되어있고 그위에 소나무가 한그루 자라고 있다. 그것을 타고 넘어 2봉으로 접근하는데 조그마한 소나무가지에 산악회리본이 잔뜩 매달려 바람에 펄펄 날리고있는 것이 보인다. 이 리본은 갈림길에 매달아놓은 리본과는 그 기능이 다르다. 갈림길의 리본은 문자그대로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곳 바위테라스의 리본은 이곳경관이 좋다는 것,리본을 매달면 폼날 것 같다는 생각을 무언중에 내비친 것이다. 산행자가 즐기고 있는 산행재미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 테라스위에 오면 지근거리이긴 하지만 1봉과 2봉이 건너다 보이기 때문에 그나름의 세계를 이룬 바위천지와 주변의 계곡이며 신선대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즐길수 있다. 1봉에서 2봉을 보거나 2봉에서 1봉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거대한 단애를 거느린 신선대가 우뚝하다. 팔봉능선과 상거하여 홀로 높이 솟은 암봉을 신선이 노니는 곳으로 치부하여 신선대라고 한 모양이다. 그 뒤편에 펼쳐지는 바다풍경은 바람이 심하고 회색 이내가 짙은 반겨울같은 이런 날씨에는 도무지 제빛이 나지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날의 풍광이 주는묘미도 있다. 1봉에 올랐다가 예의 테라스를 지나 본격적인 암릉타기를 시작한다. 팔영산의바위는 월출산 바위와 암질이 비슷하고 색채도 유사하다. 절리는 팔영산쪽이 미세한 편이라 바위와 암봉의 규모, 암릉의 사이즈에 차이가 난다. 팔영산에는 위험지대에 주로 쇠줄이 걸려있고 다른 산에는 없는 철제 스텝이 요긴한 곳에 여럿 설치되어 있다. 쇠줄을 잡더라도 발 디딜 데가 마땅치 않은 곳 꼭 필요한 곳에 철제 스텝을 설치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붙잡고 오르내렸는지 쇠줄고리는 광이 날 정도로 반질반질하다. 1봉과 2봉사이 안부를 서성이며 일대의 바위의 형상, 근경과 원경을 감상하느라고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볼 것이 끊이지 않고 시야에 들어온다. 1봉동쪽으로 깎아지른 바위아래 위가 평평한 뾰족한 바위가 서 있고 그 뒤는 나목숲이라 하얀 바위의 선이 유난히 선명한데다 평평한 꼭대기에 소나무 한그루가 푸른 생명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봉에서 2봉을 보면 절리가 미세한 암봉의 형상이 회화적이다. 동양화에서 흔히 보는 준법의 바위산 산괴 그대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봉산의 바위를 그리려면 붓놀림이 별로 필요치 않다. 매끈한 화강암 암봉들이기 때문에 윤곽선만 선명해도 바위산의 형상은 창조된다. 그러나 팔영산의 암봉은 미세한 붓질이 필요하다. 절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2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본격적인 바위타기의 시작이다. 두군데에 쇠줄이 걸려있고 철제 스텝이 두어군데 설치돼 있다. 2봉에 올라선 다음 3봉으로 가면 팔영산 암봉이 열병하듯 1열로 죽 서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7봉과 8봉은 6봉과 상당부분 중첩되어 있지만 그래도 봉우리를 확인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암봉중 가장 우람한 걸물은 6봉이다. 카메라의 망원에 잡힌 6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난간의 붉은 철파이프는 멀리서 보면 마치 자기보다 수십배 큰 물체를 포획한 뒤 거미줄로 감다가 실패한 듯 암봉의 한쪽에 걸려 있는 거미줄처럼 연약해보인다. 어쨌거나 팔영산의 4개 봉우리가 중첩되어 보이는 이 바위산조망은 국내 암릉에서도 최상급의 경관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장관이었다. 이 경치를 즐기려면 될 수 있는 대로 한발자국이라도 동쪽벼랑으로 접근해야 된다. 각기 독특하면서도 규모가 비슷하고 높이가 고만고만한 암봉 들이 줄이어 솟아 있는 경관을 찾아내기란 쉽지않을 것이다. 이것 보자고 그 먼길을 달려온 것이다라고 속으로 단정하면서 감상에 젖는다. 곳곳에 기경을 베풀어놓고 자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씩 그 진수를 구경케 하는 이는 누군가? 하나씩 올라본 암봉들 꼭대기엔 최근에 세운듯 작은 산비명이 설치돼 있다. 성주봉, 상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등이 그것이다. 능가사 능가사는 팔영산의 일반등산로가 있는 성기리쪽 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능가사는 신라때 창건한 절로 한때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순천송광사와 함께 호남의 거찰로 불리워질 정도였다.임진왜란때 소실된 이후 정현대사가 인조22년에 중창했다. 현재는 송광사의 말사이다. 2000년 3월말 현재 대웅전을 해체복원중이라 절 부근은 쓸쓸하기만하다. 그러나 호남쪽 사찰인 무위사등의 4천왕문이 그렇듯이 지붕이 상대적으로 넓어 키작은 사람이 큰 갓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천왕문이 시야에 들어오고 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인 동종이 매어진 종각이 한쪽에 서 있다. 동종은 높이 157cm로 비교적 큰 종이다. 조선조 숙종 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용뉴의 생김새나 음향의 질 같은전문적인 부문은 잘 모르나 종신에 새겨진보살입상은 뜻밖에도 한적한 지방의 동종에서는 드물게 섬려한 부조를 보이고 있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종면의 보살상이 유독 그러하였다. 탱화에서 보는 보살입상을 떠올리면 이런 작품의 연원을 이해할 수 있어도 종면에 부조로 뜬다는 점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능가사 안쪽에는 단청을 한지 오래된 정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응진전이 단아하고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있는데 지붕이 유난히 커보인다. 4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보니 1봉쪽에 사람 셋이 올라온 것이 보인다. 