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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남선 교수님과 함께하는 풍수답사입니다. *
정기답사는 홀수 달 둘째 주 일요일에 실시하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시 미리 공지하겠습니다.
무더위에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덥다덥다해도 참 많이도 더웠지요. 그래도 요즘은 아침기온에 찬바람이 묻어있는듯 하여요.
답사를 경주로 간다기에 오랜만에 시야에서 멀어졌던 앨범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에 수줍은 듯 웃고 있는 어릴적 제 모습에 한참 눈길이 멈췄구만유. 저도 이리 아련하고 그리운데 저보다 더 하시겠지요? 그때 그 모습은 아니더라도 그때 그 마음을 담아 풍수학인의 열정으로 경주로 수학여행 함께 가시게요.
우리가 강의시간에 배웠던 '자장율사'의 풍수에 대해 현장을 직접 보면서 다시 한 번 올바른 풍수에 대해 생각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먼 훗날 되돌아 보면 젊고 예쁜 청춘이겠지요(*.*) 더울 때 나 추울 때 나 늘 열공해 주시는 우리 청춘을 위해서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 올립니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를 쓴 것은 78세 때였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훨씬 뒤, 맥아더 장군을 통해서 였다고 합니다. 청춘 -사무엘 울만
늘 동행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1. 일시 : 2018년 9월 9일 (일)
2. 장소 및 시간 : 아주대 정문 오전 8시 출발
3. 답사지
1) 진평왕릉(경북 경주시 보문동 608)
신라 제26대 왕.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백정(白淨). 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銅輪)이며, 어머니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딸이자 진흥왕의 누이인 만호부인(萬呼夫人)이다. 576년(진흥왕 37년) 진흥왕이 죽은 뒤에는 숙부인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이 왕위에 올랐으나, 579년(진지왕 4년) 진지왕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죽은 뒤에는 진지왕의 아들이 아니라 조카인 진평왕이 왕위를 이었다. 능은 널따란 들판의 상단부에 있으며 1969년 사적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2) 선덕여왕릉(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646년경에 조성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능이다. 선덕요왕은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복승 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인 마야부인(摩耶夫人) 김씨이다.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는 음 갈문왕(飮葛文王)이 선덕여왕(善德女王)의 배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69년 8월 27일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낭산(狼山) 보호구역에 포함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3) 사천왕사지(경북 경주시 배반동 947)
679년(문무왕 19)에 창건된 절. 674년 당나라는 신라가 그들의 도독부(都督府)군사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병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였는데, 문무왕은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계책을 따라 낭산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채백(彩帛)으로 절을 짓고 풀로써 오방(五方)의 신상(神像)을 만든 사천왕사를 세우고 불공을 드렸더니 당군이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삼국유사 기록) 가람배치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탑·서탑이 있고, 북방으로는 좌경루(左經樓)·우경루(右經樓)가 있어서 마치 본존불(本尊佛)이 안치된 금당을 중심으로 사천왕이 배치된 것과 같은 특이한 가람형태를 이루었다. 유지에 남아 있는 문화재로는 머리가 잘린 귀부(龜趺) 2기와 당간지주(幢竿支柱) 1기뿐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사천왕이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형상화한 상(像)으로 동방 지국천(持國天), 서방 광목천(廣目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북방 다문천(多聞天)을 말함.
4) 진덕여왕릉(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48)
성은 김(金), 이름은 승만(勝曼)이다. 태화(太和, 647년〜650년)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성골(聖骨) 출신의 마지막 왕으로 아버지는 제26대 진평왕의 동생인 진안 갈문왕(眞安葛文王)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月明夫人) 박씨(朴氏)이다.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는 아버지가 국기안(國其安) 갈문왕(葛文王)이고 어머니는 아니부인(阿尼夫人) 박씨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덕여왕(眞德女王)은 자태가 풍만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키가 7척이나 되었고, 늘어뜨리면 무릎 아래에 닿을 정도로 팔이 길었다고 한다. 진덕여왕은 647년(선덕여왕 16년) 사촌인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년∼647년)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7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국력을 길러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해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죽은 뒤 사량부(沙梁部)에 장사지냈다는데 지금의 위치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5) 태종무열왕릉(경북 경주시 서악동 842)
신라 제29대 왕. 성은 김(金), 이름은 춘추(春秋)이다. 25대 진지왕(眞智王)의 아들인 이찬(伊湌)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26대 진평왕(眞平王)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각찬(角飡) 김서현(金舒玄)의 딸이자 김유신(金庾信)의 동생인 문명부인(文明夫人) 문희(文熙)와 결혼하여 법민(法敏), 인문(仁問) 등의 아들을 낳았다. 무열왕은 654년 진덕여왕이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죽자 이찬 알천(閼川)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에는 나라 사람들이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부터 진덕여왕까지의 28대를 성골(聖骨)이라고 불렀으며, 무열왕부터를 진골(眞骨)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능은 서악동 선도산 아래 구릉의 동사면에 종렬한 5기의 대형 원분(圓墳)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1963년 01월 21일 사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4. 회비 : 4만원 (당일 총무에게 지급)
5. 연락처 : 회장 김 종대 (010 - 4234 - 7074) 실장 하 태현 (010 - 9239 - 2139) 총무 김 은희 (010 - 3228 - 6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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