간밤에 휘몰아친 강풍을 생각하면 다소 이외이다. 이런 날에 산을 찾을 정도라면 산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팔영산장의 전선생의 말대로 라면 일요일이면 1000명정도가 팔영산을 찾는다고 한다. 산의 위험도와 먼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아니다.그러나 평일에 그것도 스산한 반겨울 날씨에 산을 찾을 정도라면 그들도 산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5봉에서 6봉을 바라보면 거대한 자연석탑을 바라보는 듯하다. 이 탑을 에우며 돌아가 철난간이 정상으로 가는 통로이다. 미세한 절리에서 떨어진 돌덩이들이 안부에 깔려 있다. 바위산에서 산의 형상을 갖추게 한 돌덩이들이 떨어지면 그 바위산은 그만큼 연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6봉은 돌덩이들이 떨어짐으로써 봉우리는 더욱 강건해보이고 더욱 다이내믹해 보인다. 마치 조각가가 화강암으로 굳세고 담력있는 얼굴을 조각하기 위하여 깎아내는 돌조각이 수북히 쌓이면 쌓일수록 강인한 인상의 얼굴이 완성되어 가듯이. 6봉의 철난간으로 가기전 안부에 커다란 기암이 하나 있다. 기암을 지나 철난간을 잡으며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4봉에서 마치 붉은 거미줄이 거대한 암사면에 붙어있는 듯이 보이던 바로 그 쇠난간이다. 6봉인 두류봉에 올라오면 안양동계곡(팔영산의 동쪽에 위치한 긴 계곡)끝 완만한 산비탈에 세워진 팔영산 자연휴양림지구가 발아래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꼬불꼬불 긴 계곡이 이어지고 그 끝에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신선대는 방향이 달라지긴 했지만 계속 우람한 자태를 보이며 중경에 떨어져있다. 6봉을 내려오는 데에도 하얗게 반들거리는 쇠줄이 바위사이의 좁은 내리막길 사이로 드리워져 있는 곳이 두어군데 되는듯 하다. 7봉에 올라오면 농밀한 이내로 하여 흐리기는 해도 영남면 앞 해안 해창만일대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름다운 남쪽 바닷가가 내려다 보인다. 섬의 서쪽은 거대한 간척지가 형성되어 있다. 7봉인 칠성봉 남쪽엔 단애위에 펑퍼짐한 테라스가 형성되어있어서 앉아서 쉬며 다도해 구경을 하기가 좋다. 서쪽은 작은 지계곡을 형성한 능선너머로 푸르디 푸른 시목저수지의 맑은 물이 얼핏 보인다. 성기리에서 팔영산으로 올라오며 계곡이 바싹 말라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팔영산은 고흥반도의 해안평야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이다. 팔영산의 작은 골, 큰 골 할 것 없이 크고작은 저수지가 푸른물을 받아놓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명산이 있어서 그 기운이 삶에 직접 간접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이중환의 택리지의 설명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고 게다가 사철 맑은 물을 흘려내려줘 사람과 식생의 목을 축여주니 팔영산은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는 고마운 산인 셈이다. 7봉에서 8봉까지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고 웬만한 산 같으면 구영산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암봉이 하나 더 있는데도 그냥 팔영산인 것을 보면 조그마한 바위가 하나 있어도 이름이 달라지는 산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7봉까지의 봉우리들은 위가 평탄한 곳이 없지는 않지만 8봉에 비해서는 첨봉에 가까운 봉우리인 반면 8봉은 밋밋한 것이 소잔등처럼 완곡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서 특색을 보인다. 8봉에서 서쪽 암사면을 내려다보면 온통 바위천지를 이룬 듯하고 산사면 아래쪽에도 불쑥 불쑥 스투파같은 암봉이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암봉 두어개 거리만큼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을 8봉에서 7봉사이의 하산길로 되돌아가는 길에서만난다. 그들은 순천 연향동에서 팔영산을 찾아온 장영식씨일행(사진참조)이었다. 그들의 안내로 7봉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이 팔봉을 지나서 공터까지 간 다음 갈림길에서 하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니까 팔봉이전에만 하산로가 있는 지도는 이미 낡은 지도가 돼버린 셈이다. 하산길은 생각보다도 편안하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수월하게 탑재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탑재에 오기전 암봉들이 보이는 전망대를 찾아 되돌아본 팔영산 암릉은 생각과는 달리 주능선을 중심으로 한 좁은 지역에만 몰려있는 듯하다. 전망대(숲속에 있어서 일부러 찾아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를 지나자 측백나무숲이 나타난다. 강풍에 흔들리는 숲은 나목숲의 흔들림과는 달리 움직임자체가 싱싱하고 여유가 있다. 탑재로 나오자 측백나무숲이 여간 넓지않게 산록을 푸르게 뒤덮고 있어 보기가 좋았다. 산장이 가까워지는 길목에 진달래가 피어있다. 산수유는 더러보여도 진달래는 골짜기를 처음 올라갈 때 보고 처음이다. 진달래는 해발 200여m전후의 높이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탑재에서 팔영산장까지는 지금은 갈수기라 물이 거의 없지만 여름이 되면 꽤 싱그러운 숲길이 되어줄 것 같다. 숲사이로 보이는 중간지능선위의 암릉도 구경거리는 될만했다. 팔영산장 가까이오면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푸른물 저편에 싱싱한 대나무숲이 우거져있고 그 위는 암릉이 솟아있다.
첫댓글 간만에 가보는곳이네예
상세내용 감사^^^
산행대장님~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